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묵고 떠날 줄 알았는데 최치수는 연곡사에서 사흘 밤을 보내었다. 사흘 동안 우관은 외떨어진 암자에서, 최치수는 칠성당 가까운 처소에서 좀체 밖으로 나오질 않았으며 서로 대면하는일도 없었다.
홀로 앉은 우관은 상좌 명신이 끓여다 놓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잠시 바깥 기척에 귀를 기울이더니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도 최치수의 얼굴은 사방에서 우관의 망막을 어지럽힌다.
실눈을 뜨고 웃던 얼굴이, 수백 수천의 얼굴이 암자 가득히 들어차 우관을 향해 괴물체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흡사 지옥도를 보는 느낌이다. 우관은 감았던 눈을 떴다. 문살이 뚜렷한 장지가 밝게 눈부시다.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마을보다 한걸음 앞서 산사의 가을은 도라지꽃에서부터 시작된다. 엷은 장지(障紙)를 통하여 느껴지는 바깥 풍경, 우관은 하늘과 숲과 사찰의 여러 건물, 바위와 오솔길이 일시에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곳 그자리에 모든 것은 미동도 없이 거리(距離)를 굳게 지키며, 지렛대와도 같이 완강한 거리를 지키며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한치도 다가설 수 없는, 결코 접근을 용서치 않는 삼엄한 공간.  - P22

하나의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리였음에도 이미 최치수에게는 엄연한 사실로서 굳어버린 것이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자신의 추리를 확정지을 만한 일을 밝혀내지못하였으나 여전히 하나의 사실로서 굳어버린 일이었다. 그는 그것이 추리였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목마른 나그네가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이상으로 추리가 빚은 형태는 치수에게있어 명명백백한 일이었다. 그러나 치수는 공상가는 아니다. 망상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었다. 그는 추리의 세계에서 갈 수 있는 한의 가장 좁은 길을 헤치고 들어가보았으며 추리에 동원된 지나간 일의 기억은 운명적이랄 수밖에 없을 만큼 선명하였었다.  - P26

왜 치수는 막연하게 기약도 없이 산속을 헤매려 왔던가. 분노하고, 추상같이 마을이 떠들썩하게, 그게 싫었던 것일까. 자기 혼자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자기 혼자서 손상된 권위를 찾았다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절대적인 권위 의식, 그러나 전부를 투신할 정열을 잃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우관선사에게 사실을 규명치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은 결정적인 포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끝장을 내기 전에는 그 문제는 괴로운 숙제다. 끝장을 낸다는 것은 의무이기도 했었다. 싸움터에서 등을 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사랑하는 정열도 없으면서 적병을 향해 치달릴 수밖에 없는 하나의 관념, 굳어져버린 관념이란 고질, 거의 윤곽을 잡을 수 있게 된 윤씨부인과 구천이, 우관선사와 김개주, 문의원과 월선네와 바우와 그의 아낙을 엮어서 형태가 만들어진 있을 법한 사실, 그 사실로 인하여 지금 추적하고 있는 구천이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게 될지 그것은 치수 자신도 알 수없는 자신의 감정이었다. 확증을 회피하고 연곡사를 떠나왔으나 확증을 얻음으로써 구천에 대한 응징이 보다 가혹해질는지 응징을 포기하게 될는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P40

