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베이커를 좋아한다.
투명한 밤이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고, 나른하고도 낭만적인 트럼펫 연주에 매료되곤 한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배경화면은 음반 녹음중인 쳇 베이커의 사진이며, 그의 곡을 컬러링으로 설정해둔 지도 꽤 되었다. 기댈 곳 없던 시기에 그의 음악은내게 안식을 주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위대한 트럼페터이자 보컬이지만, 마약을 사기 위해 연인의 물건을 전당포에 넘기고 전화선을 목에 감는 등의 폭행을 일삼던 추악한 인간이기도 하다. 달콤한 목소리 뒤에 감춰진 그의 - P185

악마성은 선득하고 경악스럽지만......
마찬가지로 나는 우디 앨런을 좋아한다.
친구와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는지 공유하고,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맨해튼> 중 어떤 작품이 더 취향인지 열띠게 논하는 과정이 즐겁다. 여전히 <매치 포인트>를 보며 감탄하고, <블루 재스민>을 돌려 보며 나는 죽었다깨나도 저런 역작은 못 만들 거라 감복하지만……
우디 앨런과 관련된 불쾌하고 끔찍한 스캔들은 구태여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쳇 베이커의 음악이 듣고 싶거나, 우디 앨런의 신작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민에 잠긴다. 저 사람의 작품을 과연 듣고 보는게 옳을까. 그래도 될까. 그러나 결국 듣고 본다. 숨어서, 묘한 죄책감을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건 그들의 작품이지 인격이나 삶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기도, 판단을 유보하기도 하지만 피해자의 항변과 명징한 사실로부터 나는 늘 자유롭지 못하고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 P185

이 소설은 그러한 상충에서 기인했다. 죄의식과 사랑(혹은 기호)이라는 얇은 막 하나를 오가며 번민하는 나 또는 우리의 내면을 마주보고 싶어서.
하드보드지처럼 두껍고 견고한 사랑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사랑은 습자지 같아서 단 한 방울의 반감과 의심으로도 쉽게 찢어지는 것 같다. - P186

그러나 어떤 사랑은 푹 젖어도 찢어지지 않고 도리어 곤죽처럼 질퍽해진다. 사랑이고 죄의식이고 찬미고 경멸이고 죄다 흡수해 종내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누군가를 ‘그런 사람‘이라 단언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는 사람‘ 이라는 여지를 두고 깊고 길게 들여다보는 것이 이해고 사랑이라여기지만, 그러한 방식에도 늘 변수와 병폐가 존재하는 것 같다. 툭 튀어나온 부분을 다듬을 수 있는 영화와 달리, 현실은 소거와 편집이 불가하므로 이미 벌어진 사건을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무감히 넘기는 건 기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심결에 옹호와 이해를 동일시하거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맹목적인 변호를 이어간다.
이것을 단순히 병적 애착 혹은 집착이라 부르는 게 옳은지. 그안에 담긴 진심마저 쉬이 배제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불신 없는 무조건적 사랑은 과연 가능한지 문득 의문이 든다.
가부를 나눌 수 없는 무수한 문제 속에서 우리는 자주 구겨지고 찢어지며 괴리를 겪는다. - P187

길티 플레저는 죄책감을 뜻하는 길티 
guilty와 기쁨을 의미하는 플레저 pleasure의 합성어로, 어떤 행위로부터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를 통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기에 떳떳해질 수 없는 마음을 가리킨다. 예컨대 귀지 파기 영상이나 숨어서 듣는 나만의 명곡과 같이, 남들 앞에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지만 나에게는 은밀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그 무언가를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것이다.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이 길티 플레저를 경유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잠재해 있으나 입 밖으로 내뱉기는 어려운 감정들을 포착하는 소설이다.
‘나‘는 우연히 영화 <인간 불신>을 본 것을 계기로 영화감독 김곤의 열렬한 팬이 된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부상한 그는 커피 찌꺼기로 염색한 셔츠를 입고, - P188

