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책을 보다가 엄마를 얼마로
잘못 읽었다
얼마세요?

엄마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는데,
책 속의 모든 얼마를 엄마로
읽고 싶어졌는데

눈이 침침하고 뿌여져서
안 되었다
엄마세요? 불러도 희미한 잠결,
대답이 없을 것이다

아픈 엄마를 얼마로
계산한 적이 있었다
얼마를 마른 엄마로 외롭게,
계산한 적도 있었다
밤 병동에서 - P12

엄마를 얼마를,
엄마는 얼마인지를
알아낸 적이 없었다
눈을 감고서,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
나는 열심히 하면
엄마는 옛날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엄마는 진짜 얼마세요?
매일 밤 나는 틀리고
틀려도,
엄마는 내 흰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 P13

봄, 고개


실제로 죄를 짓기도 하고 마음으로, 죄가 날 짓기도 한다 마음의 죄는 반쯤 흐린 날 구름들처럼 한량없다 나는 하늘의 배때기에서 오려내지 못할 구름이 없었고, 그것들과 무구히 뒹굴고 논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달콤하고 괴로운 죄 구름 계산 구름 고민 구름 그러나, 온 힘을 다해도 도려내지 못할 구름 깊은 곳이 있었다 발버둥 쳐도 낳지 못하는 죄 어미의 쭈글쭈글한 알집, 죄 이전의 불가능한 죄가 있었다 힘없는 것들의 진정 힘없음을, 짧아진 봄이 실로 길다는 걸 늙은 악마처럼 안다 죄짓지 못한 기적의 아지랑이 같은 힘으로 따사롭게 연명하며 草根木皮. 그 고개를 또 넘어간다 - P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에 모은 것이 8월 15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의 쓴 시의 전부이다. 처음부터 서문 같은 것은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일기처럼 날짜를 박아가며 써 나온 이 시편, 이 속에 불려진 노래가 모든 것을 해답할 것이다.
대체로 전일 내가 쓴 시들이 어드런 큰 욕심과 자기를 떠난 보람을 구한 것에 비하면 여기 이 시집 속에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에 충실하고 어떻게 하면 이 현실에 똑바를 수 있을까를 찾기 위하여 다만 시밖에는 쓸 줄 모르는 내가 울부짖고 느끼며 혹은 크게 결의를 맹세하려던그날그날을 조목조목 일기로 적은 것이 이 시편들이다.
거듭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의 시 속에 아직도 의심하고 설워하는, 아직도 굳건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내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두말없이 나의 온몸에 채찍을 날리라. 그러나 다만 보잘것없는 나의 성실이 어떠한찌꺼기를 버리지 못한 것이라 하면 그대들도 나의 타고난 이 문제에 대하여 또 이 똑바로 보지 않으면 안 될 현실에 대하여 따뜻한 이해를 가지라.
옳은 일이나 옳은 말이란 아무 때이고 남에게 곯림을 받는 것임을 이중에도 뼈아프게 돌이킨다. 언론 자유, 출판 자유, 이렇게 휘번들한 간판밑에도 용기 없는 사람은 자유를 갖지 못한다. 이로 인하여 나는 ‘지도 - P620

자」와 「너는 보았느냐」의 두 작품을 비굴한 신문 기자 때문에 발표치 못할 뻔하였다. 그러나 훌륭한 우리의 선배와 동무들은 이것을 세상에 물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어이없는 일은 「연합군 입성 환영의 노래」의 수난인데 이것을 그 당시 방송국에서 갖다가 어느 편의 의도인지는 모르나 그들이 작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연합군‘이란 문구를 ‘미국군‘
이라고 전부 고쳐 방송한 일이다.
내가 이 시집을 하루바삐 내어 세상에 묻고자 함은, 이 어려운 세월을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또 이렇게 살려고 한다고 외치고 싶음이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전선을 좀먹는 무리들의 악의를 벗어나 진실로 속여지지 않은 내 의사를 이렇게 표시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기도 위함이다.
1946. 3. 12.
서울대학부설의원 입원실에서
(시집 『병든 서울』, 1946. 7.) - P621

