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퇴행중이다.
어디까지일지...



진영논리가 무엇일까요. ‘진영‘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캠프camp‘로 번역됩니다. 대립하는 세력의 각 편을 뜻하는 말입니다. 진영논리가 힘을 발휘한다는 말은 곧 ‘편 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말입니다. 그렇다면 ‘편 가르기가 다 나쁜 일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저는 편 가르기 자체가 다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떨 때는 선명한 입장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정의를 위해 편을 분명히 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편이 나뉘어 싸우면 싸울수록 서로 이기기 위한 더 나은 논리와 방법이 제안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싸움 자체가 모두를 위해 이로운일이 됩니다. 제대로 편을 안 가르는 게 더 문제가 되겠죠. 상황을이해하는 내용상의 이견이 분명한데도 적당히 같이 있다가 수면아래에서 세력 다툼을 이어가다보면 무엇을 위해서 편이 갈라졌는지도 알 수 없게 되죠. 이때 편 가르기의 목적은 오직 권력에 있게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토론에서 말이 막힐 때마다이렇게 말한 바 있죠.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을 하려는 것 아닙니 - P138

까"진리에의 의지가 토론을 멈추게 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분명계 보여주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편 가르기의 목적이 상대방의 절멸에 있을 때 정치는 그냥 싸움판이 됩니다. 몇몇 정치인들 사이의 원한관계로 이미 편이 갈려있는 상태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상대방을 지도록 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죠. 일단 대립이 격화되고 편이 확 나뉘면 각 편이 추구하는 정치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체적인 실행기획과 청사진은 다 사라져버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게 됩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을 빌리자면, ‘프레임화 cognitive frame‘에 갇힌정치언어가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이죠. ‘종북‘이나 ‘빨갱이‘ 같은 말, 최근에는 ‘메갈‘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진영이라는 것 자체가 논리의 전부가 되는 것, 이것을 저는 진영논리라고 부릅니다.
- P139

다시 과거로 좀 돌아가면, 이명박 대통령 이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뜨거울 수 없는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에서 어째서 가장 탈정치적인 이명박으로 이동했을까요. 이런 비약은 어떻게 가능해졌을까요. 광장을 중심으로 생각을 이어가보죠. 우리가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1년 동안 광장의 민주주의를 통해 세계시민상도 받았지요. 누가 뭐래도 굉장한 일입니다. 무혈혁명으로 정권을 바꾸는 데 성공한 나라가 많지 않으니까요. 대단히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었죠.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있어도 특별한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집회를금지하는 독재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우리도 모이기 - P143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광장의 장이 열렸던 것이 2002년드컵부터였습니다. 월드컵 이후 한국사람들에게 광장이란 참여의 장이자 축제의 장으로 굉장히 익숙한 공간이 됩니다. 그전까지 광장이 특정한 이념적 행동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상정됐다면 20년 이후부턴 조금 더 일상적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었죠. 그리고 월드컵 응원 열기 속에 잊힌 비극적인 사건, 두 여중생의 참혹한 죽음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소위 미국에 대항하는 시위가 특전진영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대중시위로 열리게 되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열린 광장의 힘이 노무현이라고 하는 의외의 인물을당선시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참여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도 이 당시의 주요 정치적 담론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광장은 한국의 주요한 정치적 사건에서 결정적 힘을 발휘합니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193명이 대통령 탄핵발의를 가결니다. 광장은 다시 움직였습니다. 같은 해 4월 15일에 열린 17대회의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 과반의 의석을 얻습니다.
- P144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이 계속해온 얘기지만, 1997년 경위기는 여성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남성의 위기로 재현된 .
니다. 당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언론은 너도나도 고개 숙인지‘, 그중에서도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40대 아버지의 막막함을 중심으로 경제위기의 어려움을 그려냈습니다. 후에 통계를 보니,
로 당시 40대 남성들이 구제금융의 타격을 가장 적게 받은 세였습니다. 41~49세 남성들이 가장 영향을 덜 받았고, 그다음은31~39세 남성들의 순서였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집단은 보험 및 금융산업에 종사하던 30~49세 여성들과 자영업의 붕괴로아르바이트를 할 곳이 없어진 10대 여성들이었습니다. 386세대남성들의 행운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부동산시장 폭등을 이끈 주체이자 가장 큰 수혜자였습니다. 이들이집을 살 수 있는 시기, 이제 취업해서 자리를 좀 잡아가니 내 집 마련을 해볼까 하는 시기에 구제금융 여파로 폭락한 부동산이 눈앞에 왔던 거죠. 내 옆에 있는 친구는 얼마를 벌었고, 직급과 소득세수준은 상관없더라는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등장하던 때였습니다.
- P150

