격몽요결
이율곡 지음, 이민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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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율곡선생의 명저이다. 어릴적에 박물관에서 구입해서 읽어본 기억이 있지만 너무나도 오래전에 구입했던 책이라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느낌만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나이였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땅한 이치에 대하여 논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대체로 동양고전이나 철학서적이 서양서적들에 비해서 다소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다. 물론 좀 더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루는 책으로 들어가면 어렵기는 똑같겠지만 아무래도 동양인이기에 이러한 책들이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 본다. 


 율곡선생은 그 어렵다는 과거를 그것도 아홉번이나 장원급제하신 분이다. 그로 인해서 구도장원공이라는 대단한 별칭까지 얻었으니 참으로 놀랍다. 이 분은 태어났을 때부터 천재였다. 3살 때 말과 글을 배웠으며 7세 때 진복창전이라는 글을 썼으며 10살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대부라는 글을 썼으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 나이 때 무엇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도 않는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이러한 율곡선생이 쓴 이 책 『격몽요결』은 일종의 자기관리책이라고 볼 수 있다. 격몽은 몽매한 자를 교육한다는 의미이고 요결은 우리가 알다시피 중요한 비결이라는 뜻이다. 율곡선생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다소 흥미롭다.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율곡선생이 남쪽에 집을 정하고 살려니 학도 한 두사람이 와서 배우기를 청했다고 한다. 이에 선생은 스스로 스승이 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편, 또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아루런 향방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확고한 뜻이 없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묻고 보면 서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남들에게 조롱받을까봐 두렵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격몽요결에는 학문에 뜻을 두기 전에 자기 마음을 세우는 법과 몸소 실천한 일, 부모님을 섬기는 방법, 남들을 대하는 방법 등 일종의 수신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 많은 내용은 아니지만 삶을 살아감에 있어 필수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어 현대인들이 읽어도 매우 큰 도움이 될 책이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반성, 반성, 반성 뿐이었다. 내 자신의 생활에 대한 강력한 호통을 듣는 기분이었다. 어린나이에 학문을 뜻을 세우고 치열하게 몰두 했으며 스스로 자경문이라는 글을 지어 매양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았던 율곡선생의 모습을 절로 떠올랐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보다도 더 젊은 나이에 더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가신분이 남긴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너무나도 또렷하고 확실하게 나타나서 더 부끄러웠다. 복잡한 것도 아니고 확실한 길이 있는데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단순한 길이 오히려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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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책
제임스 가비 지음, 안인경 옮김 / 지식나이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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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주요 책들로 살펴본 서양철학사" 정도가 될 듯 하다. 플라톤을 시작으로 중세, 근대, 20세기까지의 다양한 철학자 및 철학서적들을 다루는데 철학입문자들에게 괜찮을 법한 책이다. 물론 얇은 책에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담으려는 노력때문에 살짝 난해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저자가 이해한 방향으로 각기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담기에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이견이 살짝 있을 법하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저자가 최대한 노력하여 철학사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과 저자들의 사상을 나름대로 잘 담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끈기 있게 파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일관된 생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략하게 전체적인 철학사나 철학자들을 소개한 책들도 좋아한다. 이 책 이외에도 "철학콘서트1,2", "철학의 에소프레소", "철학하라" 등 다양한 작품들이 철학에 질려하는 독자들을 유혹한다. 원전보단 쉽게 풀이되어 있고 일반인들이 수월하게 소화하도록 한 책들이다. 요즘에는 이런 책들이 원전보다 더 인기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씁쓸하기도 하지만 철학의 장벽이 만만치 않음은 나도 알고 있다. 어찌보면 이러한 책들이라도 읽어서 일반인들이 철학에 관심을 갖거나 보다 깊은 사고를 하여 깨어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역시 초기 철학자들의 작품이 그나마 이해하기 수월한 것 같다. 근대를 들어서면서 칸트나 헤겔 같은 사상가의 철학을 보노라면 도대체가 진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말이다. 그렇다고 초기 철학자들의 작품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소 호흡이 긴 책들을 보다가 이렇게 짧막짧막하게 넘어갈 수 있는 책을 보아서 다시 기운이 샘솟는다. 오늘도 내일도 책을 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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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 백성의 편에서 세상을 바꾼 휴머니스트
임채영 지음 / 북스토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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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와 동시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도 크나큰 관심을 갖게 되어서 나름대로 글을 잘 써보려고 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글은 잘 나오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끔씩 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왠지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연암은 마음속 방향을 찾아주는 등대와도 같다. 처음에는 열하일기라는 고전으로만 알던 상태에서 점차 연암 박지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연암의 글이 매우 빼어나고 인물 자체로도 위대하다고 추앙받아 마땅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더더욱 내 관심은 커져만 갔고 연암에 대한 책들도 몇 권 읽었다. 알면 알수록 흥분과 기쁨이 샘솟듯 넘쳐왔다. 처음에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빼어남을 얕은 지식으로나마 알게 되어 놀랐고 연암의 인품과 그 올곧은 기상은 참으로 거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연암에 대한 내 마음은 켜져만 갔다. 비록 지금은 글로나마 만날 수밖에 없는 연암을 이 소설을 통해 본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역사적 사실과 약간의 허구로 재구성된 연암의 모습이지만 그가 지나왔던 발자취를 따르며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 기쁘다.