『나 사는 곳의 시절은 1939년 7월서부터 동 45년 8월, 역사적인 15일이 올 때까지다. 불로소득을 즐기고 책임 없는 비난을 일삼던 그때의 필자가 인간 최하층의 생활을 하면서도 아주 구할 수 없는 곳에까지 이르지 않았던 것은 천만다행으로 시를 영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 사는 곳‘과 그때의 ‘나 사는 곳‘ 사이에는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변동이 있었지만 내 개인의 정신상의 변화와 그 거리는 말할 수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아직도 늦지 않았음이다. 지난날의 『나 사는곳을 가리켜 이것이 암첨(暗瞻)하던 한 시절 조선 안에 살고 있던 조선사람의 내면 생활을 그린 가장 정확한 기록이라고 생각던 것이 지금은 지난날 나의 안계의 넓지 못했음을 한할 뿐 기후에 따라 오르내리는 수은주와 같이 그때, 그때, 이 땅에 부딪치는 거칠은 숨결에 맞춰서 노래한 여상(如上)의 시편들이 가ㅡ지끈 불러진 열의로도 휴지가 아니기를 바란다.
편중의 일부분은 만가(歌)-즉 『문장이 폐간되던 그 호에, 『조선일보』가 폐간되던 그날에 ㅡ이 밖에는 우리의 모든 기관이 정지되어 지상에 발표라는 가망도 없을 때, 다만 암첨하고 억눌리는 공기 속 - P622

에도 나를 사랑하는 선배와 친지들을 보이기 위하여서만도 쓴 것이었다.
사랑하는 내 땅이여, 조선이여! 행동력이 없는 나는 그저 울기만 하면후일을 위하여, 아니 만약에 후일이 있다면 그날의 청춘들을 위하여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자와 무력한 호소겠으나 정신까지는 썩지 않으려고얼마나 발버둥쳤는가를 알리려 하였다. 그러나 이제 내 노래를 우리 앞에 어엿이 내놓게 될 때, 어이없다. 나 사는 곳이 이러할 줄이야.
두서(頭)에는 최신작 ‘승리(利)의 날」을 부첨하여 오늘의 나 사는곳을 알린다. 이제는 나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는 곳이다. ‘내‘가
‘우리‘로 바뀌는 사다리를 독자들이 이 시집에서 찾는다면 필자는 망외(望外)의 행운이겠다.

1947년 5월 공위(共委)가 재개되는 날
(시집 『나 사는 곳』, 1947. 6.) - P6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석론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백석론을 쓰는 것도 일종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하나 시집 『사 이외에는 그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 그를 논한다는것은 더욱이 제한된 매수로서 그를 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없다. 남을 완전히 안다는 것도 결국은 자기 견해에 비추어가지고 남을 이해하는 것인 만큼 불완전한 것인데 더욱이 그의 시만을 가지고 그의 전 인간을 논하는 것은 대단 불가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백석론은 씨의 작품을 통하여서 본 씨 자신의 인간성과 생활을 논위함이라고변해를 해야만 된다.
백석 씨의 『사슴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조선 시단의 경종이었다. 그는 민족성을 잃은 지방색을 잃은 제 주위의 습관과 분위기를 알지 못하고 그저 모방과 유행에서 허덕거리는 이곳의 뼈 없는 문청들에게 참으로 좋은 침을 놓아준 사람의 가장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석의 자랑이 아니라 한편 조선 청년들의 미제라블한 정경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나 보기의 백석은 시인이 아니라 시를 장난(즉 향락)하는 한 모던 청년에 그쳐버린다. 그는 그의 시집 속 ‘얼룩소 새끼의 영각‘ 안에 「가즈랑집」, 「여우난골족」, 「고방」, 「모닥불」, 「고야(古夜)」와 같은 소년기의 추 - P213

억과 회상을, ‘돌덜구의 물‘ 안에 ‘초동일(初冬日)」, 「하답(夏畓)」, 「적경(寂景)」, 「미명제(未明界)」, 「성외(城外)」, 「추일산조(秋日山朝)」, 「광원(曠原)」, 「흰 밤」과 같은 풍경의 묘사와 죄그만 환상을 코닥크에 올려놓았고, ‘노루‘와 ‘국수당 넘어‘에도 역시 추억과 회상과 얕은 감각과 환상을 노래하였다.
그는 조금도 잡티가 없는 듯이 단순한 소년의 마음을 하여가지고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에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와 돌나물김치에 백설기 먹는 이야기, 쇠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타는 모닥불,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 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안에 고래등 같은 집 안에 조마구 나라 새까만 조마구 군병, 이러한 우리들이 어렸을 때에 들었던 이야기와 그 시절의 생활을 그리고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계절의 바뀜과 풍물의 변천되는 부분을 날치있게 붙잡아다 자기의 시에 붙여놓는다. 그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앞에 지은 그의 작품만으로는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는 시에서 소년기를 회상한다. 아무런 센티도 
나타내지는 않고 동화의 세계로 배회한다. 그러면 그는 만족이다. 그의 작품은 그 이상의 무엇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앞날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자기의 감정이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인즉슨 그는 이러한 필요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근심을 모르는 유복한 집에 태어나 단순한 두뇌를 가지고 자라났으면 단순히 소년기를회상하며 그곳에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기 하나만을 위하여서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니까. 다만 우리는 그의 향락 속에서 우리의 섭취할 영양을 몇 군데 발견함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다. - P214

