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어떻게 삶의 성찰로 이어지는가

제프 다이어는 삶과 사진의 세계를 겹쳐 보여 준다. 그는 사진을 논하면서 이론이나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다. 그가 사진에서 읽어 내고자 하는 건 사진가와 감상자의 욕망이다.
어떤 욕망이 어떻게 이미지에 담겼는지, 또 그 욕망은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그래서 이 짧은사진 비평들은 때로는 에세이로, 때로는 세계에 대한 단상으로 변모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사진이라는 매체가 내재한 사색의 가능성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사진을 읽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다양한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것은 보통 캡션을 통해 설명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사진이 보는 경험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다층적 의미를 지닌 다른 것들(엄밀히 말해 다층적 의미의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의미는 몇 겹의 층위 아래에 숨겨진것이 아니다. 그 신비로운 진실은 이런 층위에 의해 성취된 침식과 축적의 결합이다. 따라서 이 사진의 몇 가지 특징을 순차적으로 검토하겠지만, 사진 속에 이러한 특징이 노출되면서 동시에 은폐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 P56

헬렌 레빗처럼 어린 시절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혹은 사회적 사진의 초창기 역사와 그 가능성은 우리의 어린시절만큼이나 확실하게 지나가 버린 걸까?
레빗의 사진들은 진정으로 독창성이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녀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은혜를 분명히 입었기 때문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례가 없었다면 그녀는 거리에서볼 수 있는 미묘한 시詩, 즉 시각적 뒤엉킴과 메아리, 운율, 카르티에 브레송이 세상 곳곳에서 발견해 낸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사소한 기하학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 이전에는 삶에 내재해 있는 그 넘쳐흐르는 시정詩情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 그가 알아차리자,
돌아다닐 공간이 충분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눈에 보이는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레빗은 돌아다니면서 "실재하는 세상 안에서 미학적 현실을 지각" 하는 제임스 에이지의 공식을 무심코 시도하게 되었다. - P59

그리하여 레빗의 눈앞에는 많은 생명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노는 아이들의 다큐멘터리 기록을 제작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실재하는 세상이 너무도 쉽게 흉내나 상상속으로 녹아 없어지는 상황에서 도시 아이로 사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아이들의 경험을 담아냈다. 물론 이것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현관문 너머에 있는 난간에 올라가서 싸우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분명히실존하는 위험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전투적인 열광에 동참하게 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긴장으로 인해 그런 장면이 복잡해지거나 악화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손쉬운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이다. 인종의 혼합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사진은 목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감상주의의 흔적은 없다. 아무것도 희미하게 가려지지 않고, 아무도 이 사진이나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을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60

레빗의 경이로운 사진 중에서 아이들과 자전거, 거울을찍은 이 사진이 단연코 가장 어수선하고 복잡하다. 아이들이옷장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C. S. 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 중 첫 번째 작품인 『사자, 마녀, 옷장과 유사한 멋진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서는 거울을 통해 (어린 시절의) 다른 세계를 힐끔 볼 수 있는데, 반사된 모습이 아니라 깨끗하고 직접적인 시야를 제공하므로, 더 큰 작품의 일부와 연결되는 일종의 포털 또는 도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와 이아이들의 세계를 갈라놓는 것은 없다. 또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액자를 들고 있는 두 소년은 그들이 거울을 깼다는 것을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자전거 탄 아이의 모습을, 실재하는 생명체를 담은 그들만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앞서 나는 레빗의 사진에 내재된 위험이라는 요소에 대해 언급했다. 이 사진에서 위험은 거울의 깨진 파편으로 표현된다. - P62

그녀의 작품에는 분명 자신감이 있지만, 완전히 제도화된 자신감은 아니다.
그 사진들은 절대 포스트모던하거나 개념적이지 않을뿐더러,
‘무엇이 ‘현실‘인지 묻거나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관해 묻는일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씨름할 필요가 없는 많은 것들로 인해, 레빗은 자신의 눈앞에서 끝없는 종이접기처럼 펼쳐졌다가 다시 접히는 것들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이제 사진은 스스로를 진지하고 어른스럽게 여기면서(그것이 꽤 유치해 보일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한 역설적 결과를 가지고) 자신의 역사를 너무도 의식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다시는그 시절의 신선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길거리에서노는 모습을 찍은 오늘날의 사진은 반드시 레빗의 사진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뿐 아니라, 레빗이 어린 시절을 묘사한 방식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 사진들은 레빗에대한 논평, 혹은 헌사가 될 것이다. - P64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 발견의 극단적인 예로, 온전히 그녀가 본 것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진계에 전혀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그녀가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조차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아이는 물론 가까운 친구조차 없었다는 사실의 여파 혹은 부작용으로 여겨지는 이런 사실은 불행하고 심지어 잔인해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에 잠재된 알 수 없는 능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시 센서스Census」에 호머에 대해 쓴 것처럼, "여가 시간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 P66

1960년대 이후 종종 좌절된 자유 사이에서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억압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마이어는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전형적 인물인 보모(혹은 가정교사)로서 생계를 꾸렸다. 가정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외부인으로서, 관찰력 말고는 다른 어떤 재능도 발달시킬 수 없었다.
마이어는 오랫동안 그녀를 규정해 온 특유의 늘어진 모자와코트 등으로 완벽하게 표현된, 주변 환경에 정교히 적응하게해 준 감성을 통해 시카고와 뉴욕 거리를 조심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 같다. 마이어가 마치 그녀의 운명을 예언하는 역할을 하는 듯한 할머니를 촬영한 사진에서는필연적인 신랄함을 찾아볼 수 있다. 외롭고 괴상한 모습으로외투를 걸쳐 입은 채 순간적으로 꿰뚫어보는 카메라의 능력을 통해 직감한, 평생의 비밀을 감내하는 듯한 운명 말이다. - P69

아직 언급하지 않은 중요한 구성 요소가 하나 있다. 맨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 플래카드 사이에 서 있는 바가지 머리를한 외로운 소년 말이다. 열세살정도로 보인다. 사람들이 긴장할 때 가끔 그러듯이, 오른팔이 배 위를 가로질러서 왼팔을잡고 있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무늬가 있는 반팔 셔츠를입고 있다. 살짝 웃고 있는데, 백인이다. 그는 거기에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며, 심지어 그의 손목시계는 그가 거기에 있던 때와 사진이 찍힌 정확한 순간을 알려 주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사진을 보았으며, 우리의 입가에 맴도는 질문은 그신비함과 마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는, 다른 방법으로 말하면, 이 사진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 완강히 침묵을 지키고있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설튼의말로 돌아가 보면, 이 생명체가 어떻게 방으로 들어온 걸까? - P73

사진 속 모든 인물 중에서 이 소년은 어리다는 이점으로인해 60년이 지난 먼 미래인 지금 자신의 존재로 인해 제기된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그의 설명을 듣고 싶다. 로리의 말에 따르면,
전시에 소개된 사진 속 몇몇 사람들은 옛날 사진 앞에서 자기자신을 확인하고 다시 사진을 찍기 위해 전시를 방문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사진에 찍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다른 상황에서 했던 일이다. 사람들의 기억이 사진의 존재에 의해 반박되거나 강화되거나 심지어 창조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부분적으로는 종종 이해에 도움이 된다. - P75

가득 찬 프레임을 통해 나이와 시대 차이는 줄어들고, 디커라바가 방해하기보다는 보존한 순간의 친밀함이 더해지고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사진 속 두 사람과 가까이에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재즈 음악가의 지위,
더 정확히는 3단계로 구성된 그들의 지위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난다. 인종 차별은 그들이 2류 시민임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디커라바는 그런 불평등한 환경에서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에 있는 다른 흑인들을 촬영하는 것처럼 콜트레인과 웹스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음악가를 음악가가 아니라 사람으로, 그리고 일꾼으로 생각한다"고말했다. 그의 다른 음악가 사진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은 할렘의 사람들을 찍기 위해 진행 중이었던 더 큰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1951년 구겐하임 미술관에 지원금을 신청할 때 말했듯이, 그는 "오직 흑인 사진가만이 해석할 수 있다고 믿는, 흑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해에서 나온 창의적인 표현을 원한다." - P83

흔히 말하듯 재즈는 순간 안에 존재한다. 디커라바는 서사의 맥락을 배제함으로써 순간의 중요성을 확정 짓고 동시에 순간을 확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셔터 속도가 너무 느려서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하게 기록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실패는 더 많은 시간이 사진 속으로 새어 들어가고 넘쳐흐르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므로 이사진이 프레이밍된 방식을 즉흥 연주라는 다른 형태를 통해명확히 설명해 보자. 이 사진이 이미지의 패턴으로 된 카펫의일부라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패턴 내부의 어디에 있던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역사가 그 시작(재즈에서는버디 볼든 또는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사건의 연대기적 순서와 관련이 있는 반면 카펫의 패턴은 중앙으로 집중된다는것을 알고 있다. 이 사진은 주변의 모든 것이 시간에 의해 집어삼켜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항상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거나 되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진은 재즈의 중심에 위치하는 사진이다. - P86

트럼펫 연주자 찰스톨리버의 말처럼 콜트레인이 "우주로 가 버리기‘로 선택하면, 곧바로 존스는 이쯤에서 끝내자며 드럼 연주자 라시드 알리를 놔두고 색소폰연주자를 따라 우주 공간으로 따라갔다. 엘빈은 지구의 무아지경의 순간을 보존한 사진가처럼 실재와 현실에, 가장 작은시간에 뿌리를 두며 남겨진다. 콜트레인, 엘빈과 다른 밴드 멤버들은 「마이 페이버릿 스」를 수없이 연주했다. 디커라바의작품 설명 또한 수없이 자주 인용되어왔다. 하지만 다시 들을 가치가 있다. "내 사진은 즉각적인 동시에 영원하다. 너무나 심오한 순간을 보여 주므로 그 순간은 영원이 된다……… 마치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사람이 달리기 시작해서, 쏘아 올려졌다가, 내려오는 것과 같다. 맨 꼭대기에서는 움직임이 없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기다리는순간이다. 다른 생명력과 균형을 이루는 순간………… 모든 힘이융합하는 순간,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 그것이 영원이고...... 재즈이며..... 인생이다.  - P90

워홀이 일찍이 깨달았듯이, 의미가 명백하다고 해서 그것을만들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워홀이 만들기 전까지는 죽음과 재앙에 대한 이런 이미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만큼 이 이미지들은 우연한 사고 같다.
사고가 나기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평범하고, 눈에띄지 않으며, 정상이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사고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포함해 모든 것은 완전히 바뀐다. 워홀의 엄청난 성공과 영향력으로 인해 그가 얼마나 극단적인 사례인지는 쉽게 잊히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그전에는 없었고 그 후에만 있을 뿐이다. (죽음과 재난에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실크 스크린 회화는 단순히 그것들이 보이는 방식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 P91

순간은 심지어 순간이 아니라(순간은 시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글쎄, 뭐라고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 보자.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그 순간을 확장하는 것이아니다. 반대로 시간 자체가 수축하는 것, 수축 포장에 더 가깝다. 동일한 순간이 아닌, 약간 새로운 순서로 크기와 색이변화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그 사건은우리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마취제 역할을 하는미학적 영역에 온전히 존재하게 된다. 이디세지윅을 두고 워홀의 연적으로 유명했던 한 인물이 나중에 말했듯이, 아무도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워홀은 "똑같은 것을 많이 볼수록 더많은 의미가 사라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폭력과 죽음의 사진으로부터 파생된 예술품에서 하나의 의미와 가치를표백하는 일은 다른 일들의 급진적 발전과 보폭을 맞춰 진행된다. - P95

