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어떤 투영법이 주목받고 있을까요?

방향, 각도, 거리, 면적 가운데 어느 것을 지도에 정확하게 나타내는지에 따라 투영법을 나누어요. 경선과 위선의 각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각도법正角法, 거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거도법正法,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적도법正法, 방향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방위도법方位圖法이라고 해요.
과거에는 나침반과 함께 사용할 항해용 지도가 필요해서 메르카토르 도법 같은 정각도법 지도가 주목받았어요. 앞에서 소개한 페터스의 세계지도나 아프리카의 실제 면적을 가늠하게 하는 앞의 지도는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한 정적도법으로 그린 지도예요. 오늘날에는 항공기를 많이 이용하면서 정확한 거리를 표현한 정거도법 지도의 효용이 커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방향·각도.거리·면적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지만, 네 가지 정보를 적절히 왜곡하여 전체 왜곡을 줄인 절충도법法을 세계지도 제작에 많이 활용해요.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2011년부터 로빈슨 도법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하는데, 로빈슨 도법은 면적과 형태를 조금씩 왜곡하여 만든 절충도법이에요. - P21

나라별로 시간대가 서로 다른 배경을 제대로 알려면 수리적위치를 이해해야 한다. 수리적 위치는 지도 제작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지구를 정확하게 지도에 그리려면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했으므로 지구에 가상의 가로선과 세로선을 그리고, 두 선이 만나는지점을 기준으로 지구 표면의 정보를 도면에 옮긴 것이 지도다. 이때 북극점과 남극점을 이은 세로선을 경선도와 평행하게 그은 가로선을 위선이라고 한다. 경선과 위선으로 표현한위치가 곧 수리적 위치다.
표준시는 경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기준이 되는 하나의 경선에서 다른 경선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숫자로 표기한 것이경도라면, 기준이 되는 위선에서 다른 위선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숫자로 표기한 것이 위도다. 위도는 지구의 중심을 통과하는 자전축에 수직인 적도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경도는 자연적인 기준이 없어서 임의로 기준을 설정해야 했다. 그리하여 1884년 국제 - P24

자오선회의에 25개 나라가 모여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을 경도의 기준선으로 채택했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은 다른 경선의 기준이라는 의미에서 본초자오선本午이라 부르고, 경도 0‘ (도)로 표기한다.
표준시는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나뉜 24개 시간대에 따라각국이 결정한다. 경도 15도마다 시간대가 만들어지는데, 이는 지구 둘레 360도를 하루 24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본초자오선이 지나는 영국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갈수록 빠른 시간대를 사용하고, 서쪽으로 갈수록 늦은 시간대를 사용한다. 본초자오선의 정반대에 해당하는 경도 180도는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며, 통상 날짜 - P25

변경선이라 부른다. 날짜변경선에서 동쪽으로 가면 하루를 빼고,
서쪽으로 가면 하루를 더하여 시간을 계산한다.
경선은 곧게 뻗은 반면 날짜변경선은 들쭉날쭉 꺾여 있다.
육지나 섬을 피해 날짜변경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만약 날짜변경선을 직선으로 그어 여러 섬을 가로지르면, 하나의 작은 섬에 두시간대가 공존하므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을 줄이려고 날짜변경선은 여러 섬을 피해 들쑥날쑥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날짜변경선을 필요에 의해 꺾어서 그은 것처럼 표준시역시 절대적이라기보다 각 나라의 상황과 기준에 따라 선택하여사용한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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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만든 지도는 당시의 사회상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좋은 자료다. 조선 초기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조선 후기에 만든 대동여지도가 대표적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것보다 약 100년 앞선 1402년, 조선에서도 세계지도를제작했다. 지도의 이름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查蘆理歷代國都之圖,
줄여서 ‘강리도‘라고 부른다. 가로 164센티미터 세로 148센티미터의 대형 채색 지도로, 동아시아권에서 만든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알려져 있다. ‘혼일‘은 섞어서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이고, ‘강리‘는 영토, ‘역대국도‘는 중국의 역대 수도를 말한다. 지도는 중국을중심으로 동쪽과 남쪽에 각각 조선과 일본을 두고 있으며, 인도·아라비아·아프리카·유럽까지 담고 있다. - P16

