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를하다가 어떤 경로로 내게 닿은 평론집을 ‘재활용쓰레기‘로 버리기로 했다. 기억도 없는 메모들이... 잠깐, 다시 책을 펴보게한다. 그렇지만 역시나 박스에 넣는다.
여러 사념들로 씁쓸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작가나 시인도 한 개인으로서는 현실을 살아가는하나의 생활인이다. 국민이요 시민이며 한 가정의 남편이거나 아버지이거나 아들이다. 당연히 문학인도 이러한 자연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문학인도 다른 모든 종류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현실 속에 파묻혀 있고 현실적 제사건과 연루되어 있으며,
오직 생물적 죽음에 의해서만 이 일상적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문학자를 다른 종류의 인간들과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정치가가 밥 먹고 변소에 가고 자식을 낳는 일상생활의 영위에의해서가 아니라 그 특유의 정치적 활동으로 해서 정치가이듯이, 문학자는 그 특유의 예술적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로 인해서 문학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실한 예술적 창조자가 무엇이냐 하는 문학의 본질론으로 돌아가게 된다. - P164

흔히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거니와, 현대야말로 인간생활에있어서 정치가 막심한 중요성을 갖게 된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는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으며, 정치적 상황은 인간의 심리적국면에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현실을 다루는 문학자로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의무라고도말할 수 있다. 다만 문학자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인간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므로 한 시대의 일시적인 권력이나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만 현실을 보아서는 안된다. 진리는 종교나 계급이나 재산의 여하에 따라 변동될 수 없으며, 인류의 진보와 인간의 미래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원대한 이상이 때로는 어떤 종교나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수가 없지도 않았다. 중세의 종교재판은 과학적 진리를 끝내 거부하고자 안간힘을 썼고,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은 양심적인 문인 · 종교인·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광신적 편견이 권위있는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 P165

먼저 노예수첩」의 프롤로그(서장)를살펴보자.


시인들아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사람도 골목도 마당 끝까지
음침한 그늘과 한숨소리뿐,
밤마다 아침마다 짓밟히면서
너희들이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칼든 자의 잔인한 노략질 끝에
혈관까지 영혼까지
짓밟히면서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 P167

가령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말을 "너는죽을 수밖에 없는 놈이다"라고 축소하여 해석한다면 그 의미가 완전히달라진다. 그것은 일반론적 진술을 특정한 대상에만 한정해서 적용하는 데서 오는 논리적 오류이다. 따라서 이 프롤로그를 "대한민국은 독재국가" 운운으로 해석한 검사의 기소장이야말로 오히려 대한민국의국가적 현실을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사실왜곡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프롤로그 전체는 시인 자신들의 자기반성에 기본적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한 순수한 언어와 절실한 언어」라는 논문에서 양성우는 "현재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혹시나 권력중개자나 무관심주의자, 혹은 현실기피주의자로서 개인적안락에 취하여 잠자코 있거나 또는 유치한 감상주의자로서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고 있지나 않은지 궁금하며, 이 시대의 훌륭하고 절실한증인으로서 영원히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지도 궁금하다"고 걱정하고있는데, 이 프롤로그의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운운의 구절은바로 위의 논문에 이론적으로 드러나 있듯이, 시인적 사명을 망각하고개인적 안락에 취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안일주의적 시인들을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장편 「노예수첩」에 대한 검사 공소장의 해석은 전면적으로 이러한 견강부회와 논리적 오류로 시종하고 있다.  - P169

시인 양성우는 1969년 문단에 등장하여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시문학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왔다. 길지 않은 동안에 발상법發想法』 『신하여, 신하여』 『겨울공화국』 등 세 권의 시집을 간행한 것만보아도 그의 시인적 의욕이 얼마나 왕성한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시인 양성우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양심과 용기에 입각하여 시인적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젊은 시인의작품이 문학의 본질을 외면한 순전한 법률적 관점에 의해서만 놀고되고 판결된다면 그것은 우리 나라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비극일뿐더러 우리나라의 사법적 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비극일 것이다. 시인의양심에 따른 활동을 법정에 세우는 나라,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정권의 일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억압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나라가 아니며 결코 발전하는 사회일 수 없다. 서로 다른 의견들의 다양한 발표와 활기있는 토론만이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개발하여 미래의 설계를 위한 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잡음과 혼란은 오히려 건강체의 당연한 징표일 뿐이다.  - P172

흔히 『임꺽정』의 미덕을 말할 때 우리말 어휘의 풍부함을 지적한다.
과연 그렇다. 이 작품에는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오염된 한국어 아닌 전통언어가 실로 다채롭고 풍요하게 구사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말 어휘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외국어 문장에 훼손되지 않은 우리말 문장과 문체가 이처럼 자연스럽고 묘미있게 씌어진문학작품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내 생각에는 고등학생들에게 임꺽정』을 두세번 읽히는 것보다 더좋은 국어교육이 없을 듯하다. 또한 이 작품은 조선 중기(명종 때의사회상을 뛰어난 실감 속에 형상화하였다. 대개의 역사소설들이 궁중비화를 흥미 본위로 각색하거나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는 데 그치고 있음에 비하여 『임꺽정』은 사회의 상층계급인 양반 선비로부터 천민계층인 백정들에 이르기까지 고루고루 소설적 조명을 비춘다. 우리는 이소설을 읽는 동안 당대의 여러 유명한 정치가와 학자들을 실감있게 만날 수 있을뿐더러 가렴주구에 시달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힘없는 백성들을 또한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따뜻한 눈길로 묘사된 아름다운 조국 강산의 풍경을 생생히 눈앞에 - P333

떠올리게 된다. 민족의 독립이 부정된 식민지 시대에 작가는 이러한작업을 통해 당시의 독자들에게 선조의 얼을 되새기고 조국의 숨결을 환기시키고자 의도했을 것이다.
해방 후 홍명희는 잠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고 북한에서부수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런 이유로 『임꺽정』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또 그런 이유 때문에 홍명희는 으레 공산주의자려니간주되었고 ‘임꺽정도 그의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계급주의 작품일 것으로 예단되었다. 그러나 어떤 혁명적 사상을 기대하고 읽는사람에게 『임꺽정』은 너무 문학적이고, 반면에 요즘의 서구식 모더니즘 문학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이 작품은 너무나 민족적이다. 북한에서도 이 작품이 끝내 대중적으로 출판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의 변혁적 출판운동의 과정에서 비로소 완간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분단시대의 비극성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임꺽정』은 비록 분단시대 이전에 창작되었으나 분단의 질곡을 넘어서는 민족적 지평을 함축한 문학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히려 민족문학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 P334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다른 한편 그것은 인류역사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진리 자신의 지속적인 자기발현 운동이라고 일컬음직한 어떤 거대한 과정의 매 단계를 형성한다. 가령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갈릴레이, 뉴톤, 칸트, 헤겔,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등의 이름을 늘어놓아 보면 이이름들의 행렬은 각 인물들이 각자 자기 시대의 특정한 관점의 제약을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인간이 더 풍성한 자유와 더넉넉한 물질적 여건과 더 고상한 품성을 갖추어 살고자 하는 인류 공동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마치 하나의 줄기찬 대열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 언제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 - P362

