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 《에밀》을 읽었다.
<에밀>은 루소의 교육론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학이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소년 에밀은 부유하고 건강 상태가 아주 양호한귀족 가문 출신의 고아이고, 첫눈에 예쁘지는 않지만 볼수록 예쁜, 가상의 소녀 소피와 결혼한다.
시간순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유년기, 다섯 살에서열두 살까지,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열다섯 살에서스무 살까지, 스무 살에서 결혼까지다. 스무 살에서 결혼까지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 P265

이 책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비판이 있다.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것을 두고 이 책을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루소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겠는가?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의 눈에는 시대에 뒤떨어진것으로 볼 만한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극복하면 될 것이다.
평소 자녀 교육론으로 최소 간섭과 성선설을 주장해왔던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책임에 틀림없다.
자녀 교육 역시 옳다면 실천하는 것이지, 옳은 줄 아는데 현실론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 P266

이순신 장군은 왜 전쟁 중에 일기를 썼을까?
하나, 업무 일지 성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앙에서 내•려온 명령, 관할하에 있는 관리의 방문 내용, 군율 위반으로 부하를 처벌하는 내용, 군사 훈련 내용, 무기를 마련하는 내용, 날씨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 일기 성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나라의 장래에 대한 불안, 조정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울분, 건강 상태에 대한 걱정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그렇다.
셋, 사초 성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전쟁 중에 죽으리라 예감하고 있었고, 전쟁에 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후세가 자신의 처신을 오해하지 않도록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수륙 여러 장수가 팔짱 끼고 서로 바라볼 뿐, 계책이라도 하나 세워서 토벌하려고 들지 않는다"라는 비밀 교지에 대하여 "여러 장수와 맹세하여 목숨을 걸고 복수할뜻으로 날을 보내고 있지만, 험한 소굴에 웅크리고 있는적을 가볍게 나아가 공격할 수가 없을 뿐이다"라고 기록한데서 추측해본다. - P277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하루 해가 떠있는 동안 걸어간 만큼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은 바흠은 걷다가 걷다가 지쳐 죽는다. 결국 그가 얻은 건자신의 키를 조금 넘는 길이의 자신이 묻힐 땅 2미터였다.
톨스토이에게 인생이란 선에 대한 희구다. 톨스토이의작품 속에는 사랑을 통해 선이라는 목적을 향하는 노력이담겨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가정 생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재산과 저작권을 포기했다. 자기 자신과의 극적인 화해에도달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방황의 길에 올랐다. 결국 랴잔우랄 철도의 아스타포프역에서 폐렴에 걸려 하차역장집에서 82년에 걸친 고뇌와 파란의 생을 마쳤다.
《부활》 《전쟁과 평화>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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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스위스가 다양성의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다양성을 더 큰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스위스 사람이 채택한 제도는 민주주의였다. 역사와문화가 다른 주들이었지만 개인에게 이익이 될 것 같아 1848년 연방 국가로 묶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단일 민족을 유난히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언어와 문화가 동일한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승복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부족한 게 아닐까, 그것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라투스에 서 있는 저 전나무를 보면서. - P218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책을 읽고 문득 서재에 꽂힌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꺼내 들었다. 1996년 10월18일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으로서 "선생님이주신 뜻을 생각하며" 읽었다고 그 책 끄트머리에 적혀 있었다. 다시 읽었는데 예전의 기억은 살아나지 아니하였다.
아마도 읽은 지 오래되었거나 예전에 건성으로 읽은 탓이리라.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국내 여행을 하면서 엽서 형식으로 띄운 글을 모은 것이다. 허준과 스승의 이야기가 숨 쉬는 밀양 얼음골, 황희와 한명회가 지은 반구정과 압구정,
만해가 수행하고 일해 (전두환 전 대통령)가 쫓긴 삶을 살아간 백담사,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충무공의 한산섬, 남명 조식 선생의 혼이 숨 쉬는 지리산 등등이 신영복 선생이 다녀간 곳들이다. - P232

강릉 단오제에서 띄운 엽서가("조調는 글자 그대로 말言을 두루周 아우르는 민주적 원리이며 화和는 쌀米을 나누어 먹는口 밥상 공동체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거친 범죄에 분노하는 자신을 성찰하는 밤이다. 맨손으로 일하는 그들의 거친 손마디에도주의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 P234