구천이를 도망가게 한 짓이 실수 아닌 고의였었다는 것을 안 이상, 의당 수동에게 어떤 조처가 있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동정도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 한마디 내뱉은 이외, 치수의 얼굴에서 노여워하는 기색조차 볼 수 없었다. 구천이 찾는 데 정신이 팔려 그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닦달을 하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요, 그 괴팍한 성미에 배신한 종 하나쯤 총으로 쏴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최치수는 수동의 행위를 용서한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보면 그 일을 까맣게 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럴수록 수동이는 오히려 두려움을 갖는다. 죄책감도 컸었다. 설령 상전이 너그럽게 용서한다 치더라도 수동이는 자신의 행위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천에 대하여 절도를 잃은 연민과 숭배의 감정은 그러나 또다시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상전을 배신 안 하리라 장담 못한다. 그럼에도 수동의 뼛속 깊이 박힌 종으로서의 상전에 대한 충성심에는아무런 동요가 없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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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만 결코 늙음이나 질병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칠성이는 똥이 말라붙은 소 엉덩이를 다시 한 번 갈겼다. 임자도 아닌 주제에 왜 이러냐고 악다구니를 하듯이 소는 움모어하고 운다.
솜뭉치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는 하늘은 더없이 평화스럽다. 들판을 오는 농부들의 모습에서도,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뗏목, 개천가에는 어미소를 따라다니는 송아지, 모든 것은 다 평화스럽다.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농부들은 또한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자연과 더불어 이 한때는 평화스런 것이다.
두만네 집앞에까지 온 간난할멈은 삽짝에 기대어 숨을 돌린다. 개가 쫓아나왔다.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맷돌 돌리는 소리가 마당에서 났으며 삽짝에 가까운 까대기 겸 외양간에서 거름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집안은 맷돌 돌리는 소리뿐 아이들도 없는가, 개는 꼬리를 내리고 후퇴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응석부리는 어린애같이 누가 나와서 부축해주기를 바라던 간난할멈은 할 수 없이 잔기침을 하며 마당에 들어섰다. - P116

모두 바빠서 날뛰는 계절이다. 꿀벌은 알을 까고 누에는 애기잠에서 깨어나 물신물신 크다가 다시 한잠으로 접어들었고, 그러고나면 뽕잎 따는 손이 바빠질 것이다. 목화씨를 뿌리고 논에는 풀을베어넣고 삼밭의 삼은 무릎만큼 자라고 날따라 뜨거워지는 햇볕에모든 생물은 생장을 향해 달음박질이다. 비만 좀더 와주면 푸성귀밭의 진딧물을 씻어줄 것을. 마을 아낙들은 보리타작까지, 누에치기도 그러려니와 끝장을 내야 하는 봄길쌈에 매달려 있었다. 보리타작도 멀지는 않았다. 파아란 떡보리를 맛보았으니. 햇볕 바른 곳에서부터 보리는 익어갈 것이다.
간난할멈은 별당 뜰로 들어간다. 마루에 윤씨가 오도마니 앉아있었다. 그러나 간난할멈은 윤씨 모습을 보지 못하고 연못가에 가서
"임자가 없이니 마당에는 풀만 우묵장성이네."
군지렁거리며 엎드려 풀을 뽑는다. 해당화가 연방 피고 진다. 분홍 꽃잎이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 P154

"어머니가 그랬는데 그것 다 나 준댔어. 구슬이랑, 가락지랑, 비녀랑 그것 다 나 준댔어."
길상은 말이 없다. 서희는 실망한다.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오라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잡고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싶을 때그는 겉돌려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보다 그에게 더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길상아."
"예."
서희는 공연히 불러보고 나서 등에 볼을 대고 구름을 본다. 구름은 강 건너 산봉우리에서 자꾸 피어올랐다. - P164

어느덧 사방에 땅거미가 지고 맞은켠 섬진강 너머, 꺼무끄럼해진 산에 이승한 저녁안개가 내리덮이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송판으로 얽어놓은 굴뚝에서도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모두흩어진다. 배고픈 아이들은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제가끔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끼를 여러 배 뽑아내어 이젠 형편없이 늙어버린 두만네의 개 복실이는 삽짝에 오도마니 나앉아 있더니 허둥지둥 뛰어가는 거북이 동생 한복이를 보고 우우 하며 짖어댄다.
막딸네한테 직사하게 악담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평산은 저녁이다 되었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함안댁은 급히 부엌으로 쫓아들어가고 거복이는 아비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뒷걸음질쳐 집 밖으로 뺑소니를 친다. 호박은 분명 제 한 짓이 아니나 전죄가 있었기때문에 막딸네의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숨어 들었지만 억울타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노릇이며 아비가 추달을 한다면 호박의 경우는 물론 전죄까지 잡아뗄 수는 있지만 우선 매가 무섭다.  - P184

