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에 바치는 시
그대는 희망
왼 나라 산기슭이란 산기슭, 걸어 돌아다니다가
결코 닿지 않는 벼랑 되어 철쭉꽃 품다가.
이마 내민 벼랑의 분홍 뺨
오솔길이다가
속눈썹 내리까는 별 몇
저희들끼리 소곤소곤대는 곳이다가
소곤소곤대며 까르르 웃음 굽이치는 곳이다가
무지개, 향내나는 날개로 오르는 하늘이다가 언제나 돌아가는
돌아가는 길 보여주는 수풀이다가
먼 수풀의 보이지 않는들꽃 머리칼이다가
결국 결국 희망이다가
그대 국토여, 님이여
수만 그 여자 허리 아래 누운
역사여, - P112
미안하다. 산하
눈 덮여 흰빛뿐인, 문경 새재 넘었네
아래로 흐르는 것이 제 본연의 의무라는 듯,
맑은 살얼음 밑으로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흰 옷자락들이 분분히 나려 대지를 덮고 길을 덮고
마른 나뭇가지와 푸른 솔잎을 덮어
무한히 흰 빛에 둘러쌓인 계곡 따라
생각도 말도 다 잊고 꿈결인 양 걸었네
다 갈아엎고 파고 들어낸다는데
버들치와 가재는 구호도 내걸 줄 몰랐네
몽땅 가르고 쌓고 막아 뱃길 낸다는데
오래 흘러온 물은 제 길이라 목청 높이지 않고
달래강은 찰랑찰랑 마애불 발목만 애무하듯 닦아주는데
나는 저 말 못하는 것들에게 왜 이리 미안한가
‘한반도 운하는 대재앙이다‘ 플래카드 따라가는
나는 왜 자꾸 고개가 떨궈지는가
제 것이라 주장할 법적 소유권도 등기도 없이빼앗고 죽이고 갈아 뭉개도 선언문 한줄은커녕
아프다 말 한마디 못하는 저 순한 산하 앞에서
나는 왜 자꾸 무릎이 꺾이는가
생명을 밟고 지나가고도 매번 뒤늦게 알아차리는
나는 왜 과오덩어리인 것만 같은가
푸른 천공을 받아안은 물은 변함없이 제 길을 가는데
마애불은 돌아앉아 말이 없는데김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