공부 달인 30인이 쓴 <공부의 즐거움》을 읽었다.
저자를 훑어보면 《우리 선비>를 쓴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 나노 소재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한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 한반도 역사를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 선사고고학자 손보기 교수, 세상에서 공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는 전 서울대 국문학과 조동일 교수... 가히 공부 달인이라고 부를 만한 서른 분이등장한다.
공부는 삶이다. 공부는 새로움이다. 공부는 즐거움이다. 공부는 깨달음이다. 이 네 가지 주제로 공부에 대한 생각을 펼쳐놓았다. - P235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있는데 그의 수업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한다.
하나, 공리나 행복의 극대화다.
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 선택은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선택일 수도 있다(존 롤스 같은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견해).
셋,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다(저자의 견해). - P259

저자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는
하나, 시민의식, 희생, 봉사,
둘, 시장의 도덕적 한계,
셋,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넷, 도덕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논쟁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러내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존 롤스의 연구 성과를 자양분으로 삼으면서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저자의 고민과 성과가 보인다.
무수히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각자의 철학에 따른 결론과 그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한 다음 저자의 철학을 제시하는 서술 방식이 매우 강력하고 일관되어 있다. 정의라는 주제에 관하여 관심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또 하나의 고전이다. - P260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를 읽었다.
지금 읽는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읽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책 소개는 번역자인 박홍규 영남대학교교수의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유론은 남북한 대립을 비롯한 수많은 대립적 의견이상충하는 우리 현실에서 그 모든 의견의 평화 공존을 위한 최소 조건의 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사회의 도덕적 획일성을 유지하려는 법적 강제를 확고하게 반대하는 입장, 그런 법적 강제로부터 시민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생각은 지금의 어떤 진보적 사고나정책보다 앞서 있다. 아나키즘적 자유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 P261

게오르규 《25시》를 읽었다.
저자는 루마니아 몰다비아 지방의 작은 산마을에서 가난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소설엔 주인공인 루마니아 농부 요한 모리츠, 그의 아내 스잔나, <25>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트라이안 코루가가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다. 요한 모리츠는아내를 탐내는 헌병대 소장의 계략에 유대인으로 몰려 루마니아 수용소, 헝가리 수용소, 독일 수용소, 미국 수용소에 13년간 수용되는 가혹한 운명을 맞게 된다.
게오르규에 의하면 유럽 사회는 세 가지의 훌륭한 유산 - P263

을 상속받았다. 그리스인이 남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존경, 기독교가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로마인이 보여준 정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다. 그러나 현대기계사회는 이 세 가지 귀한 유산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나치가 왜 나빴던 것인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작가가 개인을 강조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수 있다. 이 사회가 나아갈 길은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사이 균형을 이뤄내는 잣대로서의 정의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독을 권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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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을 보자는 요구가 많아 탐방로를 따라 걸었다. 가는 도중에 안도현의 시 <강>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을 읊는 사람, 정지용의 <향수>를 읊다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등 제각각이었다. 감흥이 노래로 옮겨붙자 누군가 <오빠생각 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시작한 노래는 이내 합창으로 발전하였다.
반딧불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일행이 탄성을 질렀다. 반딧불이는 풀 속 여기저기에서도 빛났다. 손으로 반딧불이한 마리를 잡기도 하였다.
여럿이 모이면 시끄러운 법이다. 중대백로를 보고서 고대백로는 어디 갔냐고 우스개를 하는 사람. 소대백로는 어디갔냐고 응수하는 사람.
우포늪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11시였다.
자연이 먼저였고 사람은 나중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의 주인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포늪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가슴속에 각인하였다. - P147