귀녀는 순간 막연해지는 모양이었다. 평산도 내심 막연함을 느끼었다. 황금의 더미가 소리도 없이 무너져서 흐트러져가는 것 같았고 희한한 꿈을 깨고 난 늙은이가 뼈다귀 같은 천장의 서까래를 바라보는 허무한 마음, 그러나 절망은 아니었다. 손을 뻗치기만 하면,
좀더 안간힘을 쓰기만 하면, 뭔가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귀녀와 평산은 꿈이 무너질 것 같은 허망함에서, 그 공통적인 심리 때문에 그들은 말로보다 더 강하게 손을 잡았음을 느꼈다. 손을 잡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기대만이 이들의 허망한 순간을 구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되는 수가 있다. 너하고 나하고 의논이 맞기만 하면, 알겠나? 좀기다려보면은 되는 수는 반드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알겠나?
내가 주선할 테니 니는 어떡허든 애만 배면 된다. 종년이 그만큼 큰마음을 먹었다면 끝장을 내야지, 아암." - P188

"대단한 욕심이군 그래."
어처구니없다는 듯 뇌다가 준구는
"아아니 이 사람아 자네 저년을 건드렸군 그래." 하고 껄껄 웃는다. 치수도 따라서 껄껄껄 소리를 내어 웃어젖힌다.
"썩 재미있지 않소?"
"허허어 참, 그년 허파에 바람이 들어도 대단하게 들었구먼."
"만석꾼 살림이 눈앞에 얼른얼른했을 게요."
"자네도 죄가 많네."
치수는 웃던 웃음을 멈추었다. 껄껄 하던 웃음은 맥이 차츰 빠져서 허허허 하다가 눈에 독기가 번득 섰다.
"그년을 내가 건드려요? 안 건드리고 바라보는 재미가 어떻다고 건드립니까?"
"뭐?"
더 이상 부언하지 않고
"집념이요."
"......?"
"계집의 집념에는 사내가 따를 수 없지요. 욕심도 많지만, 그렇지않을 때도...... 조그만한 욕심, 조그만한 원한, 미움만으로도 살인하는 일이 허다하죠."
"그게 무슨 소린가?"
"최씨 집안의 살림은 여자 집념의 상징 아닙니까?" - P214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나귀 등에 흔들리며
‘오래 사는구나‘
문의원은 아까부터 그 말을 되고 있었다. 돌이는 빈 나룻배가 올라가지 않나 하며 강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말고삐를 잡고 간다.
지나간 고는 다 꿈과 같고 당장의 고초 역시 보내고 나면 꿈이될 것이외다. 참으시요, 하며 윤씨부인에게 말한 그 꿈, 지나간 칠십 년을 꿈으로 친다면 문의원은 참으로 긴 꿈속에 있었던 셈이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의생으로서의 칠십 평생, 아니 오십 평생, 약수(藥水)가 무효하여 죽은 생명이나 늙어서 가버린 생명, 액질에 넘어진 생명, 그 숱한 생명말고도 흉년에 죽고 민란에 죽고 동학전쟁에다 서학교도들의 학살, 그 소용돌이 속에서 문의원은 무참한 죽음들을 목도했었다. 최참판댁과의,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윤씨부인과의 인연도 하나의 죽음을 지켜본 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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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밖의 대화도 맹랑하지만 골방 안의 풍경도 맹랑하다.
"배고파 죽은 혼신아! 손님에 죽은 혼신아! 임병에 죽은 혼신아! 괴정에 죽은 혼신아! 칼맞아 죽은 혼신아! 목매어 죽은 혼신아!
가다오다 죽은 혼신아!"
거리굿이라 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수없이 혼신을 불러대는 봉순이 정말 영신이 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며, 흥분에 번쩍번쩍 빛나는 눈이며, 손짓 몸짓이 단순한 아이들 소꿉놀이라고만할 수가 없다. 너무 진박(眞拍)하여 처연(凄然)한 귀기마저 느끼게한다.
봉순이의 이런 장난은 어미에게 큰 근심거리였다. 무당놀이뿐만아니라 광대놀음도 혀를 내두를 만큼. 봉순이는 서희보다 두 살 위인 일곱 살이다. 가널가녈하게 생긴 모습이나 성미도 안존한 편인데 어떤 내부의 소리가 있었던지 광대놀음, 무당놀음이라면 들린것 같은, 한번 들은 것이면 총기 있게 되는 것도 그러려니와 목소리도 매우 아름다웠다. 아마도 그것은 숙명적인 천부의 자질인 성싶고 슬픈 여정의 약속이 듯도 하다 - P42