지식인은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해 왔고 특히 자본주의적산업사회에서는 독특한 독립 집단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식인이 결코 하나의 독자적인 계급이나 계층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 나름의 고유한 이해관계가 있고 독특한 행동양식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사회 안에서의 일정한 관점을 대변하는 존재가 지식인이다. 따라서 오늘 지식인에게는 민족사의 과업을 해결하는 일에 동참하느냐 민족을 망각하고 배신하느냐 혹은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편에 서느냐 민중을 수탈하는 편에 서느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지 이 선택을 보류하거나 회피하는 길은 있을 수 없다.
사실상 모든 지식인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는 또 원하든 원하지않든 하루하루 매순간의 삶 속에서 이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이 역사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지식인의 고뇌와 영광이 함께 존재한다. - P368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실제로 드물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인류문명이 종언을 고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인류의 대부분이 앞으로 다가올 수세기 또는 수십 세기에 걸쳐 형언키 어려운 고통 속에서 참담한 삶을 영위해 나가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생명부양 체계의 손상은 우리가 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 만큼이미 심각하게 진전되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갈수록 비대해지는 건강 및 의료 시스템은 활인(活人)은커녕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에 대한 합법적인 살상기구로 변해 버렸고, 교육과 문화는 생명을 일상적으로 파괴하는 권력욕망과 경쟁심과 소비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설득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우리가 몸을 바쳐 소득을 마련하는 오늘의 경제구조는, 그 속에서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든 상관없이, 그 전체로서 거대한 살상과 폭력의 메커니즘이 된 지 오래인 것이다.
- 녹색평론』 1997년 1~2월호 머리말」중에서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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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에 바치는 시



그대는 희망
왼 나라 산기슭이란 산기슭, 걸어 돌아다니다가
결코 닿지 않는 벼랑 되어 철쭉꽃 품다가.
이마 내민 벼랑의 분홍 뺨
오솔길이다가
속눈썹 내리까는 별 몇
저희들끼리 소곤소곤대는 곳이다가
소곤소곤대며 까르르 웃음 굽이치는 곳이다가

무지개, 향내나는 날개로 오르는 하늘이다가 언제나 돌아가는
돌아가는 길 보여주는 수풀이다가
먼 수풀의 보이지 않는들꽃 머리칼이다가

결국 결국 희망이다가

그대 국토여, 님이여
수만 그 여자 허리 아래 누운
역사여, - P112

미안하다. 산하


눈 덮여 흰빛뿐인, 문경 새재 넘었네
아래로 흐르는 것이 제 본연의 의무라는 듯,
맑은 살얼음 밑으로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흰 옷자락들이 분분히 나려 대지를 덮고 길을 덮고
마른 나뭇가지와 푸른 솔잎을 덮어
무한히 흰 빛에 둘러쌓인 계곡 따라
생각도 말도 다 잊고 꿈결인 양 걸었네
다 갈아엎고 파고 들어낸다는데
버들치와 가재는 구호도 내걸 줄 몰랐네
몽땅 가르고 쌓고 막아 뱃길 낸다는데
오래 흘러온 물은 제 길이라 목청 높이지 않고
달래강은 찰랑찰랑 마애불 발목만 애무하듯 닦아주는데
나는 저 말 못하는 것들에게 왜 이리 미안한가
‘한반도 운하는 대재앙이다‘ 플래카드 따라가는
나는 왜 자꾸 고개가 떨궈지는가
제 것이라 주장할 법적 소유권도 등기도 없이빼앗고 죽이고 갈아 뭉개도 선언문 한줄은커녕
아프다 말 한마디 못하는 저 순한 산하 앞에서
나는 왜 자꾸 무릎이 꺾이는가
생명을 밟고 지나가고도 매번 뒤늦게 알아차리는
나는 왜 과오덩어리인 것만 같은가
푸른 천공을 받아안은 물은 변함없이 제 길을 가는데
마애불은 돌아앉아 말이 없는데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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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장중하게 자전하는 별이 있는 반면, 팽이같이 지나치게 빨리 돌다가 제 형체마저 찌부러뜨린 별도 있다. 대개의 별들은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내지만, 어떤 별은 하도 뜨거워서 엑스선이나전파를 내기도 한다. 푸른색의 별은 뜨거운 젊은 별이고, 노란색의 별은 평범한 중년기의 별이다. 붉은 별은 나이가 들어 죽어 가는 별이며작고 하얀 별이나 검은 별은 아예 죽음의 문턱에 이른 별이다. 이렇게다양한 성격의 별들이 우리 은하 안에 4000억 개 정도 있다. 이 별들이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하고 우아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 많은 별들 중에서 지구인들이 가까이 알고 지내는 별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태양 하나뿐이다. - P43

자, 이제 태양계의 행성들에게로 다가가 보자. 행성은 혜성보다 좀큰 세계이다. 이들은 태양의 중력에 붙잡혀서 거의 원형의 궤도를따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주로 태양 광선에서 열을 공급받는다. 명왕성은 메탄 얼음으로 덮여 있는 행성으로 카론이라는 대형위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 태양 광선을 멀찍이서 받는 명왕성에서는태양이 칠흑의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왕성, 천왕성, 태양계의 보석인 토성 그리고 목성은 거대한 기체 덩어리들이다. 이 목성형 행성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얼어붙은 위성들을주르르 거느리고 있다. 기체 행성들과 거대한 빙산 덩어리들이 공전하는 지역을 지나 태양 쪽으로 향하여 따뜻한 내행성계로 들어가면 우리는 그곳에서 암석 지대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붉은 화성에서는 화산이 솟아오르고 깊은 협곡이 입을 쩍쩍 벌리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래 폭풍이 행성 전체를 휘감는다. 어쩌면 화성에는 아주 단순한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모든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이다. 태양의 중심에는 수소와 헬륨 기체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용광로가태양계를 두루 비추는 빛의 원천인 것이다. - P45