조선 시대를 통틀어 영의정이 163명이었다고 한다. 그중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은 황희, 류성룡, 채제공 정도아닐까?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대부로 평가받는 정약용은 당대 벼슬이 형조참의였다. 나는 그의 저서 <목민심서>를 세 차례 정도 읽었다. 정약용은 삶의 길이를 수백년으로 보지 않았을까 싶다.
많이 살지 않아 뭐라 말할 주제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면위기일 때 원칙이 필요하였고 그렇게 세운 원칙이야말로삶의 동력이 되었다.
가슴속에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갖되 현실에서는 리얼리스트가 되자고 누군가 말하였다.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그 꿈을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삶에는 승리의 삶, 패배의삶, 그리고 버티는 삶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23전 전승을하였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승리라고 평가할 만한 싸움은 몇 번 안 되고 대부분 버틴 것 아닌가? 올해는 따뜻한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을까? - P177

브레히트는 또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강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즉 불의를묵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강조하는 일이다.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적지만 불의를 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베르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판사가 불의를 저지르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의를 묵과하는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하다.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지위와 역할을 소명으로서 받아들이고 소명을 실천할 자질과 역량이 있는지 늘 성찰해야한다.
막스 베버는 직업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제시한 바 있다. 권력에 대한야심과 허영심에 들뜬 ‘불모의 흥분 상태‘가 아니라 대의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객관성을 갖춘 책임성, 그리고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균형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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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장하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고계십니다. 그분은 저뿐만 아니라 100명 넘는 학생들에게장학금을 주셨습니다.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학교 운영이 궤도에 오르자 나라에 학교를 기부하셨습니다. 그외에도 경상대학교 남명관 건립, 진주신문 발행,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진주정신지키기 모임....
진주 없는 김장하 선생을 생각할 수 없듯이 김장하 선생없는 진주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진주시장 범민주 단일 후보로 추대되었을 때 단번에 거절한 사례는 선생님의 지향 - P85

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생활은 매우 검소합니다. 지금도 자가용 자동차가 없고 골프도 하지 않습니다. 명신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서 학생들을 상대로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말씀의내용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기 눈앞에서 말하고있는 이사장이 조금 전에 자전거를 타고 교문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선생님은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하지 못하셨고, 한약방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다가 독학으로 한약업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오늘날까지 한약방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공부를 많이 - P86

하지 못한 한 때문에 장학 사업을 하셨고 그 과정에서 저에게 선을 베푸셨습니다.
ㅈ저도 선생님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갚을 것입니다. 이런 선순환이 쌓여 이 사회가 훨씬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랍니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 그 성취는 최대한 보장하되 기회를 제공한 공동체에 성취의 일부를 내놓음으로써, 그에게는 자부심을 선사하고, 이 사회에는 새로운 성취를 거둘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길 빕니다.
제 평생의 스승이신 김장하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2011년 2월에 진주지원장으로 발령이 나서 선생님을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공직자가 사는 밥을 먹을수 없다고 한사코 거부하였습니다. 2012년 2월 인사 발령이 나서 진주를 떠나기 전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또 거절하였습니다. 언제 다시 뵙겠느냐고 식사 한번 대접하지 못하고 떠나는 제 마음도 생각 좀 해주시라고 억지를 부려 겨우 승낙을 얻었고, 7천 원짜리 해물탕 한 그릇을 대접했습니다.) - P87

거주 단위로, 직장 단위로, 아니면 아무런 구획도 없이 자원 봉사 단체를 만들어 주위의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이상 내가 행복할 수 없다고느낄 수는 없을까?
성공이 클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욕망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내 재산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가난한사람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큰 세상이 효율성과 같은 단일한 가치로 빌딩을 이루고있는 반면, 작은 세상은 다양한 가치로 숲을 이룬다. 작은세상을 추구하자.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소통하자. 그리하여 따뜻한 세상이 만들어지고 먼 훗날 내가 그 작은세상 속에서 위로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 P90

셋째 날 여행은 비가 오는 속에서 진행하였다. 유람선을 타고 도야호수를 둘러볼 때도 안개 때문에 잘 볼 수 없었다. 호수 가운데 용암이 분출되어 만들어진 산이 섬처럼떠 있었다. 부근에 비지터센터가 있었다. 그 건물에도 태양광 시설, 풍력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으나 안개로 우스산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여기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동안 자작나무를 처음 본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작나무란 필명을 가진사람이 일본에 와서 자작나무를 처음 보다니…….
쇼와신산 사이로 전망대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동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 선생이 중세 시절 일본 지도자세 명의 리더십을 소개하였다.
"두견새가 울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놓았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아니하는 두견새를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 P136