‘아무것도‘라는 말을 지금까지 기다려야만 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워홀은 "아무것도 아닌 것의 정수"라는이유로 수프 캔을 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아닌 것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려면, 여러 종류의「전기의자」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에세이의 도입부에서 그랬듯 뻔한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것은 의자다. 존 자코우스키는 아제에 관한 책에서 사진의 발명 이후 빈 의자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했다. 빈 의자가 부재의 이미지가 된 것이다." 이 경우 부재는 "남은 것은 침묵"이라는 햄릿의 마지막 대사가 압축되어 조용히 울리는 가운데) ‘침묵‘이라는 자기 설명만큼이나 절대적이다. 검은색의 강렬함은 마치 망각이 작품의 바탕이 된 원본 사진에는 완전히 부재하는방식으로 이미지를 잠식하거나 먹어치워 버린 것처럼 보이게한다. 진공은 이미지로부터 빠져나와 이미지에 모여든다. 이사진의 모든 것, 즉 고요함, 공허, 밀실공포를 느끼게 하는 침묵은 상응하는 시간의 부재에 대해 언급할 것을 촉구한다. 다시 한번,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종말론적 장면의 목격자라고상상하면서 다양한 작품에서 인용한 계시록의 이상한 구절을 떠올릴 수 있다. "더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 P101

하지만 기억하라. 이것은 워홀의 작품이다. 그러니 모순적 감각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외부의 시간이 우리가 사진에서 의자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간략하게 말하면, 의자는 곧 사라질 것이다. 미국에서 사형 제도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동안, 독극물 주 - P101

사로 인해 전기의자는 대부분쓸모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집행할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처벌의 상징, 낡은 두려움의상징이 된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거기 놓여 있는 의자는 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전기의자는 은퇴의 기념비로서, 망해 버린 이발소에 놓인 의자 같은 특징을 지닌다. 전혀 밝지 않은 미래의 모습에서 그의자가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악마의 섬‘ 알카트라즈와 같은 용도로 전환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잠시라도 거기에 앉아서, 그것이 항상 하기로 했던 일, 즉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사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의자는 의자가 하는 일을 할 것이다. 의자는 자신의 다리에 가해진 하중을 삭제하고는 기다릴 것이다. 마치 자신이 영원이 된 것처럼. - P102

또한 그에게는 어떤 사진가보다도 단순하고 중요한 재능이 있었다.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워홀하고만 같은 방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해변의 모래 빛 금발 머리였던 데이비드 호크니, 그리고 놀랍도록 잘생긴 루샤와 친밀한 사이였다. 이런 종류의 가벼운 친밀함은 낸 골딘의 『성적종속물에 관한 발라드 Ballad of Sexual Dependency』와 연관되지만, 골딘의 사진이 그들 자신의 역사적 중요성을 기록하는 거울이 된 데 반해 (골딘은 그들 중에서 마약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된 유일한 사람이다), 호퍼의 작업은 현재의 세상이 보이는대로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전기적 자료의원천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일어난 그대로의 역사뿐아니라, 신화의 형성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증거도 볼수 있다. 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더욱 커진다.  - P110

수많은 인상적인 작품들 사이에 여러 걸작이 있다. 철조망 펜스의 그물 같은 그림자가 조용한 여성스러움을 드리운,
셔츠를 벗은 폴 뉴먼(1964)의 모습이 담긴 유명한 사진은 남성을 찍은 가장 아름다운 사진 중 하나로, 내면을 드러내는 배우의 미묘한 재주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1964년루샤의 주유소 회화 전시의 포스터로 사용된, 일명 「이중 잣대Double Standard」라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에는 자동차 앞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두 개의 스탠다드 주유소 간판과 반사되어 보이는 후방의 차, 선루프를 통해 엿보이는 하늘이 매우 영화적으로 표현된 동시에 스스로 캡션 역할을 하고 있다. 워커에반스, 프랭크, 프리들랜더, 스티븐 쇼어 등 너무나 많은 사진적 흐름이 여기에 모여 있다. 전후 미국의 사진을 단 하나의이미지로 정제해야 할 때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훨씬더 못한 작품을 고를 수도 있다. - P112

스턴펠드의 발언이 시사하듯, 1970년대 중반이 되자 많은 사진가들이 단색의 거의 전적인 지배와 경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 자체의 여명에 대해 "발명의 시기가 무르익었고, 같은 목적을 위해 독자적으로 노력했던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은 그 시기를 감지했다"고 말한 것은 1970년대에 사진이 컬러 매체로 재창안된 일에도 적용할수 있다. 놀랍게도 사진의 바깥에서는 남극을 탐험하고 4분안에 1마일을 달리고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등 오랫동안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여겨져 온 것들이 갑자기 실현될 가능성이 커져서, 결승선이 아닌 출발선을 향해 달려가는 단거리 육상 선수 같은 모습을 띠었다. 그러므로 많은 비평가와관객에게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이글스턴이 바로 그 정상에서컬러 스냅 사진(!)으로 미학적 공격을 감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결정된 데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 담당 디렉터 존 자코우스키의 영향이 매우 컸다. - P114

흑백 사진에서는 어떤 일이 막 일어났거나 일어나려고 할수 있다. 비록 그 일(종종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이 이전에 일어났거나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과 인과관계가 없다 해도 말이다. 여기에는 플롯 대신 파편과 패턴,
패턴의 파편들이 있다. 체호프의 작품에서 주변에 총이 있고1막에서 벽에 총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다. 하지만 여기에는 2막이 없다. 생각해보면 1막도 없으며, 제작되지 않은 영화를 위해 섭외하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읽지 않은 대본을 위한 예고편만 있을 뿐이다. 종종 여기에는 식별이 가능한 동시에 응집력이 뛰어나며 수집 조사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심리 상태의 시각적 표현인 운명이 명백하게 결여되어 있음을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진단하려는 바로 그것의먹이가 되는 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 P121

에반스는 컬러 사진이 ‘천박하다‘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헤어조크의 많은 사진은 그 경계에 불안하게 서있다. 문제는 코다크롬이 붉은색을 너무도 강렬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쪽 지방인 밴쿠버에 있는 부식되고 빛바랜 표면들이 마치 남쪽의 아바나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그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붉은색은 마치 아동용 플라스틱 접시의 섬뜩한 표면처럼 다른 모든 흥미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과도하게선명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집자들은 그림자를 드리운오아시스로 쓰일 흑백 사진 몇 장을 영리하게 이 책에 포함한 것 같다. 하지만 그중 몇 작품, 특히 당구대와 당구공은 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다! 헤어조크의 컬러팔레트는 최상의 상태일때 탄력 있고, 때로는 쓸쓸한 분위기로 제프 월이 서문에서 "페인트의 노화, 시간에 따른 색의 변화"라고 말한 것을 증명한다. - P130

날씨가 아주 좋기로 유명한 이곳에도 항상 숨기거나 막아야 할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검은 편백나무가 하얀 벽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D. H. 로렌스는 『이탈리아의 황혼Twilight in Italy』에 "밤의 어둠을 밝힐 촛불이 있는 것처럼, 편백나무는 완연한 햇빛 아래에서 어둠이 불타오르게 하는 촛불"이라고 썼다. 이 사진들은 로렌스가 산 가우덴초에서 관찰한 것이 로스앤젤레스의 긴 햇살 아래에서도 사실이었음을증명한다. - P143

이 현실은 마치 꿈만 같다. 그 꿈이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모든 것은 "즉각적으로 친숙하지만 여전히 신비롭다." 그리고 미스터리는 매우 투명하기때문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다(‘투명성‘은 기리의 개인적 단어 목록의 또 다른 키워드다. 앞서 살펴본 현실/형이상학의 패턴을 반복하면서 문자 그대로 투명성을 만드는 것은 "투명성 그 자체의개념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감춰진 것은 없고 모든 것이보류되어 있다. 눈이 뇌에 요구하는 투명도가 어떻게 불투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모든 거울은 창이며, 그 반대의 경우 우리는 잠재적 출구를 제공하는 거울 안에 밀폐되어 있다. 탈출가능성은 감금의 환영과 구분되기 어렵다(모든 사람이 이자각몽에서 깨어나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너머에놓여 있는 것은 표면에 더 깊이 잠긴 것이다. 말하자면 루스섬 해안 근처의 화장실처럼, 경이로운 세계의 모든 조각은 다른 조각들과 일치하며, 심지어 그 프레임 너머의 아직 보이지않는 부분과도 일치한다. 큰 세계는 가장 작은 조각에 함축되어 있다. 가장 작은 부분은 전체를 포함한다.  - P149

흔들리는 나무나 서두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개별사진의 고요함은 징후와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다시말하지만 논리는 순환적이고 밀폐되어 있다. 고요함은 시간의 부재를 공간적으로 발현하고, 공간을 통하는 움직임의 결여를 시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서사가 부족한 것이다. 순간을넘어서는 움직임은 없다. 기술적 의미를 제외한다면 250분의1초든 뭐든 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무한대의 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기능을 제공한다. 내 생각에 셔터스피드에서 무한대의 등가물은 아마 영원일 것이다. 기리의사진은 하나하나 우리에게 영원의 특정한 순간을 제공한다.
그 사진들은 자신을 완전히 제공하면서, 순간적으로 우리가오랜 시간 동안뿐만 아니라 영원이라는 한계점 위에 서서볼수 있다는 느낌을 전한다. - P150

사진은 사진에 찍힌 사물과 같지 않다. 그러나 사진은 사물 자체에서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게 해 주기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진은 사물에 관해 거의 의식하지 못했거나 완전히 망각하고 있던 것을 알려 준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고추나 변기 같은 것을 촬영하면서, 카메라는 "사물 자체의실체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101 특별히 준비된 기계라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당시는 카메라의 잠재력을 탐색하고 확립하던 과정이었고, 그래서 카메라가 필연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었다. 피터 미첼의 허수아비 사진에서 사진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전에 산책하면서 이 허수아비들을 수백 번마주쳤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허수아비를 지나쳤을까? - P152

나는 허수아비가 노숙자라고 말했지만, 허수아비보다 더단단하게 한 장소에 붙어 있는 것은 동상이나 나무뿐이다. 어떤 허수아비는 걷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존재론적 한계라기 보다는 사진이 발걸음을 얼어붙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로 허수아비들은 그들 자신 안에서 완전히 편안하게존재한다. 그리고 허수아비들은 잠을 전혀 자지 않는다. 영원한 각성 상태는 그들의 좌우명이자 생활 양식이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존다면, 새들을 막는 그들의 효율은 저하될 것이다.
그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명백하므로) 이는 명백하다. 그 의식은 대개 깊은 명상을 통해 얻어진다. 자아가 결여된 그들은 땅과 하늘, 그리고 더나아가모든 창조물과 하나다. 음……… 까마귀도 포함해서?
- P156

