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거리를 본 적이 있다. 마치 드라마 와이어의 한 장면처럼 쓰레기더미가 나뒹구는 지저분한 거리 모습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약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거리가 정말 세트장이 아니라 실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에 몹시 심란했다. 미국은 도시 한구석에 우범지역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거리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나니 그 심각성이 너무 확 와 닿았다.

처음에는 저 거리도 저렇지 않았을 거다. 필라델피아 하면 미국에서는 오래된 역사적인 도시이고 그 도시의 일부인 저 곳도 꽤나 유서 깊은 거리일 텐데 저렇게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켄징턴 애비뉴. 내가 영상으로 본 거리이자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곳은 원래 공장이 많았고 철강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라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가정을 꾸려 안락하게 살던 주택들이 많이 있던 곳이었다 한다. 그러다 공장들이 다 문을 닫고 빈 집이 늘어나고 실업자가 많아지면서 거리는 점점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거기에다 결정적으로는 마약이 판을 치면서 이 거리는 중독자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마약이 모든 걸 망쳐 놓았다.

 

켄징턴 애비뉴를 매일 순찰 도는 경찰관 미키는 사연이 있다. 미키의 동생 케이시가 바로 이 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미키는 동생을 지켜보기 위해서 매일 이 거리를 순찰한다.

마약 중독자들은 자신이 구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약을 끊고 싶지 않는 거다. 약을 끊으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하고 그 시도는 실패하기 일쑤다. 실패하고 나면 더 큰 중독의 늪에 빠진다. 케이시도 수년간 이 패턴을 반복해 왔고 이제는 그냥 거리와 한 몸이 된 듯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언니인 미키는 그런 동생을 오랫동안 겪어 왔다. 이제는 멀리서 동생의 생사만 확인 하는 수준으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이 거리에서 여성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한 사람의 소행인 듯 보이는 연쇄살인.

미키는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케이시일지도 모른다고 예감한다. 거리 생활을 하는 케이시에게 그런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하지만 연달아 발견되는 시체에 케이시는 없었다. 다행이긴 하지만 몇 달간 케이시가 거리에 나타나지 않는 점이 수상하다. 케이시가 어딘가에서 죽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키는 너무 걱정이 된다.

 

형사도 아닌 순찰 경찰인 미키는 동생을 찾기 위해서 거리에서 잠복하고 미행하며 살인범의 실체에 점점 다가간다. 그러는 와중에 성인이 되어 독립한 이후 소홀했던 가족들을 찾아가 케이시의 실종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경찰인 미키를 믿지 못 한다. 왜냐하면 미키의 집안사람들도 무슨 일을 하던 모두 그 거리와 관련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찰에서도 외톨이, 가족 사이에서도 외톨이로 살아가던 미키는 동생을 찾는 일을 계기로 점점 자신만의 영역의 범위가 넓어진다.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조직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도 눈을 떠간다.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거리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름의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그들 사이에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거리의 질서를 더 어지럽히는 나쁜 경찰과 그것을 비호하는 조직적 세력도 있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은 이 거리와 무관하지 않은 미키의 가족사다. 미키의 부모는 중독자였고 동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중독된 상태로 태어났다. 어찌 보면 이 거리에서 태어난 이상 중독의 대물림은 피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부모대신 손녀들을 기르느라 생활고에 허덕이며 일만 했던 할머니의 사연, 10대 때부터 약물중독이 시작된 케이시의 지난한 중독의 역사,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으나 중독자 동생으로 인해 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언니 미키.

이 가족의 이야기들은 중독자들과 마약상들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 빈민층들이 뒤엉켜 생활하는 거리를 배경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던져준다. 어쩌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부차적이고 외면하고 싶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이 소설이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가족의 존재가 어려운 현실의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아울러 자매의 끈끈한 관계가 감동적으로 묘사된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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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소설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Abide with me"라는 장편소설이 남아 있었다. 번역되어 나온 적도 없어서 이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2006년 작이고 에이미와 이저벨다음의 스트라우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일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기 시작했다.