오늘날 실측지도와 비교하면 정확성에 한계가 있지만 강리도가 지닌 의의는 남다르다. 콜럼버스가 항해할 당시 유럽인이 사용하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단만표현되어 있는 반면, 강리도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비교적 온전하게 나타낸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나일강과 그 발원지인 빅토리아 호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등대까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아프리카 35곳, 유럽 100여 곳의 지명도 등장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지도인 것이다.
강리도의 제작 배경은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세력이 내비친자신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도를 제작한 권근은 지도 발문에서이렇게 말한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천하를 다스림에 보탬이 되는 법이다."觀圖籍而知地域之遐邇,亦爲治之一勛 지도는 새롭게 개국한 조선이 통치할 천하를 담은 것이었다.
여기에 고려 후기 원나라를 통해 전해진 지리 정보도 한몫했다. - P17

유럽까지 세력을 넓힌 원나라를 통해 유럽, 아프리카, 아라비아를 아우르는 지리 정보가 고려 후기부터 천천히 전해져 지도에 반영되었다.
강리도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동여지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인 1861년에 제작된 지도로 오늘날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목판으로 만들어 판화처럼 수십 장의 지도를 제작할 수 있으며, 여러 기호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성곽 도시는 두 개 - P17

의원으로 표시하고, 성곽이 없는 도시는 한 개의 원으로 표시하며, 수로 이용이 가능한 하천은 두 줄, 불가능하면 한 줄로 구별했다. 게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점을 찍어 거리 정보까지 담고 있다.
대동여지도가 제작된 조선 후기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시장을 돌아다니는 상인들의 지도 수요가 폭발하던 때였다. 상인들이 지도를 휴대하기 편하도록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만든 것은 대동여지도의 중요한 특징이다. 세로로 22개 층으로 나뉜 대동여지도는 각 층이 책 크기로 접히는데, 모든 지도를 펼치면 세로 길이가 6.6미터로 교실 길이와 비슷하다.
대동여지도 편찬을 주도한 김정호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정보가 많다. 김정호가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도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직접 곳곳을 방문하여 그리는 지도를실측도라 하는데, 아무리 철인이라도 조선 팔도를 혼자 답사하는건 불가능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지리 정보 파악의 중요성을 실감한 조선 조정이 지방 관아에 지도 제작을 지시하고, 김정호가 이전의 작업을 이어받아 집대성한 결과물이 바로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처럼 기존 지도와 자료를 엮어 만든 지도를 편찬도라고 한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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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서 외롭지 않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는 외롭다. 하지만 혼자 살아서 외로운 건 아니다.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도 더 깊이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안다. 괴로움이 더해진 외로움은 비참하기까지하다는 것도. 적어도 지금 나의 외로움에는 비참함이 없다.
요즘 나의 외로움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익숙한 한기寒氣 같다. 겨울에 창문을 열어 틈틈이 환기해야 하는 것처럼, 적당한외로움은 정신을 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로움이 찾아오면 나는 그 감정이 들어오도록 가만히 문을 연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손님은 손님이다. 그럴 때면 나는 담요를 두르•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처럼 외로움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외로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혼자 ‘여서‘ 외로운 것은 아니지만 혼자 ‘여도‘ 외로울 수 있다. 함께 ‘여서‘ 외로운 건 아니지만 함께 ‘여도‘ 외로울 수 있듯이. - P156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혼자 살기에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 산다는 건 내가 나와 친해지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발견할 수 있는 내 모습 또한 존재했다. 그럴 때면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게 옳고 그리고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그저 ‘그렇구나‘라고. 모든 감정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떠올리곤 한다. 그곳에는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나의 아이‘가 있다. 나는 그애를 보며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지금의 삶을 그 삶과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이라는 한기가 깃들 때, 타인과 나눌 수없는 감정으로 마음이 힘들 때도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현재의 내 삶은 과거의 수많은 내가 아파하고 애쓰고 힘을 내어 살아왔기에 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P157

