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 아줌마의 속시원~한 수다]

얼마전 일어난 미국 테러사건의 피해자들이 죽음 직전 가족과 친구에게 남긴 말은 한결같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라는 것. 평소 우리는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량한 자존심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이 다음에 해야지’ 하는 게으름 때문에. 그러다보면 그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 수도 있다. 오늘이라도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관심을 표현해 보자. 당장 내일 죽지 않는다 해도 아쉬울 건 없지 않은가.

한 명상가가 수련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생명이 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그 1개월 동안 당신이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사람들은 진지하고도 고통스럽게,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의 마지막 소망을 종이에 적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노모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다 생을 마감하겠다는 중년의 남자. 늘 자기를 나무라는 권위적인 상사에게 눈을 부라려보겠다는 소심한 샐러리맨,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해 카리브해 호화유람선을 타보겠다는 20대 처녀.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겠다는 주부.

명상가가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망을 왜 지금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겁니까?”

물론 이 이야기는 왜 지금 당장 할 수도 있는 일을 나중에, 이 다음에, 늙은 다음에, 죽기 전에로 미루며 자유의지대로 살지 못하는가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우리에게 남은 생명이, 한달 아니 불과 몇분뿐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은행 통장을 정리하는 걸까, 아님 배부르게 잔뜩 먹는 걸까, 아니면 평소 미워했던 이들을 찾아가 따귀라도 때려주는 걸까.

얼마전 일어난 미국의 테러사건을 보면서 난 미국과 테러범들과의 관계나 정치적 문제, 혹은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기보다 그 사건으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과 그 가족들이 안쓰러워 가슴이 아팠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그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1백층 이상의 고층빌딩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비행기 납치범에 의해 인간폭탄 재료가 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인종도, 나이도, 직업과 성격도 모두 다른 이들이지만 그들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나 핸드폰으로 남긴 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더 살고 싶다는 애원이나 복수를 해달라는 저주가 아니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한결같았다.

“내가 당신을(엄마를, 아빠를, 언니를, 친구를) 사랑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가까우면 너무 가까워서, 거리가 좀 멀면 멀어서 우린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알량한 자존심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이 다음에 해야지’ 하는 게으름 때문에.

얼마전에도 그랬다. 우리 부에 아르바이트 학생이 들어왔다. 20세, 만으로는 18세라고 하는데 노랑머리에 야한 옷차림, 그리고 눈빛도 약간 불안했다. 일도 별로 성의있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전형적인 요즘 아이구나’ 하고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이가 얼굴빛이 달라져서 조퇴를 했다. 물어보니 가족 사이에 문제가 좀 많은 것 같았다. 고등학생인 동생은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부모도 그렇고. 그 불안한 눈빛의 이유를 알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가정환경이 어려워도 가출도 안하고, 원조교제도 안하고 착실하게 사무실에 일하러 나왔다는 것만으로 그 아이를 돕고 싶었다. 조용히 불러내서 집안 이야기도 듣고 도와줄 일이 없는지도 알아보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해외출장을 다녀와보니 그 아이는 이미 회사를 그만둔 후였다. 연락도 잘 안된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진작 조금만 더 빨리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뭔가 같이 고민했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이 다음에’하며 말을 아끼는 사이에 그 아이는 이젠 나와 인연이 없어져버렸다.

 ‘다음에’라고 미룬 사이 관심을 보여줄 기회는 사라지고 말아

또 얼마전에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국내 명문의대 교수가 된 걸 알았다. 후배의 아기가 수술을 할 예정이어서 무심히 그 이야기를 하는데 담당 주치의가 그 동창생이었다. 그 친구가 의대에 들어간 후 만난 적은 있지만 20여 년을 소식을 전하지 않은 사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친구를 처음 본 후 난 혼자 끙끙거리며 짝사랑을 했고 마음속에서 그 아이를 어린 왕자로 곱게 키웠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만났을 때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제 40대 막가파 아줌마가 되었고 나름대로 이미 다 정리된 ‘과거 완료형’의 감정이었기에 교수명단에서 그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메일을 보냈다. 나를 기억하냐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널 무지무지 짝사랑했다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답장이 왔다. 다른 내용은 없고 “네가 날 좋아했었다니 굉장히 충격적이다”라는 말,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뿐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섭섭하고 부끄러웠다. 20여 년 만에 친구가 편지를 보냈는데 예의로라도 “언제 한 번 만나 차나 마시자” 하고 제안할 줄 알았는데 “놀랐다”는 말만 반복하고 건강하라고 기원만 하다니. 하지만 그에게 좋아했었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때가 늦긴 했어도 그 애를 좋아했었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뒤늦게라도 누군가 자기를 좋아했다고 하면 불쾌하거나 억울하지는 않을 테니까.

