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
1979년생.
2012년 소설가가 되었다.
2015년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와 장편소설 「거짓말」을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 여행은 더. 그러다 2007년 분주하지 않은 방식으로첫번째 외국 여행을 했다. 뮌스터, 카셀, 뒤셀도르프, 베니스에머물렀다. 2011년 파리에 스튜디오를 빌려 한 달을 살면서 ‘사는 여행‘에 눈을 떴다. 2016년 석 달을 베를린에 살았다.

7월 1일, 나는 인천에서 에어프랑스를 타고 샤를 드골로 가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 비행기였고, 열 시간 후쯤 샤를 드골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 후쯤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렇다. 내 최종 목적지는 베를린이었다.
베를린으로 가는 항공권을 알아보기 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수도이고, 또 글로벌 아트 신의 주요 영토(?)이고 등등.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글로벌 아트 신‘이 창출해내는 수요라고 해봤자 인기있는 관광지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하잘것없을까 싶지만.....
대한항공을 타고 가기로 하고 해당 사이트에 접속을 했는데, 첫번째 난관, ‘베를린‘이라고 목적지를 입력하니 쇠네펠트와 테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쇠네펠트보다는 테겔이 큰 공항인 것 같아 테젤을 선택. 그다음에는 어느 도시를 경유해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베 - P7

틀린에 가기 위해서는 파리나 런던, 모스크바, 비엔나, 프랑크푸르트, 뮌헨, 암스테르담, 헬싱키, 두바이 등을 거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 역시 베를린행 항공권을 예약하다 알았다.
잠시 머물다 가기에 어떤 도시가 가장 이상적일까? 아니면 며칠 머물기에 적당한 도시는 어디일까? 둘 다 바보 같은 질문이다. ‘가장 이상적‘ 이라는 건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를 것이며, ‘적당한‘이라는 형용사 역시부적절하다. 5년 전 나는 ‘그런‘ 도시로 ‘모스크바‘를 선택한 적이 있다.
원래는 모스크바에서 3일인가 스톱오버를 하려고 했었다. ‘스톱‘이면서 ‘오버‘다.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의 어느 곳에서 잠시 머물기, 단기 체류. 그 ‘스톱오버‘라는 개념을 그때 처음 알았는데 그게 이상하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했다. ‘스톱‘이면서 ‘스톱‘으로 있지 못하는 그 상태가, 그 불완전함이, 그 약간의 구속과 자유가 같이 있는 상태가. - P8

나는 파리에서 한 달을 머물 예정이었고, 내가 자발적으로(그리고 독립적으로) 선택한 거의 첫 여행이었다. 경비가 충분하지 않았고(아니, 빚을 낸 참이었다. 항공권에서부터 숙소 비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행 경비를그렇게 충당하기로 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래서 파리행 직항을 타지 않고 다른 도시를 경유하기로 했던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3일을 보내기로하고 문제의 ‘스톱오버‘라는 개념을 활용하기로 했던 것인데,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언어 문제.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말을 들었고, 알파벳이 아닌 키릴문자로 표기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모스크바 스톱오버‘를 ‘모스크바 환승‘으로 바꿨다. 그러니까 단기간 체류가 아니라 단시간 체류. - P8

결과적으로 너무 잘한 일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의 직원들은 내가 세상에서 만나본 사람들 중 손에 꼽을 만하게 불친절했다. 어떤 악의가 있다고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여권을 펴는 것이나 항공권을 확인하는것조차 귀찮아했고, 다소 신경질을 부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게 또웃겼던 것이 나한테 부리는 신경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 신경질의 대상이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모스크바 공항인지, 아니면 모스크바라는 그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단단히 삐뚤어져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런 삐뚤어짐을 귀여워해줄 수도 있지만그때는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어쩌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었고,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잘못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었다. - P9

모스크바 공항은 황량했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여기서 나 하나쯤이야 잘못되는 건 아주 간단한 일로 보였다. 모종의 위험한 기운. 그런게 흐르고 있었다. 2011년 9월의 모스크바 공항에는 이게 나의 기우가아니었던게 실제로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귀찮아 하면서 동시에 신경질을 부리던 한 직원이 탑승 게이트를 잘못 알려줘서. 그래도 길게 늘어진 초록색 톤의 바카디 광고는 무척이나 근사했다. 제대로 된 탑승 게이트를 찾아 헤매던 중 멈춰서 사진을 찍었을 정도였으니까.
당시는 기분이 꽤나 좋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게 웃긴다. 모스크바 공항의 그 이상한 황량함과 사람들의 기괴한 불친절이. 그래서 그때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고는 내가 아는, 혹은 알게 된 사실을 그 모스크바적 상황에 덧붙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 핀란드에 가면 ‘클럽 모스크바‘라고 하는 카페(운 - P9