행성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푸른 질소의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서늘한 숲이 펼쳐져 있으며 부드러운 들판이 달리는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구는 생명이 약동하는 활력의 세계이다. 지구는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귀한 세상이다. 지구는 이 시점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생명의 보금자리이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헤쳐 우주를 두루 돌아다녔다. 그렇지만코스모스의 물질이 생명을 얻어 숨을 쉬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된곳은 이곳 이외에는 아직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확실히 물질이 인식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곳이다. 이와 비슷한 세계가 우주 곳곳에 흩어져 있겠지만, 그곳들은 우리가 앞으로 찾아야 할 희망의 대상이다.
위대한 탐험은 바로 여기, 지구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류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100만 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거둬들이고 축적해 놓은 지혜로 우주 탐사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여기 지구란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위대한 지성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  - P46

에라토스테네스의 발견이 있은 후, 용감하고 대담한 선원들이 여러번 대항해를 시도하고는 했다. 그들이 모는 배는 실로 ‘조막만한‘ 크기였을 것이다. 항법 도구라고는 초보적인 수준의 것들밖에 없었다. 추측항법이 전부였으며 해안선을 따라 갈 수 있는 데까지항해했다. 처음 나선 바다일 경우에는 밤하늘에 뜨는 별자리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수평선을 기준 삼아 관찰하는 식으로 현 위치의 위도를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경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미지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선원들은 낯익은 별자리들을 보면서 불안한마음을 가라앉혔을 것이다. 별은 탐험가의 벗이다. 별은 예전에 지구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지금도 우주의 바다로나선 우주선에 힘이 되어 준다.  - P51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제일가는 자랑거리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그 부속 박물관들이었다. 박물관 museum이란 사실 이름을 그대로 옮기면 뮤즈muse라고 불리던 아홉 여신의 전공 분야에 각각 바쳐진연구소였다. 그 전설의 도서관은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고, 오늘날에는 당시 별관에 불과했던 세라피움 Serapeum이라는 축축하고 잊혀진 지하실만 하나 남아 있다. 세라피움은 본래 세라피스 Serapis 신에게 받쳐진 신전이었는데 후대에 지식에 봉헌된 성전으로 바뀐 셈이다. 물질적인 유물로는 썩어 부서져 가는 책꽂이 선반 서너 개가 고작이다. 그러나 이곳이 한때에는 지구에서 가장 거대했던 도시의 심장이자 영광이었다. - P56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설립된 진정한 의미의 연구 현장이었다.
도서관 소속 학자들은 코스모스 전체를 연구했다. 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 어이며 카오스 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이 이 단어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 모여 물리학, 문학, 약학, 천문학, 지리학, 철학, 수학, 생물학, 공학 등을 두루 탐구할 수 있었다. - P56

알렉산더 대왕을 계승한 그리스 출신의 이집트왕들은 학문을 아주 진지하게 대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대를 거듭하면서 연구 활동을 지원했고 그 시대의 인재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있도록 도서관의 학구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노력했다. 도서관은 열개의 대형 연구실로 나뉘어 각각이 특정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였다.
곳곳에 분수대가 있었고 멋지게 늘어선 원기둥들, 식물원, 동물원, 해부실, 천문 관측대가 있었다. 커다란 식당에서 학자들이 여유로이 토의하며 중요한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의 생명은 모아 놓은 책들에 있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세상의 모든 문화와 모든 언어를 샅샅이 뒤졌다.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서 책을 사들였고 장서를 확충해 갔다.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상선은 관리의 검문을 받았는데, 검문의 목적은 밀수품 적발이 아니라 책 찾기에 있었다. 책 두루마리가 발견되면 즉시 빌려다가 베낀뒤, 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원본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정확한수치를 어렴하긴 어렵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는 일일이 손으로 쓴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이 50만여 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많던 책들은 다 어떻게 됐는가? 알렉산드리아와 그 대도서관을 낳은 - P58

고전 문명이 붕괴되면서 도서관도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장서의 극히일부만이 후세로 전해졌고 그나마 남은 것도 사방으로 흩어져서, 고작글 몇 줄, 종이 몇 조각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들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남은 몇 줄의 문장이나 종잇조각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애를 태우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따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서가에는 사모스 Samos의 아리스타르코스 Aristanchos 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때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모두 다 옳았지만 이 사실을재발견하기까지 인류는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업적이 소실됐기에 느끼게 되는 우리의 애석함에 10만 배를 곱하면, 고전 문명이 이룩했던 업적의 숭고함과, 그의파괴가 얼마나 큰 비극을 인류에게 안겨 줬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 P59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먼 과거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가 옛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됐음을 알고 있다.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또 그 별은 보잘 것 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나이가 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 약 150억~200억 년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대폭발‘ 또는 ‘빅뱅‘ 이라고 불리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다.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은하도별도 행성도 없었다. 생명도 문명도 없이, 그저 휘황한 불덩이가 우주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 P60

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음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보다지능이 더 높은 생물을 찾을 때까지,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 P61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신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수밖에없다. 그분은 먼지에서 너희 모두를 창조하셨다. - ‘코란, 40장

모든 철학 사조들 가운데 진화에 관한 생각이야말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 논의가 스콜라 철학에 손발이 묶인 채, 1,000년의 세월을 칠흑의 지하에서 완전히 죽어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다윈이 나타나 고대의 그리스 사상 체계에 새로운 생명의 피를 수혈했으니, 비로소묶였던 손발의 족쇄가 풀려서 오늘에 부활할 수 있었다. 환생한 먼 조상들의 생각이 그동안 인류의 사상계를 지배해 오던 그 어떤 법칙들보다 삼라만상의 우주적 질서를 더 잘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질서의 의미를 우리에게 더욱더 그럴듯하게 설명해 준다. 70여 세대를 이어 온 우리 후손들의 고지식함과 줄기찬 맹신 그리고 미신을 오늘에 탓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토머스 헉슬리, 1887년

"따나는 지금까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왔던 모든 유기 생물들이 단 하나의 어떤 원시 생물에서 유래했다고 거의 확신한다. 생명의 숨결이 최초로 불어 넣어진 그 생물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든 생물들이 비롯됐다고....… 이러한 생명관에는 모종의 숭고함이 서려 있어…… 우리의 행성 지구가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태양 주위를 거듭 도는 동안에, 그리도 간단하기만 했던 원시 생물이 긴 진화의 과정을 밟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생물 종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원시 유기체가 우리 지구에서이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놀라운 생물들로 진화할 수 있었으며 그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1859년

