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를하다가 어떤 경로로 내게 닿은 평론집을 ‘재활용쓰레기‘로 버리기로 했다. 기억도 없는 메모들이... 잠깐, 다시 책을 펴보게한다. 그렇지만 역시나 박스에 넣는다.
여러 사념들로 씁쓸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작가나 시인도 한 개인으로서는 현실을 살아가는하나의 생활인이다. 국민이요 시민이며 한 가정의 남편이거나 아버지이거나 아들이다. 당연히 문학인도 이러한 자연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문학인도 다른 모든 종류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현실 속에 파묻혀 있고 현실적 제사건과 연루되어 있으며, 오직 생물적 죽음에 의해서만 이 일상적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문학자를 다른 종류의 인간들과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정치가가 밥 먹고 변소에 가고 자식을 낳는 일상생활의 영위에의해서가 아니라 그 특유의 정치적 활동으로 해서 정치가이듯이, 문학자는 그 특유의 예술적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로 인해서 문학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실한 예술적 창조자가 무엇이냐 하는 문학의 본질론으로 돌아가게 된다. - P164
흔히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거니와, 현대야말로 인간생활에있어서 정치가 막심한 중요성을 갖게 된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는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으며, 정치적 상황은 인간의 심리적국면에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현실을 다루는 문학자로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의무라고도말할 수 있다. 다만 문학자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인간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므로 한 시대의 일시적인 권력이나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만 현실을 보아서는 안된다. 진리는 종교나 계급이나 재산의 여하에 따라 변동될 수 없으며, 인류의 진보와 인간의 미래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원대한 이상이 때로는 어떤 종교나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수가 없지도 않았다. 중세의 종교재판은 과학적 진리를 끝내 거부하고자 안간힘을 썼고,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은 양심적인 문인 · 종교인·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광신적 편견이 권위있는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 P165
먼저 노예수첩」의 프롤로그(서장)를살펴보자.
시인들아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사람도 골목도 마당 끝까지 음침한 그늘과 한숨소리뿐, 밤마다 아침마다 짓밟히면서 너희들이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칼든 자의 잔인한 노략질 끝에 혈관까지 영혼까지 짓밟히면서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 P167
가령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말을 "너는죽을 수밖에 없는 놈이다"라고 축소하여 해석한다면 그 의미가 완전히달라진다. 그것은 일반론적 진술을 특정한 대상에만 한정해서 적용하는 데서 오는 논리적 오류이다. 따라서 이 프롤로그를 "대한민국은 독재국가" 운운으로 해석한 검사의 기소장이야말로 오히려 대한민국의국가적 현실을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사실왜곡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프롤로그 전체는 시인 자신들의 자기반성에 기본적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한 순수한 언어와 절실한 언어」라는 논문에서 양성우는 "현재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혹시나 권력중개자나 무관심주의자, 혹은 현실기피주의자로서 개인적안락에 취하여 잠자코 있거나 또는 유치한 감상주의자로서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고 있지나 않은지 궁금하며, 이 시대의 훌륭하고 절실한증인으로서 영원히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지도 궁금하다"고 걱정하고있는데, 이 프롤로그의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운운의 구절은바로 위의 논문에 이론적으로 드러나 있듯이, 시인적 사명을 망각하고개인적 안락에 취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안일주의적 시인들을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장편 「노예수첩」에 대한 검사 공소장의 해석은 전면적으로 이러한 견강부회와 논리적 오류로 시종하고 있다. - P169
시인 양성우는 1969년 문단에 등장하여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시문학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왔다. 길지 않은 동안에 발상법發想法』 『신하여, 신하여』 『겨울공화국』 등 세 권의 시집을 간행한 것만보아도 그의 시인적 의욕이 얼마나 왕성한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시인 양성우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양심과 용기에 입각하여 시인적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젊은 시인의작품이 문학의 본질을 외면한 순전한 법률적 관점에 의해서만 놀고되고 판결된다면 그것은 우리 나라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비극일뿐더러 우리나라의 사법적 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비극일 것이다. 시인의양심에 따른 활동을 법정에 세우는 나라,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정권의 일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억압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나라가 아니며 결코 발전하는 사회일 수 없다. 서로 다른 의견들의 다양한 발표와 활기있는 토론만이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개발하여 미래의 설계를 위한 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잡음과 혼란은 오히려 건강체의 당연한 징표일 뿐이다. - P172