요즘은 매일 밤 엄마를 씻겨드리고 재워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오늘도 살아계셔 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엄마가 치매에 걸리기 전, 건강하고 무슨 말이건 다 들어주셨을 때는 엄마에게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뭐 해달라, 섭섭하다 등등만 강조했다. 엄마가 건강하셨을 때 더 많이 안아 드리고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게 참 미안하다.

내 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 딸이니까 사랑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그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표현못할 때가 많다. 그 아이의 미소가 얼마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지, 그 아이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해지는지를 알려줘야겠다. 내 사랑을 알면 딸아이는 절대로 가출도 안 할거고 나쁜 유혹에도 빠지지 못할 것이다. 당장 내일 죽지 않는다 해도 지금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 손해볼 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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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9-09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즉각즉각 표현하기도 참 쑥쓰럽죠.
"엄마 잘할께요"하는 박카스 CF도 왜 그리 어색한지.. ^_^;;;
 

[세계일보 2004-02-04 09:48]

다국적기업들에서 일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대해 도덕적 의분을 토하는 인사들은 그 노동자들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사용자인 다국적기업들이 그들에게 과거보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그 도덕적 십자군들 중에 비교적 합리적인 일부 인사는 다국적기업들이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나은 보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유한 다국적기업들이 어째서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선진국 노동자들과 좀더 비슷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이유이다. 경제적 이유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시간당 산출량, 즉 생산성이 미국과 같은 서방 선진국 노동자 생산성의 몇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산성을 무시한 보수 인상은 비록 그것이 제3세계에 대한 ‘착취’를 중단하는 것이든 미국 노동자들에게 ‘생활급’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든 사실상의 실직보장서일 따름이다.

현대의 대다수 선진국에는 최저임금법이 있다. 그러나 고액 최저임금제나 추가적인 노동자 수당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들은 실업률이 높은 나라들인 경향이 있다. 예컨대 독일은 정부가 의무화하는 가장 많은 노동자 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이 수당 가운데 퇴직수당은 너무나 높아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은 비경제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이 같은 수당 비용은 미국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수당의 약 두 배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노동자들이나 다른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높은 노동비용과 해고의 어려움은 심지어 경기가 좋을 때에도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미국인들은 실업률이 6%에 이르면 경악하지만, 독일에서는 두자릿수의 실업률이 통례이다.

과거 한때 스위스나 홍콩에는 최저임금법이 없었다. 지난해 영국 시사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스위스의 실업률이 2월에 5년 만의 최고 기록인 3.9%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최저임금법이 있는 대다수 국가의 경우 실업률 3.9%는 비록 전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아마 5년 만의 최저 기록이 될 것이다.

과거 홍콩이 영국 식민지 하에서 임금 수준이 수요와 공급 원칙에 의해 결정될 때 월스트리트 저널은 홍콩의 실업률이 2% 이하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을 인수하고 각종 노동자 수당을 의무화함으로써 노동비용과 임금 수준이 상승하게 되자 홍콩의 실업률은 8%를 넘어섰다.

이러한 실업률은 유럽 기준으로는 높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유례없는 일이다.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

그런데 부유한 다국적기업들은 어째서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생산성보다 더 많은 보수를 지불하는 데 따른 비용을 스스로 흡수할 수 없는가. 다국적기업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매출액 수십억달러의 다국적기업들은 억만장자들의 소유인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 다국적기업들은 대개 수백만명은 아닐지라도 수천명의 주주들의 소유이며, 이 주주들 대다수는 억만장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 주주들 가운데 일부는 다국적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하는 연금기금에 투자함으로써 직·간접으로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교사와 간호사, 기계공, 사무원, 여타 유사 계층의 사람들일 수 있다.