태양과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상당 부분이 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분의관점에서 볼 때,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별들에서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소들이 다름이 아닌 행성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과 깊은 연관을맺고 있는 수소, 나트륨, 마그네슘, 철 등이라니! 물질 공동체의 신비함에 우리는 그저 놀라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밝게 빛나는 저 별들도 우리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추측이 가능하다. 별 하나하나도 우리 태양과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권속을 거느릴것이며, 중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자기 권속들에게 적정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저들을 생명이 서식할 터전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겠는가? - 윌리엄 허긴스, 18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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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드루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코스모스에서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창백한 푸른 점에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칼은 자연에 묻혀서 사색하며 글쓰기를 즐날·겼다. 뉴욕 주, 이타카 시 소재의 우리 집을 둘러싼 바로 그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의 창을 통하여 폭포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뜰이 가득히 밀려온다. 칼은 몇 시간씩뜰에 놓인 테이블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고는 했다. 백색 소음의 물소리가 만들어 내는 음악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내게 하고는 했다. 나와 칼이 『잊혀진 조상들의그림자 shadosur of Fiongoutern Anceton』를 공동 집필할 당시의 일이다. 컴퓨터에서눈을 떼어 시선을 창 밖으로 잠시 돌렸더니, 덩치가 엄청나게 큰 사슴한 마리가 칼의 어깨 너머로 원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은 등 뒤에사슴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기 앞에 놓인 우리의 원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집중하기는 사슴도 마찬가지였다. 칼이 원고에 뭐라고쓰는지 알고 싶기라도 하다는 표정으로 칼의 어깨 너머를 뚫어지게보고 있었던 것이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 영겁의 역사가 층층이새겨져 있는 저 절벽, 그리고 사슴을 비롯한 각종 야생 동물들은 아직그대로인데, 칼이 앉아서 글을 쓰던 의자만이 텅 비어 있구나. - P8

칼은 평소에, 첨단 과학 기술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숙하는 데에는 효율적인 과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러므로 나는, 칼 세이건 재단 Carl Sagan Foundation이 칼 세이건 아카데미 Carl Sagan Academy를 운영하기로 한 결정에 칼이 매우 흡족해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CSA는 플로리다 주 힐스보로Hillsborough 카운티의 탬파Tampa 지역 중등학생들이 현대 과학이 찾아낸자연의 경이로움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계획은 우리가 플로리다 주의 휴머니스트 연맹과 이 지방 침례교회들과함께 이루어낸 놀라운 협력의 결과이다. 이 세 기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목적을위하여 함께 일했다. 이 협력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바람직한 세상의실현 가능성을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해인 금년에는 모두 78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혜택 받지 못한 낙후 지역의 어린이들이다. 나는 행성 학회 회원들 중에서 과학적사고의 가치를 높이 여기고, 사회 문제에 대해 건전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며, 칼의 이상에 동조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칼 세이건 재단의 문을 두드려 주기 바란다. - P13

칼은 별을 향한 긴 여정에서 우리가 방향을 잃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이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류의 의지가 혹시 사그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크게우려했다. 침대에 누워서 죽어 가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하려던 기조 연설의 내용을 있는 힘을 다해 구술해 갔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부통령 고어는 칼의 구술 내용을 대독하는 것으로예정됐던 백악관 회의를 시작했다. 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그에게들려줄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칼의 메시지가 백악관 사람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이야기에 미소로 답했다. 이미 담갈색으로 변해 가던 그의 두 눈망울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읽어 낼 수 있었다. 앨 고어에 대한 고마움, 우주 과학 정책을 결정하는이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전했다는 안도감, 우주 과학의 미래에 대한일말의 불안감 등이 그의 눈빛에 섞여 있었다. 우주 과학의 미래에 대한 그의 우려는, 적어도 짧은 시간 척도로 보았을 때, 아주 타당한 것이었음이 그 후에 곧 판명됐다. - P16

앞으로 두 걸음 나갔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식의 변화로 인류는 역사의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별을 향한 여정에서도 우리는우회로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우회로야말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효과적인 방편이 아닌가.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결국, 지구인들은칼이 물려준 위대한 유산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갈 것이다. 칼이 앉아 있던 그 의자는 주인을 잃은 지 오래됐지만 그가 우리에게 전한 이상과 가치관은 여기 그대로 있다. 그가 가꿔 오던 꿈들마저인류 전체의 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은가.
2006년 가을
앤 드루얀



이 글은 칼 세이건 서거 10주기를 맞아 부인인 앤 드루얀이 세이건 사후 10년을 추억하며 <행성 보고서> 2006년 11/12월호에 쓴 글이다. ‘코스모스, 특별판을 출간하면서 앤드루얀과 칼 세이건 재단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 한국어판 서문을 대신하여 게재했다. ― 옮긴이 - P17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지금은 짙은 암흑 속에 감춰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거기에 빛이 비쳐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의 실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생애로는 부족하다. 누가 자신의 일생을 하늘을 연구하는 데만 온동 바친다고 하더라도, 우주와 같은 엄청난 주제를 다진리는루기에 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 짧고 부족하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수없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이 많은 발견이 먼 미래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서 밝혀야 할 그 무엇을 우주가무궁무진으로 품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우리 우주가 혹시라도 그러한 우주라면, 우리는 그것을 한날 보잘것없고 초라함존재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단 한 번에 한꺼번에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세네카, 자연학의 문제, 제7권, 1세기 - P19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많이 자라 코스모스와 멀리 떨어진 지오래됐다. 이제 코스모스는 우리의 일상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별개의 세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은 이와는 아주 다른 우주의 실상을또한 우리에게 알려 준다. 우주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결코 아니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다. - P22

한마디로 과학의 성공은 자정 능력에 있다. 과학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는 새로운 실험 결과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때마다 그 전에는 신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던 미지의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 합리적 현상으로 바뀌어 간다. 9장에서 논의한 중성미자의문제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중성미자라는 포착하기조차 어려운입자가 태양 내부에서 이론적 예상보다 적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방안들이 속속 등장했다. 10장에서 다루는 문제도 좋은 예이다.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물질 밀도가 충분히 커서 멀리 있는 은하들의 후퇴 운동을 종국에 가서는 멈추게 할수 있을 건지, 우주는 그 나이가 무한대인 존재이고 따라서 우주의 창조를 부정할 수 있을지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문제들도과학적인 방법으로 논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 P22

『코스모스』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나는 앤드루얀 Ann Druyan과 스티븐 소터Steven Sorter에게 참으로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이분들은 ‘코스모스‘ 텔레비전 시리즈의 공동저자로서 『코스모스』집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 주셨습니다. 이 저작물 전반에 흐르는 기본 아이디어의 구상에서부터, 그 아이디어들 이면에 숨어 있는 깊은 연계성의 발굴과, 그리고 시리즈 각 편에 담아 낸 내용의 지적 수준과 구조, 또 멋들어진문체의 구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책의 초고를 왕성한 의욕과 비판적 시각으로 철저하게 읽어주셨습니다. 나에게 준 이들의 건설적이며 창조적인 제언들이 수없이이어지는 퇴고의 과정을 통해서 이 책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텔레비전 시리즈의 공동 저자로서 이분들이 쓰신 대본이 이 책의 내용을결정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나는 이분들과 여러 차례에 걸쳐 열띤 토론과 심도 깊은 토의를 하면서 크나큰 기쁨을 맛볼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기쁨이 내가 ‘코스모스‘ 프로젝트에서 얻을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보상들 중 하나였습니다.

