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247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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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비행이 죽음이 될 수 있으나, 어린 송골매는

                                     절벽의 꽃을 따는 것으로 비행 연습을 한다.



근육은 날자마자

고독으로 오므라든다


날개 밑에 부풀어오르는 하늘과

전율 사이

꽃이 거기 있어서


絶海孤島,

내리꽂혔다

솟구친다

근육이 오므라졌다

퍼지는 이 쾌감


살을 상상하는 동안

발톱이 점점 바람 무늬로 뒤덮인다

발 아래 움켜쥔 고독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상공에 날개를 활짝 펴고

외침이 절해를 찢어놓으며

서녘 하늘에 날라다 퍼낸 꽃물이 몇동이일까


천길 절벽 아래

꽃파도가 인다



                                                  박형준 시집<춤- 창비>중에서

 

 

몇 번을 읽어도, 읽어도

저릿하다.

자라기도 전에 퇴화된 날갯죽지가

쭉 펴진다.

내 모국어가 자랑스럽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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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사랑 창비시선 249
박철 지음 / 창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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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


내가 큰길 놓아두고

샛길 접어듦은 석양에 물든 그대 때문이라

어둠이 오기 전 나는 마지막 태양의 흙냄새

작은 열기라도 잊지 않기 위함이라

내가 멀리 길 떠날 막차를 보내고

어둠을 틈타 한적한 곳 돌아서

샛길, 샛길, 하며 목마르게 걷고 또 걷는 것은

길의 어느 한군데쯤

그대 등 돌려 나를 맞이할까, 두려움이라


젊다지만 나는 이미 천상의 인간

그대 거기까지 나를 따라 올까

내가 곧은 길 놓아주고

샛길 험한 길 들어섬은 생의 슬픔 때문이라

슬픔만이 우리를 한결로 엮어

어느 무리 멀리 떠난 뒤에도

샛길, 샛길, 하며 한몸으로 

걸어갈 수 있음이라


                              박철 시집 <험준한 사랑 -창비> 중에서



 

  팔월,

  잦은 빗속에 내내 끌어안고 다니던 <험준한 사랑>을 내려놓습니다.

  폭우로 쏟아지던 백양사,

  그 길 위에서 함께 젖어든 시집.

  시집을 펼칠 때마다 하늘 가득 채우던 애기단풍의 별꽃들이 촘촘히 얽혀들었지요.

  앞으로도 <험준한 사랑>은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뜨거운 이마에 서늘하게 얹히던 손의 감촉 같은 시어들,

  그 사이로 제가 걸어가야 할 샛길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해야겠습니다.

  너무 오래 놀았습니다.

  구월이 문 밖에 와 있습니다.

  이마, 서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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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입 창비시선 245
천양희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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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맞다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단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 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천양희 시집 [너무 많은 입 - 창비]에서
 

 

       

  덥다.

  날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덥게만 느껴지는 날들이다.

  팥죽땀을 쏟아낸 우리에게 한 시간의 휴식은 찬 수박이다.

  울타리를 넘는데 자두를 갉아먹던 청솔모가 놀래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멈칫거린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하다.

  찬 물을 좍좍 끼얹는데 질리게 푸른 은행잎이 빼꼼히 들여다본다.

  바람이 지나간다.

  팔랑팔랑 더운 잎을 흔든다.

  나무도 덥다.

  나무도 견딘다.

  가슴에 바람을 맞는다.

  은행잎에 반성문을 적는다.

  나는 왜 뒤돌아 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사진은 작년 성탄이브에 자분자분 눈 내리던 송광사,

  불일암 해우소에서 찍은 고요한 바깥 풍경이다.

  그립다. 쏴아아~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그립다.

  소나기라도 한 줄금 쏟아지면 좋겠다. 


 

  정말 덥지요. ^_^"

  그래도 찬 거 너무 많이 드시지 말고 건강하게 견디시기를.......

  이 여름을 건너가는 장한 그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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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시집 57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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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젖다


           윤제림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시집-- 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자분자분 비가 내린다.

고요로 비는 내리고 논물이 찰랑찰랑 흔들린다.

함께 젖는다.

인적 없던 개심사 심검당 풍경도 흔들린다.

그립다.

내려오는 길에 얻어 탔던 택배 트럭까지도.

길이

.

.

.

그립다.

 

 

창문을 열어놓고

어린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본다.

댕글댕글 떨어진다.