나는허수아비의 평균 기대수명을 알지 못한다. (패션계처럼) 계절단위일까? 아니면 연단위일까? 어느 쪽이든 그들이 걸친 눈옷은 서리가 내리는 끔찍할 정도로 오랜 시련에서 겨우 살아남은 것처럼 피로 얼룩지게 된다. 피 묻은 상처는 까마귀들이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결국옷은 썩어 없어져서, 허수아비들은 황야에 서 있는 리어 왕같은 비극의 분위기를 얻게 된다. "꺼져라, 꺼져 버려라!" 차이점은 리어 왕의 옷 밑에 ‘가엾고 벌거벗은 사람‘이 있는 반면 허수아비들은 옷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난당한 신체 부위가 아니라 얻어 온 천들을 모아서 기우면프랑켄슈타인의 특징을 얻게 된다. 그것들은, 정의상, 무섭다.
허수아비들이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 그것은 마치 그들이 살아 있기 위해 체지방을 소비한 것과 같다. 어떤 사진은범죄 현장을 보는 경찰의 시선과 닮아 있다.  - P160

빌 브란트에서 리처드 애버던, 다이앤 아버스까지, 사진가들은 사진이 일종의 예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인생의 특정한 순간에 찍은 사진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스는 헤밍웨이와 마릴린 먼로에 대해 말하면서, 그 얼굴에 자살의 기미가 어려 있었고 운명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매력적인 개념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래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 P165

그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았을 때 그 미래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도록 말이다. 한편 우리는 세월을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월이 우리를 산다. 이 사실이이 시리즈를 매우 흡인력 있게, 어떤 면으로는 무척 끔찍하게만든다. 불변의 계시는 여기서도 그리스 비극에서만큼 강력하다. 특히 촬영이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므로, 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글쎄, 달력으로는 여전히 1년에 한 번이지만,
자매와 사진가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매년촬영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10년 이상촬영을 계속한다면, 사진들은 한 번의 촬영에서 나온 다양한이미지들처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적인 사진시리즈는 해마다 가속도를 얻게 된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조급함을 쉽게 억누르며 새로운 사진들, 즉 정지된 에피소드를 기다린다. 무엇이 드러날까? 실은 드러나는 것이 많지 않다. 1년에서 다음 1년까지는 차이가 그리 크지 않지만,
10년에서 다음 10년 사이의 차이는 분명하다. 1년에서 40년사이라면 거의 무서울 정도다. - P166

시간은 여러 면에서 효과를 달성한다. 하지만 이 사진에명백하게 드러나듯, 어느 시점 이후로 시간은 우리의 얼굴을똑바로 쳐다보는 단 하나의 일만 한다. 시간은 이 여성들을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또는, 약간의 재량이나 모호함을 허용해서 다시 말하자면, 시간은 그들과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준비하게 한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찍은 사진들은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사진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무엇에 관한 것이었는지가 명백해진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더라도 말이다. - P167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시선을 피하고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 앞서 나는 이 시리즈가 가속도를 얻었다고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말년의 가속도를 얻었다. 소설가 수전 미노는 이 프로젝트에 관한 사려 깊은 에세이에서 1981년,
1983년, 1984년의 사진 속에 사진가의 그림자가 들어 있음을지적한다. 그녀는 이것을 그의 속하고 싶어하는 욕망, 즉 모든외동아이의 욕망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았다. 낙관적인 해석이다. 나는 그림자를 더불길하게 본다. 특히 닉슨의 그림자뿐아니라 카메라 자체의 그림자, 또는 사진 자체의 그림자가 침범해서 마치 엑스레이로 드러난 덩어리처럼 스스로의 존재를느끼게 할 때 말이다.  - P167

어느 해에는 네 자매가 아니라 세자매가 될 것이다. 자매중 한 명이 죽은 후에도 닉슨이 이 프로젝트를 계속한다는가정하에 말이다. 현악 사중주는 삼중주로 계속될 수 있지만,
보통은 새로운 바이올리니스트를 영입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중주가 더는 불가능하다면 중단을 선언하거나,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의 사진적 등가물처럼 축소된 상태로 단 한 명의 자매가 남을 때 비로소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외동아이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숨겨진 가정이 있다. 즉 사진가가 대상보다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가 자매보다 먼저 죽는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끝날 수도 있다. 또한 제3의 가능성도 있다. 무슨일이 일어나든 내가 더는 그것을 볼 수 없는 경우 말이다. - P168

말년에 다이앤 아버스는 "사진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사랑하게되었다. 브라사이의 사진에는 빌 브란트의 사진에는 실제로물리적인 어둠의 요소가 있으며, 어둠을 다시 보는 것은 매우흥분된다" 고 말했다. 이는 짜릿하지만 위험하다. 존 자코우스키는 윌리엄 게드니가 제안한 ‘밤The Night‘ 시리즈에 다소경멸적으로 반응하면서 "사진은 볼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인 반면 그 시리즈는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볼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이 딜레마는 복잡한 만큼 간단하다. 황혼이 매력 있는 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사라지려는 시간이기 때문이며 낮의 빛이 비추는 현실의 세계가 꿈의 영역으로 미묘하게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 P169

매우 고요한 사진 속에 결여된 움직임, 오염되지 않은 침묵은 시간에서 벗어나고 상호 작용의 순환과 동떨어진 세계를 느끼게 해 준다. 현재 팔고 있는 상품과 그 실마리를 보여 주는 간판이 사라진 텅 빈 상가는 시대를 추정하기가 어려워서, 때로 시간뿐만 아니라 역사로부터도 동떨어진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대부분이 일시적이거나 덧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의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에서 벗어난 세계 대신, 시간에서 벗어난 순간들에 대해 더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이미지에는 드라마 또는 긴장감이 현저히 부족하다. 그 공허함은 공간적이면서 시간적이며, 『어두운 도시』는 그것으로 가득 차 있다. - P174

『건널목들Crossings』이 가장 명백하게 보여 주듯, 웹은 경계에끌린다. 그러니 사진의 경계, 즉 가장자리가 작품의 중심임을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다. 이런 점에서그는 가장자리였던 것이 중심이 되어 버린, 장벽이 붕괴한 후의 (분단된 도시라고 불렸던) 베를린과 등가를 이루는 사진가다. 웹은 독특하게 기둥이나 나무, 또는 벽의 가장자리로 사진을 나눈다. 분할된 것의 양쪽에는 잠재적으로 상당히 다른 두세계, 또는 서로에 대한 두 개의 거울에 가까운 이미지가 있다. - P192

예상된 일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런 다음 그 기록은 애가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특별한 것은 그것이 일어나는 속도와 ‘그런 다음‘의 짧은 시간이다.
이미지가 현상용 트레이에 나타나는 즉시, 또는 심지어 셔터를 찰칵 누르는 순간에도, 이미지는 미래에 보이게 될 모습에고취된다(물론 이제는 이러한 공정 자체도 애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 P201

제프 다이어 GEOFF DYER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국의 대표 작가․ 사진,
재즈, 여행 등 한 작가가 다뤘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소재를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에 담아내며 독창적인 글쓰기를선보인다. 전 세계 독자들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전공했고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1992년 『그러나 아름다운』으로서머싯 몸상, 2004년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로W. H. 스미스 최우수여행도서상, 2006년 지속의 순간들』로국제사진센터 인피니티상, 2011년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 otherwiseKnown as the Human Condition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지큐GQ』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로뽑혔다.
의외로 그는 사진을 찍지도 않고, 심지어 카메라도 없는 상태에서사진에 관한 글을 써 왔다. 그 결과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 존 버거 등사진 비평으로 널리 알려진 대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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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해 글을 쓰는 일, 사진에 대해 글을 쓰려고 사진을 보는 일은 지난 20여 년 동안 나의 중요하고 즐거운 부업이었다. 부업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본업도 없었다. 여러 부엌이 모인 것이 곧 본업이었다. 하지만 사진은 본업이 될 정도로나의 비평적 열정을 계속 사로잡았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원고를 정리하던 중 찾아보아야 할 글의 편수에 놀라면서, 그렇게 된 것을 알았다.
당연히 내게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저 보고, 본 것에대해 생각한 후, 보고 생각한 것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보고 생각한 것을 통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알아차리게 되고, 글을 쓰기 전에는 갖지 못했던 사고事故를갖게 된다. p13


이렇게 방법이 없다고 선언한 것은, 방법의 결여가 어떻게나름의 전통과 이념적 토대를 갖춘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의식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나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사진에 대한 글쓰기는 내가 옥스퍼드에서배운 실천적 비평의 연장일 수도 있다. 시나 산문 한 편을 읽고 운율과 단어 선택 등이 특정한 효과를 자아내는 방식을검토하는 일 말이다. 아마도 그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시험을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일 것이다(이렇게 대학교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좀 유치하지만, 글쓰기는 내가 스스로 비용을 조달한, 늘 진행 중인 교육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나는 글대신 사진을 읽는 것을, 자세히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실천적 비평이 역사적 뿌리에서 개인의 전기적 이야기라는먼지를 털어 버리고 텍스트를 뽑아내는 반면, 시와 그 저자가처한 문화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감각, 즉 전통에 대한 감각은텍스트의 내용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는 내가 사진을 배우면서, 점점 늘어 가는 다양한 전통 안에 있는 역사를 바라보려고 시도하면서 얻는 이득 중 하나였다. 이런 시도는 세잔에 관한 릴케의 편지에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좀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그림 앞에"‘
서 있으려는 시도 말이다.
- P14

‘서‘있다기보다 ‘앉아‘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갤러리의 벽이나 인터넷에서도 사진을 보지만, 집에서 소파에 앉아 다리를 올리고 책 속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버릇은 조만간 바뀔 것이다. - P14

게리 위노그랜드는 항상 사진에 서사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이미지로는 사람이 모자를 벗는지 쓰는지 알수 없다고 말이다. 한편 스티븐 쇼어는 대형 카메라의 ‘묘사하는 힘‘에 매료되었다. 서사 능력의 부재와 정지된 상태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합쳐지면, 사진은 묘사라는 뒷받침 없이도리듬의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보다 언어에내재한 서사의 잠재력을 훨씬 더 쉽게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사실 음악에서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생생한 소리를들을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사진은 내게 비평적전문 분야이기도 하지만 묘사적 서사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 P15

사진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음악에 관해 글을 쓰는 것에비해 대체로 쉬울 수 있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사진은 다른 사진보다 이해하기 어렵다. 어려운 사진이나 음악, 시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처음의 또는 지속되는 혼란이나 당혹감을 잊거나 부정하거나 또는 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비평은 어떤 작품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해명하는 기회가 아니라, 작품 안에 내재한 진실이 표현되기를 바라며 그 반응을명확하게 표현하고 기록하고 보존하는 기회다. - P15

사진에 대해 글을 쓴 작가들에 관한 세 편의 글을 묶은3부 중 마지막 글은 존 버거의 글 모음집에 서문으로 쓴 글로,
이 모음집에서는 일종의 ‘뒤에 실린 서문‘처럼 이중으로 기능한다. 존에 대한 사랑과 존경, 그리고 그가 나에게 준 영감과가르침에 대한 감사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도록이나 논문에 실을 글을 나에게 부탁한 많은 사진가와 큐레이터들에게도 감사한다. 사랑하는 작가나 예술가의 책에 서문을 쓰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스물세 살의 내가 언젠가 내 글이 롤랑바르트의 『밝은 방』의 표지 사이에 끼어있게 될 것을 알았더라면, 행복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행복해서 정신을차리지 못하고 있다. - P17