사람들이 타인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분위기를 풀어야 할 때면 내 외모를 비하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벼운 유머 소재로 나를낮춰 말하는 습관이 오래되어서였을까. 내 외모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앞서 의식하고는 그 사람이 느낄 법한 내 약점을 미리 말해서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이었을까.
누군가 자기 외모에 대해서 신랄하게 이야기할 때 나는 덩달아 내 외모를 검열하곤 했다. 내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유머랍시고 내 외모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을 때 사실상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자의식을 자극했던 것이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행동이 무례한 일이듯이 자기 외모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나는 내 얼굴이나 몸을 낮추고 평가하는 말을 더는 입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아무리 가까운사람에게라도 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기로 말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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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강아지는 자꾸만 뒤를 돌아 주인을 확인한다는 것도, 어떤 어린아이는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자신이 느끼는기쁨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5월의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늦봄은 하루하루 그 온도를 높여갈 것이다. 여름이 오고곧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오겠지. 지금의 나는 그것 말고는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 나는 손으로 종이에 이렇게 적는다.
어떤 변화가 오든 가슴을 열고 맞이하기를. 조바심내며 지금의 소중함을 내팽개치지 않기를. 작은 순간들을 음미하는 법을 배우기를 천천히, 더 천천히...... - P133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고 아플 때 기꺼이 돌봄을 주고받으며 삶과 죽음이 존엄할 수 있는 평등, 평화, 협동의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건강할 수 없고 이웃이 함께 건강할 때 우리 역시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건강하고 존엄하게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스스로 돕는 힘,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 경쟁 사회에서도 협동과호혜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돌보고 서로 돌보는사회, 의료복지가 전문적이고도 인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는가능합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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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 상대가 경계를 넘도록 허용해놓고서 나는 절망했다. 왜 미안해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뻔뻔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어? 그 절망감은 내 마음을 부식시켰지만 나는 그 감정마저도 억압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애썼다. 경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모든 관계가 결국에는 같은 방식으로 어그러질까봐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던 문제였지만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깨진 후에야 나는 내 패턴을 대면하게 됐다. 경계를 흐리고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나, 경계를 침해당하고 분노하는 나, 그 분노를 다시금 마음 깊숙이 억압하는 나.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나는 나의 억압된 분노가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싫은 소리 한번하지 못해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서 네가 너에게 한 짓을 봐봐...... 결국 네 몸이 너에게 말한 거야. 척하면서 사는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이타적인 척 좀 그만하라고. 네가 얼마나 훼손되고 화나고 절망했는지 인정하라고. - P122

"불확실성보다는 죄책감이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진단을 받고 나는 내가 병에 걸린 이유를 생각해봤다. 몇 달간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먼저 떠올랐다. 이어서 몇 년 전에 받은 충격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분노를 참고 억눌러야만 미래의 내가 안전할 수 있으리라판단했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건강한 선택이었을까. 소화할 수 없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강압적이고 잔인한 일 아니었나.
내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고민이 있으면 잠으로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길게 자곤 했다. 음주도 안 좋은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 년 전에 완전히 단주하긴 했지만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던 시간이 길었다. 나는 이어서 생각했다. ‘술을 끊어서 다행이다. 아직도 마시고 있었다면 떳떳하지 못했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뭐가 떳떳하지 못했을 거란 거야? 너는 네가 죄를 지어서 병에걸렸다고 생각해?‘
‘아마도.‘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잘못 살아서,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해서, 죄를 지어서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아서 프랭크의 말대로 그런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것이 ‘불확실성‘ 속에 빠지는 것보다는 더 편안하 - P124

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병의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미래의 불확실성을 양팔 벌려 맞아들이는 일과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암이전신 질환이며, 몸의 다른 곳에서 다시 발병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른암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연구 결과를 읽으면서도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200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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