1980년 5월
이타카와 로스앤젤레스에서 - P32

맨 처음에 창조된 사람들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밤의마법사", "야만인", "어둠의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은 지혜를 부여받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챌수 있었다. 이들이 눈을 떠 세상을 둘러보자, 그 즉시 모든것을 인지하였으며 거대한 천구와 땅의 둥그런 얼굴도모두 알아보았다. (그러자 창조주께서 입을 여셨다.) "저들은 전지全知하구나, 이제 저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저들의 눈길이가까운 곳에만 이르게끔 하고, 땅의 얼굴도 조금씩밖에 보지못하게 하리라! 저들은 우리 손에서 나온 한갓 피조물이 아니던가? 저들마저 신이 된대서야 어디 말이 되겠는가?"

- 퀴체 마야의 성전 <포폴 부흐> - P35

네가 넓은 땅 위를 구석구석 살펴 알아 보지 못한 것이 없거든, 어서 말해 보아라. 빛의 전당으로 가는 길은 어디냐?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어디냐? - 욥기」 - P35

나의 위엄을 찾을 곳은 우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사고의 제어 기제에서 찾아져야합니다. 내가 세상들을 차지했다면 더 가질 것이 없습니다. 우주는 공간을 온통 둘러싸서 나를 원자 알갱이 하나 삼키듯이 먹어 버립니다. 나는 생각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합니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 P36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ㅡ토머스 헉슬리, 1887년 - P36

코스모스 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 P36

우리가 이제 떠나려는 탐험에는 회의의 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탐험은 상상력 없이는 단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여정의 연속일 것이다. 회의의 정신은 공상과 실제를 분간할 줄 알게 하여 억측의 실현성 여부를 검증해 준다. 코스모스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보물 창고로서 그 우아한 실제, 절묘한 상관관계 그리고 기묘한 작동 원리를 그 안에 모두 품고 있다.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의 표면은 곧 바닷가에 해당한다.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할까 - P37

코스모스는 너무 거대하여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길이 단위인 미터나 마일로는 도무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미터나 마일은 지상에서 쓰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된 단위일 뿐이다. 천문학에서는 그 대신빛의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거리를 잰다. 빚은 1초에 약 18만 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 즉 지구 7바퀴를 돈다.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그러므로 태양은 지구에서 약 8광분 만큼 떨어져 있다. 빛은 1년이면 10조 킬로미터, 약 6조 마일을 간다. 천문학자들은 빛이 1년 동안 지나간 거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1광년年이라고 부른다. 광년은 시간을 재는 단위가 아니라 거리를, 그것도 엄청나게 먼 거리를 재는 단위이다.
지구는 우주에서 결코 유일무이한 장소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곳은 더더욱 아니다.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를 전형적인 곳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은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곳이라 할 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로 가나 텅 비어 있으며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참으로 괴이하고 외로운 곳이라서 그곳에 있는 행성과 별과 은하 들이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 P39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33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에서 본다면 바다 물결 위의 흰 거품처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희미하고 가냘픈 덩굴손 모양의 빛줄기가 암흑을배경으로 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것들이 은하다. 이들 중에는 홀로떠다니는 고독한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은하단이라는 집단을 이루며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코스모스의 암흑 속을 끝없이 떠다닌다. 이것이우리가 아는 코스모스의 가장 거시적인 모습이며, 여기가 바로 성운들의 세계이다. 지구에서 80억 광년 떨어진 곳, 우리가 우주의 중간쯤으로알고 있는 머나먼 저곳이 성운들의 세상이란 말이다. - P40

나선 팔 안은 물론이고 나선 팔과 나선 팔 사이를 지나다 보면 스스로 빛을 내는 별들이 모인 지극히 아름다운 집단들이 우리에게 깊은인상을 남기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 집단들 중에는 비눗방울처럼 가냘프게 생겼으면서, 태양 1만 개 또는 지구 1조 개나 들어갈 수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것들이 있다. 또 천체들 중에는 크기는 작은 마을만 하지만 그 밀도는 납의 100조 배나 되는 것도 있다. 태양처럼 홀몸인 별도 있지만 동반성과 함께하는 별이 더 많다. 별들은 주로 - P42

두 별이 서로 상대방 주위를 도는 하나의 쌍성계를 이룬다. 그리고 겨우 별 셋으로 이루어진 항성계에서 시작하여, 여남은 별들이 엉성하게 모여 있는 성단, 수백만 개의 구성원을 뽐내는 거대한 구상 성단까지 천차만별의 항성계들이 은하에 있다. 쌍성계들 중에는두 구성 별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 상대방 ‘별의 물질‘을 서로 주고받는 근접 쌍성계들도 있다. 대부분의 쌍성계에서는 두 별이 태양과목성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초신성같이 저혼자 내는 빛이 은하 전체가 내는 빛과 맞먹을 만큼 밝은 천체가 있는가 하면, 블랙홀 black hole과 같이 겨우 몇 킬로미터만 떨어져도 보이지않는 어두운 별이 있다. 밝기만 보더라도 일정한 빛을 내는 별이 있는가 하면 불규칙하게 가물거리는 별이 있고 틀림없는 주기로 깜빡이는 별도 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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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 기암은 사람에게 많은 기(氣)를 불어넣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대지의 기, 바다의 기, 설문대할망이 보내주는 기를 한껏 들이켜며 풍광에 취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구상나무자생지에 도착하게 된다.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뛰면서 구상나무 숲길을 지나노라면 자연의 원형질 속에 내가 묻혀가는듯한 맑은 기상이 발끝부터 가슴속까지 느껴진다. 영실이 인간에게 기를 선사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제주도 지리산·덕유산 무등산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키는 18미터에 달 - P187

하며 오래된 줄기의 껍질은 거칠다. 어린 가지에는 털이 약간 있으며 황록색을 띠지만 자라면서 털이 없어지고 갈색으로 변하며, 멀리서 보면나무 전체가 아름다운 은색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 전나무속으로, 원래 지구 북반구 한대지방이 고향인 고산식물이다. 빙하기 때 빙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빙하기가 끝나자 고지대에 서식하던 전나무속 수종이 미처 물러가지 못하고고지대에 고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란다. 가을부터 정확한 삼각뿔 모양의 보랏빛 솔방울이 맺힌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해발 1,500미터부터 1,800미터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자라고 있다. 영실의 키 큰 구상나무들은 곧잘 바람과 폭설 때문에 많이 쓰러져 있다. 그렇게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는 그 죽음조차 아름 - P188