특정 출판사 시집의 애독자이자, 즐겨 마시는 맥주가 있는, 자신만의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나‘는 수려한 외모와 예술성을 갖힘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고 ‘힙‘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지지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느낀다. 김곤은 고급스러운 문화적 취향을 가진 자이기에 ‘나‘의 욕망의 대상이 되며, ‘나‘에게 김곤의 팬이 되는 일은 스스로를 ‘예술이랑 먼 사람‘으로 규정지었던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식의 단절과 자기규정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의 취향이란 순수한 기호나 선호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중무엇을 향유하는지에 따라 예술적 취향이 구분되며, 취향은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문화적 계급 질서는 개인이 수치심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자유로이 자신의 취향과 선호를 드러내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길티 플레저‘는 흔히 유치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여겨지는 작품에서 모종의 즐거움을 느낄 때 발생하는 양가감정이다. 고상하지 못한 자신의 취향으로 인해 자신 역시 형편없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주는 쾌락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 P189

내가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의심도 들었다. 나는 김곤이 혐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웠다. 만일그 사건이 사실이더라도 쪽잠 자며 촬영하다보면 누구든 예민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실수라 해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친구들 말처럼 만약 그게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나는 김곤의 영화를 몇 번씩 관람하고 굿즈를 소비할 수 있었을까. 늘 헷갈렸지만 그럼에도 김곤의 신작을 기다렸고 그의 기사에 선플을 달았다. (155쪽)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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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자격증을 가지려한지 5년, 이곳 재활병원 근무도 7월로 만 4년차다. 직업으로서의 요양보호사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만만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졌던 녹녹찮은 직업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꼴랑 최저시급의 최저임금뿐이니까 그 체감의 농도는 더 짙다. 봉사정신을 가져야한다고 말하는 것도 낯간지럽고... 여기 재활병원에서는 자격증은 필요하되 알량하나마 혜택은 1도 없다. 복지는 당연히 1도 없다. 그런데도 일, 한다. 하고 있다.
아마도 쭈욱 할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고 대부분의 동료들 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저런 내용을 만나면 씁쓸하다.
전혀 아닌 것도 아니고, 다 맞기만 한 것도 아니다. 소설속에만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당사자인 나는 한없이 무거워진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러니까 할머니께서 큰돈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걸 집에서 잃어버리셨다는 거잖아요. 손녀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이 집 드나든지 올해로 이 년 차예요. 원칙적으로는 주 오 회, 세 시간씩만 근무하면 되지만 저는 저녁까지 먹고 갈 때도 많거든요? 마음속으로 정말 제 어머니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주말에도 들르고 그래요. 누가 안 알아주면 어때요. 자녀분도 손녀분도 멀리서 따로사시는데, 몸도 온전치 않은 분이 혼자 계시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도리가 없으니까요. 제가 돈이 탐났으면 진작 가지고 갔죠. 지금껏 드나들면서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큰일이 터지면, 보세요, 제가 제일 먼저 의심받을 게 뻔한데요? 치매 걸린 어떤 어르신들은요. 제가 쓰레기만 버려도 전 재산을 가지고 간 것처럼 때리고 그래요. 그걸 또 홀랑 믿고 어르신 가족들이 제 주머니 뒤집어 까서 돈을 가져갔는지 안 가져갔는지 확인한 적도 있고요. 저는 의심받는 게 익숙하긴 한데, 정말 아니에요."
현진은 수경이 자기 자신을 능숙하게 변호하며, 은근히 엄마와 - P22

자신을 비난하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니, 우리 강영실 어르신이 연세는 있으셔도 참 잘 드세요. 과자도 많이 잡수시고요. 과일도 주문해서 드시는 거 아시죠? 이 주에 한 번씩 사과나 바나나 한 상자, 고구마 한 상자를 요앞 청과물센터에서 배달시키거든요. 요구르트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시고요. 그래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혼자 사셔도요. 올 때마다 쓰레기 비워드리는 게 가장 큰 일일 정도로요. 아, 기저귀도 하루에 두세 개씩은, 아시죠?"
현진은 기습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거기까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동시에 왜 그런 부분까지 함부로 누설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전신을 강타했다. 요양보호사에게 아주 사소하고 별스럽지 않은 사실일 수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집에서 매일 발생하는 쓰레기의 목록이 오래도록 뇌리에서 떠나지않을 것만 같았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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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온유