제목 번역하면 저와 함께하여 주소서이고 유명한 찬송가 제목이기도 하다. 어떤 노랜지 들어보니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곡조였다.

제목에서 흘러나오는 느낌만으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종교가 전면에 나온다. 그래서 약간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재미도 재미지만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푹 빠져서 읽었다.

 


1959년 메인주의 웨스트 아넷이라는 작은 타운이 배경인데 이곳은 스트라우트의 소설들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지명인 '셜리 폴스'에서 몇시간 떨어져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라는 설정이다. 스트라우트의 모든 작품들에서는 지명이며 사람들이 서로 공유되는데 그것들을 찾아내어서 서로 연결시켜 보는 것도 큰 재미중 하나다.

 

타일러 캐스키는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이곳 웨스트 아넷의 회중교회에 부임해 온 젊은 목사다. 이 마을의 신도들은 바로 전에 있던 은퇴한 늙은 목사의 별로 열성적이지 못 한 목회활동에 익숙해 있었던 터라 젊은 목사가 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처음으로 목사부부가 마을에 등장했던 순간 신도들은 젊은 목사에게 반한다. 키가 크고 호감형인 외모와 명랑하고 사교성이 좋은 모습에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젊은 목사 좀 괜찮네~’ 하는 인상을 품는다. 하지만 목사의 부인은 전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 한다.


타일러의 아내 로렌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세련된 패션감각의 소유자다. 바로 이런 모습이 목사의 부인이란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신도들은 생각한다. 신도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쇼핑하는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면서 모두를 경악케 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나 목사부인이 쇼핑을 좋아한다고?'  '옷차림은 그게 또 뭐야? 한겨울에 끈만 달린 하이힐을 신고 오다니 ’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로렌에 대해 수군덕댄다.

부잣집에서 화려하게 살던 로렌은 타일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은 했지만 교회일이며 신과 관련된 어떤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교회 사람들과의 대화도 따분해 하고 교회 관련된 것들은 모두 적성에 맞지 않아서 답답해한다. 타일러는 로렌의 그런 모습을 이해해준다. 자신을 따라 목사부인의 삶을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둘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차차 이어가면서 두 명의 딸이 태어나고 두 사람의 성향차이는 말다툼으로 종종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로렌은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어린 딸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소설의 첫 시작은 로렌이 죽고 2년이 흐른 후부터다. 타일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전같이 열정적으로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신도들을 만나는 일도 피하고 싶어 한다. 내안의 고통이 너무 커서 타인의 고민을 들어줄 여력이 없는 거다. 요즘은 신이 어디든 곁에 있다고 느꼈던 예전의 벅찬 감정을 느낄 수도 없다. 늘 서재에 틀어박혀서 잠도 깊게 들지 못 하고 마음 한구석에 따끔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딸 캐서린에게 조차도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 하고 있다.

 

엄마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5살 캐서린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하며 어린 문제아가 되었다. 주일학교에서는 하느님 싫어라고 해서 신도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 어린애가 그런 말을 했단 건 분명 집에서 목사한테 들었던거 아닐까?'  '어떻게 목사의 딸이 그런 불경한 말을 교회에서 할 수 있을까?’ 등등 신도들은 또다시 뒤에서 수군덕댄다.

어린애가 엄마를 잃고 슬픈 마음에 하는 행동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 하는 교회 사람들. 정말 너무 못됐다 하면서 읽은 부분이었다. 근데 수군덕대는 대화 내용이란 게 있을 법한 생생함을 담고 있어서 어디에서나 뒷말 하는 사람들 말투는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한테만 잔인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목사 타일러에 대한 이야기도 호의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그 밝고 친절하고 열정 가득했던 목사는 어디로 가고 우울하고 신도들을 피하고 딸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으면서 딸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사람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내는 목사라고 흉을 본다.

 

이런 와중에 타일러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존재는 목사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코니다. 코니의 그 다 이해한다는 눈은 묘하게 타일러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그녀와의 대화는 타일러에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런 코니와 목사와의 우정은 심리 상담을 받던 어린 캐서린의 순간적인 거짓말로 연인 사이라고 폭로된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캐서린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고 그 비밀을 여기저기 퍼뜨린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하면서 퍼져나가는 소문들...

