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거리를 본 적이 있다. 마치 드라마 와이어의 한 장면처럼 쓰레기더미가 나뒹구는 지저분한 거리 모습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약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거리가 정말 세트장이 아니라 실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에 몹시 심란했다. 미국은 도시 한구석에 우범지역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거리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나니 그 심각성이 너무 확 와 닿았다.

처음에는 저 거리도 저렇지 않았을 거다. 필라델피아 하면 미국에서는 오래된 역사적인 도시이고 그 도시의 일부인 저 곳도 꽤나 유서 깊은 거리일 텐데 저렇게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켄징턴 애비뉴. 내가 영상으로 본 거리이자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곳은 원래 공장이 많았고 철강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라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가정을 꾸려 안락하게 살던 주택들이 많이 있던 곳이었다 한다. 그러다 공장들이 다 문을 닫고 빈 집이 늘어나고 실업자가 많아지면서 거리는 점점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거기에다 결정적으로는 마약이 판을 치면서 이 거리는 중독자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마약이 모든 걸 망쳐 놓았다.

 

켄징턴 애비뉴를 매일 순찰 도는 경찰관 미키는 사연이 있다. 미키의 동생 케이시가 바로 이 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미키는 동생을 지켜보기 위해서 매일 이 거리를 순찰한다.

마약 중독자들은 자신이 구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약을 끊고 싶지 않는 거다. 약을 끊으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하고 그 시도는 실패하기 일쑤다. 실패하고 나면 더 큰 중독의 늪에 빠진다. 케이시도 수년간 이 패턴을 반복해 왔고 이제는 그냥 거리와 한 몸이 된 듯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언니인 미키는 그런 동생을 오랫동안 겪어 왔다. 이제는 멀리서 동생의 생사만 확인 하는 수준으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이 거리에서 여성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한 사람의 소행인 듯 보이는 연쇄살인.

미키는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케이시일지도 모른다고 예감한다. 거리 생활을 하는 케이시에게 그런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하지만 연달아 발견되는 시체에 케이시는 없었다. 다행이긴 하지만 몇 달간 케이시가 거리에 나타나지 않는 점이 수상하다. 케이시가 어딘가에서 죽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키는 너무 걱정이 된다.

 

형사도 아닌 순찰 경찰인 미키는 동생을 찾기 위해서 거리에서 잠복하고 미행하며 살인범의 실체에 점점 다가간다. 그러는 와중에 성인이 되어 독립한 이후 소홀했던 가족들을 찾아가 케이시의 실종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경찰인 미키를 믿지 못 한다. 왜냐하면 미키의 집안사람들도 무슨 일을 하던 모두 그 거리와 관련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찰에서도 외톨이, 가족 사이에서도 외톨이로 살아가던 미키는 동생을 찾는 일을 계기로 점점 자신만의 영역의 범위가 넓어진다.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조직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도 눈을 떠간다.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거리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름의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그들 사이에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거리의 질서를 더 어지럽히는 나쁜 경찰과 그것을 비호하는 조직적 세력도 있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은 이 거리와 무관하지 않은 미키의 가족사다. 미키의 부모는 중독자였고 동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중독된 상태로 태어났다. 어찌 보면 이 거리에서 태어난 이상 중독의 대물림은 피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부모대신 손녀들을 기르느라 생활고에 허덕이며 일만 했던 할머니의 사연, 10대 때부터 약물중독이 시작된 케이시의 지난한 중독의 역사,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으나 중독자 동생으로 인해 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언니 미키.

이 가족의 이야기들은 중독자들과 마약상들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 빈민층들이 뒤엉켜 생활하는 거리를 배경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던져준다. 어쩌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부차적이고 외면하고 싶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이 소설이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가족의 존재가 어려운 현실의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아울러 자매의 끈끈한 관계가 감동적으로 묘사된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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