2017년 장편동화 『정교」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유원」 「페퍼민트」 「경우 없는 세계」 등이 있다.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제44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진은 소파 아래에 등을 기대고 영실을 유심히 살폈다. 영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집스러운 얼굴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더 냉랭한 기운을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까. 염색을 하지 않은 지 오래인 백발의 머리는 관리하기 편하도록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날렵한 콧대와 깊은 눈에는 아름다움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현진은 자신의 외할머니가 남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할머니를 조금도 닮지 않은 엄마를바라보며 줄곧 아쉬움을 느꼈고 엄마의 얼굴과 할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자신 역시 큰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오십대 중후반까지도 할머니에게는 영화배우 같은 아우라가 있었는데, 현진은 그때 할머니를 선망하던 사람들과 시기하던 사람들, 그리고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 P10

마치 학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달려오기라도 한듯 거머리의 엄마는 삼십 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딸을 통해 현진의 집안사정을 진작 전해들은 모양인지, 현진의 볼에 피딱지가 앉은 것을 보면서도 미안해하거나 초조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꽤 의기양양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만한 상대(집안)라는 계산을 끝내서인 것 같았다. 자신을 보자마자 훌쩍홀쩍 눈물을 흘리는 딸을 품에 안은 채로, 애가 이 지경인데 너희 엄마는 어째서 빨리 오지 않느냐고 현진을 몰아붙였다.
그때, 상담실의 문이 천천히 열렸고 단정한 검은색 투피스 차림에 구두를 신은 할머니가 또각또각 걸어왔다. 현진은 마음속에 환한 불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영실은 손녀가 사고를 쳤다고 해서 집에 있던 차림새 그대로 허둥지둥 달려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갖춰진 모습으로, 예의 그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풍기며 나타나주었다. 어떤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짓누를 수 있다는 걸 현진은 그날 알게 되었다. 영실은 예의를 갖추면서도 단호하고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고, 현진의 볼에 난 상처에대한 치료비까지 그 안하무인의 여자에게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 P18

큰소리 한번 오가지 않았다. 또한 영실은 거머리를 향해 너는 다치지 않았냐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거머리는 눈도 마주치지못한 채로 괜찮다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현진은 인상적인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그 모든 장면을 마음에 새겼다. 현진의 기억속에서, 영실은 나란히 걸을 때조차 손녀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만은 현진이 용기를 내 먼저 할머니 손에 깍지를 꼈다. 영실은 손에 힘을 주지도 빼지도 않고, 그저잡혀주었다.
할머니가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를 풍기며 
자식들만 바라보고사는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 자체가 현진의 마음에 어느 정도 위안을 주었다. 본받을 만한 부모는 없어도 우아하고 강인한 할머니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리면 세상을 강단 있게 살아갈 용기가 조금 생기곤 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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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자연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자연만이 아니라이 나라 사람들이 만든 풍경도 그랬다. 스위스의 자연은 철저히 인간이 통제하고 꾸며놓은 자연이라더니 과연그렇구나 싶었다. 수려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그들은 현실 세계도 아름답게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인간이 만든 것도 알프스만큼이나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던 융프라우 역. 눈에 거슬리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게 가꾸어진 그림 같은 마을들. 그 풍경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화사한 색상의 산악열차. 미관을 해칠 수있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생활의 자잘한 법규들(예를 들면같은 날에 모든 발코니가 빨래로 가득 차면 보기에 좋지 않다는이유로 일요일에는 건물 밖에 세탁물을 내걸 수 없다).  - P274

심지어 이들은 죽음의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처럼 의료 장치의 전선에 포획되어 삶을 마무리하지않겠다, 우린 아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듯이. 스위스는 존엄 있게 죽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나를 매혹하는 나라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생의 전 여정이, 눈에 닿는모든 세계가 아름답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걸까. 모든 게지나치게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고, 이발소에 걸린 그림 같은 스위스에서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검은돈. - P274