 연암은 조선후기의 인물로서 그 뛰어난 문장으로 인해서 그 위명이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열하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문장으로만 연암을 안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눈을 만지고 코끼리의 모습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단순히 문장만 뛰어나다고 칭송하는 것은 연암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연암이 서양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와도 비견될 인물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올곧고 한결같은 인품이 뒷받침하기에 그런 것이다. 단순히 말해 문장은 뛰어나지만 그의 사람됨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할 뿐 아니라 그의 문장에 대해서도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해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연암은 그의 성품은 올곧았으며 특히 백성을 위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의 문장을 칭송하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도 나오는 안의현에 부임하여 바로 포흠을 척결하고 도둑을 잡는 등의 일화는 실제로 있던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전에 보았던 연암에 대해 그의 아들 박종채가 쓴 책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직에 있으면서 항상 백성을 위하고 백성들이 고초를 겪지 않도록 항시 신경 썼던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나라의 공무원과 참 대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문장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는 연암의 참 모습을 알고 그의 문장을 바라봐야 그의 문장에 담긴 깊은 의미와 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연암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속에서 우리가 위정자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다면 다른 일화를 통해서 연암의 공직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알 수 있다. 연암이 공직에 있었을 당시 승진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연암은 본래 6일이란 근무일수가 더 지나야 승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6일 정도는 누구나 눈감아 주고 승진명단에 넣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연암은 자신의 근무일수가 모자르다는 것을 알고 승진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후 몇 개월을 더 근무한 후에야 승진을 했다. 어찌보면 너무나 고지식한 것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연암의 올곧은 성품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누구나 며칠쯤은 하는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승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에 조금씩 관대해진다면 이후 큰 것에도 관대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무원이 갖추어야할 대쪽 같은 우직함이 여기에 있다.


 내가 연암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은 알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는데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죽월의 존재였다. 죽월이라는 관기에 대한 기록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아마도 저자가 소설이라는 형식이기에 가상의 인물을 넣은 듯하다. 본래 소설 속에서 애정이란 주제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독자의 호기심과 몰입도를 높혀 주는 것이기에 이 죽월이라는 존재를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생각인 것 같다는 생각에 좀 더 생각을 해 보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연암의 문장의 빼어남은 워낙 잘 알려져 있기에 그리 큰 비중으로 다루지 않고 연암이 백성을 위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다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한다. 문장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의 연암을 그리기 위함이니 아마도 죽월이란 인물의 연암의 가족에 대한 그 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넣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암은 부인이 죽자 그에 대한 애통함을 표현한 시를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후실을 들이라고 주변에서 권했으나 들이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죽월과 연암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왜 죽월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 마음이 잘 드러난다. 상당히 연암에 대해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해도 연암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휴가를 맞이하여 가족과의 대화에서 가족을 위하는 그 마음과 올곧음이 잘 드러난다.


 연암은 글을 배제해놓고도 인물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인물이다. 그의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태도, 서얼에 관계없이 뜻이 맞는 지우들과 격이 없이 지낸 성품, 공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항시 백성을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던 모습, 말과 행동이 일치하던 한결같은 모습들을 보면 절로 연암에 대한 존경심이 솟을 것이다. 뛰어난 문장을 쓰던 연암도 백성을 사랑하던 연암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던 연암도 다 같은 연암이란 인물의 모습일지니 오늘날 우리는 그토록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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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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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집에서 상당히 떨어진 서점에 혼자서 돈을 가지고 찾아가곤 했다. 한 권에 2,3천원하던 만화책이 그 당시는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돈이 생기기만 하면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곤 했다. 그 당시에 내가 샀던 책들이 지금은 다 없어지고 보이지 않지만 어떤 책인지는 아직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다지 두껍지는 않았고 만화로 우리고전소설들을 그려놓은 책이었다. 전우치전, 인현왕후전 등 다양한 소설들을 만화로 그려낸 그 책들이 정말 나를 흥미진진한 고전소설의 세계로 빠뜨렸다. 도술을 부리던 전우치가 탐관오리들을 혼내주고 백성들을 구해주는 이야기는 정말 환상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쉽게도 그 이후에 오랜시간 동안 나는 우리고전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고전소설에 대한 책을 보니 이런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니 참으로 반갑기도 했다. 두 명의 저자가 만들어낸 이 책은 고전소설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생각에서 쓴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전소설들의 내용들을 통하여 당시가 어떤 사회였는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고 자세하게 풀어가고 있다.