하나 우리는 이것을 곧 시라고 인정한 몇 사람 시인과 시인이라고 믿는 청년들과 및 칭찬한 몇 사람 시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을 그냥 변화시키지 않고 흡수하기 쉬운 자연계의 단편이 있다. 가령 제주도에는 탱자나무에도 귤이 열린다 하고 평안도에서는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린다 하자. 물론 이것을 아름다웁게 수사한다면 모르거니와 그냥 기술한다고 하여도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평안도의 탱자열매가 시가 될 수 있고 평안도 사람에게는 큰 귤이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석의 추억과 감각에 황홀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자기네들의 생활과 습관을 잊어버린 또는 알지 못하는 말하자면 너무나 자신과 자기 주위에 한한 소치임을 여실히 공중 앞에 표백하는 것이다. 만일에 이상의 내 말을 독자가 신용한다면 백석 씨는 얼마나 불명예한 명예의 시인 칭호를 얻은 것인가. 다시 그를시인으로 추대하고 존중한 독자나 평가(家)들은 얼마나 자기네들의무지함을 여지없이 폭로시킨 것인가!
이렇게 말하면 내 의견을 반대하는 사람은 신문학이니 새로운 유파이니 하며 그의 작품을 신지방주의나 향토색을 강조하는 문학이라고 명칭하여 옹호할 게다.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무지를 폭로하는 것이라고밖에 나는 볼 수가 없다. 지방색이니 어니 하는미명하에 현대 난잡한 기계 문명에 마비된 청년들은 그 변태적인 성격으로 이상한 사투리와 뻣뻣한 어휘에도 쾌감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하나 이것은 결국 그들의 지성의 결함을 증명함이다. 크게 주의가될 수 없는 것을 주의라는 보호색에 붙이어가지고 일부러 그것을 무리하게 강조하려고 하는 데에 더욱 모순이 있다.
그리하여 외면적으로는 형식의 난잡으로 나타나고 내면적으로는 인식 - P215

의 천박이 표시가 된다. 모씨와 모씨 등은 이 시집 속에 글귀글귀가 얼마나 아담하게 살려졌으며 신기하다는 데에 극력 칭찬을 하나 그것은단순히 나열에 그치는 때가 많고 단조와 싫증을 면키 어렵다. 미숙한 나의 형용으로 말한다면 백석 씨의 회상시는 갖은 사투리와 옛이야기, 연중행사의 묵은 기억 등을 그것도 질서도 없이 그저 곳간에 볏섬 쌓듯이그저 구겨넣은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백석 씨는 시인도 아니지만 지금은 또 시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또 백씨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위엣말은 많은 착오도 있을 줄 안다. 하나 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백석 씨만은 가급적으로 음미를 하여보았다.
백씨와 나와는 근본적으로 상통되지 않은지는 모르나 나는 백씨에게서 많은 점의 장점과 단처()를 익혀 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백씨에게 감사하여 마지않는다.
‘시인‘이란 칭호가 백석에게는 벌써 흥미를 잃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참으로 백석을 위하여 그리고 내가 씨에게 많은 지시를 받은 감사로서도 씨가 좀더 인간에의 명석한 이해를 가지고 앞으로 좋은 작품을 써주지 않는 이상, 나는 끝까지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주고 싶지 않다. 그것은다른 범용한 독자와 같이 무지와 무분별로써 시를 사주고 싶지는 않은참으로 백석 씨를 아끼는 까닭이다.  - P216

8월 15일의 노래


기폭을 쥐었다.
높이 쳐들은 만인의 손 위에 
깃발은 일제히 나부낀다.

"만세!"를 부른다. 목청이 터지도록
지쳐 나서는
군중은 만세를 부른다.

우리는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르짖는 아우성은
일찍이 끓어오던 우리들 정열이 부르는 소리다.