기자 출신의 에릭 와이너가 쓴 《행복의 지도》 스위스 편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는 밤 10시 이후 변기 물을 내리거나(인간의 기본적인 생리현상에 관한 규제라니 도저히 이해가안 돼서 찾아봤다. 불법은 아니지만 밤 10시 이후에 변기 물을내리면 강력히 비난받는단다. 스위스 정부가 밤늦게 변기 물을내리는 소리를 소음 공해로 간주했기 때문이라나) 일요일에 잔디를 깎는 일조차 금지한다고 했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는 기니피그나 앵무새, 말, 금붕어를 한 마리만 키우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교적인 동물이라 고립시키는 것은 학대 행위로 보기 때문에 적어도 두 마리를 적절한 울타리 안에 두어야 한다.  - P275

이토록 지독한 규칙 성애자에, 동물권마저 지극히 존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터폴이수배 중인 범죄자들에게는 그토록 관용적일 수 있는 걸까. 정말이지 길 가는 시민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나요? 당신이 누리는 부와 복지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있나요? 스위스 시민들이 자국의 부조리한 금융산업에 반대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뉴스가 있었던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제네바 시민들의 얼굴에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아이히만이 겹쳤다. 명령대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수행했던 아이 - P275

히만은 평범한 관료에 불과했다. 예루살렘에서 그의 재판을 본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이들의무능과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국가적 공식 행위‘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합리한 일에 그저 순응하고 살아간다면 그 나라는 그대로 괜찮은 걸까. 스위스의 두 얼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혼란조차 스위스가 내게 남겨준 선물인지도, 여행을 통해 풍경만이 아니라 풍경이 품고 있는 것, 풍경 너머의 것까지 보기를 원해왔으니,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하나도 얻지 못한 채 여전한 혼란을 품고 나는 스위스를 떠났다. - P276

루마니아에서는 시를 읽는 밤이 자주 찾아왔다. 아무도 가지 않는 나라여서 루마니아에 오고 싶었다는 K쌤 덕분이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히 읽어주시는 시 한 편이 우리의 밤을 환하게 밝히곤 했다. 안젤리카의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K쌤은 미리 인쇄해온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줬다. 고정희 시인의 <쓸쓸함이 따뜻함에게>라는 시였다. 장작불이 지펴진 난롯가에 모여 앉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시를 읽었다. K쌤은 낭송이 끝난 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 루마니아까지 여행을 올 수 있었던 우리는 그래 도따뜻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쓸쓸한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정원의 사과나무 가지를 휘돌아온 바람이 부드럽게 창을 두드리는 밤이었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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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덧붙였다. 독일에서는 불법주차를 하면 이웃이 바로 신고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불법주차를 하면 이웃이 와서 몇 시에 경찰이 단속을 나오는지 알려준다고. 오래전 이야기라 이제는 다르겠지만 작가의 이 말도 내 외사랑을 부추겼다.
격정이 넘치고, 걱정을 표출할 수 있다는 건 장점만이 아니라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코비드 첫해에 이탈리아는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높은 사망자 수 못지않게, 자가 격리나 외출 금지 등을 비롯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장이 격정적으로 호소하는 동영상도 주목을 끌었다. 걱정이라면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도 빠지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이 ‘격정‘을 놓고 세기의 대결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이탈리아를 사랑해 찔끔찔끔 드나들었지만 이제는 여행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궁금하다. - P168

TMB의 베이스캠프인 샤모니에는 헬멧과 로프를 배낭에 매단 이들이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 지도 한 장을 손에든 ‘내‘가 보였다. 산악 가이드 협회의 문을 밀고 들어서는그녀. 홍조가 핀 얼굴로 산악 가이드에게 쉬지 않고 질문을던지고 있다. 타고난 체력만으로도 충분해 스틱도 들지 않았다. 복장은 허름하지만 기개는 높고, 열정도 뜨겁던 ‘삼십대의 나‘였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더 좋은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스틱 두 개를 목숨줄인 양꼭 쥔 오십대의 내가 이 거리에 서 있다. 흰머리만큼 몸무게도 늘었고, 체력은 떨어졌다. 여전한 점도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곳에, 나와 닮은 이들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 몸을 써서 이루어 내는 느린 성취를 즐긴다는 점도 변하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그시 누르며 나는 눈부시게 빛나는 설산을 바라본다. - P175