  단순히 고전소설들의 줄거리만을 나열하는 식의 책이 아니라 고전소설의 내용을 통하여 그 시대상을 들여다보고 어떠한 배경에서 이 소설들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소설속에 담긴 의미를 무엇인지를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어서 누구나 읽고서 흥미를 가지게끔 쓰여진 책이라서 상당히 좋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허생전이라든가 전우치전, 심청전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욱 흥미를 끌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심청전의 실재모델이라든가 그 행적을 추적하는 내용은 상당히 놀라웠다. 흔히 소설은 당시 사회를 반영하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심청전의 심청이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로도 자주 만들어지는 춘향전의 주인공이 실존했다는 사실도 정말 놀랍기 그지없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그러한 역사가 아니라 그렇게 대대로 전승되어온 우리고전을 통하여 바라본 역사는 참으로 재밌다. 밋밋한 느낌만 주는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를 탐구하게 만들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재미있는 요소를 통하여 독자에게 흥미를 주지만 이러한 소설의 이면에 담긴 당시 사회상은 실로 진지하게 다가온다. 설공찬전은 글에 담긴 귀신이라는 요소 때문에 금서가 되었다. 옹고집전에는 조선시대에 배척받는 불교에 대한 모습이 담겨있기도 하다. 또, 은애전을 통해서 (여인의)정조를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한 여자가 무죄 방면되는 실로 놀라운 일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소설 속에서 당시의 사회가 어떠한 이념과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이 책은 알려준다. 우리가 재미있는 것으로만 여기는 고전소설에 담긴 진지한 의미를 우리는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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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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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엄밀히 말하자면 동물에 속하는 종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구별지으며 인간은 가장 위대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하여 증명이라고 하듯 유일하게 고등적인 사고를 하는 종으로서 인간은 이 자연속에서 자신들만을 생각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인간은 예로부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사유들은 행해왔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를 비롯하여 인간이 이 광대한 우주에서 어떠한 지위에 있는지를 생각했던 막스 셸러까지 다채롭고 진지한 물음들에 대하여 저마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에 대하여 이 책이 그에 대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힌트 정도는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우슈비츠

 인간이 한없이 타락하고 비참해지고 그 존엄성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장소에서 인간은 단지 살덩이에 불과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갔다. 그리고 가스실에서 최대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연기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있을 것임이 틀림없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사라지는 그 장소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니었다. "명"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개"로서의 인간이었으며 나치 친위대의 한마디에 의해서 생과 사가 갈렸다. 건강하고 쓸모있다고 여겨지면 오른쪽에 병들고 쓸모없어 보였다면 왼쪽으로 보내서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이 무참히 유린되었다. 나치들에게 그들은 단지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으로 구분되는 노예, 아니 그조차도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레비의 이 글이 우리에게 보다 가까히 다가오는 이유는 절제된 문장에 있다. 그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끝에 살아남은 생존자인 레비는 감정적으로 글을 썼을 법한데 오히려 절제되고 담담한 필치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만약 분노하고 분개하는 필치로 쓴 글이라면 우리는 그다지 큰 공감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감정적인 글이라면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글이라도 과장되어 있을 거라고 우리는 볼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너무나도 담담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고요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의 가슴에 가깝고 깊숙히 다가온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누구나 사실이라고 정말 비참했었더라고 은연중에 말하는 문장은 참으로 강력했다.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가 사라진 장소를 보여주는 이 글에서 우리는 홉스가 말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모습이 담담하게 보여졌다. 그래서 우리는 레비의 글에 그렇게 공감했던 것이다. 


 내가 이 글을 보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수용소에서 상업적인 거래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들어오면서 모든 물품을 강탈당하고 맨몸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만들어서 서로간에 필요한 것들로 물물교환을 하며 생활했다. 하나못해 숟가락도 주지 않았기에 재료를 구하여 만들어 매일 보급받는 빵 몇조각에 팔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훔쳐온 빗자루를 먹을 것과 교환하기도 했다. 내가 이러한 내용보면서 딱 한 가지를 떠올렸다. 수용소도 인간이 사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존엄성이 훼손되는 수용소였기도 하지만 그 수용소 역시 사람들이 있기에 한 사회였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완전한 나락으로 떨어졌음에도 살기위하여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고 심지어는 본능만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수용소 역시 인간들이 있는 곳이었다. 바깥 세상에서는 숭고한 가치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오로지 생존만이 최우선이 된 사회였음에도 우리는 그 곳에서 인간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벗겨진 나체의 인간 말이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인가? 의식주가 편안해진 후에야 고등적인 가치를 생각하는 우리네 인간은 스스로의 그 존엄성에 대하여 높히 평가하지만 수용소에서의 인간은 단지 짐승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루를 무사히 생존해 가는 것에 기뻐하고 먹을 것에 집착하고 선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있는 인간은 과연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인간이 맞는가? 모든 허울과 체면을 벗어던지고 위선과 가식이 사라지고 선이라는 가치가 저리 먼 똥통에 빠진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보게 된다. 생존만이 우선시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속의 인간이 진짜 인간이 아닐까? 배가 불러야만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인간의 특성을 볼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위선가 가식 속의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불편한 생각을 하게 한다. 너무나 부정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본연에 대한 진실된 모습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가치가 부정되는 수용소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음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모든 모습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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