이렇게

금쪽같은 휴식시간이 끝나간다.

에라~

노래나 듣자.

시와 노래가 안 어울리나???

그래도 하는 수 없다.

함께 젖다도 이은미도 오늘은 땡기니까.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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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장편소설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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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시 같아, 너는 너무 무거워.

  나는 말했다. 우일이는 가느다란 목 위에 얹힌 커다란 머리통을 무겁게 끄덕였다. 그애가 무겁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매일 그애의 손가락이나 팔 다리 들을 만져본다. 그애는 나날이 말라간다. 가슴팍뼈는 나뭇가지같이 딱딱하고 가늘게 휘어 있다. 그애는 아마 날기 위해 가벼워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새는 뼛속까지 비어있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그애가 점점 더 말라서 대나무 피리처럼 소리를 낼 때쯤이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일이는 어디서나 뛰어내린다. 슈퍼맨이나 토토란 꾸며낸 인물이고 거짓말이라고,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나도 슈퍼맨을 아주 좋아한다. 정의의 용사로, 하늘을 날고 지구를 거꾸로 돌려 죽은 애인을 살려내는 무서운 힘을 가진 슈퍼맨이 낮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보통사람으로, 실수를 저질러 남의 웃음거리도 되는 것이 그렇게 통쾌하고 재미있다. 내게도 혹시 아무도 모르는 깜짝 놀랄 능력이 있는 것이나 아닐까, 밤이면 나도 모르게 세상천지를 날아다니며 착한 사람들을 돕고 악한 무리들을 쳐부수는 게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꾸며낸 얘기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애는 언제나 나는 꿈을 꾼다. 잠을 잘 때 심하게 이불을 걷어차고 몸부림을 치고 팔다리를 버둥대는 것은 그애가 나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높이 나는 꿈을 꾼다. 나는 것이 너무 신이 나기도 하지만 너무 지쳐 그만 내리고 싶은데 좀체 내려와 주지 않을 때 아아 무서워라, 나는 새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툭 떨어지며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땀이 흥건하고 정말 밤새도록 날아다닌 듯 온몸이 녹초가 되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백, 수천 킬로미터 바다를 나는 바닷새들은 지쳤을 때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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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일이와 나는 산에 똥을 누러간다. 변소 치는 사람과 안집할머니가 싸운 뒤로 변소가 넘쳐도 치러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려면 철길 건너 장선생의 집 앞을 지나가야 한다. 되도록 빨리빨리 그 집을 지나치지만 자주 나는 빈 개집과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선생을 보았다.

  산에는 바람이 산다. 바람이 집을 짓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어진다. 바람이 풍경을 흔들어 우리가 지나온 길과 동네들은 낯설게 멀어진다.

  우리는 똥을 누면서 하늘을 본다. 똥을 누는 우리들을 다람쥐나 새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햇살이 어른대는 나무 사이 길은 우리가 알지 못할 곳으로,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뚫린 길같이 비밀스럽다. 흐린 날이면 나무들은 잎을 접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같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 철길을 건널 때면 우리는 엎드려 가만히 선로에 귀를 대어본다. 그러면 멀리서부터 기차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가, 멀리 산모롱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에도 선로는 무서워서 우웅우웅 울기 때문이다. 기차가 우리 앞을 지나갈 때면 우리는 그 긴 몸뚱어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입을 한껏 벌리고 아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얼굴이 새빨개지고 목구멍이 찢어지게 아팠다. 골이 뽑혀나간 것처럼 머리가 휑하니 어지럽게 흔들렸다.



                                                                                   오정희---- “새” 중에서... 부분 발췌


 




날이 흐리다.

목련 꽃잎이 투둑투둑~ 땅으로 투항한다.

제비꽃, 양지꽃, 민들레.

꽃잎을 접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같이 보인다.......


머릿속이 텅 빈 듯 느껴질 때나

쓸데없이 꽉 차 있을 때

어느새 

손에 잡혀 있는 새......

오정희의 새.

오늘도 위안의 날개 짓으로 잠시 날아 본다.

우미와 우일이가 타박타박 걸어가는 정경이 보인다.

배경으로는

햇빛 한 줄기 은빛 침으로 죽은 새가 한 마리 있다.

깃털이 보르르한 새는 아주 가볍다.

손바닥에 바람 한줌이 얹힌 것 같다.

.

.

.

앵두꽃이 비 되어 날린다.

이제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다.

날개에 바람을 채웠다.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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