아 손에 손에 깃발들을 날리며
큰길로 모이는 사람아
우리는 보았다.
이곳에 그냥 기쁨에 취하고, 함성에 목메인 겨레를…… - P251

그리고
뒤끓는 환희와 깃발의 꽃바다 속에
무수히 따라가는 아동과 근로하는 이들의 행렬을……

춤추는 깃발이여!
나부끼는 마음이여!
이들을 지키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너희들 가슴으로
해방이 주는 노래 속에서
또 하나의 검은 쇠사슬이 움직이려 하는 것을......
(1945. 8. 16.) - P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서리


깊은 산골짜구니에
숯 굽는 연기,
구름과 함께 사라지다
구름과 함께

얕은 집 울안에
장대를 들어 과일 따는 어린애
날마다 사다리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더니

홍시 찍어먹는 가마귀, 검은 가마귀
가 소년을 부른다.
무서리 내린 지붕 위에
멀고 먼 하늘이 있다
구름이 있다.
- P192

여정 (旅程)


또 한 번 멀리 떠나자.
거기
항구와 파도가 이는 곳,
오후만 되면 회사나 관청에서 물밀듯 나오는 
사람
나도 그 틈에 끼어 천천히 담배를 물고
뒷골목에 빠끔빠끔 내다보는
소매치기, 행려병자, 어린 거지를 다려다보며
다만 떠내려가는 널판쪽 모양 몸을 맡기자.

거기,
날마다 드나드는 이국선과 해관(海關)의 창고가 있는 곳
나도 낯설은 거리에 서서
항구와 물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원이나 관청 사람과 같이
우정 그네들을 따라가 보자.
그러면,
항상 기계와 같이 돌아가는 계절 가운데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지나 - P193

고향에서는 눈 속에 파묻힌 보리 이랑이 물결치듯 소곤대며 머리를들고
강기슭 두터운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
이때의 나는 무엇이 제일 그리울 거냐.

찾아온 발길이 아주 맥히는 바닷가에서
그때, 나의 떠나온 도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신개지(新開地) 비인 터전에
새로이 포장 치는 곡예단의 쇠망치 소리.
내가 무에라 흐렁흐렁 울어야는지,
우두머니 그저 우두머니 
밤과 낮, 둘밖에 없는 세상에
어째서 나 홀로 집을 버렸나. 집을 버렸나. - P194

연화시편(蓮花詩篇)


곡식이 익는다. 풀섶에 벌레가 운다. 이런 때 연잎은 지는 것이다. 차고 쓸쓸한 꽃잎 하나 줄기에 붙이지 않고 연잎은 지는 것이다. 
일년 가야 쇠동 맑은 적 없는 시꺼먼 시궁창 속에 거북은 보는 게었다.
봄철 갈라지는 얼음장, 여름 찾아 점벙대던 개구리 새끼. 모든 것이 침전하였다. 모든 게 오직 까라앉을 뿐이었었다.
연잎이 시들면, 연잎이 시들면, 심심한 수면 위에 또 한 해의 향기는 스미어들고

물속에 차차로 가라앉는 오리털,
이 속에 손님이 오는 것이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무런 기맥도 없이 밤이슬은 내리어 서리가 된다.
소 몰고 돌아가는 저녁길, 저녁길의 논두렁 위에 푸뜩푸뜩 풍장치며 흩어지는 농사꾼.
오곡이 익은 게었다. 곡식이 익은 게었다.

웅덩이에는 낙엽이 한 겹 물 위에 쌓이더니 밤마다 풀섶에는 가을벌레가 울고, 낙엽이 다시 모조리 가라앉는 날, 죄그만 어족들은 보드라운 - P195

진흙 속에 연뿌리 울타리 하여 길고 긴 겨울잠으로 빠지는 것이었었다.
한때는 그 넓은 이파리에 함촉 이슬을 받들었을 연잎조차 잠자는 미꾸리와 거머리의 등을 덮는 것이나, 두 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인 거북이의 등 위엔, 거북이의 하늘 위엔 살얼음이 가고 그것이 차차로 두꺼워질 뿐.
까만 머리 따 늘이는 밤하늘에도 총총하던 별 한 송이, 별 한 송이 비최지 않고 희부연 얼음장에는 붉은 물 든 감잎이 끼어 있을 뿐.
한겨울은 다시 얼어붙은 웅덩이에 눈싸리를 쌓아 얹으나 어둠 속에 가라앉은 거북이는, 목을 늘여, 구정물 마시며, 반년 동안 밤이 이읏는 아라사의 옥창(獄窓)과 같이, 맛없는 울음에 오! 맛없는 울음에 보드라운 회한의 진흙구덩이 깊이 헤치며 뜯어먹는 미꾸리와 거머리.
두꺼운 얼음장 밖으로 연이어 연이어 깜깜한 어둠이 흐른다 해도, 구름 속에 상현달이 오른다 해도 거북이의 이고 있는 하늘엔 희부연 얼음장이 깔려 있을 뿐, 한 사리 싸락눈이 쌓여 있을 뿐. - P196