두견새를 울리며,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쟁취하여 에도 시대를 열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두견새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필요하지 아니할까?
여행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선배는 의자를 오브제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자기 전에는 낮에 찍은 사진을 감상하였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 우리 팀은 객실에 모여 여행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에 모두 만족하였고, 선거관리위원회를 그만두더라도 이 모임을 계속 이어가자하였다.
니세코빌리지힐튼호텔은 24시간 노천탕이 운영되고있다. 하늘을 위로 하고 편백나무를 옆으로 하여 사색에젖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온천욕을즐겼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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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은 하나의 물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물(物) 자체로 보는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상(像)을 갖고 이야기한다. 유식하게 말해서 오브제(objet)가 아니라 이미지 (image)로 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미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이미지를 극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가를고민해왔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곧잘 채택했던 방법의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시적(詩的) 영상으로 대치시켜보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라도 엄두를 못 내는 이 방법을 조선시대에는 웬만한 선비라면 제화시(題畵詩) 정도는 우리가 유행가 한가락 부르는 흥취로 해치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지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확대되고, 심화되어 침묵의 물체는 생동하는 영상으로 다가오게 하였다. 그것은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며,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인 것이다. - P73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개가 턱을 앞발에 묻고 한가로이낮잠자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開心寺)이다.
한여름 온 식구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잠자던 어린애가 잠이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위사(無爲寺)이다.
늦가을 해질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건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 부안내소사(來蘇寺)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풍 부석사(浮石寺)이다.

우리 어머니가 택한 것은 운문사 정경이었고 나는 부석사를 꼽았었다. - P75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 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님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이라는 원융 (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배치가 부석사인것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일 것이다.
부석사는 태백산맥이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제 갈 길로 떠나가는 양백지간에 자리잡고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황산(鳳凰山)중턱이 된다. 이 자리가 지닌 지리적, 풍수적 의미는 그것으로 암시되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국토의 오지라는 사실에서 사상사적, 역사적 의미도 간취된다.
부석사 아랫마을 북지리에서 이제 절집의 일주문을 들어가 천왕문, 요사채, 범종각,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조사당과 응진전(應眞殿)까지 순례하는 길을 걷게 되면 순례자는 필연적으로 서로 성 - P76

격을 달리하는 세 종류의 길을 걷게끔 되어 있다.
절 입구에서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에 이르는 돌 반, 흙 반의 비탈길은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천왕문에서 요사채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는 부석사의 본채는 정연한돌축대와 돌계단이라는 인공의 길이다. 그것은 엄격한 체계와 가지런한 질서를 담고 있으며 그 정상에 무량수전이 모셔져 있다.
무량수전에 이르면 자연의 장대한 경관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치달리는태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곧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으로 돌아온것이다.
무량수전에서 한 호흡 가다듬고 조사당, 응진전으로 오르는 길은 떡갈나무와 산죽이 싱그러운 흙길이다.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온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여운인 것이다.
인공과 자연의 만남에서 인공의 세계로, 거기에서 다시 자연과 그 여운에로 이르는 부석사 순례길은 장장 시오리이건만 이 조화로움 덕분에 어느 순례자도 힘겨움없이, 지루함없이 오를 수 있게 된다.
지금 나는 저 극락세계에 오르는 행복한 순례길을 여러분과 함께 가고있는 것이다. - P77

나는 항시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 한편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왔다. 혹자는 이 글을 일러 너무 감상적이라고, 혹자는아카데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감상적이면 뭐가 나쁘고 아카데믹하지 못하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이냐고 되받아쳤다. 나는 그날 낭랑한 나의 목소리를 버리고 스산하게 해지는 목소리에 여운을 넣어가며 부석사 비탈길을 오르듯 느긋하게 읽어갔다. 박물관 인생이라는 외길을걸으며 우리에게 한국미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고인의 공력을 추모하면서,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 - P98

음을 더욱 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사무치는‘이라는 단어의 참맛을 배웠다.
그렇다! 내가 해마다 거르는 일 없이 부석사를 가고 또 간 것은 사무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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