무엇보다 산은, 지구는 언제까지 버텨줄까. 기후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빙하가 더 빠르게 녹고 있고, 몽블랑 산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길, 위로라도 하듯 꽃들이 하늘거린다. 고개를 넘어 능선길에 접어드니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길 위에 색채를 더한다. 연보라색 꽃마리, 노란색 금매화와 기는 뱀무, 자주색 범의귀, 샛노란 노랑벌이와 동이나물, 진보라색 트럼펫 용담, 연분홍 솔채꽃과 진분홍 앵초와 알핀로제, 무리 지어 하얗게 핀 알파인 데이지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걷다 보니어느새 오늘의 산장.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 산장 앞 안락의자에 앉아 저무는 몽블랑을 지켜봤다. 바람결에 날아오는 워낭소리가 골짜기로 번져가는 시간이다. 산장에 머물러야만 누릴 수 있는 순간이다. 이토록 고요하고 아름다운저녁과 아침을 위해서라면 ‘국경 없는 코골이회‘의 중단 없는 밤샘 공격도 견뎌내리라. 다음 날 펼쳐질 고생은 생각도하지 못한 채 나는 몽블랑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며 앉아있었다. - P188

쉰을 넘기면서 깨닫게 된 인생의 격언이 있다면 이렇다.
"체력이 인성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만큼 정신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다 감당할 수 있다 믿었던 마음의 대양도 말라가기 시작한다. 체력이 부족하면 여행에서도 사소한 일에 불만이생기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체력이 있어야 타인에게도친절할 수 있다. 그들은 고단한 여정에도 지친 티가 전혀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하고 다정했다. 자기가 떠나온 곳과 여행지를 비교하며 불평하지 않는 점은 귀한 미덕이라 나는 그들이 좋았다. 타지키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갔을 때도 그들과 종종 만나 밥을 먹곤 했다. - P195

게으름뱅이의 대명사인 나무늘보는 여러 면에서 나를 매혹한다. 우선은 나무늘보의 삶 자체가 게으른 내가 꿈꾸는최고의 삶이다. 여행에 대한 지독한 갈망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20년째 떠돌며 사는 처지라, 내게 나무늘보는 정착하는 삶에 대한 어떤 은유 같다. 하루 열다섯 시간을 자고, 일주일에 한 번 나무에서 내려오는, 움직임에 있어서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 무엇보다 나무늘보는 친환경적인 동물이다. 느린 속도의 생활 방식을 선택해 가능한 한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신진대사율이 극단적으로 낮아 나뭇잎몇 장만 먹어도 살 수 있고, 근육도 적고, 체중도 적게 나가서 에너지 소모량도 적다. 그 최소한의 움직임은 포식자의 눈에 띄는 횟수를 줄여 살아남는 데도 유리했다. 6천 5백만년 이상 나무늘보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법인 셈이다. 나무늘보는 주로 나뭇잎이나 수액, 과일을 먹지만 소화하는 데너무나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며칠 혹은 몇 주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한다. 출산, 잠자기, 짝짓기, 먹이 주기, 밥 먹기 등 삶 전체가 나무에서 이루어진다. 나무늘보가 하 - P236

는 가장 힘들고 먼 여행이 바로 일주일에 한 번 배변을 위해나무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다. 이토록 지독한 정착민이또 어디에 있을까. 나무늘보의 털에 자라는 녹조류는 보호색이 되어주고, 몸의 털은 수많은 미생물, 곤충, 곰팡이, 나방과 딱정벌레들이 공생하는 집이다. 그들은 그 안의 해로운 진드기와 세균을 먹어 치운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내주어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늘보는 서식지인 열대우림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거주하던 숲이 벌목으로 사라지면 원숭이처럼 다른 숲으로이동하지도 못하기에. - P237