이제 온 마을에 목사와 가정부에 대한 지저분한 말들이 오간다. 수군수군 수군수군

 

한편 코니는 목사관 가정부로 오기 전에 일했던 노인 요양원에서의 도난 사건 용의자로 수사를 받게 되자 아무도 모르게 도망쳐 사라져 버린다. 코니를 걱정하던 타일러는 교회에서 누군가 자고 간 흔적을 찾게 되고 그게 코니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교회로 가서 코니를 만나게 된다.

코니는 자신의 죄를 타일러에게 고백한다. 요양원에서 일할 때 너무나 불쌍한 할머니 둘을 죽였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저 누워서 떠먹여주는 죽만 먹는 반 송장상태의 노인이 불쌍해서 질식해 죽였다고...

코니의 고백에 타일러는 놀라지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에 괴로워한다.

바로 타일러 자신도 부인 로렌의 죽음에 코니와 비슷한 행동으로 일조하지 않았던가 하는 괴로움. 진정제를 더 달라 소리치던 로렌에게 늘 적정량만 주어왔지만 그 마지막 날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로렌 옆에 진정제 한통을 두고 방을 나왔던 타일러. 몇 시간 후 방에 들어갔을 때 죽어있던 로렌. 내내 타일러를 괴롭혀 왔던 아무한테도 말 할 수 없었던 비밀.

타일러는 코니를 연민한다. 어떻게 코니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날의 진정제 한통이 마음속 한부분을 찌르고 있는데......

 

결국 코니는 자수를 하고 도둑이 아닌 살인범이라는 사실에 온 마을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떠오르는 대화 주제는 목사가 코니를 숨겨줬을까 아니면 몰랐을까, 목사가 정말 코니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게 맞을까?  하는 목사와 코니의 스캔들에 관한 얘기다.

 


타일러는 소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준엄한 설교를 준비한다.

주일이 되자 교회는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모두가 목사 타일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소문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궁금한 사람들.

드디어 타일러는 설교석에 선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 한다. 타일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그동안의 마음의 고통과 시달림 그로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닥쳐와 목사 타일러는 서서 울고 있다.

타일러의 그 진심의 눈물 앞에 신도들은 가책을 느낀다. 깊은 반성의 시간이 밀려온다.

그중에서도 애송이 목사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던 찰리 오스틴은 그를 부축해 목사실로 데리고 내려가고, 목사의 관심을 못 받아서 화가 나 있던 오르간 반주자 도리스는 타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abide with me를 쳐주면서 그를 위로한다.

 

이 소설의 절정부분인 이 장면에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던 착한 목사 타일러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이 부인을 잃고 우울함에 빠져서 자신들에게 소홀하게 대한다고 금방 그 사랑을 미움으로 바꾸는 모습들에 너무 화가 났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타일러의 눈물에 순식간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런 순간을 표현해낸 작가가 너무 좋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순간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 바로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결국 웨스트 아넷에서의 목사직을 그만 두려는 타일러에게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타일러는 다시 목사 타일러로 돌아간다.

 


타일러는 이 모든 일들을 겪고 나서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들은 구체적인 감정으로 대체되었다. 바로 설교석에 섰던 그날 타일러에게 손을 내밀어준 찰리와 도리스에게서 예전에 내곁에 신이 계신다고 느꼈던 그 감정을 느꼈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삶에서 서로가 서로를 연민할 때 그래서 서로 손을 잡을 때의 바로 그 순간이 신의 은총이라고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는 거 같다.

결국엔 인간에 대한 연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에서 늘 강력하게 등장하는 주제를 이 소설에서도 참 아름답게 표현해 내었다.