금융자본주의의 도덕적 해이와 파행, 세계화의 어두운 그늘과 보수화의 물결 등 새로운 사회변혁의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수정부와 보수언론에서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거짓선동에 휩쓸린 어리석은 군중들의 소요로 몰아갔고, 시민사회단체를 전문시위꾼‘으로 폄훼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이명박 정부 당시 사회연대의 희망에 불을 지폈던 것은 도드라지게 여성들이었습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강정평화마을지킴이, 홍대 ‘두리반과 명동 ‘마리‘ 등에는 언제나 젊은 20대 여성들과 예술가들이, 대학생들이, 탈학교 청소년들이 함께했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고, 때로는 ‘희망버스‘처럼 커다란 사회적 반향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과 별도로, 늘 이 판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셨던 분들은 작고 다른 목소리를 지우고 다시 진영논리를 중심으로 한 판을까기 시작합니다.
- P154

2008년 당시 용산구청장이었던 박장규는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두었습니다. 이 플래카드는 2009년 1월 일어난 용산참사 이후에 떼어집니다. 재개발문제로 매일의 생계가 미래를 알 수 없어진 상황에서 시민의 항의는 생폐거리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복지는 구휼사업이 됩니다. 복지혜택을 받는 시민들은 얼마나 가난한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1만 원을 더 벌면 30만 원을 받을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를 포기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상적인 모욕을 견뎌내야만 복지혜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부패와탐욕이 수치스러운 것이 되지 않고, 가난과 무기력이 가장 큰 죄악이 됩니다. 민주주의는 제한된 정부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경제로 대체됩니다. 정부는 작아지고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경제는커집니다. 정치라는 것 자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신자유주의체제의 특징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선거가 실시되니까민주주의다. 선거가 실시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괜찮다. 우리가비정규직에 시달리고, 양극화에, 이해할 수 없는 갑질이 사회 곳곳에 있지만 이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다. 정치체제는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이 생깁니다.  - P159

사람들은 선거가 시행되고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통해민주주의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치 자체는 점점 더 사라졌습니다. 쇼비즈니스 정치와 진짜 정치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생겨난 선거의 특징중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정책들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정책선거라는 것이 실종되었다고들 하는데, 사실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국방정책을 제외하고는 다른 정책상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요. 지방선거는 이보다 더해서 서로 정책집을 보고 베끼다시피 하는 일도 종종있었습니다. 정의당, 민주노동당과 같은 소수정당들은 기껏 정책을 만들어놓으면 다수당에서 가져가서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불만을 표시하곤 했죠.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정책선거로 가야 한다‘는 말이 매우 공허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몇몇
‘프레임화된 영역을 제외하고는 이상할 정도로 정책은 유사해져갔습니다. 점점 더요.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P160

이제 우리는 어떻게 경제로부터 분리된 정치를 되살려내고, 정치를 다시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랑시에르는 치안으로의 정치와 규칙을 만드는 정치를 구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합니다, 정치적인 것the polar과 치안 police 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저는 치안이라는 말보다는 한국어 서는 정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치안으로서의 정치는 몫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배분을 해주고, 각자의 몫을 지키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이해관계를 가진개인 및 집단 간의 정당한 분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치안으로서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의 최소화이자, 정치가거세된 형태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의 모습입니다. 반면,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살리는 정치는 몫이 없는 자들이 셈법을 다시 하자는 말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장면으로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정치는 셈법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차별을 받았던사람들이 새로운 분배의 질서를 요구하게 되고, 분배 질서에 필요한 정의에의 요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P162

우리는 감자 냄새를 맡는 박근혜가 실림이라곤 해보지 않은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은 가족정치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갑니다. "어릴 때 살았던곳"으로 청와대를 기억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며, 아버지에 대한 큰딸의 변치 않는 존경심을 표현하는 식이죠. 박근혜의 후보 시절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였,
습니다.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박근혜의 꿈과 내 꿈은 아주 다를 것 같은데, 내 꿈을 이루게 표를 달라니 얼마나 이상해요.
가족과 행복을 내세우는 건 비단 박근혜 대통령만은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수사를 사용합니다. "여성이 행복한 나라", "가족행복론" 같은 말이 선거에 등장했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가족, 행복, 여성이 세트로 선거에 나타나게 된 거죠.
행복과 가족, 꿈, 개인적 소원성취로 정치의 언어가 바뀌기 시작한 것 자체가 하나의 경향을 보여줍니다. 조지 오웰은 감각적으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상태인 행복을 정치의 목표로 삼으면 정치가 예언이 된다고 말합니다. 행복하다는 기분은나만의 것입니다. 내가 이 순간에 행복감을 느끼는 나만의 방식을찾아가는 것,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정치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 P166