깊이 존경을 받고 말그대로 많이 보인다 해도 거의 익명으로남는 것이 사진가의 이상想이다. 혹은 그런 것이 이상이었던 적이 있다. 외젠 아제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일지나 일기도 없다. 그의 작품에 대한 책에서도 생애와 관련된 사실이 두 단락 이상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똑같은일화 몇 가지가 항상 인용되는데, 가장 잘 알려진 일화는 만레이가 초현실주의 혁명 La Révolution surréaliste』의 표지에 사용한 사진을 자신이 촬영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일이다. 베레니스 애버트가 찍은 그의 사진이 남아 있으나,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입증하거나 추정할 수 없다.
아제는 자신의 물리적 부재를 통해 사진의 실천적인 수호성인이 되었다. 사진가의 흐릿한 모습과 카메라 장비가 가게유리창에 비치는 몇장의 사진을 제외하면, 그는 형체 없이오로지 자신이 본 것과 다른 이들에게 보여 준 것으로 존재한다.  - P23

배은망덕하게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아제의작품들 중 어떤 작품에 집중할 것인지 결정할 때는 그 방대한작업량 때문에 사치스러울 만큼 까다롭게 구는 것이 가능하다. 온갖 종류의 이미지들을 버려도 여전히 작품이 넘쳐난다.
나는 발자크, 플로베르, 디킨스의 책에서 19세기의 실내 장식에 관해 읽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제가 촬영한 것들은 차마 다 볼 수가 없다. 그 사진들은 너무 억압적이고, 가구와 소품 때문에 무거워 보이고, 빅토리아 양식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 "가구 없는 생명은 없다"고 말한 조지프 브로드스키가 옳았다. 하지만 종종 그 가구는 생명 없이 죽은 것처럼보인다. 아제의 사진에서 그런 실내를 보면 밀실 공포증이 느껴지고 숨이 막힌다. 물론 이 말은 사진에 대한 찬사다. 마치속이 꽉 찬 쿠션처럼, 묘사 대상으로 가득 채운 방식에 대한찬사 말이다. - P26

아제의 작품 규모가 발자크를 연상시킨다면, 그의작품들은 인간이 거의 없는 ‘인간 희극comédie humaine‘이다.
이 비유는 적절해 보인다. 자신의 부재를 통해 존재를 인정받는 사진가가 인간의 부재를 통해 인간이 어디든 존재하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혹은 그저 구경꾼인 관객들은 사진의 질문던지는 방식에 호응하면서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우리와 같은 호기심을 느낀다. 발터 벤야민은 "아제의 사진은범죄 현장의 사진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에서 범죄의 진실은 불분명하지만, 간혹 목격자가 등장해 교차심문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증언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한 아제의 작품에는 실내장식이나 가구가 없을뿐더러, 보통은 사람이 별로 없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 사진 자체가 지닌 본질적 중력에 동의하거나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심지어 그 중력에 영향을받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의 변덕과 선호에 관심을 가져야 할이유는 없다. 나는 아제가 찍은 텅 빈 거리와 인적 드문 공원의 야외 사진을 좋아한다. 아제의 아제스러움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 P27

호수는 흐르지 않는다. 호수는 변하지 않는 채로 주변의사물이 변하는 모습을 반사한다.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시계 앞면의 고정된 중심부 같다. 베르사유와 생클루,
소 공원의 호수와 연못을 촬영한 아제의 사진들은 깊고 인간적이지 않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북적이는 인간들의 시간이 그 자체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과 반대다. - P31

아제는 순수 다큐멘터리 양식의 대부다. 자코우스키에게아제는 "사진의 필수적 목표이자 미학인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명쾌한 묘사"15를 확립한 사람이다. 이는 조각상을 스스로감금된 무언의 목격자로 만드는 사진의 마술이다. 즉 아제는이 마술을 통해 조각상이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만든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조각상이 자신의 관점으로 스스로를 묘사할 수 있게 말이다. - P32

카르티에 브레송은 "관객이 머리를 1,000분의 1인치만 움직이면"16 사진에 나타난 세계가 재구성될 거라고 말했다. 눈알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조각상에게는 그런 자유가 없다.
조각상은 공간에 대해 느끼지 못한 채로 오로지 시간과 관련해서 존재한다. 그들의 의식은 오로지 시간에 국한되어 있다.
조각상의 의식의 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가까운 곳에 앉아 있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덧없는 인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사진에 사람이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 P33

필연적으로 조각상과 물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이 몇 장있다. 시간에 대한 중층적 개념 그리고 자의식을 가진 이미지,
또는 가장 최선으로는 그 자체로 가득 차 있는 이미지에 대한 감각을 동시에 간직한 사진이다. 호수란 그것을 둘러싸고 틀로가두는 장면들로 가득한 일종의 작은 사진이다(벤야민에 따르면 호수는 사진의 발명을 통해 밝혀진 "광학적 무의식"의 저수지로 여겨질 수도 있다). 노출 시간은 바람에 흔들리는 수면을 종종 고요하게 만들고, 변치않는 나무나 언덕 등이 반사된장면조차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게끔 흐릿하게 만든다. 소공원의 조각상은 잎이 떨어진 겨울 나무 줄기에 둘러싸인 채로 불과 몇 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말라 버린 연못의 이미지,
물을 생각하고 있다.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P33

예술적 감성을 풍부하게 보여 주면서 그 과정에서 사진의 지위를 산업보다는 예술로 공고히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사진을 회화처럼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코번의 경우에는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회화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템스강을 바라보는 그의 사진적 시선은 마치 한낮의 야상곡 같다. 사진으로 도시를 묘사하는 새로운 방법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면, 즉 낡은 매체인 회화가 이룩한 당대 최신의 혁신이었던 인상주의의 일부를 받아들였다면, 이 시도는 모두시각화된 기억의 감각, 과거의 시각 매체(가장 분명하게는 휘슬러의 회화에 대한 기억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 P38

"그가 사진에서 안개를 걷어 낸28 순간, 사진은 폴 스트랜드가 만든 ‘추상‘ 작품을 예측하는 확실히 혁명적인 것이 되었다. 코번의 자화자찬은 차치하더라도 스물세 살 때 ‘사기꾼‘
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예술가는 자화자찬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실제로 그 사진의 혁명적 작품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3년 빠른 1909년에처음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미래는 『뉴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코번의 뉴욕에 있었다.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것이 형성되고 있었고, 그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 P45

1962년, 다이앤 아버스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 담당 디렉터인 존 자코우스키에게 아우구스트 잔더의 주소를 문의했다.
"그에게 편지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말이다. 이는 몇가지 이유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잔더(1876~1964)와 아버스(1923~1971)는 오랫동안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문의는 마치 신인 작곡가가 밥 딜런의 이메일 주소를물어본 것과 같은 약간 주제넘은 행동이었다는 점이고, 마지막으로 아버스의 그런 주제넘은 행동이 타당했다는 점이다. 잔더의 작품 세계는 아버스의 사진이 무르익을 정도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결국 관객들은 아버스의 작품을통해 잔더의 작품을 알게 되었다. 아버스는 자신이 카메라를손에 쥐기도 전에 촬영된 잔더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는 일종의 역전이라고 할 수 있다. - P46

묘사된 개인들은 하나의 유형에 속했다. 그러니 방대한야심 탓에 실패한 전형적인 프로젝트였던 『미들마치」와 「모든 신화의 열쇠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쓰려 했던 카조봉 목사의 노력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진에 대해 말하자면 W. 유진 스미스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1950년대 중반 피츠버그 프로젝트를 통해 그 도시의 면면을 1만 장이나 촬영했으나, 그 후 몇 년 동안 그 덩어리 자료를 어떤 형태로든 편집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신념의 거대한 통합" 33 을 제대로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직면하게 되었다.
잔더 역시 자기 몫의 좌절감을 경험했다. 롤랑 바르트가말했듯이, 그가 촬영한 얼굴이 " 나치의 인종 원형과 일치하지않았기 때문에"34 검열을 당한 것이다. 쾰른에 있던 그의 스튜디오는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다. 2만 5,000장의 네거티브 필름이 1946년 지하실 화재로 소실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놀라운 임무‘에 한결같은 다짐으로 매달렸다.  - P49

1926년 오토 브뤼에스의 초상을 예로 들어 보자. ‘작가‘
포트폴리오에 속한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브뤼에스의 작품과 이름은 오늘날 거의 완전히 잊혔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이렇게 생겼고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맞다. 동그랗게 반짝이는 안경과 결혼반지는 둘 다 빛을 받고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더 무거운 것이 흐르고 있다. 무엇의 무게일까? 만약 절망의 무게라면 너무 멜로드라마 같을 것이므로, 절망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바로 시대와 소명의 무게다. (잔더의 작가 초상이 언제나 그렇듯이) 배경에 책이 없고,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다. 왜일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바지는 마치 뒤에 있는 매끄러운 책상 같고, 그는 바지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인 잔더의 브뤼에스는 "나는 이름이 되었다‘라는 테니슨의 율리시스」를 읊조리며 스스로 책상이 되었다. 마틴 에이미스의 『정보』에서 무명 소설가 리처드 툴은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리처드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삶은 책상이었다. 인생은 변했다. 하지만 인생은 여전히 책상이었다. 항상 그의 앞에 있는, 책상이었다. 첫 학교, 그 후 20년. - P53

여러 직업들, 그리고 20년, 그리고 항상,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더 많은 책상이 있다. 숙제: 40년 동안의 책상.37이것이 작가의 삶, 숙제의 삶이다. 그 사진을 계속 보면 마치 책상보다 더 어두운 다리의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각상을 받쳐 주는 일종의 받침대나 혹은………… 무명용사를추모하는 기념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여기서 보이는것은 무명작가에 대한 사진적 기념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더 밀어붙인다면 다리가 지질학적 지층 같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도 긴 노출 시간인 수백만 년 동안,
늪지대 전체의 진흙이 압축되고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출현한 묵직한 증거로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글을 사용하는 능력에서 궁극적인 문학성까지 이어지는 깊은 계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작품과 저자가 잊혔다면? 잔더의 많은 사진이 이 질문을 다양하게 변형해서 제기하고 동시에 기록한다. 이 사진들은 사회에서 식별이 가능하도록 한 증거가 실존의 영원한 휴식, 즉 존재론의 텅 빈 미스터리에 자리를 내주는 순간에 찍은 것이다.  - P54

폭격을 맞은 그의 스튜디오 잔해 사진은 그가 사람들의 얼굴과 옷의 밀도에서 벗어나길 얼마나간절히 갈망했는지 보여 주는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갈망은 마이클 소모로프의 심오하게 아름다운『대상의 부재 Absence of Subject』(Buchhandlung Walther König,
2011)에 의해 미묘하게 충족된다. 소모로프는 잔더의 가장 잘알려진 사진 중 일부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을 제거한다. 마침내 시간이 손아귀를 풀고 사람들을 놓아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의 주변으로 스며들었고, 부재는 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한때 제빵사, 피아니스트, 또는 9인 가족이있던 곳에 이제는 유령이 사는 보이지 않는 고요한 부엌과 빈방, 빈의자, 잔디가 있을 뿐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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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바쁘고 고단했던 시간들 사이에서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들을 읽었다. 찬 얼음 수건을 목에 둘렀을 때의 촉감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오월으로 만들어주었다. 잔잔하고 따뜻하면서도 명징한 문장들이 지친 마음에 꽃송이들이 피어나는 ‘작은 파티 드레스‘를 입혀주는 마법의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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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유일한 재즈 책이다. 이 책은 작은보석이다. 내용에 대한 근접성이 훌륭한 독주를 결정한다면 다이어의책은 그중 하나다.˝

