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다가 은퇴한 롤랑은 항해와 낚시에 대한 열정으로 부인 루이자, 두 아들 삐에르와 장과 함께 항구도시 르아브르에 이사 와서 살고 있다. 서른 살인 장남 삐에르는 의학 공부를 하고 병원을 차리기 위해 준비 중이고, 다섯 살 아래의 장은 막 법학 학위를 마쳤다.
삐에르와 장은 형제지만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삐에르는 흥분을 잘 하는 성격에 비현실적인 꿈들을 가지고 이것저것 여러 직업에 도전해 본다거나 뜬구름 잡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잘난 척도 곁들인) 성격이라면, 동생 장은 온화하고 침착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부드러운 성격의 사람이다. 이런 두 형제는 최근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건 이웃에 사는 로제미유 씨 부인 때문이었다. 남편 로제미유 씨가 죽고 홀로 된 그 부인은 소설 속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고 그냥 로제미유 씨 부인이라고 언급된다. 왜 이름을 쓰지 않았는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모빠상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어 답답하구만... 아주 조금씩 나오는 낚싯배 선장이나 약국 주인 등등도 다 이름이 있는데 왜 로제미유 씨 부인만 이름이 없는지 살짝 궁금했다.
아무튼 로제미유 씨 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두 형제는 은근히 경쟁을 벌인다.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배의 노를 더 빨리 저으려고 경쟁하거나 하는... 하지만 로제미유 씨 부인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온화한 장에게 더 끌리고 그것을 삐에르도 느끼고 있는 참이다.
이렇게 비교적 단란하게 지내던 롤랑 가족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져 온다. 파리에 살 때 알고 지내던 마레샬이라는 사람이 죽으면서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고 막내인 장에게 상속한다는 거다. 아버지, 어머니, 상속을 받게 될 장은 이 뜻밖의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 하는데, 단 한명 장남 삐에르는 기분이 꽁해 진다. 횡재에 행복해 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혼자 있고 싶었던 삐에르는 내가 왜 이럴까, 내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만 상속된 유산 때문이었다. 바로 질투의 감정.
이 이상하게 언짢고 서운하기도 하고 뭔가 좀 까슬까슬한 감정을 모빠상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자.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몸이 묵직한 느낌이었고, 기분 나쁜 소식을 받아들게 되면 그러듯이 불만스러웠다. 꼭 집어낼 수 있는 어떤 생각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이 전혀 아니어서, 처음에는 영혼의 짓눌림과 육체의 묵직함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 말할 수 없었으리라.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가 괴로웠다. 고통을 낳는 아주 미세한 지점이, 정확한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나 거북스러움, 피로, 슬픔, 짜증을 유발하는 상처가, 별다른 느낌은 없지만 치명적이라고 할 만한 그러한 상처가, 겪어보지 못한 가벼운 고통, 슬픔 한 알갱이 같은 그 무엇인가가 그의 안에 들어 있었다. (65~66쪽)”
그러니까 동생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삐에르가 느꼈던 묘한 짜증과 답답함을 모빠상은 이렇게 표현했다. 아직 자신이 왜 기분이 나쁜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 어딘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상처 하나가 생긴 것처럼 표현한다. 역시 이름난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이렇게 다양하고 생생한 표현으로 공감할 수 있게 쓰다니. 어휘력 없는 평소의 나라면 그냥 “아, 짜증!” 이 한마디로 끝날 말을 말이다. 특히 ‘슬픔 한 알갱이’ 이 표현 너무 좋다. 기억했다가 써먹어야지.
이제 삐에르는 장이 부자가 되었으니 로제미유 씨 부인과 곧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하니 질투가 솟아나지만... ‘로제미유 씨 부인은 멍청해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뭐’ 하면서 애써 자기위안을 한다. 로제미유 씨 부인이 평소에 장을 더 좋아한다는 티를 냈기 때문에 삐에르가 이런다는 걸 잘 알겠고, 여기까지는 유산도 못 받아 언짢아 보이는 삐에르가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해서 읽으면서 별다른 나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툭툭 튀어나오는 여성을 바라보는 삐에르의 시선들에는 조금씩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삐에르가 마음이 울적해서 찾아간 지인들은 동생만 유산을 받았다는 소식에 묘한 암시를 내비친다. 이를테면 “어쩐지 삐에르와 장은 서로 닮지 않아 보이더라니” 같은...
이런 암시 속에서 삐에르는 점점 의문을 품게 된다. 왜 하필 장에게만 유산을 상속했을까? 아버지의 친구이고 두 형제를 모두 다 알고 있는 마레샬 아저씨는 왜 장에게만 그렇게 각별했을까?
그리고 이 의문들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의심이 쌓여가기 시작한다. 혹시? 설마?
그렇게 의문은 확신으로 변하고 삐에르는 가족 사이에서 겉돌기 시작한다. 어머니에게 신랄한 말을 내뱉고 혼자서 분노를 품으면서.
동생에 대한 질투는 이제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로 나아가는데...... 급기야 해변에 놀러 나온 잘 꾸민 여자들을 보면서도 저 여자들은 모두 남자를 꼬시고 배신하려고 저러고 돌아다니는 거라고 삐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그렇게 큰데, 정작 아버지에 대한 연민은 삐에르 마음속에서 거의 읽을 수 없다는 점이. 아버지가 아내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배신당했다는 듯이 분노한다. 삐에르는 남편의 입장도 아니면서 마치 자신이 아버지의 대리인이라도 된 것처럼 어머니를 심판한다. 아버지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생각해 보는 장면은 없다. 삐에르의 분노와 고뇌는 있지만, 그 감정의 중심에는 아버지의 상처보다 자신의 모욕감과 분노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불륜은 어느새 자신의 일이 되어버리고, 자신이 배신당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혐오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삐에르 너의 부인이 널 배신한 게 아니야! 너는 결혼도 안 했잖아 이 녀석아. 무슨 너가 남자 대표로 여자한테 배신당한 것 마냥 그렇게 세상 모든 여자들을 쳐다보냐고! 라고 읽으면서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삐에르가 어머니를 향해 쏟아내는 분노는 정말 아버지를 대신한 정의감에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삐에르의 분노는 장에게 느끼던 질투와 열등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장에게만 상속된 유산, 그리고 그로 인해 로제미유 씨 부인과 결혼할 수 있는 장의 유리한 조건이 삐에르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것이다. 왜 자신이 아닌 동생이 항상 선택받는지 질투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겠지.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어머니의 부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삐에르는 자신이 계속 동생에게 밀리는 것처럼 돌아갔던 상황들이 모두 어머니의 비밀과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품고 있던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 찌질한 감정들까지 모두 어머니 탓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스크래치 난 자존심과 명예도 그렇게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어머니와 여성 전체에게 책임을 돌리며 자기합리화를 한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때문이야. 더 나아가서는 여자들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은 다 엄마같이 부정하기 때문에 내가 안 좋아하는 거야!!!

(찾아보니 영화도 있었다. TV용 영화)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분노하는 삐에르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이 녀석이 언제 폭발할까 조마조마 하면서 읽었다. 곧 폭발해서 다 폭로해 버릴 것 같은 심리상태를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서 그것도 나름 신선했다.
짧은 분량에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인데 인간의 심리를 다채롭게 표현해 내어서 저절로 집중이 되는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