답게 비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고사목은 단순히 기후나 병으로 고사한게 아니라 멸종의 과정이란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할수록 고산식물은 고지대로 이동할 텐데이미 1,800미터까지 왔으니 한라산 정상에 다다르면 결국 더 이상 오를곳이 없어 멸종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고산식물의 위험성을 측정한 연구에서 구상나무는 위험 2등급으로 발표되었다. - P189

구상나무의 학명(學名)은 Abies koreana이다. 분비나무 계통을 뜻하는 Abies에 koreana가 붙은 것은 한국이 토종이라는 의미로, 이를 명명한 사람은 영국인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E. H. Wilson, 1876~1930)이다. 프랑스 신부로 왕벚나무 표본의 첫 채집자인 타케(E. J. Taquet,1873~1952)와 포리(U. Faurie, 1847~1915)는 1901년부터 수십년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만여 점의 식물종을 채집해 구미 여러나라에 제공했다. 특히 포리는 1907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여 미국 하바드대 아널드식물원의 식물분류학자인윌슨에게 제공했다. 그는 이것이 평범한 분비나무인 줄 알았다.
윌슨은 포리가 준 표본을 보고 무엇인가 다른 종인 것 같다는 생각이들어 1917년에 제주에 왔다. 그는 타케와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과 함께 한라산에 올라가 구상나무를 채집했다. 그리고 윌슨은 정밀연구 끝에 1920년 아널드식물원 연구보고서 1호에 이 구상나무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분비나무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지구상에유일한 ‘신종(種)‘이라며 구상나무라 명명했다. - P189

윌슨은 이 나무의 이름을 지을 때 제주인들이 ‘쿠살낭‘이라고 부르는것에서 따왔다고 한다. ‘살‘은 성게, ‘낭‘은 나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상나무의 잎이 흡사 성게가시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인들은 이 나무를 상낭(향나무)이라고 해서 제사에 올리는향으로 사용해왔다. 실제로 구상나무에서 풍기는 향기는 대단히 고상하고 또 매우 진하여 폐부에 스미는 듯하다. 이런 구상나무 숲길이 있어한라산 등반에서는 나의 발길이 자꾸만 영실 쪽으로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 P190

윌슨은 동양의 식물을 연구한 몇 안 되는 서양 식물학자로 특히 경제적 가치가 높은 목본식물을 위주로 채집하고 연구했다. 윌슨은 아널드식물원에서 구상나무를 변종시켜 ‘아비에스코레아나 윌슨‘을 만들어냈다.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수·공원수 등으로 좋으며, 재질이 훌륭하여 가구재 및 건축재 등으로 사용된다. 특히 이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나무로 유럽에서는 ‘Korean fir‘로 통한다. 그 로열티로 받는 액수가 어마어마하단다.
지금 아널드식물원에는 윌슨이 그때 한라산에서 종자를 가져다 심은 구상나무가 하늘로 치솟아 자라고 있다. 윌슨의 별명은 ‘식물 사냥꾼‘ (plant hunter)이었는데 그는 이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그가 개발한 구상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려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 종자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제국주의가 총칼만 앞세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 P190

위쪽으로 있는 세 오름(삼형제오름)이라 해서 ‘윗‘자가 붙었다. 뭉쳐 부르면 윗세오름이지만 세 오름 모두 독자적인 이름이 있어 위로부터 붉은오름·누운오름·새끼오름이다. 이들을 삼형제에 빗대어 큰오름(1,740미터), 샛오름(1,711미터), 족은오름(1,698미터)이라고도 한다.
큰오름인 붉은오름은 남사면에 붉은 흙이 드러나 있어 한라산의 강렬한 야성미를 보여주고, 새끼오름인 족은오름은 영실로 통하는 길목에서 아주 귀염성 있게 다가온다. 길게 누운 듯한 누운오름은 누운향나무와 잔디로 뒤덮였고 꼭대기에 망대 같은 바위가 있어 방목으로 마소를키우는 테우리들은 망오름이라고 한다.
바로 이 누운오름의 남쪽 자락이 선작지왓이다. 크고 작은 작지(자갈)들이 많아 생작지왓이라고도 한다. 선작지왓은 한라산 최고의 절경으로꼽을 만한 곳이다. 한라산을 끔찍이 사랑했던 제주의 언론인이자 산사나이 김종철이 쓴 『오름나그네』는 말한다.

늦봄, 진달래꽃 진분홍 바다의 넘실거림에 묻혀 앉으면 그만 미쳐버리고 싶어진다. - P192

겐테 박사는 일찍이 극동 항해 중 제주 근해를 지나면서 한라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라산에 올라 높이를 정확히 측량하고 다음과 같은 백록담 인상을 남겼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크고 찬란한 파노라마가 끝없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이처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감동적인 파노라마가 제주의 한라산처럼 펼쳐지는 곳은 분명 지구상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바다 한가운데 위치하여 모든 대륙으로부터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면서 아주 가파르고 끝없는 해수면에서 거의 2,000미터 높이에 있는 이곳까지 해수면이 활짝 열리며 우리 눈높이까지 밀려올 듯 솟구쳐오른다. 한라산 정상에 서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한한 공간 한가운데 거대하게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위에 있으면 마치 왕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위 사방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의 빛나는 푸르름뿐이다. 태양은 하루 생애의 절정에 이르러있었건만 아주 가볍고 투명한 베일이 멀리 떨어진 파노라마에 아직남아 있었다. 물과 공기의 경계가 섞여서 한없는 비현실적인 푸른빛의 세계에서 헤엄치고 날아다니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라도 하듯,
뚜렷한 공간적인 경계가 없이 동화 같은 무한으로 이어져 있다. - P193

그러면 남들은 산정에 올라 어떤 감정일까? 백록담에서 느끼는 감상은 무엇일까? 정상에 오른 쾌감일까?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해방감일까? 아마도 그런 마음은 잠시뿐일 것이다.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왜소함이나 두려움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제까지의 속세에서는 일어나지않았던, 미미한 자연의 한 존재로서 자아의 발견일 가능성이 크다.
「향수」와 「고향」으로 널리 사랑받는 정지용(鄭芝溶, 1902~50)이 39세되는 1941년에 간행한 시집 백록담에는 ‘한라산 소묘‘라는 부제가 붙은 모두 아홉 개의 시편이 있는데 평소 그의 시와 아주 다르다. 그 마지막 시는 이렇다.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 - P195