"여성학 세미나를 같이 하던 남자후배가 와서는 선배가 선거 도운 후배들 데리고 당선된 다음 경찰 만나서 서로, 상견례를 하고룸살롱에 데려가주는 문화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총여에는 꼭 비밀로 하라고 했다고."
최희영, ‘전 전여대협 활동가‘

20년 전의 기억에 대한 인터뷰가 지금 현재와 너무 비슷하게 겹쳐지는 건 우리 사회가 확실하게 퇴행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1980년대 남자운동권들과 1990년대 문화운동판에 있던 남자들이 만나, 40대 서울 남성들은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목소리 뒤에 지금까지 쌓아올린한국사회의 다른 목소리가 급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광장의 새로운 여성단체의 가능성은 역사화되지않았고, 2015년부터 2년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성혐오이슈는 정치의 공론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룸살롱 남성연대가 스크럼을 짜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다른 사람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는 사회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획과 다른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이지, 형님, 아우, 형수님의 안온한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었을 텐데말입니다.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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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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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지나왔지만 과거형으로 잊고 지내온 한 시절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그때도 이미 한 세계였음을. 완성된 하루하루의 신세계였음을 가벼운 듯 묵직한 울림으로 일깨워준다. 어린이가, 어린 사람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의견도 묻지 않았던 그들에게, 과거의 우리에게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위로를 보낸다. 작가의 글은 다정하고 시선은 깊고 따뜻하다. 덩달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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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젠더가 사소한가?

 페미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 말이 뭐냐면, 남성에게는 퍼스널한 문제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폴리티컬하다는 거예요.
여성에게는 공적 영역도,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영역도 모두정치의 장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 세 번이 모두 젠더에 의해서 승패가 갈렸어요. 이회창씨는 일가의 병역 비리로 두 번 고배를마셨고, 박근혜씨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당선되었죠. 그런데도, 사회과학자와 매체가 젠더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글을 본 적이 없어요.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곤란한 문제입니다. 사적인 관계, 연애, 이성관계의 정치경제학을 분석하거든요. 남성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죠. "허리 아래는 얘기하지 않는다?"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남성들은 모든 것이 허리 아래에 있나요(웃음?) - P24

소수자는 권력에 저항하면 할수록 권력을 얻어요.. 지들의 말을 들으면 안 돼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나는 파이에 관심 없고순결하고 권력욕 없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나오면 절대안 돼요. 순결하고 싶은 것도 권력욕이죠. 남자사회는 그런 여자.
정치색이나 의식이 없는 여성을 바라니까. 페미니즘은 협상하려는기지, 가부장제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자본주의에저항하거나 반대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벗어난 공기 밖은 없어요. 저항하려는 게 아니라 틈새를 확장하고 그들의 언어와 협상해서 목소리를 가시화시키는 거죠. 제 안에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득해요. 자신만 상록수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자본주의 혹은 현실정치에서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 대개 이런 걸 정치라고 하잖아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심각한정치적 문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 P27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입니다. 사회를 떠난 인간은 없고,
권력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젠더만 탈정치화하려고 하십니까. 제가 권력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은,
권력의 개념과 관련이 있어요. 권력은 영향력 혹은 힘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권력은 어떤 지위에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파워에 민감해야 합니다. 파워과 사익은 달라요. 따라서
‘큰 정치‘, ‘작은 정치‘가 따로 있지 않아요.
- P28

우리는 낯선 것을 싫어합니다. 주체적인 여성성이 영화 안에등장하는 것은 관객들을 낯설게 합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전지현의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싫어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증오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색해하고,
실제로 자주 본 모습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만큼 거리를 느낀다는것을 뜻합니다. 그런 것은 즐기기 힘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에 돈을 잘 지불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두드려 패고 굴복시키면서 세상을 개척해가는 여성 보스의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군.
자연스럽지가 않아. 관객의 무의식이 그렇게 응답하는 영화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산업은 그런 영화의 제작을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고정적 여성성이 강화되고, 관객의 고정관념도 고착되는 끝없는 되먹임이 일어나죠.
- P69

