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는 자는 쓰러져도 남은 자들이 창과 칼 등의 병장기를 들고 올라가 육박전으로 해치우자는 것이다. 먼저 벼락 치듯 소리만 요란한 화승총을일제히 쏘고 수천명이 와아 하는 함성을 내지르며 농민군이 일제히 고갯마루에 올라서는데 다시 그 기관포 소리가 들려왔다. 탄환의 불똥이 보여서 좌우에 포가 두문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따다닥, 따다닥, 하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고 경순이 올려다보니 모두 죽었는지 엎드렸는지 일어선 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비탈 곳곳에 엎드렸던 사람들이 몸을 돌려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하자 고갯마루에서 엎드려쏴 자세로 사격하던 관군과 일본군들이 일어나 총을 쏘면서 퇴각하는 농민군의 뒤를 쫓았다. 경순은 총을 맞고 비탈에서 굴러내렸고 곧 뒤쫓아온 일본군이 그의 등 뒤에 확인 사격을 가했다. 중군을 이루었던 호남 동학농민군 일만여명이 죽고 다치고 흩어지니 겨우 오백여명이 남았다고 나중에 알려졌다. 조선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토벌군이 위로는 황해도와강원도, 그리고 충청도의 첫 길목인 천안 목천에서부터 공주 아래 세 길로 나뉘어 일부는 경상도로 가고, 충청도 각지방 군현과 전라도를 휩쓸었다. 토벌군은 지방에 따라 작 - P164
게는 백여명에서 많게는 천여명에 이르기까지 양민을 학살했다는데, 동학의 농민군뿐만 아니라 전투가 일어난인근 지방의 백성들까지 함부로 죽이고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했다. 동학에 들거나 동조했던 아전이나 관원들은 물론이요, 무슨 대수라도 난 것처럼 휩쓸려 다녔던 농군 중에도 도인들과 난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고발하여 상금도 타고 벼슬도 얻고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해 내내 전국팔도에서 쫓기는 동학의 패잔병들과 토벌군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었으니, 일본군과 더불어 조선 관군이 자기 백성에 대한 골육상쟁에 나섰던 것이다. 이러니 나라가 망하지않고 배겨날 수가 있겠는가. 이때 누구는 삼십만이 죽었다하고, 누구는 다시 의병 투쟁까지 이어졌으니 오십만은 죽었을 거라고 말했고, 얼마 안 가서 나라는 일본에 먹히고말았다. 배춘삼은 아들이 우금치 싸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전해 들었다. 그는 줄포의 객줏집을 폐하고 오래전부터 바라던 대로 부안에 사두었던 농토를 찾아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하였다. 그의 귀한 손자 성천은 논에서나 밭에서나 농사 잘 짓는 상일꾼으로 자라났다. - P165
그 속에 조선 사람이 끼었을 줄 누가 알았것슈. 일본 후쿠오카의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 본교와 군산분교에서 속성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은 거의 필리핀 근하나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했다. 그들은 폭탄을 장착하고 기름을 가득 채운 제로센 전투기를 몰고 미군의 함정을 향하여 돌격했다. 기지의 상관들은 조종사들이 출격하기 전에 유서 쓰기를 권했고 ‘귀환하지 말고 용감하게 죽을것‘을 명했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직선 같은 외길이었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제 마을에서 푸른 나무를 향하여사격했던 그 총알이 자기 자신이 될 줄 몰랐다. 어쨌든 하제 마을의 작은 팽나무는 몇년 동안 끊임없이 사격을 받았고, 그 자리가 움푹 패고 짓무르고 썩어가더니 죽어버렸다. 나중에 잎 없는 마른 나뭇가지를 쳐들고 서있던 팽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베었다. 사람 사는 데서 죽은 나무는 흉조라고 했다. 큰 팽나무 할매 혼자 처음부터있던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 - P1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