실제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주식투자자들의 평균 소득은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보수를 지불하는 데 따른 비용을 다국적기업들이 흡수해 주기를 바라는 지식인들과 정치인 및 여타 인사들의 평균 소득 수준보다 전혀 더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교사들과 간호사, 기계공, 사무원들이 정년퇴직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것을 수락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뉴욕 타임스의 기자나 일류 대학 교수들, 영화배우 혹은 도덕적으로 의분을 토하는 다른 인사들은 어째서 제3세계에 대해 그들과 유사한 기부금을 내놓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도덕적으로 의분을 토하는 인사들에게 있어서 제3세계를 지원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용을 내도록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자신들이 비용을 내야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워싱턴 타임스

정리=권화섭 한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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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정글 - 아웃케이스 없음
피터 버그 감독, 더 락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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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의 나이트씬에서 카메오 출연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지나가는 드웨인 존슨(프로레슬러 ‘더 록’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에게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마치 근육질 액션스타의 세대교체를 보는듯하다.
개인적으로도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실베스터 스텔론의 대를 이을 근육질 스타를 꼽으라면 드웨인 존슨을 1순위로 꼽고 싶다. 그는 반 디젤처럼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데다 선한 눈매와 어눌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면이 잘 나타나는데, 거대한 몸집의 해결사(회수전문가)인 주인공이 미식축구선수에게 담보물을 받으러 갔다가 엉겁결에 싸인을 받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술을 뒤집어쓰고 쫓겨나는 모습에서는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미이라2’에 출연했을 때 보여줬던 뻣뻣한 석고상같은 연기는 찾아볼 수 없다. 프로레슬러로 출발한 그의 배우인생이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든 듯 하다.

‘웰컴 투 더 정글’은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화끈한 액션을 선보인다. ‘콜레트럴 데미지’같은 작품은 정글에서의 액션만을 보여줬고 ‘조지 오브 정글’같은 작품은 코믹만을 보여준 반면 이 작품은 빠른 진행과 재치있는 액션으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CG과다’의 격투장면은 이연걸의 ‘로미오 머스트 다이’같은 작품들만큼이나 거북하지만, 타이어가 주인공을 스쳐가는 장면, 채찍에 강타당하는 장면 등은 제법 신선하다. CG를 이용해서 무조건 주인공을 날아다니게 만드는 액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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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썸니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알 파치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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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악역연기에 도전하는 로빈 윌리암스, 그리고 피로에 찌든듯한 형사역에 너무 익숙해진 알 파치노. 두 명배우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 단연 돗보인다. 별로 악당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능글능글하게 악역을 소화해내는 로빈 윌리암스도 인상적이었고, 매너리즘에 빠진 듯 여전히 초췌하고 달관한듯한 분위기의 경찰역을 맡은 알 파치노도 여전히 뛰어났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사건을 해결하고 또 다른 사건을 은폐하는 베테랑 형사와 그를 상대로 게임을 벌이려고 하는 살인마의 심리묘사가 상당히 섬세하게 그려졌다.
아쉬운 점이라면 긴박감이 부족하다는 것인데,(브라이언 드 팔마가 이 영화를 찍었다면 굉장한 긴장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불안하고 초초한 도머 형사와 차분하고 자신감 넘치는 핀치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둘 사이에서 발랄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앨리(힐러리 스웽크)의 등장도 좋았고 말이다.

흔히 이런 분위기의 영화는 마지막에 엄청난 반전을 준비해놓기 마련인데, ‘인썸니아’는 그런 것이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알 파치노가 앨리에게 마지막으로 충고하는 말 한마디에서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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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12-08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면이 무척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알래스카.. 백야(?)... 역시 대배우 알파치노...

sayonara 2004-12-1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면이라.. 난 시종일관 알 파치노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마음을 빼앗겨서... ㅎㅎㅎ
 
내 차 봤냐?(1disc) - 할인행사
대니 레이너 감독, 애쉬튼 커처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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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오래전 작품인 ‘액셀런트 어드벤처’를 생각나게 한다. 멍청하고 어이없는 콤비가 좌충우돌 소동을 일으키면서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아주 작정한 듯이 이야기를 유치함의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부시시하게 잠에서 깨어보니 집안은 엉망진창이고 집 앞에 세워두었던 차는 도둑맞았다. 갑자가 여장남자와 쌍둥이 여자친구, 동네깡패, 우주인을 숭배하는 집단, 외계인들까지 등장하며 이야기는 뒤죽박죽 되어버린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지저분한 유머와 두 주인공들의 과장된 바보연기, 카메오로 등장하는 스타들의 멍청한 연기까지 더해져 꽤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계인 숭배집단의 지도자 졸탄역의 할 스파크스는 순진하고 앳된 외모로 깜찍하고 귀여운 코믹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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