 2017년 초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었습니다. 반기문씨는 UN 사무총장 시절에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소수자 인권옹호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역대 UN 사무총장 중에 성적소수자 인권 향상에 가장 힘썼다고 평가받았고 그래서 미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기문씨가 다른 건 몰라도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강력한발언을 전 세계적으로 여러 번 했기에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이제와서 오리발을 내밀기는 너무 부끄러울 테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뒤집더라고요. 그는 유력한 대신 후보로 떠오르자마자 이렇게말했습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차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뜻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권을 지지하는 것보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이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니까요. 문제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하면서 그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죠. 차별에 반대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차별 반대의 첫번째 걸음이니까요.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건 사실 이런 뜻이죠. "나는 저쪽 아이들이랑 안 친해요." 즉 반에서 왕따당하는 급우가 있는데 친하다고 하면 같이 왕따당할까봐 두려워서 별로 안 좋아한다고 허겁지겁 손사래를 치는 형국이죠.  - P102

"기독교의 숙원사업은 이러이러합니다. 이것은 한국의 발전과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잘 새겨듣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밀어주십시오"라는 말을 우아하게 말을 돌려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교연‘에 갑니다. 그다음에는 ‘KNCC‘에 갑니다. 그다음엔조계사를 찾아가고 천주교의 추기경도 만나러 갑니다. 한국의 3대종교의 주요 단체, 교단, 성직자 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죠. 이렇게어느 한쪽의 종교에도 편향되지 않는 균형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것 같지만 사실 편향적입니다. 한국에는 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 개 종교만 찾아가는 것일까요? 3대 종교가 다수이기때문에?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다수이고소수이고를 떠나 왜 선거 전에 종교단체에 가냐는 것이죠. 2017년2월 14일만 해도 그날은 문재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당내경선에나가기 위해 예비후보로 등록을 한 날입니다. 바로 그날 찾아간 곳이 ‘한기총‘, ‘한교연 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명박 대통령도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던 날, 현충원을 방문한 후 제일 처음으로간 곳이 바로 ‘한기총‘이었습니다. 한기총은 서울시장선거부터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유력한 후보들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 P109

이 부분은 한신대학교의 강인철 교수가 연구를 많이 해놓으셨습니다. 저는 소개만 하자면,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는 불교계의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불교계 공약이란 걸 처음 내놓습니다. 이걸시작으로 14대 대통령선거 때는 개신교가 김영삼 장로를 이승만에이어 두번째 장로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적극 나서게 되죠. 결국대통령으로 만듭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충현교회 장로였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남기고 정권을 넘기게 되죠. 보수개신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에는 철저한 반정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명박 소망교회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다 쏟죠. 한국은 대형교회가 유난히 많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선거에서 교회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구에 출마하는 국회의원이 동네에 있는 대형교회에 다니지 않기힘들죠. 그래서 목사들도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 P116

기독교뿐만 아닙니다. 불교신문에 실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세 대통령이 불교계에 약속한 것 중 지킨 것과 안 지킨 것을비교한 기사가 있습니다. 누가 가장 많이 불교계와 한 공약을 지켰올까요? 의외로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임기 내내 개신교에 편향된행보를 보여서 논란이 많았던 대통령인데 말입니다. 불교계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불교계에도 결국은 뭔가를 많이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게 문제입니다. 왜 저쪽만 더 잘해주느냐는 끝없는 눈치싸움이 정치와 종교 사이에 벌어집니다. 많은 세금이 그렇게 ‘밀당‘을 하는 와중에 쓰입니다.
- P117

지금 저는 기독교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아닙니다. 부디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라고, 또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입니다.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종교인이 정치인과 세속의 권력을 나누고, 정치인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종교와 거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교유착에 너무 관대합니다. 이걸 당연한 문화의 한 흐름 정도로 생각합니다.
- P121