귀촉도(歸蜀途)
정주(廷柱)에 주는 시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논두렁의 어둔 밤에서
길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 너머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 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의 인주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ㅡ

풀섶마다 소해자(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다리는 일금 칠십원야의 샐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룻밤에 마시려 해도 - P197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거사 안 되지라요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병의 꽃 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 P1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 하나, 열린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눈 하나: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외눈,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 있는 눈등. 이 시는 「언어창살』에 수록되어 있다. - P17




돌.
내가 따라갔던 공중의 돌.
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어둠을 남김없이 퍼냈다. 찾았다
여름을 타고 올라온 단어.
꽃.

꽃ㅡ맹인의 단어.
너의 눈과 나의 눈이
물을
마련한다.

성장(成長).
마음의 벽이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져 내린다.

이런 단어 하나 더, 그러면 종추(鐘錘)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 P18

꽃: 경직된 이미지로 가득한 시집 『언어창살』에 수록된 시다. 서정시의 대표적인 대상, 혹은 시 자체의 은유로서의 꽃의 이미지는 시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굴곡을 겪어 왔지만, 이 시에서 그려지는 꽃은 시사(詩史)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경직된 의식에는 역사의 고통이 서려 있고("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그 가운데서 인식된 사물은 활성화된 언어 (꽃=말)로 전이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눈물로 키운 꽃, 어렵게 찾은 소중한 언어, 허물어지는 마음의 벽,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의 꿈 역시 이 시에 담겨 있다.
종추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얽매임 없이 울리는 여러 개의 종소리를 나타낸 표현이다. - P19

언어창살


창살 사이의 안구(眼球).

섬모충 눈꺼풀이
위로 노 저어 가
시선 하나를 틔워 준다.

유영하는 아이리스, 꿈 없이 우울하게,
심회색(心灰色) 하늘이 가깝구나.

갸름한 쇠 등잔 속, 비스듬히,
천천히 타는 희미한 관솔 등화(燈火).
빛 감각에서
너는 영혼을 알아본다.

(내가 너 같았으면. 네가 나 같았으면.
우리 한 무역풍 아래
서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낯선 이들인 우리.) - P20

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심회색 물줄기.
두 개의
입안 가득한 침묵.




언어창살: Sprachgitter. 원래 중세 수도원 면회실의 창살문을 가리키며 이것을 사이에 두고 수도 중인 사람과 외부 면회자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를 ‘언어창살‘로 직역한 것은, 그 창살문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소통과 단절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는 언어와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우면서도("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 심회색 물줄기.") 낯설고 단절된("두 개의 / 입안 가득한 침묵.") 인간관계가 현미경적 이미지들로 포착되어 있다. 이 시는 『언어창살』에 수록되어 있다.

아이리스: 무지개의 여신. 눈의 홍채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안구의 홍채와 안구의 홍채 속을 헤엄치는 아이리스를 동시에 보여 준다. - P21

무덤 근처


남녘 만(灣)의 물은 아직 알고 있을까요,
어머니, 당신에게 상처를 남긴 파도를?

한가운데 물방아들이 있는 벌판은 알까요,
얼마나 나직하게 당신의 가슴이 당신의 천사들을 견뎠는지?

어떤 은(銀)포플러도 어떤 수양버들도, 이제는
당신의 근심을 거둬 가지 못하지요, 위안을 드리지 못하지요?

그런데 신은, 꽃봉오리 피어나는 지팡이를 짚고
언덕으로, 언덕 아래로, 가지 않나요?

그런데 견디시겠어요, 어머니, 아 언젠가, 집에서처럼,
이 나직한, 이 독일어의, 이 고통스러운 
운(韻)을? 
- P22

독일어: 첼란은 복합적인 이유로 여러 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였다. 그러나 극한의 체험(「죽음의 푸가」 해설 참조.) 이후 모든 사람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첼란은, 독일어로 시를 쓰기로 결심한다. 독일어는 그에게 오로지 고통만을 가져다준 나라의 언어, ‘살인자들의 언어‘였지만, 동시에 모국어(‘어머니의 말(Muttersprache)‘)이자 무엇보다 비명에 간 어머니와 어린시절 함께 즐겁게 읽었던 문학의 언어였던 것이다. 첼란의 어머니의 사망시기나 장소는 불명이지만, 유대인들이 송치되었던 흑해변 드네프르 강 연안(‘남녘 만‘)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첼란이 한정판으로 냈다가 회수한 첫시집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에 수록되어 있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