키스 자렛(피아니스트)

그럼에도 이 경우가 연극이나 음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예술은 동시에 비평이다. 작가 혹은 작곡가가 다른 작가 혹은 작곡가의 작품을 인용하거나 재창조할 때 그 점은 가장 분명하다. 모든 문학, 음악, 미술은
"그것에 대한 설명, 가치 판단, 그들이 존재하는 전통과 맥락을 포함한다." - P272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재즈는 블루스에서 자라났다. 시작부더 재즈는 청중과 연주자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를 통해 발전했다. 1930년대 캔자스시티에서 레스터 영과 함께 호킨스의 연주를 들으러 간 찰리 파커와 같은 젊은 연주자들은 그다음 날 새벽에 벌어지는 애프터아워스 잼riouse"에서무대 주인공들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잡았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맥스 로치 Max Roach 도 맨 처음에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도제 수업에 참가했다가 나중에 만든 52번가들까지 파커를 쫓아다닌 끝에 그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다.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Herbie Hancock, 재키 배클jackie - P273

McLean을 거쳐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이끌었던 연주자들 중 다수도 매클린이 "마일즈 데이비스 대학"이라고 이름붙였던 밴드를 학교 삼아 등교했던 인물들이다.
재즈가 이러한 방식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재즈의 기원에서 시작된 활기찬 힘은 오늘날과 관련을 맺고독특하게 남아 있다. 어떤 색소폰 주자는 가끔 다른 연주자의 악절을 인용하는데 하지만 그는 색소폰을 들 때마다, 비록부족한 기량일지라도, 자기 발 앞에 놓인 전통의 맥락 속에서자동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논평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이 논평은 단순한 반복을 포함하며(끝도 없는 콜트레인 모방이 그것이다), 때때로 이전에는 단지 간단하게 언급되었던 가능성을 탐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상의 경우에 이 논평은 형식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 P274

이상적으로 보자면 옛 노래의 새로운 버전은 실질적으로재창작이고 작곡과 즉흥 연주 사이의 가변적인 관계는 자기자신을 지속적으로 보충해 온 재즈의 능력 중 하나다. 피아노소나타 〈열정Appassionata> 작품 57에 관해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베토벤에게 처음 떠오른 것은 곡에서 등장하는 순서와는 달리 주제가 아니라, 코다coda‘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변주였으며, 말하자면, 그는 변주에서 거꾸로 주제를 끌어왔다고보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썼다. 이와 매우 유사한 일들은 재즈에서 종종 벌어진다. 솔로의 과정에서 어떤 연주자는 잠깐,
그리고 거의 우연히 한 악절을 연주하는데 그것은 새로운 곡의 기초가 되며 그 새로운 곡 역시 즉흥 연주에 사용된다. 그리고 이들 즉흥 연주는 차례차례 또 다른 악절들을 낳고 그것은 발전하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듀크 엘링턴 밴드의 연주자들은 그들이 솔로에서 연주하는 몇몇 릭lick"을 듀크가 적어 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곡을 만들어 자기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점에 종종 불만을 나타냈다. 물론 그들은 오로지 듀크의 천재성만이 그 악절의 잠재성을 파악하고 자신이 - P275

계속 진행 중인 실연 비평의 과정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가닥은 재즈 연주자의 독자적 스타일의 진화에 관한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자신만의 소리와 스타일을 갖는다는것은 재즈에서 위대함의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재즈에서 빈번하게 보는 경우처럼 여기에는 명백한 역설이 작동한다. 자기다운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도 다른 누군가와 비슷한 소리를 시도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인시절을 되돌아보면서디지 길레스피는 말했다. "모든 연주자는 이전에 등장한 누군가를 바탕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에 연주에서 자신만의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된다."10 결국엔 마일즈 데이비스도 디지 같은 소리를 시도했으며 그 이후의 수많은 트럼펫 주자들-가장 최근에는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이마일즈와 같은 소리를 시도한다. 심지어 연주자들은 종종 실패를 통해 자기 소리를 갖게 된다. 다시 디지의 말이다. "내가했던 전부는 로이 엘드리지처럼 연주하려는 시도였다.  - P277

앞선 언급들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밀봉된 형태로 있다. 그것을 생기 넘치는 예술 형태로 만드는 것은 재즈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역사를 흡수하는 재즈의 놀라운 능력이다.
다른 증거가 남지 않는다고 해도 미래의 컴퓨터는 재즈 카탈로 그로부터 미국 흑인의 역사 전체를 재구성할 것이다. 나는 심지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다룬 묘사음악으로고안된 엘링턴의 《검은색, 갈색 그리고 베이지색》과 같은 명백한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치 셰프의 <아티카 블루스Attica Blues〉, 또는 <맬컴, 맬컴 언제나 맬컴Malcolm, Malcolm,
Semper Malcolm〉, 밍거스의 〈수동적 저항자를 위한 기도문Prayer For Passive Resistance>, 혹은 맥스 로치의 《모음곡 지금 자유를Freedom Now Suite》과 같은 작품들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새로운 바이올린의 영혼을 담은 음색이 데카르트 시대의 위대한 혁신 중 하나에 속하는 것에는충분한 이유가 있다"1는 아도르노의 관찰처럼 보다 일반적이다. 아도르노의 주장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프레드릭 제임 - P282

Fredric Jameson은 "긴 지배력을 통해서 바이올린은 개인적주체성의 출현과 밀접한 정체성을 지켜 왔다"고 언급했다.
아도르노는 17세기부터 시작되는 한 시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언급은 20세기, 그러니까 루이 암스트롱에서부터 마일즈 데이비스에 이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의식에서 출연하는 트럼펫의 정체성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1940년대부터 트럼펫의 정체성은 색소폰과 경쟁했고 그것으로 인해보충되었다. 오넷 콜먼에 따르면 "흑인이 작성한, 그들의 영혼을 담은 최고의 선언문은 테너 색소폰을 통해 나왔다. "18여기서 콜먼은 주로 테너와 알토 색소폰을 구분했지만그의 주장은 테너 색소폰과 문학 또는 그림과 같은 다른 표현 수단과의 보다 큰 구분에서도 진실을 담고 있다. 이 점은중요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를 흡수한 재즈는 테너색소폰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역사를 빨아들인 재즈의 능력은 이 음악이 없었다면 자신들을 표현할 매개가 부족했을 천재들의 수준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 P283

페퍼에 대한 언급은 정반대 편에 있다. 왜냐하면 재즈가주로 흑인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흑인의 경험만을 표현하는 매체가 아니란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엘링턴의 《검은색, 갈색 그리고 베이지색》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가 백인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흑인 민족주의 운동이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백인 밴드 리더인 스탠켄턴StanKenton 은 재즈가 잠재적으로 그 시대의 고통에 찬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논쟁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난 오늘날의 인류가 이전 시대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을 통과하고 있다고 본다.  - P284

렌턴의 말이 다소 자화자찬-자신의 음악에 대한 무언의 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면 대신에 우리는 음악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었던 한 권위 있는 인물의 말을 들을 차례다. 마틴루터킹박사Dr. Martin Luther King Jr. 의 1964년 베를린 재즈페스티벌의 개막 연설은 시민권 쟁취를 위한 흑인의 투쟁이재즈를 예술로서 인정받으려는 재즈 음악가의 투쟁과 나란히놓여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했다. 연설에서 킹은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통, 희망, 기쁨을 선명하게 만드는작업을 오래전 작가와 시인들이 떠맡았지만 이제는 음악이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흑인들이 살아온 경험의중심에는 오로지 재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에서 흑인의 특별한 투쟁은 오늘날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투쟁과 동질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살아 있는 관계다. 어느 날 탄생한 재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세기가 함축하고 있는 것을 대표하고있으며 단순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조건뿐만 아니라 역사전체의 조건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 P285

롤린스, 마일즈, 재키 매클린, 콜트레인, 아트블레이키 등. 하지만 약물에 중독되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인들의 명단은 중독자들의 명단보다 훨씬 덜 인상적이다. 약물 중독은 직접적으로(아트 페퍼, 재키 매클린, 엘빈 존스Elvin Jones,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소니 롤린스, 햄프턴 호스HamptonHawes, 쳇 베이커, 레드 로드니Red Rodney, 제리 멀리건 등) 혹은간접적으로 그들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 정신병동으로 가는길은, 엄청난 고통으로 가는 길이지만, 활짝 열려 있었다. 멍크, 밍거스, 영, 파커, 파월, 로치 등 1940~1950년대 재즈의주도적인 인물들은 일종의 정신적 붕괴로 고통받았고 벨뷰종합병원은 약간의 과장을 더한다면 모던 재즈의 고향 버드랜드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다.
문학도들은 셸리와 키즈 John Keats"의 이른 죽음을 일상적으로 본다. 서른 살과 스물여섯 살에 각각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삶은 낭만적 고통의 불운한 경고로 가득 차 있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삶에서 역시 우리는 낭만적 재능의 정수를본다. 심지어 그것은 꽃피우자마자 소진되어 버렸다. 이 세 명의 삶에서 우리는 때 이른 죽음은 그들 창의성의 조건이었다 - P287

처음부터 재즈의 양식 안에는 위험한 무엇인가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통속극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쉽게도 재즈가 과연 그런 상처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음악은 계속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디지 길레스피의 언급은 금세기의 어느 시기에나 인용되어 왔고, 실제로 1940년대부터 재즈는 불같은 힘과 과격함으로 숲을 모조리 태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토록 급진적으로 발전한예술 형식이 거대한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은 채 과연 흥분의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만약 재즈가 ‘현대인의 보편적투쟁‘과 왕성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그투쟁의 상처를 피해 가는 것은 과연 가능했을까? - P290

재즈를 느낀다는 것은 실제 그것이 일어날 때는 너무도 미묘하지만 그냥 스윙만 하고 있는 밴드들의 상당수 재즈 카탈로그(와 많은 실황 연주)의 시들한 연주와 비교했을 때는 틀림없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지식(혹은 느낌)은 가파르고 위태로운 쇠락의 길로 들어선 재즈 연주자가 특별히 재즈에서 위대한 연주를 만들어냈을 때 그것이 연주 기교의 범위 밖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직면하게 한다. 모든 연주자가 동의하듯이 연주 당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며 자기 경험에 의존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연주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찰리 파커는 말했다. "음악은 너의 경험이고, 너의 생각이며, 너의 지헤다. 그것과 살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너의 색소폰을 통해 나올 수가 없다."25 비밥 시대의 많은 음악인들은 헤로인에 중독되었는데 오랜 중독자 찰리 파커가 끝이 없는 음악 창작 능력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의 몸속으로 그 약물을 넣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레드 로드니는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현재 운동계에 약물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경쟁자들은 기록의 기준이 화학적약물의 도움 없이는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 P292