사방을 팽팽하게 메운 진한 어둠과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섬진강쪽에서의 바람이 맞부딪쳐 무시무시한 격투를 벌이는 것만 같은밤에, 가랑잎에 발목이 묻히는 잡목숲을 헤치고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어디론지 종적을 감춘 뒤 사흘 만에 최참판댁에서는 바우할아법의 상주 없는 장례가 있었다. 며칠 동안 상식(上食) 때면 뒤꼍에마련한 빈소에서 목이 쉰 간난할멈이 풀무 젓는 소리로 곡을 하였으나 그가 운신을 못 하게 되면서부터, 상식이야 아무나가 했을 테지만 가엾은 노파를 대신하여 울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납덩이같이 덮쳐씌운 침묵 속에서 집안 하인들은 물밑을 헤엄치는 고기떼 모양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누가 도장문을 열어주었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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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序


「土地』 제1부를 『현대문학』지에 연재중이던 1971년 8월, 암이라는 진단에 의해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수술 전날 병실 창가에서동대문 쪽으로부터 남산까지 길게 걸린 무지개를 보았다. 참 긴 무지개였었다. 아마 나를 데려가려나 보다, 하고 나는 혼자 무심히 중얼거렸다. 그날 회진 온 의사에게 물었다. 수술은 몇 시간이나 걸리느냐고 세 시간쯤 걸린다는 대답이었다. 대수술이군요, 하고 되었다. 삶에 보복을 끝낸 것처럼 평온한 마음이었다. 휴식으로 들어가는 기분이기도 했다. 야릇한 쾌감 비슷한 것도 있었다.
정작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은 가을,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언덕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같았고 그것들을 위해 좀더 일을 했으면 싶었다.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土地』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

장을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壁)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妄想)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더란 말인가. 달리 할 일도 있었으련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전신에 엄습해오는 통증과 급격한 시력의 감퇴와 밤낮으로 물고늘어지는 치통과, 내 작업은 붕괴되어가는 체력과의 맹렬한 투쟁이었다. 정녕 이 육신적 고통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 자를 걸어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자의(自意)로는, 그렇다, 도망칠 수는 없다. 사슬을 물어 끊을수도 없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 모른다.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악마의 간계에 의해 ‘우스‘의 정직한 한 사내를 전능자 하나님이악마의 손에 넘겨준 『구약』의 「욥기」를 독자들은 기억하리라 믿는다. 악마에게 시험을 당하게 된 그 불운한 사내는 일시에 모든 것을 잃고 자식도 가산도 다 잃어버리고 끝내는 그 자신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惡瘡)에 시달리며 신음하는데, 환부(患部)에서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는 욥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부끄럽다.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詭)을 발하지 아니하고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하고 말한 욥을 생각하면 그의 발 아래 꿇어앉고 싶어진다. 시험은 끝나고 모든 잃은것을 찾은 욥을 염두에 떠올리며 위안을 받을 적에 나는 슬프고 내자신이 가엾어진다. 이 미물(物) 같으니라구.

