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했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숨죽이고 누워 있었다. 다시 얻어맞을까 봐 공포에 떨었다. 마치 누군가 낫을 들고 와 그의 몸을 찌르고 가슴과 창자를 여러 차례 비트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워서 그는 베개를 이빨로 악물었다. 혼란스러운가운데, 불현듯 견딜 수 없이 무서운 생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와 같은 고통을, 희미한 달빛을 받아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이 사람들이 몇 년이나 매일같이 겪었을 것이틀림없다. 어떻게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그는 고통을 몰랐고, 또 고통에 대한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니끼따처럼 완고하고 투박한 양심이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온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지르며, 니끼따와 호보또프와 사무장과 보조의사를 죽이고 자살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선 작은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다리도 꿈쩍할 수 없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셔츠와 환자복을 잡아 찢다가, 의식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 - P-1

바닷가 거리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드미뜨리 드미뜨리치 구로프도 알파에서 지낸 지 벌써 2주일째라 이곳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얼굴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카페 베르나에 앉아있다가 그는 창밖으로, 바닷가 거리를 지나가는 젊은 부인을 보았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금발의 여자로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뒤에는 하얀 스피츠가 따라가고있었다.
이후로 그는 그 여자를 도시의 공원에서, 네거리 광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났다. 그 여자는 혼자, 늘 같은 베레모를 쓰고 하얀 스피츠를 데리고 산책했다. 아무도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으며, 그래서 그 여자를 단순히이렇게 불렀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저 여자가 남편이나 친구와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하고 구로프는 생각했다. - P-1

한 달쯤 지나면 안나 세르게예브나도 기억에서 희미해져 아주 가끔, 다른 사람들처럼 측은한 미소를 띠고 꿈속에나 나타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 달도 더지났고 겨울도 깊었건만, 기억 속에서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기억은 더생생해져 갔다. 그의 서재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저녁의정적을 가르고 들릴 때면, 레스토랑에서 노래나 오르간 연주를 들을 때면, 벽난로에서 눈보라 치는 소리가 윙윙거릴때면,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방파제에 갔던일과 새벽 안개 속의 산과 페오도시야에서 온 기선과 입맞춤이. 그는 한참이나 방안을 서성거리며 그때를 떠올리고미소 짓곤 했는데, 그러다 회상은 공상으로 바뀌어, 과거의 일이 상상 속에서 미래의 일로 혼동되곤 하였다. 안나세르게예브나가 꿈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림자처럼 어디든 그를 따라다녔고 사로잡았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생생하게 보였다. 이전보다 더 아름다웠고 젊었으며 사랑스러웠다. - P-1

그자신도 얄따에 머물 때보다 멋진 듯했다. 그녀는 밤마다 책장에서 벽난로에서 방안 한구석에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의 숨소리와 부드러운 옷자락 소리를들었다. 그는 거리에서 여자들을 쳐다보며 그녀를 닮은 여지가 없나 찾곤하였다......
그러다 견딜 수 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추억을 털어놓고 싶어어졌다. 그렇지만 집에서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이웃 주민들에게 이야기할수도없고 그렇다고 은행에 그럴 만한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과연 그가그때 사랑을 했던가? 과연 그와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관체에 뭔가 아름다운 것, 시적인 것, 아니면 유익하거나 순수하게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있기나 한가? 그래서 어쩔 수없이 막연하게 사랑과 여자에 관해서 이야기했지만, 누구도 그 속뜻을 알아채지 못했고, 그의 아내만이 짙은 눈썹을 실룩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미뜨리, 당신에겐 멋쟁이 역할이 어울리지 않아요.> - P-1

그것도 설명해 주었다. 그는 말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그녀를 만나러 가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없다. 아마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우연히이상하게 얽힌 어떤 사정에 의해 그에게 소중하고 흥미로우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그 속에서라면 그가 진실하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그의 생활의 핵심을 차지하는 그런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다.
면에 진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그의 가식, 껍데기인 모든 것, 이를테면 은행에서의 일, 클럽에서의 토론, 그의 <저급한 인종>인 아내와 함께 가는 기념식, 이런모든 것은 공개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경우처럼 남들을 판단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고,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각자 개인의 생활은 비밀 속에서 유지되며,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예민하게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지도 몰랐다. - P-1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기분을 바꿔 줄 생각으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머리가 이미 세기 시작했다. 최근 갑자기 더 나이 들어보이고 추해진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손을 얹어놓은 그녀의 따뜻한 어깨가 떨고 있었다. 아직은 무척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분명히 곧 자신의 삶처럼 시들고 바래질이 생명에 그는 연민을 느꼈다. 도대체 왜 그녀는 그를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본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상상으로 만들어 놓은, 평생 간절히 원하던 그린 사람으로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런 실수를 알아차리고도 그들은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그로 인해 행복하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사귀고 가까워지고 헤어졌지만, 한번도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머리가 세기 시작한 지금,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나 세르게예브나와 그는 아주 가깝고 친밀한 사람처럼, 남편과 아내처럼, 절친한 친구처럼 서로를 사랑했다. 그들은 서로를 운명이 맺어 준 상대로 여겼다. - P-1