이 지점에서 콜트레인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 것은 놀랍지않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든 흐름은 그에게로 수렴한 음악속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들불처럼 진화한 재즈 안에서 내재적이며 불가피했던 위험의 느낌은 콜트레인 안에서 선명하게 들린다. 1960년대 초부터 그가 죽음을 맞이한1967년까지 콜트레인은 마치 그가 자신의 음악을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으며 동시에 음악으로부터 모진 채찍을 맞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는 존재하는 형식의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속적인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하면서 비밥 연주자로서의 자신을 끝마쳤다. 5년 동안 함께했던콜트레인, 엘빈 존스, 지미 개리슨 Jimmy Garrison, 매코이 타이너 McCoy Tyner의 클래식 쿼텟classic quartet‘은 다른 예술 형태가접근해 본 적이 거의 없는 표현의 절정으로 재즈를 끌어올렸다. 이를 이끈 사람은 콜트레인이다. 하지만 그는 전적으로리듬 섹션에 의존했으며 그들은 초 단위를 쪼개는 반응으로콜트레인의 미로와 같은 즉흥 연주를 통해 단순히 그를 단순히 따라갔던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분투로 콜트레인을 몰아붙였다.  - P295

프리재즈가 점점 더 소음처럼 느껴지고 점점 더 음악처럼 들리지 않는 상황으로 해체되어 가자 청중은 줄어 갔고 재즈-록으로 돌아선 음악인의 숫자는 늘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암흑기로 여겼던 1970년대 퓨전 시대 이후에 1980년대는 밥에서 유래했다고 재천명한 재즈가 감상자와 연주자들의 새로운 세대를 장악하고 있는 흥미로운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재즈는 결코 대규모 청중을 위한 음악이 될 수 없으며 이 음악으로 개업한 음악인의 삶은 여전히 재정적으로 위태롭지만 비밥 탄생기에 수반되었고 1960년대 뉴뮤직에서 내면화되었던 위험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긴박한 위험의 느낌은 재즈 감성에 내재적이었기에 혹시 이 음악은 중요한 활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날 재즈의 상황은 무엇일까? - P299

재즈가 연주되고 있는 환경도 바뀌었다. 뉴욕에 있는 클럽 가운데는 빌리지 뱅가드는 최고의 보기이며 좀 더 근자의장소로는 니팅 팩토리 Knitting Factory 를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소수의 클럽만이 오로지 음악에 헌신하면서 값비싼 덫을깔아 놓지 않고 오로지 청중과 출연자들이 분위기를 만들도록 배려하고 있다. 반면에 호화로운 치장의 서퍼 클럽supperclub 들이 점차 재즈가 연주되는 장소의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때때로 ‘정숙‘을 내건 클럽의 정책은 연주자들로 하여금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들리는 너무 큰 잡담 소리와 싸우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그만큼 음악도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는 청중에게 상당부분 맞춰 달라는 의미였다.  - P300

비밥은 공식을 통해 연주하는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의 문법은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창문으로 공을 던진다"와 같은 문장처럼 간단한 것이 되었다.
1940년대에는 그 누구도 이처럼 창문으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짜릿함을느꼈다. 이제는 그 행위 자체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여전히 비밥이 흥미롭다면 던진 공은 얼마나 단단하며 창문은몇 조각으로 깨져 나가는지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오늘날 비밥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공중에서춤을 추며 흩어지는 유리 조각과 공이 날아간 아름다운 곡선이다. 느린 곡에서 공은 우아하게 튀어 오르고 유리창은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창문은 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테다. - P302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콜트레인의 긴 그림자, 그리고 비밥의 언어 안에는 여전히 새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늘날 재즈 연주자들이 직면한 다음의 보다 큰 질문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재즈에서 새롭고 중요한 작품이란 여전히 남아 있을까?"_지난 100년 동안 재즈가 급진적인 진화를 이룩했음에도, 그러기가 무섭게 청중과 연주자들은 모두 전통 속에서 최근의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블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이것을 "영향력에 대한 열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생각지도 않 - P302

1960년대의 급진적인 재즈가 전통으로부터 단절하려는 태도로 지배되었다면 1980년대의 신고전주의는 전통을 인정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만들자마자 거의 무너지는 위험에 처했다. 재즈의 전통이란 혁신과 즉흥 연주에 있기 때문에 대담한 우상파괴를 하는 것만큼이나 전통주의 역시 혁신적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예술이란 대부분 과거에 헌신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재즈는 늘앞만을 바라봤는데 그런 점에서 가장 급진적인 작품은 동시에 종종 가장 전통적이기도 하다(다름 아닌 세기의 전환을 제시했고 그렇게 인식되었던 오넷 콜먼의 음악은 그가 포트워스에서 자라면서 들었던 블루스에 흠뻑 젖어 있다). 어느 쪽이든모든 종류의 복고주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원칙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 P303

시간을 아우르는 음악 통합과 더불어서 지정학적 음악통합이라는 동일한 경향도 공존하고 있다. 1960년대 음악인들은 명백한 아시아, 아프리카 리듬과 악기를 그들의 음악과뒤섞는 작업을 더욱 빈번하게 시도했다. 라틴과 아프리카 재즈는 현재 확고한 스타일이지만 가장 개성적이고 독창적인음악적 비옥화의 일부는 비서구 음악으로부터 최초로 영감을 끌어낸 음악인 중 하나인(파로아 샌더스의 1967년 앨범 《완전 일체 Tauhid》에서 동양적 블루스인 <재팬Japan>을 들어 보라)샌더스와 돈 체리와 같은 연주자로부터 여전히 나오고 있다.
특히 체리는 계속 진행 중인 창조적인 발전 속에서 놀랄 정도로 월드 뮤직의 비율을 담고 있다.  - P308

동시에빌에반스 또는 버드파월의 후계자이며최근의 독주 작품의 많은 부분에서 리듬과 즉흥 연주에 대한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담으면서, 블루노트blue note‘에 대한 어떤 첨가도 없이 자신을 재즈의 전통 안에 위치시킨다. 최상의작품들에서 자렛은 그의 음악 속에 떠다니는 모든 종류의 음악들을 섭렵하되 아무런 의식적 노력이나 부담감 없이 이질적인 영향들을 결합한다. 그는 창작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을취할 때면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 놓은 상태에서 음악이 단순히 그를 통과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스레드길과 보위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공통의 음악적 유산의 여러 측면을 가지고 얼마나 다르게 그것들을 조합하는가, 그 차이의 크기를 인식하는 것이라면, 반면에 자렛의 음악들 듣는 즐거움은 심지어 상이한 음악적 자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로 모인음악에서 파생되는 것이며 그 본질은 전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자렛의 천재적 즉흥성에 있다.  - P312

존 버거는 "하나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은 모든 예술의본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라고 썼다.4 버거가 공식화한 것이 제시하는 힘, 다시 말해 "앞서 존재했던 무수한, 인식하지 못했던 고요와 비교했을 때 발생한 순간의 모순"은 자렛이 손가락이 건반을 건드렸을 때만큼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것은 없다.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이 슈베르트를 연주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의 느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렛이 즉흥 연주를 시작할 때만큼 강렬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설사 우리가 어떤 곡을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다고하더라도 우리는 그 곡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되고있고 그것을 목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스타이너가 말하는 원초의 공화국republicof the primary"이 제거된 무대에 있는 것이다. 특별하게도 창조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은 자렛의 음악적 과정에서는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자렛의 음악에서 끊임없는 창조는버거가 말한 ‘순간‘을 의미하며 그것은 음악이 지속되는 매순간 속에 담겨 있다. 시간이 그의 음악을 직접 생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이토록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P313

자렛은 특별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를 듣는 경험을 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동시대의 연주자들과 비슷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요즘의 재즈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어 놨을 때, 다시금 블룸을 인용하자면 "우리는가급적이면 독창적인 목소리를 듣는다. 만약 그 목소리가 그의 선배들, 동료들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듣기를멈춘다. "36재즈의 경우 이 점은 아마도 오늘날의 연주자들보다도 과거의 대가들에게 강하게 적용될 것이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이제는 『율리시스Ulysses』가 『오디세이아"보다도 먼저 나온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율리시스』를 더 먼저 보게 되므로 정확하게 같은 이치로 사람들은 마일즈를 암스트롱보다 먼저, 콜트레인을 호킨스보다 먼저 듣고 있다.  - P314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설령 사람들은 옛 대가들의 음반을 실제로 들은 적이 없더라도 우연히 접한 거의모든 재즈곡에서 루이 암스트롱, 레스터 영, 콜먼 호킨스,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월을 듣게 된다. 어쩌다가 버드 파월의 음악에 관심이 생긴 경우에도 그가 그렇게 특별한지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 역시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실제로 그 이유는 다른 모든 피아니스트가 버드 파월처럼 연주하기 때문이지만). 과거와 관련을 맺는 긍정적인 측면은 전통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전진하면서 더 많은 발견의항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강의 출구를 따라가는것 대신에 강의 근원을 추적해 가는 것이다. 더 깊이 거슬러올라갈수록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의 특별한 성질을 인식할수 있다. 고조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손자들의 근원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 P315

전통이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음악의 진화와 발전을통해 과거의 대가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장해 준다. 한편으로 옛 음반들은 디지털로 새롭게 마스터링되고 새로운 소리로 재포장되어 새로운 녹음처럼 보인다. 가장 새로운 사운드 - P315

의 음악 중 일부는 과거의 음악에 흠뻑 젖어 있기도 하다. 전진과 후진에 대한 생각,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감각이 영구히 지속되는 오후의 황혼 속에서 서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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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허구, 몽상이 뒤섞인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들



시정이 흐르는 제프 다이어의 글은 재즈와 그 음악을 만든 사람들을 지금, 여기로 데리고 온다. 그는 여러 일화를 통해 자신이 음악을 들었던 방식 위에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역경에 처한 재즈 음악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호텔방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레스터 영, 자동차 운전대를 붙든 채 경찰에게 손등을
얻어맞고 있는 텔로니어스 멍크, 찌그러진 자전거를 타고뉴욕의 길거리에서 분노를 쏟아 내는 찰스 밍거스………
술과 약물, 차별, 고된 여정 속에서 오직 음악만이 그들을
추동하는 힘이다. 슬프고도 기이한 순간은 다이어의 글로써
마침내 생명을 얻고, 모두가 멈추어 있는 사진 속에서 재즈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벤은 물가로 가서 연주하는 것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코펜하겐 시절, 클럽이 영업을 마치면 그는 항구로 걸어가하얀 태양이 회색 바다 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그곳에서 연주했다. 바다는 완벽한 청중이었다. 그의 연주를 들어 주는 완벽한 귀 모든 음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고 그 음을 좀 더길게 끌도록 만들어 줬다. 대양의 아침 햇살 속에서 혹은 초저녁에 흐르는 안개 속에서 뱃사람들은 정박한 배의 난간에기댄 채, 부둣가 사람들은 하역 일손을 멈춘 채 색소폰을 통해 항구의 분위기를 달래는 그의 연주를 들었다. - P147