나무늘보에 한껏 정신이 팔렸던 시간이 끝나고, 조니와함께 구조 센터의 곳곳을 돌아보며 이곳에 남게 된 동물들의 사연을 들었다. 악어과인 카이만을 예로 들자면 이름은 파초. 이 근처 정글 호텔로 신혼여행을 왔던 독일인 부부가 트레킹을 다녀와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야외 욕조에 이 녀석이 떡하니 들어앉아 있더란다. 건기에 물 냄새를 맡고 거기까지 왔던 것이다. 이미 인간 세계에 익숙해진 상태여서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0년째 거주 중이다.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동물은 우리 같은 방문객이접촉할 수 없다. 이곳이 집이 된 동물만 만날 수 있는 셈이다. - P237

나무늘보는 강하고, 부지런해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상식에 균열을 낸다. 느리게 움직이며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극단적으로적게 먹고,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생존해왔다.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나무늘보코스타리카 같은 국가가 존속에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퓨마나 재규어 같은 육식 동물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정글. 온 숲이 긴장하며 바르르 떠는데 두 발가락 나무늘보 한 마리가 느릿느릿 나무를 오르고 있다. 너무 느려 움직이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마음에 온기가 피어오른다. - P242

가는비 흩뿌리는 아침, 나는 여름 숲에 서 있다. 비에 젖은 열대의 숲은 맹렬하게 서로를 향해 팔을 뻗은 나무들로몽환적인 분위기에 휘감겨 있다. 검은 나무의 몸피마다 초록의 이끼나 덩굴식물이 가득하다. 서로 몸을 읽은 푸른 잎들이 빗방울을 매단 채 늘어져 있고, 차가운 안개가 숲을제품에 가두었다 풀어놓기를 반복한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무수한 초록으로 채워진 공간에 원시적인 선정성이 넘실거리고 있다. - P243

잎 사이로, 가지마다, 큰 나무 너머로 빗줄기가 소리도 없이 스며들고 있다. 길이 아닌, 숲으로 발을내딛고 싶다. 뒤엉킨 가지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릴 것만 같다. 가까이서 하울러 멍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눈앞에서 붉은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잠시 깨어진 숲의 정적이 다시 찾아오고, 흔들리던 나뭇가지도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떤 대가가 세상에 존재하는모든 초록색을 풀어 자유롭고 호방하게 붓질을 한 듯한 숲이다. 앙리 루소나 김보희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들던 그 숲의 이름은 몬테베르데, 그 이름대로 초록 산에 들어가 푸른 물에 흠뻑 젖은 하루였다. 숲을 빠져나오니 짧고 애틋한 꿈을 꾼 것 같았다. - P244

코스타리카는 어디나 열대우림이었다. 내 나라에서는보기 힘든 나무와 꽃이 가득했고, 조림하지 않은 원시림이많았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국립공원을 옮겨 다니며 산과바닷가와 숲을 걸었다. 인생이 이렇게 풍요로워도 되는 건가. 문득 두려워질 정도로 매 순간 생명의 환희가 일렁였다. 생명력이 이토록 충만한 땅이라면 누구라도 그 기운에스며들어 어떻게든 살아내게 될 것 같았다. - P244

코스타리카에서 걷는 사람은 시간을 잊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걸음과는 완전히 다른 속도로 걸어야 하기에, 평소걷던 속도를 버리고 느리게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변의나무와 숲과 하늘에 시선을 둘 수 있다. 시선을 주고 기다려야만 숲에 깃든 생명을 만날 수 있다. 이 나라 트레킹에서 제일 힘든 점은 열대우림답게 비가 자주 내려 진흙탕이 되는 길도, 후텁지근한 습도와 살갗에 달라붙는 더위도 아닌, 속도 조절이다.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숲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시선이 열리게 된다. 나뭇가지에몸을 감고 천천히 가지를 건너가는 긴 형광 연둣빛 뱀이, - P245