마치 두 마리의 암수 철새가 잡혀 각기 다른 새장에서 길러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과거의 부끄러웠던 일들,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 용서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자신들을바꿔 놓았음을 느꼈다.
예전에 그는 슬플 때면,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논리로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논리를 따지지 않고 깊이공감한다. 진실하고 솔직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만 울어요, 내 사랑」 그가 말했다. 「그만 됐어요.......이제 얘기 좀 합시다, 뭐든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남의 눈을 피해야하고 속여야 하며 서로 다른도시에서 살며 자주 만날수 없는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어떻게 하면 이 견딜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는 머리를 감싸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 끝이 아직 멀고 멀어,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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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1860-1904).

러시아의 따간로그에서태어났다. 
모스끄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한후 의사로 일하며작품들을 집필했다.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단편 작가이자 극작가로 꼽힌다.
대표작으로「개를 데리고 다니는부인」, 「6호 병동」, 「벚꽃동산」등이 있다. - P-1

병원의 마당에 그리 크지 않은 별채가 있다. 우엉과 엉겅퀴와 야생 대마의 무성한 수풀이 별채를 둘러싸고 있다. 별채의 지붕은 녹이 슬어 적갈색이고, 굴뚝은 반쯤 주저앉았고, 입구의 계단은 썩어 잡초로 뒤덮여 있으며, 벽에 바른 석회는 흔적뿐이다. 별채의 앞면은 병원과 마주 보고있고, 뒷면은 벌판을 향해 있다. 별채와 벌판 사이에는 못이 박힌, 병원의 회색 울타리가 쳐 있다. 날카로운 끝이 위를 향하고 있는 못들과 울타리, 그리고 별채 자체의 불길하고 음침한 외관은 이 나라의 병원과 감옥의 건물에서만볼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만일 엉겅퀴에 찔리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면, 함께 좁은 오솔길을 걸어 별채로 가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여다보자. 첫 번째 문을 열면 우리는 현관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의 벽과 뻬치까 옆에는 병원의 허섭스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매트리스, 파란 줄무늬가 그려 - P-1

진 낡고 찢어진 환자복의 윗도리와 바지들, 닳아 헤진 신발들, 이 모든 누더기들이 구겨지고 엉킨 채 산더미 같이 쌓이고 썩어서 질식할듯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 허섭스레기 위에 언제나 문지기 니끼따가 입에 파이프를 물고 누워 있다. 니끼따는 색 바랜 견장을 달고있는 늙은 퇴역 군인이다. 여위고 험상궂은 얼굴, 초원의 양치기 같은 인상을 주는 처진 눈썹, 붉은 코, 그리고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마른 데다가 힘줄이 불거져 있으며, 태도는 매우 위압적이고 주먹은 단단했다. 그는 세상 그 무엇보다 질서를 사랑해서 <그들>은 맞아야만 한다고 확신하는 그런 단순하고 적극적이며 맹종하고 우둔한 부류의 사람에 속한다. 그는 얼굴이건 가슴이건 등이건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면서, 그렇지 않으면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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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자는 쓰러져도 남은 자들이 창과 칼 등의 병장기를 들고 올라가 육박전으로 해치우자는 것이다. 먼저 벼락 치듯 소리만 요란한 화승총을일제히 쏘고 수천명이 와아 하는 함성을 내지르며 농민군이 일제히 고갯마루에 올라서는데 다시 그 기관포 소리가 들려왔다. 탄환의 불똥이 보여서 좌우에 포가 두문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따다닥, 따다닥, 하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고 경순이 올려다보니 모두 죽었는지 엎드렸는지 일어선 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비탈 곳곳에 엎드렸던 사람들이 몸을 돌려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하자 고갯마루에서 엎드려쏴 자세로 사격하던 관군과 일본군들이 일어나 총을 쏘면서 퇴각하는 농민군의 뒤를 쫓았다. 경순은 총을 맞고 비탈에서 굴러내렸고 곧 뒤쫓아온 일본군이 그의 등 뒤에 확인 사격을 가했다. 중군을 이루었던 호남 동학농민군 일만여명이 죽고 다치고 흩어지니 겨우 오백여명이 남았다고 나중에 알려졌다.
조선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토벌군이 위로는 황해도와강원도, 그리고 충청도의 첫 길목인 천안 목천에서부터 공주 아래 세 길로 나뉘어 일부는 경상도로 가고, 충청도 각지방 군현과 전라도를 휩쓸었다. 토벌군은 지방에 따라 작 - P164