노무현 대통령이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죠? 상고 출신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이 그게 싫었던 거예요. 대학도안 나온 상고 출신이 우리 앞에서 거들먹거려?‘ 이러면서 대놓고,
얕보고 대통령으로 제대로 존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사회문제는 뭐죠? 학력차별이에요. 학벌주의죠. 그런데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죠? 문재인 대통령을 노무현처럼 잃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그 당시 문제였는지 다시 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2002년 12월에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2003년 1월부터 바로 반정부시위를 해요.
누가? 개신교가요. 보수개신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호국기도회를 하며 압박을 가합니다.  - P125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종교인들은 맞서 싸웠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지명수배자들을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정치활동이지 않느냐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때는 종교의 힘을 정부에 발휘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억압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옆에 서서 그들을 핍박하는 이들에게 함께 대항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교유착의 문제는 힘있는 자들끼리 기득권을 계속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민주시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있으신 분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종교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입니다.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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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클라라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네 말이 맞을 거야, 클라라, 내 에이에프를 다시 만났을때 나는 바로 그런 말을 듣고 싶단다. 잘되어서 기쁘다는말, 후회가 없다는 말, 너 저쪽 먼 쪽에 B3들 있는 거 아니?
우리 가게에 있던 아이들은 아니지만, 네가 같이 있고 싶다면 사람들한테 너를 옮겨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거야."
"아뇨, 괜찮습니다. 매니저님, 여전히 친절하세요. 하지만저는 이 자리가 좋아요. 그리고 되돌아보고 순서대로 배열할 기억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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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의 경우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죠. 전에 다 이야기했잖아요. 쌀을 가지고 만든 것은 인형이었어요. 애도 인형이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이후로 아주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이걸 알아야 해요. 새로운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진짜 조시가 될 거예요. 조시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요."
"나더러 그걸 믿으라고요? 당신은 믿어요?"
"물론 믿죠. 진심으로 믿어요. 클라라가 저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주 잘된 일이에요. 클라라도 우리와 함께해야 하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어야 하죠. 그 차이를 만드는 게클라라니까. 이번에는 지난번하고 아주 절대적으로 다를 겁니다. 믿음을 가져야 해요, 크리시. 지금 와서 마음 약해지지 말고요."
- P304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내가 말했다. "새로운 조시가필요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존의 조시가 건강해질 수도 있어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만들 기회가 필요하긴 합니다만,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시니까 지금 이 말씀을 드려야 할 것같아요. 만약에 그런 슬픈 날이, 조시가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온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팔디씨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도울 테니 샐 때와는 다를 겁니다. 이제 왜 어머니가 조시를 관찰하고 배우라고 요청했는지 알겠습니다. 그 슬픈 날이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날이 온다면 제가 배운 것을 모두 동원해 저위에 있는 새로운 조시가 이전의 조시와 최대한 비슷해지도록 훈련하겠습니다."
- P305

우리는 감상적인 사람들이죠.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지니고 살..
마음 한편에서 그걸 붙들고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믿고 싶어 해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당신도 알고요.
우리 세대 사람들은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놓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리시. 이 안에는 아무것도없어요. 조시 내면에 클라라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는 것은아무것도 없어요. 두 번째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정확히 똑같은 존재니까 당신이 지금 조시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그 애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사실 믿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되죠. 나도 그렇게 해야 했고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좋아요.
당신도 그렇게 될 겁니다."
- P308

시내버스가 버려진 과일 상자 옆에 멈춰 섰다. 아버지가 멈춘 버스를 돌아서 가려 하자 뒤에 있던 차가 화난 듯 빵빵지렸다. 그러고 또 다른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우리한테 화를 내는 건 아니고 멀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말씀하신 마음이요, 내가 말했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수 있을 겁니다."
- P321

극장 사람들을 유리창을 통해서 보는 대신 직접 보면 더뚜렷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로 오니사람들 모습이 매끈한 판지로 만든 원뿔이나 원통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단순화되어 보였다. 옷에는 접히거나 주름진데가 없고 가로등 아래 얼굴도 마치 등고선처럼 평평한 판을 쌓아 만든 모양으로 보였다.
우리는 왁자한 소리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어느 시점에나는 걸음을 멈추고 조시의 팔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는데조시가 내 뒤에 없었다. 조시가 릭에게 "저기 엄마 있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돌아보았지만 조시도 릭도없고 대신 매끈한 이마만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누군가가 내 등을 밀었는데 거친 손길은 아니었다. 그때아버지 목소리가 들렸고 다시 돌아보니 아버지와 헬렌 씨가서 있고 그 옆에 낯선 사람의 팔꿈치가 있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 들렸다.
- P344

내가 밴스 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지만 헬렌 씨도 릭도눈을 들지 않았다. 나는 헬렌 씨를 보며 헬렌 씨와 밴스 씨가 한때는 서로 열렬했고 사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헬렌 씨와 밴스 씨도 지금 조시와 릭이 서로에게 그런것처럼 다정했던 때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또 언젠가는 조시와 릭도 서로에게 저렇게 매정해질 수도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차에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말하던 게 떠올랐고, 아버지가 야적장에서 나지막한 해바로 앞에 서 있는 모습, 아버지의 몸과 긴 그림자가 하나의길쭉한 형체로 이어지고 아버지가 손을 뻗어 쿠팅스 머신분출구의 뚜껑을 돌려 열고 나는 그 옆에 소중한 용액이 든플라스틱 생수병을 들고 초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헬렌 씨가 물었다. "밴스가 어떻게 하려나? 도와주겠다는 건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말해 줄 수는 있었잖아."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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