 

 

 


이 이야기 속의 타일러 캐스키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아주 조금 힌트를 준다. 소제목 범죄자에서 타일러 캐스키의 손녀 이야기가 나온다. 타일러는 딸들이 어느정도 다 성장한 후 재혼을 했다고 한다. 캐서린도 이 단편에 나온다ㅎㅎㅎ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세계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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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0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고 님처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소설을 다 읽지는 못해도 이름은 알아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망고 2021-09-08 21:13   좋아요 0 | URL
네^^ 읽어 보시면 아마 좋아하시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굿밤되세요^,,^

scott 2021-09-2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 만쉐 ^ㅅ^
 




10월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새로운 소설이 나온다고 한다. 번역서는 언제 나올지 모르겠는데 인기작가니까 빨리 나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이번에 나오는 소설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의 루시 바턴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루시 바턴과 연결되는 소설은 새로 나올 소설과 이전에 나온 무엇이든 가능하다까지 포함해서 세권이 되는 셈이다.

나는 이미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읽었고 아직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남겨둔 상태였는데 신작이 나온다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책장에 묵혀두었던 책을 꺼냈다






이 책에서 루시 바턴이 직접 등장하는 단편은 한 편 뿐이다. 올리브에서도 그랬듯이 루시 바턴은 한 타운에 사는 사람들이 그녀를 잠깐 언급하거나 기억에 스치는 정도로 등장한다.

거의 모든 단편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 상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가족 같이 오래된 관계 속에서 함께 공유한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는 위로도 있고, 낯선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찾아오는 위로도 있다.

 


특히 마음이 아팠던 단편들은 루시 바턴의 가족들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을 찾아 먹던 지독하게 가난했던 사람들. 언니 오빠 친척 남매들 까지 모두 그 가난이 깊은 상처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성실하고 자기 일 하며 열심히 사는 제법 성공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릴 때 그 비참했던 일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이들을 살게 하는 힘은 자신의 상처 많은 삶에서 배운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다. 저 사람의 삶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이해에서 살포시 손을 내밀 때, 그렇게 서로가 마음이 통해서 등을 토닥여 줄 때 내 상처에도 위로의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단편이 다 좋았는데 미시시피 메리는 이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 78살에 62살의 애인과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메리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딸과 4년만에 재회한다. 가족을 떠난 엄마에게 화가 났지만 결국엔 딸은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는 딸을 사랑하고 그렇게 서로의 사랑으로 해피엔딩하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읽으면서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78살에 노란색 비키니를 입고 바다 수영을 하는 메리를 상상해 보는 것도 참 좋았고~

 


 

역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다 하면서 감탄하며 읽은 책이었다. 어떻게 이런 인물들을 생각해 냈을까 싶게 입체적이고 툭 던지는 문장들은 가슴을 울린다. 인간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점도 감동적이다.

새로운 소설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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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8-3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시바턴은 읽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준비만 해둔 상태였는데, 와 신간이라니. 그렇다면 저도 얼른 읽어야겠어요. 너무 기대가 됩니다.

망고 2021-08-31 18:01   좋아요 0 | URL
어서 읽어주세요 다락방님의 리뷰가 너무 읽고 싶어요^^

scott 2021-09-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 스트라우트 신간 oh!william 에이미와이저벨 속편 이라고 해서 기대 중입니다 망고님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

망고 2021-09-04 13:09   좋아요 0 | URL
스콧님도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근데 신간은 루시바턴 시리즈중 하나라고 알고있어요^^ 에이미와 이저벨 속편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스투라우트 글이면 뭐든 좋겠지만요
 



얼마전까지 미국 여행기를 읽으면서 미국의 휑하고 여백이 많은 풍경과 거대한 자연이 보고싶어져서 영화를 봐야겠다 생각했다. 멋진 풍경과 황량한 도로가 나오는 영화로. 그러다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 풍경을 잘 찍은 영화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게다가 와이오밍주가 배경이어서 내가 여행기를 읽으면서 눈에 담고 싶다고 생각했던 장소를 보는 것으로도 딱이다 싶었다.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기로 했다

사실 이미 본 영화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내 머릿속에서는 중간 부분 내용이 뭉텅 잘려나가 있었다. 초반이랑 끝부분만 기억이 나는거다

