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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인간은 엄밀히 말하자면 동물에 속하는 종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구별지으며 인간은 가장 위대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하여 증명이라고 하듯 유일하게 고등적인 사고를 하는 종으로서 인간은 이 자연속에서 자신들만을 생각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인간은 예로부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사유들은 행해왔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를 비롯하여 인간이 이 광대한 우주에서 어떠한 지위에 있는지를 생각했던 막스 셸러까지 다채롭고 진지한 물음들에 대하여 저마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에 대하여 이 책이 그에 대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힌트 정도는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우슈비츠
인간이 한없이 타락하고 비참해지고 그 존엄성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장소에서 인간은 단지 살덩이에 불과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갔다. 그리고 가스실에서 최대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연기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있을 것임이 틀림없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사라지는 그 장소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니었다. "명"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개"로서의 인간이었으며 나치 친위대의 한마디에 의해서 생과 사가 갈렸다. 건강하고 쓸모있다고 여겨지면 오른쪽에 병들고 쓸모없어 보였다면 왼쪽으로 보내서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이 무참히 유린되었다. 나치들에게 그들은 단지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으로 구분되는 노예, 아니 그조차도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레비의 이 글이 우리에게 보다 가까히 다가오는 이유는 절제된 문장에 있다. 그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끝에 살아남은 생존자인 레비는 감정적으로 글을 썼을 법한데 오히려 절제되고 담담한 필치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만약 분노하고 분개하는 필치로 쓴 글이라면 우리는 그다지 큰 공감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감정적인 글이라면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글이라도 과장되어 있을 거라고 우리는 볼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너무나도 담담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고요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의 가슴에 가깝고 깊숙히 다가온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누구나 사실이라고 정말 비참했었더라고 은연중에 말하는 문장은 참으로 강력했다.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가 사라진 장소를 보여주는 이 글에서 우리는 홉스가 말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모습이 담담하게 보여졌다. 그래서 우리는 레비의 글에 그렇게 공감했던 것이다.
내가 이 글을 보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수용소에서 상업적인 거래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들어오면서 모든 물품을 강탈당하고 맨몸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만들어서 서로간에 필요한 것들로 물물교환을 하며 생활했다. 하나못해 숟가락도 주지 않았기에 재료를 구하여 만들어 매일 보급받는 빵 몇조각에 팔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훔쳐온 빗자루를 먹을 것과 교환하기도 했다. 내가 이러한 내용보면서 딱 한 가지를 떠올렸다. 수용소도 인간이 사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존엄성이 훼손되는 수용소였기도 하지만 그 수용소 역시 사람들이 있기에 한 사회였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완전한 나락으로 떨어졌음에도 살기위하여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고 심지어는 본능만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수용소 역시 인간들이 있는 곳이었다. 바깥 세상에서는 숭고한 가치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오로지 생존만이 최우선이 된 사회였음에도 우리는 그 곳에서 인간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벗겨진 나체의 인간 말이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인가? 의식주가 편안해진 후에야 고등적인 가치를 생각하는 우리네 인간은 스스로의 그 존엄성에 대하여 높히 평가하지만 수용소에서의 인간은 단지 짐승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루를 무사히 생존해 가는 것에 기뻐하고 먹을 것에 집착하고 선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있는 인간은 과연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인간이 맞는가? 모든 허울과 체면을 벗어던지고 위선과 가식이 사라지고 선이라는 가치가 저리 먼 똥통에 빠진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보게 된다. 생존만이 우선시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속의 인간이 진짜 인간이 아닐까? 배가 불러야만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인간의 특성을 볼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위선가 가식 속의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불편한 생각을 하게 한다. 너무나 부정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본연에 대한 진실된 모습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가치가 부정되는 수용소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음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모든 모습은 가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