나는 한라산을 무한대로 사랑하고 무한대로 예찬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한라산을 말하면서 곧잘 잊어버리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제주섬이 곧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섬이라는 사실이다. 잠깐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음속에 그렇게 새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라산은 산이면서 또한 인간이 살 수 있는 넉넉한 땅 6억평을 만들어주었다는 고마움을 잊곤 한다.
면암 최익현은 <유한라산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내 6, 7만 호가 이곳을 근거로 살아가니, 나라와 백성에게 미치는 이로움이 어찌 금강산이나 지리산처럼 사람들에게 관광이나 제공하는 산들과 비길 수 있겠는가?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대학자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 P196

미술품은 하나의 물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물(物) 자체로 보는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통해 나타나는 상(像)을 갖고 이야기한다. 유식하게 말해서 오브제(objet)가 아니라 이미지(image)로 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로전환해야 한다는 조건에서 시작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미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이미지를 극명하게 부각해낼 수 있는가를고민해왔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곧잘 채택했던 방법의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시(詩) 영상으로 대치해보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라도 엄두를 못 내는 이 방법을 조선시대에는 웬만한 선비 - P199

라면 제화시(題畵詩) 정도는 우리가 유행가 한가락 부르는 흥취로 해치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지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확대되고, 심화되어침묵의 물체를 생동하는 영상으로 다가오게 하였다. 이는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만남이며,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인 것이다.
조선왕조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경산(山) 정원용(鄭元容)은 비록 그 자신이 문장가이기는 했지만 글씨에 대하여 특별한 전문성을 갖고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네 사람의 명필을 논한 논제필가(論諸筆家, 여러 서예가를 논함)」에서는 미술과 문학의 행복한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 P200

한석봉(韓石峯)의 글씨는 여름비가 바야흐로 흠뻑 내리는데 늙은농부가 소를 꾸짖으며 가는 듯하다.
서무수(徐懋修의 글씨는 반쯤 갠 봄날은일자(隱逸, 세상을 피해 숨어지내는 사람)가 채소밭을 가꾸는 듯하다.
윤백하(尹白下)의 글씨는 가을달이 창에 비치는데 근심에 서린 사람이 비단을 짜는 듯하다.
이원교(李圓嶠)의 글씨는 겨울눈이 쏟아져내리는데 사냥꾼이 말을타고 치달리는 듯하다. - P200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개가 턱을 앞발에 묻고 한가로이 낮잠 자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開心寺)이다.
한여름 온 식구가 김매러 간사이 대청에서 낮잠 자던 어린애가 잠이 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위사(無爲寺)이다.
늦가을 해질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 - P201

건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부안 내소사(來蘇寺)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浮石寺)이다.

우리 어머니가 택한 것은 운문사 전경이었고 나는 부석사를 꼽았었다. - P202

영주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한 건축잡지에서 건축가 2백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가장 잘 지은 고건축"이라는 항목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당 1위를 한 것이 부석사였다. 그 "가장 잘 지었다"는 말에는 건축적 사고가 풍부하고 건축적 짜임새가 충실하다는뜻이 들어 있으리라. 그런 전문적 안목이 아니라 한낱 여행객, 답사객의눈이라도 풍요로운 자연의 서정과 빈틈없는 인공의 질서를 실수 없이읽어내고, 무량수전 안양루에 올라 멀어져가는 태백산맥을 바라보면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니, 부석사는 정녕 위대한 건축이요, 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갠 밝은 햇살 같을 뿐이다. - P203

부석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량수전에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라서가 아니며, 그것이 국보 제18호라서도아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해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눠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하나됨"이라는 원융(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 배치가 부석사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대화일 것이다. - P203

부석사는 백두대간(태백산맥)이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제 갈 길로 떠나가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자리잡고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황산(鳳凰山) 중턱이 된다. 이 자리가 지닌 지리적·풍수적 의미는 그것으로 암시되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국토의 오지라는 사실에서 사상사적·역사적 의미도 간취된다.
부석사 아랫마을 북지리에서 이제 절집의 일주문을 들어가 천왕문,
요사채, 범종루,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조사당과 응진전(應眞殿)까지 순례하는 길을 걷게 되면 순례자는 필연적으로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세 종류의 길을 걷게끔 되어 있다. - P204

절 입구에서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에 이르는 돌 반, 흙 반의 비탈길은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천왕문에서 요사채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는 부석사의 본채는 정연한돌축대와 돌계단이라는 인공의 길이다. 그것은 엄격한 체계와 가지런한 질서를 담고 있으며 그 정상에 무량수전이 모셔져 있다.
무량수전에 이르면 자연의 장대한 경관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치달리는 소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곧 극락세계로 들어가는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으로돌아온 것이다.
 무량수전에서 한 호흡 가다듬고 조사당, 웅진전으로 오르는 길은 떡갈나무와 산죽이 싱그러운 흙길이다. 자연으로 돌아온 우리를 포근히감싸주는 여운이다. - P205

사과나무의 줄기는 직선으로 뻗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도록가지치기를 해야 사과가 잘 열린다. 한 줄기에 수십 개씩 달리는 열매의하중을 견디려면 줄기는 굵고 곧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과나무는 운동선수의 팔뚝처럼 굳세고 힘있어 보인다. 곧게 뻗어 오른 사과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보면 대지에 굳게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역기를 드는 역도 선수의 용틀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사과나무의 힘은 꽃이 필 때도 열매를 맺을 때도 아닌 마른 줄기의 늦가을이 제격이다.
내 사랑하는 사과나무의 생김새는 그 자체로 위대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묵은 줄기는 은회색이고 새 가지는 자색을 띠는 색감은 유연한 느낌을 주지만 형체는 어느 모로 보아도 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체는 완벽한 힘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뿌리에서나온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더욱더 사과나무를 동경하게되었다.
"세상엔 느티나무 뽑을 장사는 있어도 사과나무 뽑을 장사는 없다." - P209

나의 주관적 견해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건축을 논하려면 반드시 사찰 건축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뛰어난 절집이라면 당연히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경주 불국사가 꼽힐 만하다고 생각하고있다. 그런데 이 세 절은 건축적 지향점, 특히 자연과의 조화 관계가 아주 다르다. 부석사는 백두대간의 여맥을 절 앞마당인 양 끌어안는 장엄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선암사는 부드러운 조계산 자락이 사방에서 감지되는 아늑한 산중에 자리 잡았는데, 불국사는 산자락을 타고 올라앉았으면서도 비탈을 평지로 환원하여 반듯하게 경영되었다. 그래서 부석사는 자리앉음새 (location)가 뛰어나고, 선암사는 건물과 건물 간의 공간(space) 운영이 탁월하며, 불국사는 돌축대의 기교(technic)와 가람배치(design)의 묘가 압권이다. 그런 저마다의 특징으로 인하여 한국사람은 부석사를, 일본 사람은 선암사를, 서양 사람은 불국사를 더 좋아한다. 한국 사람은 부석사의 호방스러운 기상을, 일본 사람은 선암사의 유현(幽玄)한 분위기를, 서양 사람은 불국사의 공교로운 인공(人工)의 멋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 P256

불국사는 토함산자락에 자리잡았지만 평지 사찰 개념으로 경영하였다. 불국사는 화엄세계를 추구하는 교종의 사찰이지 선종사찰이 아니었다. 더욱이 불국토를 건축적으로 구현한 부처님의 궁전이었다. 그래서 불국사 안마당에는회랑은 있지만 산사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밭도, 나무도 없다. 그대신 산비탈을 평지로 환원하기 위한 엄청난 축대를 쌓아야 했다. 그것이 불국사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가장 큰 아름다움이 되었다.