흔히 『임꺽정』의 미덕을 말할 때 우리말 어휘의 풍부함을 지적한다. 과연 그렇다. 이 작품에는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오염된 한국어 아닌 전통언어가 실로 다채롭고 풍요하게 구사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말 어휘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외국어 문장에 훼손되지 않은 우리말 문장과 문체가 이처럼 자연스럽고 묘미있게 씌어진문학작품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내 생각에는 고등학생들에게 임꺽정』을 두세번 읽히는 것보다 더좋은 국어교육이 없을 듯하다. 또한 이 작품은 조선 중기(명종 때의사회상을 뛰어난 실감 속에 형상화하였다. 대개의 역사소설들이 궁중비화를 흥미 본위로 각색하거나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는 데 그치고 있음에 비하여 『임꺽정』은 사회의 상층계급인 양반 선비로부터 천민계층인 백정들에 이르기까지 고루고루 소설적 조명을 비춘다. 우리는 이소설을 읽는 동안 당대의 여러 유명한 정치가와 학자들을 실감있게 만날 수 있을뿐더러 가렴주구에 시달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힘없는 백성들을 또한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따뜻한 눈길로 묘사된 아름다운 조국 강산의 풍경을 생생히 눈앞에 - P333
떠올리게 된다. 민족의 독립이 부정된 식민지 시대에 작가는 이러한작업을 통해 당시의 독자들에게 선조의 얼을 되새기고 조국의 숨결을 환기시키고자 의도했을 것이다. 해방 후 홍명희는 잠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고 북한에서부수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런 이유로 『임꺽정』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또 그런 이유 때문에 홍명희는 으레 공산주의자려니간주되었고 ‘임꺽정도 그의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계급주의 작품일 것으로 예단되었다. 그러나 어떤 혁명적 사상을 기대하고 읽는사람에게 『임꺽정』은 너무 문학적이고, 반면에 요즘의 서구식 모더니즘 문학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이 작품은 너무나 민족적이다. 북한에서도 이 작품이 끝내 대중적으로 출판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의 변혁적 출판운동의 과정에서 비로소 완간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분단시대의 비극성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임꺽정』은 비록 분단시대 이전에 창작되었으나 분단의 질곡을 넘어서는 민족적 지평을 함축한 문학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히려 민족문학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 P334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다른 한편 그것은 인류역사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진리 자신의 지속적인 자기발현 운동이라고 일컬음직한 어떤 거대한 과정의 매 단계를 형성한다. 가령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갈릴레이, 뉴톤, 칸트, 헤겔,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등의 이름을 늘어놓아 보면 이이름들의 행렬은 각 인물들이 각자 자기 시대의 특정한 관점의 제약을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인간이 더 풍성한 자유와 더넉넉한 물질적 여건과 더 고상한 품성을 갖추어 살고자 하는 인류 공동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마치 하나의 줄기찬 대열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 언제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 - P362
지식인은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해 왔고 특히 자본주의적산업사회에서는 독특한 독립 집단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식인이 결코 하나의 독자적인 계급이나 계층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 나름의 고유한 이해관계가 있고 독특한 행동양식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사회 안에서의 일정한 관점을 대변하는 존재가 지식인이다. 따라서 오늘 지식인에게는 민족사의 과업을 해결하는 일에 동참하느냐 민족을 망각하고 배신하느냐 혹은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편에 서느냐 민중을 수탈하는 편에 서느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지 이 선택을 보류하거나 회피하는 길은 있을 수 없다. 사실상 모든 지식인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는 또 원하든 원하지않든 하루하루 매순간의 삶 속에서 이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이 역사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지식인의 고뇌와 영광이 함께 존재한다. - P368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실제로 드물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인류문명이 종언을 고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인류의 대부분이 앞으로 다가올 수세기 또는 수십 세기에 걸쳐 형언키 어려운 고통 속에서 참담한 삶을 영위해 나가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생명부양 체계의 손상은 우리가 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 만큼이미 심각하게 진전되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갈수록 비대해지는 건강 및 의료 시스템은 활인(活人)은커녕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에 대한 합법적인 살상기구로 변해 버렸고, 교육과 문화는 생명을 일상적으로 파괴하는 권력욕망과 경쟁심과 소비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설득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우리가 몸을 바쳐 소득을 마련하는 오늘의 경제구조는, 그 속에서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든 상관없이, 그 전체로서 거대한 살상과 폭력의 메커니즘이 된 지 오래인 것이다. - 녹색평론』 1997년 1~2월호 머리말」중에서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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