승리 없는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고 버리곤하던 아픔의 연속이 내 삶이었는지 모른다. 배수(背)의 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이 나는 차근히 발을 내밀 수가 있었다. 아무리 좁은 면이라도 희망의 여백(餘白)은 두렵다. 타협이라는속삭임이, 꿈을 먹는 것 같은 무중력이, 내가 나를 기만하는 교활한술수가, 기적을 바라는 가엾은 소망이⋯ 희망은 이같이 흉하게약화되어 가는 나를, 비천하게 겁을 먹는 나를 문득문득 깨닫게한다.
나는 표면상으로 소설을 썼다. 이 책은 소설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하고많은 분노에 몸을 태우다가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잔해(殘)다. 잿더미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울부짖음도 통곡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일 따름, 허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진실은 참으로 멀고 먼 곳에 있었으며 언어는 덧없는 허상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진실은 내 심장 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영원히 침묵한다는 얘기도 되겠다. 칠팔 년 전에 나는 어느 책에다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性)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진실이 머문 강물 저켠을 향해 한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의 언어, 그럼에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전율(戰慄)없이 그 말을 되풀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명리(名利)를 두고 한말이 아니었나 싶다. 혹은 잡사(雜事)에서 손을 떼고 일에 전념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그들 각도에서 본 행, 불행에는각기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노여움을, 때론 모멸감을 느끼며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무궁무

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짓이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 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그 어느것과도 나와는 별 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분명 환난을 겪는 옵에게는 행복의 비밀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土地』 제1부를 쓰던 삼 년 동안의 내 심경이며 그것을 적어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1973년 6월 3일 밤
作者

신판(版) 서문


사정에 의해 1989년 가을부터 나는 인지를 발부하지 않았고 ‘토지』의 출판은 중단 상태로 들어갔다. 문학을 포기할 생각도 해보았고 서점에 『토지』가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심한 혐오감에 빠지기도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은 꽤 오랫동안 나를 침잠하게 했으며 내 문학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가를 깨닫게도 했다. 그리고 독자들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하며 출판 중단을 비난하는 내주변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고 시간을 응시하며 겨울나무가 바람에몸을 흔들며 고엽을 떨어뜨리듯 나 역시 새봄을 맞기 위하여 분노의 쓰레기를 떨꾸려고 호미를 들고 텃밭에 나가곤 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무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생 생명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찰나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종결편인 『토지』 5부의 연재를 시작했으며 주변의 비난을 수용하여 『토지』 출판의 재개를 결심했다. 젊고 맑은 감성들이 모여서 하는 솔출판사를 선택하여 이 책이 나가게 되었는데 바라건대 조약돌처럼 이 강산 사방에 깔려 있는 문화라는 허상
속에서 진정한 문화에의 회귀에 성과 있기를 빈다.

1993년 6월 8일
박경리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후우이이 요놈의 새떼들아!"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는 와삭와삭 풀발이 선 출입옷으로 갈아입고 타작마당에서 굿을 보고 있을 것이다. 추석은 마을의 남녀노유,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의 날인가 보다.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퍼지는 징 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참판댁 사랑에서는 흐느 - P11

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日常)을 잊으며 굿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참판댁에서 섭섭찮게 전곡(錢穀)이 나갔고, 풍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 테니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
이날은 수수개비를 꺾어도 아이들은 매를 맞지 않는다. 여러 달만에 솟증 풀었다고 느긋해하던 늙은이들은 뒷간 출입이 잦아진다. 힘 좋은 젊은이들은 벌써 읍내에 가고 없었다. 황소 한 마리 끌고 돌아오는 꿈을 꾸며 읍내 씨름판에 몰려간 것이다.
최참판댁 사랑은 무인지경처럼 적막하다. 햇빛은 맑게 뜰을 비쳐주는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새로 바른 방문 장지가 낯설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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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1972년 충남 금산에서 출생. 199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 「악취미들』이 있다.
미술과 사진을 글쓰기와 연계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으며 ‘작업‘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은 사슴‘이라는 뜻을 가진 섬 소록도는 그 이름만큼이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치료하기 위한 국립 병원이 들어서면서 이 아름다운 섬은 천형의 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땅을 축축하게 적신 한센병 환자들의 눈물과 한숨을 어떤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700여 명이 집중적으로 보호 치료되고 있는 소록도 국립 병원은 언뜻 보기에는 사기업에서 사원 연수용으로 지어 놓은 건물처럼 산뜻하고 매끈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가을 날씨 때문인지, 병원이나 치료 시설들이 내뿜기 마련인 특유의 음울한 기운은 찾을 수 없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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