게는 백여명에서 많게는 천여명에 이르기까지 양민을 학살했다는데, 동학의 농민군뿐만 아니라 전투가 일어난인근 지방의 백성들까지 함부로 죽이고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했다. 동학에 들거나 동조했던 아전이나 관원들은 물론이요, 무슨 대수라도 난 것처럼 휩쓸려 다녔던 농군 중에도 도인들과 난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고발하여 상금도 타고 벼슬도 얻고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해 내내 전국팔도에서 쫓기는 동학의 패잔병들과 토벌군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었으니, 일본군과 더불어 조선 관군이 자기 백성에 대한 골육상쟁에 나섰던 것이다. 이러니 나라가 망하지않고 배겨날 수가 있겠는가. 이때 누구는 삼십만이 죽었다하고, 누구는 다시 의병 투쟁까지 이어졌으니 오십만은 죽었을 거라고 말했고, 얼마 안 가서 나라는 일본에 먹히고말았다.
배춘삼은 아들이 우금치 싸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전해 들었다. 그는 줄포의 객줏집을 폐하고 오래전부터 바라던 대로 부안에 사두었던 농토를 찾아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하였다. 그의 귀한 손자 성천은 논에서나 밭에서나 농사 잘 짓는 상일꾼으로 자라났다. - P165

그 속에 조선 사람이 끼었을 줄 누가 알았것슈.
일본 후쿠오카의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 본교와 군산분교에서 속성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은 거의 필리핀 근하나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했다. 그들은 폭탄을 장착하고 기름을 가득 채운 제로센 전투기를 몰고 미군의 함정을 향하여 돌격했다. 기지의 상관들은 조종사들이 출격하기 전에 유서 쓰기를 권했고 ‘귀환하지 말고 용감하게 죽을것‘을 명했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직선 같은 외길이었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제 마을에서 푸른 나무를 향하여사격했던 그 총알이 자기 자신이 될 줄 몰랐다.
어쨌든 하제 마을의 작은 팽나무는 몇년 동안 끊임없이 사격을 받았고, 그 자리가 움푹 패고 짓무르고 썩어가더니 죽어버렸다. 나중에 잎 없는 마른 나뭇가지를 쳐들고 서있던 팽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베었다. 사람 사는 데서 죽은 나무는 흉조라고 했다. 큰 팽나무 할매 혼자 처음부터있던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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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하제 마을에 당골네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아마도 하제의 지킴이 팽나무가 사백살 될 무렵이었을 것이다. 무당을 이 고장에서는 당골, 특히 여자 무당은 당골네라고 불렀다. 지금 서낭당 당집을 지키고 있는 고창댁이 마흔살이라는데, 그네의 증조 시할머니 때부터 당골판을 얻었다고 한다. 고창댁은 그 별호대로 고창이 고향이었다. 자연이가 그네의 어릴 적 이름이었고 부모의 직업은무업이었다. 자근연이는 딸 삼 자매 중 맏이였는데 그네의 부모는 당골 부부라서 늘 굿을 하러 돌아다녀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이는 두 동생을 어릴 적부터 업고 재우고 먹이고 키우다시피 했다. 자근연이가 열두살이 되자 무당 엄마는 굿하는 사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시켜봐서 외우지 못하면 딸을 목침 위에 세워놓고 회초리로 매질했다. 자근연이는 굿판의 사설을 외우지 못하면벌을 받으니까 죽기 살기로 외워서 거의 모든 과정을 외울수가 있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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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 P257

문보영


허수경의 시는 아름답고 아이러니하다. 그는 슬픔을 나비 보듯 한다. 나비를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사라져 있다. 아, 어디 갔지? 그것은 아름답게 나타났다가 반짝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쳐다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나비는 눈을 사용하지 않고 날개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눈을 감고도 햇빛의 강도를 감지할 수 있으며 길을 찾을 수 있다. 허수경의 시는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나비와 같다. 날개로 세상을 보기. 눈을 감고 날아다니기. 그러다 문득 사라지기. 사라지고 싶을 만큼 살기. 날기.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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