그의 연주는 파도처럼 강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육지라는 물결을 따라 떠돌다가집으로 향하는 커다란 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바닷물은 부두를 찰싹였고 그는 필요한 만큼 느린 박자를 유지했으며 굵은 밧줄은 긴장감을 더하며 점점 더 팽팽해지고 있었다. 연주 소리를 듣고 온 갈매기 떼는 원을 그리다가느린 박자에 맞춰 그네를 타듯 날아다녔다. 어느 날 고래 두마리는 수면 위로 모습을 보여 주기 바로 전까지 올라와 물결과도 같은 블루스의 울음소리를 듣더니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내보이며 물결 밑으로 사라졌다. 벤의 연주를 대양의 깊은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누군가가 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벤은 다른 종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또 다른 - P147

종족에 대한 알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녹음으로 우거진 어두운 운하에서도 연주했다. 영국에서는 첼시 다리를 도보로 건너 템스강 둑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다리의 불빛은 맞은편에서 걸어가는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호의 가진 표정을 전달해 주었다. 가는세로줄 무늬 양복에 우산을 쓴 비즈니스맨, 스카프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 그는 템스강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너무 늙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물, 다리들은 강물의 방향이구부러져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계속 뻗어 있었다. 그때는저녁 퇴근 시간이었고, 모두가 펍에 모이거나 이파리가 떨어저 가지 사이로 노란색 불빛이 보이는 각자의 집으로 서둘러가는 시간이었다. 저녁은 푸른 밤안개 속에서 헤엄쳤고 가로등 빛은 강물을 따라 흘러 바다로 향했다. 우습게도 이 풍경은 그의 향수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가 그리워하게 된 장소는바로 런던이었다. 잉크처럼 푸른 하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불빛, 이 모든 것 밑에서 흐르는 템스강의 길고 느린 하품. 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음에도 그것은 하나의 추억처럼, 마치 과거에 이 풍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 느낌이든다.
- P148

그는 외로움과 함께 다녔지만 일종의 위로로서 자신의 사운드도 함께 지니고 다녔다. 색소폰은 그의 집이었다. 색소폰과 모자는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는 곳이었다. 포크파이 해트와 트릴비는 늘 그의 뒤통수에 젖혀져 있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스컬캡 skullcaps 처럼 늘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불굴의 모자가 여전히 머리 위에 있을때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이제 그가 가장 밀착하고 있는 물건이고 오랫동안 멀리 떠난 자에게 주는 온기이며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자와 색소폰 하나의 전통. 결코 떠날 필요가 없는 그의 집. - P156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우리의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숲의 끝으로 향했다가 그를 본 거예요. 큰 몸집의 그는 외투로 몸을 감싸고있었고 머리 위에 얹힌 포크파이 해트는 너무도 어색해 보이더군요. 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찰나에방해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평선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검은 실루엣이 되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어요. 잎을 통해 떨어지는 옛 빗방울로 젖은 고요함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새들은 높은 나무 위에서 날아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고요. 벤은 그 숲의 끝에 있었어요. 산 입구 문기둥에 기대어 멀리 농가에서 피어오르는연기가 들판 위를 지나고, 구름이 천천히 언덕 위를 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있었어요. 마치 이런 장소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제게 어떤의미인지를 물어요. 전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오후가 떠올라요. 그날은 제게그의 음악과 같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예요. - P158

미국은 그의 얼굴에 계속해서 불어닥치는 폭풍이었다. 그가말하는 미국이란 백인들의 미국이었으며 백인들의 미국이란 그가 혐오하는 미국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바람은 보통사람들보다 그를 더욱 강하게 때렸다. 사람들은 미국을 미풍微風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그 속에서 분노의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나뭇가지도 조용하고 미국 국기가 별무늬의 스카프처럼 건물 한쪽에 드리워져 있을 때도 그에게는 분노의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분노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강도로 고함을 쳤으며 그 분노를 향해 돌진했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대륙 크기의 길 위에서 서로 충돌했다. - P161

분노는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조용할 때도 분노의 불씨는 한순간에 폭발할 듯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의 머리는 소리치고 있었다. 그조차도자신이 왜 이러는지,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를 몰랐지만,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분노는 에너지의 한 형태였고 그를 쓸고 지나가는 불길의 일부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몸이 점점 더 커지는 이유였고 그는 자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다 물론자신을 전부 담으려면 그는 빌딩만 한 몸을 가져야 했겠지만 그는 매 순간마다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어떤 나라와 같았다 물론 온도가 어떻든 그것은 끓고 있었지만 끓는 추위, 끓는 더위, 끓는 비, 끓는 얼음. - P162

그의 몸에는 고유의 날씨가 있었다. 몇 달을 주기로 형태가바뀌었고 갑자기 50파운드(약 23킬로그램)가 쪘다가 다시 빠르게 몸무게가 줄었다. 가끔 뚱뚱했고 간혹 건장한 체격을갖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늘 몸이 점점 커졌고 그의몸은 오래된 스웨터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치료약도 먹었지만 일상적으로 서너 끼의 식사를 하룻저녁에 해치웠다. 한 끼 식사는 사이드 메뉴, 추가 메뉴로 접시가 탑처럼 쌓였고 식사는 아이스크림 서너 그릇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충분히 먹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무슨 맛이든, 어떤 제조법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다이어트로 40파운드(약 18킬로그램)를 한 번에 뺐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집 한 채만 한 도서관에서 얇은 책몇 권을 뺀 것과 같았다. 각자 고유의 사운드를 찾아야 하며그래서 각자 고유의 크기를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통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명했다. 몸무게는 그를 결코 느림보로 만드는 법이 없었다. 그는 뚱뚱해질수록 더욱 치열해졌고터질 만큼 꽉 찬 여행 가방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삶에 비해 그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에비해 삶은 미미하고 하찮았으며 그보다 몇 사이즈 작은 재킷처럼 움직일 때마다 찢어져 버릴 듯했다. - P163

밍거스 밍거스 밍거스, 그것은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동사였다. 심지어 생각마저도 행동의 한 형식, 내면화된 운동의한 형식이었다.
그는 점차 자신의 악기가 갖고 있는 무게와 차원을 떠안았다. 그의 몸은 너무 거대해져 베이스가 마치 침낭처럼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이 어깨에 간단히 매달린 물건처럼 보였다. 그가 커질수록 베이스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는 베이스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각하듯이 베이스를 연주한다. 다루기 힘든 돌을 깎아서 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밍거스는 마치 레슬링을 하듯 연주한다. 베이스를 가까이에 놓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베이스의 목을 잡고 내장을 거둬 내듯 현을 뜯는다. 그의 손가락은 펜치처럼강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엄지와 검지로 벽돌을 쥐고서 힘을 주자 벽돌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기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도 소유한 적이 없는 땅에서 자란어느 아프리카 꽃의 분홍색 잎사귀에 벌이 날아와 앉듯이 부드럽게 현을 다뤘다. 그가 베이스를 활로 켜면 교회 예배에서수천 명의 사람이 들려주는 콧노래와 같은 소리가 났다.
밍거스 핑거스. - P164

사진 속의 밍거스는 앉아 있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모습은 지나친 힘에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밍거스에 관한 모든 것은 과잉이었다. 그는 『뉴욕타임스The NewYork Times 를 들고 아무 데나 펼친 뒤 쭉 펼쳐 놓고는, 자신이신문을 바라보는 것이 늘 그렇듯 ‘이건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신문을 참을성 있게 읽지않았다. 마치 상대의 옷깃을 잡듯 두 손으로 신문을 움켜쥐고여기저기서 몇 줄을 골라 읽다가 앞뒤 건너뛰고, 한 부분에서잠시 멈췄다가 한 단락 천체를 훑어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는 한 기사를 네댓 번 읽었음에도 제대로 읽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마는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고 입술은 노인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 입 모양을 만들려는 모습이었다. 의자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렸다. 신문을 보면서는 계속해서 도넛을 먹었는데 두 쪽으로 쪼갠 것을 한 손에쥐고 마치 뱀이 새를 잡아먹듯 한 조각씩 입으로 던져 넣고는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커피로 입안을 가신 뒤 신문에 떨어진부스러기를 쓸어내렸다. 다 읽은 뒤에는 역겹다는 듯, 마치 더이상 읽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 P165

누구도 밍거스를 참고 견딜 수 없었고 밍거스 역시 누군가에게 혹은 그 무엇에게도 참고 견디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기 방식에 무엇도 개입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엇도.
그렇게 진행된 그의 삶은 일종의 장애물 코스였다. 만약 그가배를 타고 있었다면 그 배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무렵 자신의 행동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이미 그의 행동들은 기이한 방식으로 그 값을 전부 치르고 있었다. - P167

밍거스에게 모순은 존재하지 않았다. 벌어진 일 혹은 그가말한 것은 자동적으로 진실함을 부여했다. 아울러 그의 음악은 모든 구분을 폐지하기로 서약했다. 작곡된 것과 즉흥적인것, 원시적인 것과 세련된 것,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공격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 사전에 편곡된 것은 반사적인 즉흥성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했다. 그는 음악의 뿌리로 돌아가서음악의 진보를 만들고 싶었다. 가장 미래 지향적인 음악은전통을 가장 깊이 파 들어간 음악이었다. 그것이 그의 음악이었다. - P167

그래서 사람들은 버드, 호크, 레스터 영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에릭은그들만큼 광범위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늘 그를 부를 것이고, 그 부름이 간절하다면 에릭은 대답하고 그것이 들리도록 할 것이다.
에릭 에릭 에릭.
밍거스가 죽었을 때 우리는 그를 듣기 위해 그토록 간절히 그를 부를 필요가 없을 테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베이스를 집어 드는 것. 그곳에 밍거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디아니 Johnny Dyani, 홉킨스 Fred Hopkins, 헤이든Charlie Haden의 연주 속에서 밍거스를 들었다. 그를 통해 페티퍼드OscarPettiford, 블랜턴Jimmy Blanton 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것처럼.
그래서 밍거스는 그의 아들에게 에릭 돌피 밍거스라는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기대였다. - P186

그래서 점점 더 피아노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가락은 건반을 치기에도 너무 경직되어 버렸다. 연주가불가능하자 그는 작곡에 더욱 몰두했다. 그는 마일즈와 달랐다. 마일즈는 음악을 들으면 자기 머리에 있는 것을 악기로 간단하게 옮겼다. 밍거스는 음악을 완성하기까지는 그 음악이들리지 않았다. 작곡은 소리 없는, 관중 없는 연주였으며 그래서 작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었다. 밍거스의 음악은 바로 밍거스였다. 그 음악의 움직임은 단순히 그의 움직이었고 그가 움직임을 잃기 시작하자 음악도 운동량을 잃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거대하고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 P191

태양이 그를 녹여 주기를, 그의 피 흐름을 막고 있는 얼음 덩어리를 풀어 주길 바라면서 그는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 그는 사막의 고요한 열기로 둘러싸여 태양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엔 커다란 솜브레로sombrero‘의 책으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육체는 너무도 고요해 그는 자신이 숨을 쉬고있다는 것마저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무엇도 움직일 수 없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구리 심벌즈였다. 태양은 바람한 점 없고, 모래 한 알 꿈쩍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하늘에3일 동안 같은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 P195