불국사 건축의 아름다움은 석축(石築)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국사 석축은 누구에게나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연스님은 석축의 구름다리를 일러 "동부의 여러 사찰 중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한마디로 마감했다. 조선 후기의 한 낭만적 문인인 박종(朴琮)이 쓴 「동경(경주)기행」이라는 글에서는 "그 제도가 심히 기이하고 장엄하다"는 말로 감탄을 대신했다.
어쩌다 외국의 미술관에서 오는 손님이 있어 불국사로 안내하면 열이면 열 모두가 석축 앞에서는 "판타스틱!" (fantastic) 아니면 "원더풀!"
(wonderful)을 연발한다. 불국사가 24년이 걸리도록 완공을 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석축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 P266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에는 네모난 돌에 버들잎 모양으로 홈을 파고 아래쪽에 작은 구멍을 내놓은 용도 미상의 석물이 있다. 환자용 변기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신영훈 선생은 이것이 실내에 설치한 수세식 변기로서 여성용이 아니었겠는가 추측하였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꾸 보니까 변기가 아니라 혹시 용변 후 물을 담아 밑을 씻던 물받이 석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드 관장과 왔을 때도이것을 골똘히 관찰하고 있는데 그는 또 내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그때나의 짧은 영어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한마디뿐이었다. "8세기의 비데"
(8th century‘s bidet) 그러자 다른 때 같으면 "리얼리?"(really)라고 동의성 반문을 했을 텐데 이 순간에는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 "못 당하겠네" (You win)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P279

그러나 이 자리에서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작은 일각문너머 있는 뒷간에 다녀오는 일이다. 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서멀리 불국사 강원(講院)을 합법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보이는 강원, 그것은 우리가 늘 보아온 산사의 한 정경인데 불국사가 회랑이 있는 평지 사찰로 경영되는 바람에 여기서 보는 산사의 편안한 분위기가 새삼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그것을 우리는 불국사의 여운으로 삼아도 좋겠다.
우드 관장이 멀리 솔밭 아래 오붓하게 들어앉은 강원을 보면서 "나는세계의 무수한 나라를 방문했는데 자연이 예술과 건축에서 차지하는비중이 이렇게 큰 나라는 처음 보았다"고 신기한 느낌을 말하였다. 그때 나는 "이것은 단지 예고편일 뿐입니다"(It‘s only a preview)라고 대답했다. - P280

불국사 답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결론 삼아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언젠가 나는 답사엔 초급,중급, 고급이 있다고 했는데 불국사는 당연히 초급 코스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급자가 초급 코스를, 중급자가 중급 코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초급자가 오히려 중급 코스를 더가고 싶어 하고, 중급자는 고급 코스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고급자가 되어야 비로소 초급 코스의 진가를 알고 거기를 즐겨 찾게 된다. 그런 진보와 순환의 과정이 인생유전의 한 법칙이고 묘미인지도 모른다. 결국 불국사는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 P281

내포땅을 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잠을 잔다거나 한밤중에 이 길을 간다는 것은 거의 비극이라 할 만하다.
창밖에 스치는 풍광이라고 해봤자 낮은 산과 넓은 들을 지나는 평범한 들판길이다. 그러나 이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들판길은 찻길이 항시언덕을 올라타고 높은 곳으로 나 있기 때문에 넓게 내려다보는 부감법의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란 흔히 강을 따라난 길, 구절양장으로 기어오르는 고갯길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평범한 들판길이 오히려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여기다. - P285

들판엔 추수를 기다리는 벼 포기들이 문자 그대로 황금빛을 이루면서 초가을의 따스한 햇볕 속에 해맑은 노랑의 순색을 발하고 있다. 벼포기의 초록빛과 벼 이삭의 누런빛이 어우러져 설익은 논은 연둣빛이되고 농익은 논은 갈색이 되지만 엷은 바람에는 너나없이 단색의 노랑으로 변하며, 그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 속에 먼산의 단풍도 길가의 화사한 꽃들도 모두 묻혀버린다. 나는 언젠가 가을 답사 때 동행했던 나의주례 어른이신 고 리영희 선생이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서 독백처럼 흘렸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가을날의 단풍이라고 하면 먼 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는화려한 색감을 말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단풍의 주조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이가들고서야."

이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풍광이 느끼기에 따라선기암절경보다도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충청도 땅, 옛 백제의 아름다움 속에 피치 못하게 개입해있을 풍토적 성격일지도 모른다. - P286

서산마애불의 또 다른 특징이자 가장 큰 매력은 저 나무꾼도 감동한환한 미소에 있다. 삼국시대 불상들을 보면 6세기부터 7세기 전반에 걸친 불상들에는 대개 미소가 나타나 있고, 이는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불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6,7세기 불상의 미소는 당시 동북아시아 불상의 보편적 유행 형식이었다. 이 시대 불상의 미소란 절대자의 친절성을 극대화한 상징으로 7세기 이후 불상에서는 이 미소가 사라지고대신 절대자의 근엄성이 강조된 것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그런데 6,7세기 동북아시아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은 사실성보다 상징성을 겨냥하여 입체감보다 평면감, 양감보다 정면관(正面觀)에 치중했다는 데 있다. 불상을 사방에서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 서서 시점의 이동 없이 본다는 전제하에 제작된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옷주름과 몸매를 표현한 선은 날카롭고 엄격하며 직선이 많다. 그로 인하여 불상은인체를 기본으로 했지만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의 모습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서산 마애불을 비롯하여 백제의 불상들을 보면 오히려 인간미가 더욱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에 착목하여 삼불(三佛) 김원용(金元龍) 선생은 서산 마애불이 발견된 이듬해에 한국 고미술의미학」(『세대』 1960년 5월호)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 P291

백제 불상의 얼굴은 현실적이며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미소 또한 현세적이다. 군수리 출토 여래좌상은 인자한 아버지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라도 듣고 앉은 것 같은 인간미 흐르는 얼굴과 자세를 하고 있어서 백제 불상의 안락하고 현세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중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작년(1959)에 발견된 서산마애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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