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의 냄새까지 지워야하니까 호텔에선 가정집보다 훨씬 독한 세제와 방향제를 쓴다.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맡게 되는 그 냄새, 분명 처음에는 자연의 어떤 향을 흉내냈겠지만, 어느 순간 그 근원을 몰각한 듯한, 아니 아예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한, 이제는 그저세제와 방향제 냄새로만 지각되는 그 익숙한 향의 습격을받는다. 나라마다 호텔 냄새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세제와방향제 특유의, 여타의 다른 잡냄새를 일거에 제압하는 독선적이고 인공적인 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 덕분에 우리는 호텔의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치 새집에 들어선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 P65

소설가는 어떨까? 나는 전업이니 어디 묶여 있지는 않다.
구상과 집필 능력은 무게가 없어 어디로든 지고 다닐 수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뉴욕이나 바르셀로나, 런던, 파리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나도 그런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렇게 살수 있는 작가들은 주로 영어나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에서 태어났지만 마드리드에서산다. 칠레 출신의 이사벨 아옌데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살만 루슈디는 뭄바이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을 거쳐 지금은 뉴욕에 정착했다. 작가의 뇌는 들고 다니기 어렵지 않지만, 그 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모국어로 짜여 있다. 작가는 모국어에 묶인다. 프랑스 작가 르클레지오가 ‘나의 조국은 모국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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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의 ‘내 방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한겨울의 한강변으로 나가 걸었다. 마치 오랜 외국 여행에서 갓 귀국한사람처럼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한 선배 작가는 장편 출간에 즈음하여 가진 한 인터뷰에서 소설을 탈고하고밖으로 나오니 자기만 겨울옷을 입고 있더라는 말을 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 P26

중국은 그가 처음으로 가본 외국이었고, 젊은 날의 환상이 깨져나간 곳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히려 안온함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오래 미루던 소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아내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선 안 된다고 다짐을 두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었다. 비밀의 벽장을 열고 자기만의 세계로 내려가는 나니아처럼 그 역시 자신만이 열어젖힐 수있는 문을 열고 오랫동안 중단했던 소설 속으로, 매번 낯설지만 끝내는 그를 환대해주는, 비자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 그 나라로 바로 빨려들어갔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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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동백꽃은 


2월은 좀 무언가가 부족한 달
동백꽃은 한떨기 한떨기 허공으로 툭 떨어진다
떨어져서도 꿈틀대며 며칠을 살아 있는 꽃 모가지
낙태와 존엄사와 동반자살, 그런 무거운 낱말을 품고 
선홍빛 꽃잎, 초록색 잎사귀
툭, 동백꽃은 모가지째로 떨어져 죽는다.
부활이란 말을 몰라
단번에 죽음을 관통한다

더이상 퇴로는 없었다.
칼로 목을 자르자 하얀 피가 한길이나 솟구치고 
캄캄해진 천지에 붉은 꽃비가 내렸다는
겨울 속의 봄날
산 채로 모가지가 떨어지고
모가지째로 허공을 긋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져
피의 기운으로 땅과 꽃봉오리는 꿈틀대고

한떨기 한떨기가 피렌체 르네상스 같은 동백꽃,
너무 아름다워 무서웠던 파란하늘 아래
꽃의 성모 마리아, 빛나는 한채의 두오모 성당의 머리를들고
툭, 무겁게 떨어지는 동백꽃

여한 없이 살았다
여한 없이 죽었다
불멸이란 말을 몰라 날마다 찬란했다

섬초


섬초는 묻는다
비금도의 시금치
차가운 해풍의 한가운데
얼음을 배로 밀고 나가는 푸른 밭의 쇄빙선
섬초
섬초에서는 난초꽃 향기가 난다
해안가 언덕에 바싹 붙어 파도소리를 세다보면
초산의 젊은 엄마 유방에 젖이 돌기 시작하는 것처럼
거친 잎사귀에 단맛이 돌고
난초가 따뜻한 곳에서는 꽃눈을 틔우지 않는 것처럼
비금도의 시금치는
아랫목 같은 것은 모른다
비둘기 발처럼 빨갛게 되도록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언 땅에 발을 꼭꼭 묻고섬초는 이렇게 시퍼렇게 만개할 때까지
쇄빙선의 칼 같은 배를 밀고 간다
올리브산의 포도나무처럼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그림
빨간 수박처럼

해안가 얼음산을 헤치고
파도소리를 줄기 속으로 밀고 가면 갈수록
비금도의 난초
속으로 단맛이 돌며
난초꽃 향기를 은은히 뿌리는 푸른 잎 무성한 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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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혀에 돋은 생채기, 팔꿈치의 굳은살,
새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뉴욕 시의 수많은 쓰레기트럭들의 종류, 시골 마을에 버려진 낡은 자주빛 전광판 등등.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둔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여준다. - P161