덩치가 새끼 돼지만 한 설치류 아구티가 나무뿌리 사이로고개를 내민 모습이, 라쿤 패밀리 중에서 유일하게 주행성인코아티가 코를 킁킁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거대한몸체를 끌고 뒤뚱거리듯 걸어가는 새 크레스티드구안 (볏통관조)이, 나뭇가지에 다리를 걸고 잠에 빠진 두 발가락나무늘보가, 키 큰 나무의 꼭대기 가지에 앉은 투칸의 노란 부리가, 속도를 늦추고 걸음을 멈춘 이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 년을 살아온, 세월에도 더 성성해지는 나무들은 또 어떤가. 앙코르와트의 유적을 뚫고 자라나는 걸로유명한 케이폭 나무의 땅 위로 뻗어나간 뿌리와 압도적인 - P245

몸피. 온몸에 푸른 이끼를 두르고 서로의 몸을 지지대 삼아 뻗어나간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들. 그렇게 숲에 사는 무수한 생명과 눈을 맞추며 감탄하고 신기해하며걷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맞아, 지구는 원래 이런곳이었지. 다양한 생명이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지. 오래전에는 어디나, 누구나 이렇게 살았겠지. 이런 생각이절로 든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의 야생은 그 어느 곳과도 다르다. 인간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해 막막할 정도로 강대한 자연의 힘을 깨닫게 되는 파타고니아와도 다르고, 일체의 생명이 절멸한 후의 지구를 상상하게 만드는 아이슬란드와도 다르다. 코스타리카는 인간과 동물이 경계나 구분없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곳 같았다. - P246

코스타리카에서는 밤 산책의 기쁨도 빼놓을 수 없었다. 어두운 밤에 가이드와 함께 정글을 걸으며 야생동물을 찾아보는 투어다. 밤 산책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밤의 열대우림이 얼마나 풍부한 표정을 지녔는지를. 검은 하늘을 촘촘하게 채운 별들도,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서늘한 밤의 공기도, 짝을 찾는 벌레들의 가냘픈 울음소리도, 무성한 잎들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의 노래도, 나뭇가지 위깃털 사이 - P246

로 부리를 파묻고 잠든 투칸도, 랜턴 불빛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작은 스콜피온도, 먹이를 노리며 나뭇잎 위에 앉아있는 붉은 눈의 독개구리도, 저마다의 존재감을 내뿜으면서도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무수한 생명을 거두어안은 밤의 숲은 마법의 성 같았다. 깊고 어두운 세계 안에는 잠든 생명과 깨어 있는 생명이 공존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숲은 저 홀로 고요히 분주했다. 코스타리카의숲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게 만드는 마력을 품은것 같았다. 태양의 시간에도, 달의 시간에도. - P247

사실 코르코바도는 트레일이 제한적이고 이정표도 없어서 "길이 없는 국립공원"으로 불리지만, 오는 사람마다 더, 더, 더 깊이 들어가며 동물들에게 다가간다면 결국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점점 더 필요해지는 능력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을 상상하는 힘, 그리고 그들과 공존하는 길을 찾는 능력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되새기지만 알고 있다. 가장 모순적인 존재는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지구를 위해서는 여행을 멈추는 게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내 안의 두 존재가 다투고 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키고 싶은 이와 그에 반하는 행위를 지속하는 이가. 대지가내 몸을 옥죄기라도 하는 듯 두 발이 무거워진다. - P252

돌로미티를 제대로 누리는 최고의 방법은 산장에서의숙박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사진만 찍다가 내려간다면 ‘인생샷‘은 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인생의 명장면‘을만들기는 어렵다. 타오르던 태양이 기세를 잃고 봉우리 너머로 사라지고, 소란하던 등산객들이 떠난 자리에 침묵의그늘이 드리우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거대한 암봉이 촘촘한 어둠의 그물에 갇히고, 뭇별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느슨해진 어둠의 그물 사이로희미한 푸른빛이 스며드는 새벽의 서늘한 공기 속에 서 있어야 한다. 태양이 사라지는 시간과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시간, 그 사이에 몸을 묻은 채 시시각각 달라지는 산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볼 것. 그 고요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할때, 주변의 모든 생명을 부드럽게 감싸는 어떤 신성한 기운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찰나일지언정 이런 위안을 얻기 위해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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