이것이 그가 늘 연주해 온 방식이며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는 한 음을 연주할 때마다 그 음에 작별을 고했으며 때때로 그 작별 인사마저도 하지 않았다. 늘 사랑받아온, 사람들이 연주되길 바라는 오래된 노래들이 있다. 연주자들은 그 곡들을 끌어안고 새로운 느낌, 신선함을 부여한다.
하지만 쳇은 그 노래에 상실감을 안긴 채 내버려둔다. 쳇이 연주할 때 그 곡은 위안이 필요했다. 감정으로 둘러싸여 있는것은 그의 연주가 아니었다. 그 곡 자체가 상처의 느낌을 갖고있었다. 음 하나하나는 그와 함께 좀 더 머물도록 애를 쓰며그에게 애원했다. 노래 자체가 그 연주를 듣고 있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 P201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으며 이 노래에 담긴 아름다움이아닌 지혜를 깨닫는다. 그 곡들을 한데 모으면 한 권의 책처럼 마음에 대한 꿈의 안내자가 된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마다Every Time We Say Goodbye>,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믿을 수 없어요! Can‘t Believe You‘re In Love With Me〉, 〈오늘 밤 당신의 모습 The Way You Look Tonight>, <내 마음속에 왔어요 YouGo To My Head〉, 〈난 너무 사랑에 쉽게 빠져요! Fall In Love TooEasily>, <당신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There Will Never Be AnotherYou〉, 이것으로 완벽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설을 합쳐도 남녀에 관해, 그들 사이에 떠 있는 별 같은 섬광의 순간에 대해이 노래들보다 더욱 잘 이야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연주자들은 정교화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악절과선율을 위해 옛 노래들을 탐색한다.  - P201

자신이 아니라 가죽 코트를 입은 한 노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거울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를 향해 발을끌면서 걸어오는 그 남자의 보다 자세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그어진 나무껍질 같은 주름, 수염,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먼발치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눈동자 그가 인도 끝으로 다가가자 노인 역시 그렇게 했다. 지나가는 차들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이전에 유럽에서 본 나이 든여인들의 모습처럼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고난과 아픔에 있는 그 여인들도 표정은 그들을 편안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입술을 다물면 고통은 그 안에 있었고 그것이 울음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울음이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가를 인정해야 했고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 판단한 그는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그의 움직임, 거울 속 몸짓을 지켜보았다. 지나간 일들이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매섭게 부는 바람을 향해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 P205

노래들은 그들의 복수를 담고 있었다. 쳇은 때가 되면 계속해서 그 곡들을 버렸지만 늘 다시 그 곡으로 돌아가곤 했다.
자신이 원할 때 그는 그 곡을 골라 단 몇 마디의 속삭임만으로도 그 곡을 울게 만들었지만 이제 그 곡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그의 연주를 통해 아무런 감동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트럼펫을 들었지만 단 한 숨도 불어넣을 수 없었으며,
갈수록 가사가 있는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기의머리칼처럼 성기고 연약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옛 노래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했고 그 곡들은 그전에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과 호흡은 곡을 얼마나쉽게 장식해 주었던가. 하지만 이제 그 곡들은 쳇에게 애처로움만을 느꼈다 - P216

고통은 그곳에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그러한 소리가 났던 것뿐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그는 그러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느리게,
하지만 늘 같은 그루브로 한 가지의 정서, 한 가지의 스타일,
한 가지의 소리. 단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그의 쇠락, 기교의 퇴화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운드의 퇴화도 그의 음악을 고양시켰다. 만약 그의 기교가 그에게 가해진 손상을 견뎌 냈더라면 그가 불어넣은 정서의 환영은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파기된 약속, 허비된 재능, 소모된 능력이 몰고 온 비극에 주목했던 사람들도 역시 틀리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으며 진짜 재능은 허비되지 않고 완전히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자만이 재능을 낭비한다. 하지만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것그 이상을 약속하는 특별한 종류의 재능도 있다. 여기에는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쳇이 했던 방식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언주 속에서 조용한 긴장을 듣게 된다. 약속. 그것은 늘 영원히 계속됐을 것이다. 설사 그가 그토록 많은 주삿바늘을 꽂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P218

자신이 태어난 오클라호마 어디에든간다면, 사막에 있는 바위가 되면 어떨까 그는 상상해 봤다.
바위는 죽은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른 무엇인 양 행세하면서 대양의 바닥에 누워 있는 물고기의 육지 버전이다. 바위는행위로부터 사물이 되고자 열망하며 명상하는 구루guru이자불자였다. 열기의 물결은 사막이 숨을 쉬고 있다는 징표였다.
타일이 반짝이는 욕실에서 그는 거울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반사되지 않았다. 그는 거울 바로 앞까지 다가가 정면을 응시했지만 자신의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뒤에 걸려 있는 두텁고 하얀 수건만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거울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흡혈귀나 좀비를 떠올렸지만 생명이 없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거울을 응시했고 전 세계의 음반과 잡지에 실린 수백 장의 그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그는 거실 테이블로 가서 몇 해 전 LA에서 클랙스턴이 찍은 사진을 표지로 담은 음반을 찾아냈다.  - P220

겠다고 여러 차례 내동자유로로 들어설 즈음에 핏속으로 빠르게 도는 헤로인에 의해 그의 정맥은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장안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았으며 시야는 밝아졌다. 맨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다가 속력을 내면서 느린 차들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몸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자 창문을 내리고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바람을 맞자 젖어 있던 그의얼굴은 금세 말랐다. 코끝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즐기면서, 달려오는 푸른 공기를 느끼면서 그는 자유로를 따라 빠르게 차를 몰았다. 타이어는 잿빛 함성을 질러 댔고 차의 흰색 천장은 춤을 추었다.  - P229

색소폰의 음색은 긴 햇살처럼 맑았으며 그림자처럼 선명했다. 그는 자동차의 배기 소리보다 더 커지도록 라디오 볼륨을 높였고 자동차 서랍을 뒤져 먼지 낀 선글라스를 꺼내어 쓰고 깊은 녹색광선을 즐겼다. 그 속에서 색소폰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은빛 질주를 들려줬다 마치 쾌청하면서도 더운 날, 새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그는 차를 꺾었다. 느리게 커브를 돌면서 곁눈질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곡선 차로가 끝나자 곧게 뻗은 푸른 대양의 거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리는 그 위로 저물고 있는 태양을 떠받치고 있었고 파도는 마치 갈매기 떼를 덮치려는 듯 바위와 모래사장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 P230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운동장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사실이 느껴진다. 운동장에 수감자들이 흩어져 있는 방식에서 공간의 완벽함이 엿보인다. 비록 그는 여전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점점 더 장벽 안에 갇히게 되는,
움직일 공간마저 줄어드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결국에 그 선율이 할 수 있는 것은 통곡하는 것, 작은 감옥 벽에 머리를 부딪고 흐느끼는 누군가가 되는 것뿐이다. - P258

뒤틀린 음들의 일진광풍이 불었지만 솔로로 나갈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죄수들은있던 그 자리에, 아트의 주위에 그냥 서 있다. 그는 캔버스에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권투 선수처럼 보인다.
마치 부러진 이처럼 불분명한 음들을 뱉어 내더니 심판의 카운트를 사다리로 삼아 자신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죄수들은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음악이 고귀한 것은 아니지만 위엄, 자기 존중, 자부심 혹은 사랑보다 더 깊은, 영혼보다 더 깊은 무엇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복원이다. 지금으로부터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육체가 계속되는 고통의 저장고가 되어 갈 때 아트는 이날의 교훈을 떠올릴 것이다. 일어설 수 있다면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면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 - P258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는 비틀거린다.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잊은 채, 카운트의 여덟, 아홉 번째 난간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불러 모아 가장 높은 음을 향해 오른다. 결국 그 음에, 아주 정확하게, 도달한다. 깨끗하게 날아오른다.
도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중력이 다시 작동하기 전에, 완벽한무중력의 순간, 찬란하고 명징하고 고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떨어진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블루스의 깊은 탄식 속으로 잦아들면서 수감자들은 지금까지의 연주가 내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추락하는 꿈. - P259

부서질 수 있는지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침묵은 가시적인 것이다. 시간에 포착되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장소에 침묵이 존재하도록, 시간이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뭔가는 반드시 침묵을 깨뜨린다. 그러면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교도관들은 갑자기 생성된 바리케이드와 같은 순간이 쌓여 가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감을 느낀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하려고 하면 폭동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침묵은 군불을 땐다. 그 시간이 길수록 열기는 높아간다.
그보다 과격한 폭력은 결국 소음으로 폭발해서 터져 나올 것이다. 침묵은 금속과 고함과 불꽃의 굉음이 된다. 소총 안전핀을 제거하는 소리만으로도 폭동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마치 시계 초침의첫움직임처럼 작동해 현실을 일깨우고 시간을 흐르게 한다. 침묵은 천천히 넓어져 가는 지평선,
멀리 보이는 풍경과도 같으며 교도소의 벽을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상관없는 존재처럼되어 버린 교도소장이 사무실에서 나와 그늘 속에 조용히 서있다.
- P260

그러니까 그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최소한으로 의식할 때 최고의 연주가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지점에 이르자 연주는 테크닉에 대한 자연스러운 망각 상태가 되었다. 이제, 자신의 만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음악에 완전히 몰두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자신에 대한 의식을 일상적으로 벗어나 거의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서 연주한다. 모든 음이 블루스의 위안을 담고 있으며 심지어 단순한 악절도 마치 위대한 진혼곡처럼 듣는 이의마음을 찢어 놓는다. 이 점을 인식하자 그는 오랫동안 의아해하고, 의심하고 갈망해 온 점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것을 느낀다 인생을 조졌던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능은 탕진되지 않았다는 것.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유약함은 그에게 핵심적인 면이었다. 연주에서 그것은 힘의 원천이었다. - P261

모던 재즈의 역사는 이처럼 병실에서 생을·과장과 면마감하는 연주자들의 역사다. 흰색 벽과 의료진의 가운은 어둠과 음악으로 채워진 밤의 세계를 부정하는 듯하다. 심지어의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아트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잊어버린다. 일분마다 몇 초씩 잠이 드는 것 혹은 그렇게 해서 시간 속에서 몇 장면씩을 도려내는 것과도 같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왔다. 그래서 마치 하루의 시간 리듬이 빨라져서 의식이 있는 몇 분과 30초 동안의 잠이 수시로 반복된다. 깜빡거림. 코카인, 헤로인, 메타톤 그리고 싸구려 와인 하루 4리터. 결국 그의 몸은 남용으로 금이 가고 그들에게 지배된다. 병과 수술은 그에게 손상과 공포를 남겼다. 비장脾臟은파열되어 들어냈고 그 후에도 폐렴, 탈장, 간 질환, 위 손상이이어졌다. 배는 부풀어 올랐다. - P262

의사는 화가 난 듯이 그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뱉고서는지금 자기 입장에서 더 이상 노력해 봤자 결국 쓸모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사는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사고 정지의 가수면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면담은 의사의 의자가 리놀륨 바닥 위에서 소리 없이 뒤로 미끄러지면서 끝났다. 진료기록을 뒤적이는 것은 회의장악수처럼 형식적인 행동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던 부인에게 몇 가지를 설명한다. 부인은 남편이 지금이 몇 월인지를 모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 매번 미소만을 짓고 또 지었다. 반면에 환자 자신은 다시 좀비가되어 방 안을 훑어보고 있다.
의사는 평소보다도 더욱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공책에몇 가지를 휘갈겨 적는다. 그 가운데는 이 환자가 녹음했다는음반 몇 장을 잊지 말고 들어 봐야 한다는 메모도 포함되어있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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