내가 산타페로 이사를 왔을 때 근처 식당에서 시간제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다.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일요일 아침에도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내 운명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아침여덟 시, 나는 마구 섞여 있는 오렌지와 당근 중에서 당근만을 골라 내어 대각선으로 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주아주 깊구나!‘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당근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되어 가는구나! 아주 작은 일에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글의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 P162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댄다. 당신 지갑 속에는 1달러 25센트만 남아 있다. 남편은 구두가 안 보인다고 불평이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고, 당신은 채워지지 않는 백일몽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세상은 원자폭탄의 위협을 받고, 환경오염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일어나고, 바깥은 영하 10도이고, 코는 자꾸 막혀 오는데 당신에게는 저녁 식탁에 올릴 음식을 살 돈도 없다. 발이 퉁퉁 붓고, 치과의사와 진료 약속을 해야 하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닭을 꺼내 해동시켜야 하고,
보스턴에 있는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백내장 수술을받을 어머니도 걱정스럽고, 수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세 - P163

일하고 있고, 당신은 일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방금구입한 컴퓨터를 풀고 설치도 해야 한다. 또, 당신은 오늘부터도너츠는 끊어 버리고 양상추를 먹기 시작해야 한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고양이 새끼는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 발기 찢고 있다.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 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 P164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 사무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사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 P164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한다.
최근 뉴 오를렌스에 갔다가 우연히 그 근처의 공동묘지에들르게 된 적이 있다. 태양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노트를 꺼냈고, 시멘트 묘비 그늘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해."
내가 말한 완벽함이란 물론 물리적 시설이 완벽하다는 뜻이아니다.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 P165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 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P172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 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말 한심해. 그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도대체 당신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작가가 되겠단 말이오?"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 P175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 서로를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세상에는 많은 현실이 있다. ‘다른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문제에 당신이 지나치게 빠져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현실이 있음을 꼭 기억해두라. 우리에게는 그냥 살아가는 우리 삶이 있다. 우리는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것이며, 그냥 비와 식탁과 음악과 종이 컵과 소나무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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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 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나무, 하늘, 달,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 - P38

글쓰기에 이런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우리는 모든 불안을 잠재우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가쓰는 글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P38

어떤 것이 이상적인 글쓰기인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정보가 부족해서 자신이 쓴 글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라. 내가 엘크톤을 둘러싼 들판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말한 것은 그곳의 지리학적인 정보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내마음이 그 들판 속으로 영원히 산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안다는 뜻이었다.
당신이 엘크톤에 사는 시인이나 트랙터 회사의 영업사원,
또는 서부로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당신의 글쓰기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가는 대로 풀어 놓아라. - P62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왜?" 라고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붓도록 해야 한다. ‘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것은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 낼 정도로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공통된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 P71

글쓰기에서 우리가 살았던 장소와 그 공간을 채우던 사물들의이름을 불러 주고 그것을 우리 삶의 세부사항으로서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알부퀘르크 콜 가에 위치한 어떤 차고 옆에서 살았고, 시장을 볼 때는 리드 가로 갔었다. 그해 이른 봄 이웃에 일치감치 사탕무를심은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탕무가 빨갛고 푸른 잎사귀를 피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인생의 모든 면들에 대해, 한 모금의 - P84

물, 식탁에 묻어 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버리는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할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며 우리가 펜을 쥐고 자리에 앉는 이유이다. 우리가 삶의 세부사항을 묘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을 주장하는 문명의 이기, 우리를 대량학살하려는 원자폭탄 같은 무자비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함이다. - P85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작품 진행을 하고 있을 때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은 글에 좋은 영향을 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17세기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바쇼는 "나무를 알고 싶으면, 나무한테 가라"고 말했다.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 - P100

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게하라.
위대한 선승인 도겐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 P101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비우는 공기......, 이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 하고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 P107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걷다가, 내가 아는 식물들인 산딸나무나 개나리를 보면 그 장소에 더 깊은 친근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느끼는 기분은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것만 같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William Carlos Willams의 시를 읽다 보면 그시인이 나무와 꽃 하나하나를 얼마나 특별하게 다루는가를 알게 된다. 그의 시에는 치커리, 아카시아, 포플러, 마르멜로, 노랑 데이지, 라일락 등이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바로 당신 코앞에 있는 것을 쓰라고 말했다. - P121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활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이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비전을 갖춘 작품만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또 다시 책속으로(물론 좋은 책 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밝혀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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