내용이 전개되는 중간부분은 과연 내 머릿속에서 다 어디로 갔을까? 거의 안 본 것처럼 기억이 새하얗더라


아무튼 그래서 영화를 봤다. 아니 근데 이 영화가 이렇게나 감동적인 영화였단 말인가

그 당시에도 물론 좋은 평을 받았고 수상내역도 화려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본 거였다. 하지만 내가 그때 좀 어렸어서 이런 느긋한 영화들을 잘 이해를 못했던 것이었을까? 뭔가 방방뜨는 마음에 이 조용한 영화에 지루함을 느꼈던 것일까? 사실 당시에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 다 울 때 난 안 울고 멀뚱히 있는 뭐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중간부분도 뭉텅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겠지만, 여튼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이번엔 혼자서 보고 다음날 엄마한테도 보라고 강권해서 엄마 보실 때 옆에서 같이 봤다. 연달아 두 번을 봐도 감동이 밀려오더라. 두번 연속으로 보는데도 막판에 눈물 찔끔 흘리면서ㅋㅋㅋ

 


그래서 이건 꼭 책으로 봐야겠다 생각했다. “시핑 뉴스로 애니 프루는 이미 내가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올라있었는데도 브로크백 마운틴이 들어있는 단편집은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책을 주문했다. 이왕이면 원서로 읽고 싶어서 중고로 샀다. 중고도 최상 품질이라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샀는데 받아보니 오래되어서 책냄새가 나는거 빼고는 정말 거의 새책이 와서 너무 좋았다.





읽어보니 단편소설의 그 짧은 분량으로 2시간짜리 영화를 참 잘도 만들었다 싶었다. 진짜 너무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짧게 스치는 문장 하나하나 까지 모두 서사를 입혀서 영화 속에서 구현해 낸 솜씨에 감탄했다. 소설의 문체와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잘 맞아 떨어진 점도 놀랐다. 이래서 작가 애니 프루가 영화를 보고 상당히 만족했다고 한 거였구나 싶었다.

영화와 소설이 모두 다 좋았는데 그래도 결말의 “I swear” 부분은 영화가 좀 더 좋았다. 히스 레저가 어떻게 연기 했는지 알고 소설을 읽으니 상상이 되긴 하는데 소설만 읽었다면 감동이 덜 했을 느낌이다. 조금 갑작스럽다고나 할까...

근데 격정 멜로 부분은 소설이 훨씬 좋았다. 사람의 감정을 고조 시키면서 줄줄 이어지는 문장이 화면으로 보는 것 보다 더 격정적이고 강렬했다소설이 더 야한느낌^^;;

 


아련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영화와 소설이 둘다 좋았던 부분은 여기



이 둘이 처음 브로크백산에 갔을 이당시는 나이가 스무살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풋풋하다.

에니스가 잭을 조용하게 깨울때 엄마와의 추억을 소환하는데, 고아인 그의 그리움과 서글픔의 감정이 은근히 스며있어서 마음이 조금 찌릿해지는 부분이다. 나른한 비몽사몽간에 "내일 보자"하는 에니스의 목소리를 똑똑히 분간해내는 잭의 감정도 참 아련하게 느껴지고~

이부분 너무 간지럽게 좋다ㅎㅎㅎ

잭이 평생을 간직한 가장 행복한 순간~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도 가슴이 두근두근 해지는구만ㅋㅋㅋ




다른 단편은 아직 안 읽었는데 당분간은 못 읽을듯 하다. 읽을게 쌓여서ㅠㅠ

브로크백 마운틴만 읽었지만 그래도 이 단편집의 소감을 말하자면 역시 작가 애니 프루는 글을 참 잘 쓴다가 되겠다.

문체가 감성적인데 공허하지 않다. 말랑한 감성이 아닌 고된 삶 속에서 오래 우려서 건져올린 진득진득한 감성으로 마음을 울리는 그런 감성이다. ㅠㅠ

시간을 두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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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는데 나무에 열린 도토리를 발견했다.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여기에 도토리 열린걸 처음봤다.

도토리 귀엽구나 귀여워


도서관에서는 새책이 많이 들어왔길래 4권이나 빌려왔다.

요즘 도통 책을 안 읽었는데 이제 책 좀 읽어야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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