10영자는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구현된 분위기가 내가 보았던 그 ‘러시아적 분위기‘일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든가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간파리에서 한 달을 ‘살았다‘. 6구와7구 사이에 있는 동네에 스튜디오형 숙소를 빌려서 장을 봐서 요리 비슷한 것을 해먹고, 꽃을 사서 꽂고, 빨래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가끔은 향을 피우거나 초를 켰다. 그리고 미슐랭에서 만든 세 종의 지도를 용도와 크기별로 사서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내가 좋아했던 스폿 몇 군데를 반복해서, 프레지덩 윌슨에서 이에나로 이어지는 거리, 들라크루아아뜰리에가 있는 광장, 파시의 작은 백화점, 자드킨 뮤지엄이 있는 거리, 오스카 와일드가 죽기 전에 묵었던 삼류 호텔(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언저리, 몽소 공원 근처, 다니엘 뷔랑의 설치가 있는 팔레 루아얄 뜰, 가라테를 연마하는 중년 남자가 있는 튈르리 공원의 그곳,
세르주 갱스부르 집이 있는 거리, 센강변의 볼테르 거리, 갈리마르 출판사앞 100년 된 굴집...... 이런 식으로,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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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장옥거리에서부터 산책을 시작했다. 1층은 가게 2층은 가정집으로 꾸려진 전형적인 주상복합건물로 이루어진 거리다. 일제는 진해 군항으로 만들면서, 이렇게 건물들까지 획일적으로 짰던 것이다. 내가 바삐 도로를 오가며 건물을 사진에 담자, 엄마가 한참 보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1960년대만 해도 이런 거리가 진해 곳곳에 있었어. 내겐 너무 익숙한풍경인데, 네겐 낯선가보구나. 익숙한 것들도 스러져가면 어느 순간 낯설어지고, 더 희귀해지면 아무도 그 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마는가봐. 하기야.... 사람도 그렇지."
나는 마지막 말을 잡아챘다. - P81

"사람도 그렇다고요?"
"응. 늙는다는 건 낯설어진다는 거야. 그리고 끝내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지."
"하나님이 가르쳐주진 않으시나요?"
엄마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앞서 걸었다.
"안다고 다 알려주시진 않아." - P82

단 한 번도 이야기가 바뀌지 않은 적이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머릿속에 구상을 완벽하게 했다고 판단한 후 집필을 시작하지만, 문장들을만들어 밀고 가다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갈림길을 만났다. 길이 하나뿐이라고 여긴 대목에서 두 갈래 세 갈래 네 갈래 길을 만나면, 처음엔당황하고 그다음엔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기서 예상하지 않았던길로 들어서면, 미리 잡아놓은 구상들이 상당 부분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바꾸지 않으려고 버텨보지만, 결국 바꾸게 된다. 갈림길이생겼다는 것부터가 첫 구상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니까.
때론 갈림길이 작품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작품 밖에서 던져질 때도 있다. 『엄마의 골목은 후자였다. - P97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20년 아침 집필을 이어왔다. 클래식에 정통한 작가들도 많지만 내겐 평생 이 곡이면 충분하다 여겼다.「거짓말이다」를 쓸 때는 첼로 대신 빗소리를 택했다. 선율조차도 문장을 만들 때 부담스러웠던 걸까. 유튜브를 살피다가 백색소음 중에서 빗소리만 두 시간 남짓 모아놓은 걸 발견했다. 그걸 두 번 반복해서 들으며소설을 썼다. 맹골수도 근처 바다로 떨어지는 빗줄기들, 동거차도와 서거차도의 바위들을 두들기는 빗줄기들, 팽목항 등대 곁에서 하염없이바다를 바라보고 선 이들의 어깨를 때리는 빗줄기들, 그들을 상상하며소리를 문장으로 옮기는 내 목덜미를 흔드는 빗줄기들. 오전 네 시간을쓰고 나면, 온몸이 흠뻑 젖는 기분이 들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샤워부터 했다. 아무리 씻어도 몸에서 갯비린내가 났다. - P142

이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의 주어는 엄마다. 어떤 이는 이 글이 기행문이되기엔 부적합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소설로 삼기에도 어울리지않는다고 할 것이다. 자전소설쯤으로 타협을 보려 할까. 어떻게 불리더라도 모든 문장이 엄마를 중심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겪은 사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상상한 것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느낀 것들도 엄마를 이룬다. 그 전부가 엄마다. - P157

잠든 엄마 얼굴을 머리맡에서 가만히 내려다봤다. 죽은 엄마 얼굴도 이러할까. 잠든 얼굴과 죽은 얼굴은 어떻게 차이가 날까. 질문 두개가 연이어 떠올랐을 때, 엄마가 눈을 떴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자, 엄마는 처녀처럼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죽음이란 단어를 걷어내기라도 하듯.


엄마는 가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곤 했다.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체했다. 새벽 기도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난 엄마가 잠든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볼 때,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뒤에 서서 내 등을 쳐다볼 때, 허겁지겁 밥을 퍼 나르는 숟가락과 내 입을 볼 때도 있었다.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닦는 나를,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나를, 책을 읽는 나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를, 그런 나를 엄마는 바라보았다. 하염없이‘란 네 글자를 이해하는 찰나! - P171

엄마가 죽고 아들이 죽은 후에도 골목은 남을 것이다. 100년 동안 진해도 많이 바뀌었다. 부산 쪽으로 확장된 평지에 들어선 아파트들을 보면, 어린 시절 논밭이던 창원의 들판에 쑥쑥 들어서던 아파트들에 놀라던 기억이 떠오를 정도다. 그렇게 새로운 동네는 앞으로도 만들어지겠지만, 엄마가 걸었던 골목, 내가 걸었던 골목, 엄마와 내가 함께 걸었던골목은 또 그것들대로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 P174

"책 내고 그 질문 정말 많이 받았어요. 대답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했고, 그 답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런데 딱 맞는 정답은 나중에찾았어요. ‘함께 가만한 당신(최윤필, 마음산책, 2016)이란 책의 발문을쓰다가 이 문장을 적은 다음, 「거짓말이다』를 쓴 이유가 바로 요거네 하고 깨달은 겁니다."
"어떤 문장인데?"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일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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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내가 한자를 쓴다거나수학 문제를 풀 때, 반복한 횟수만큼 동그라미를 공책에 그리게 하곤 그가운데 빗금을 치도록 시켰다.
헤아려보니 빗금 친 동그라미가 50개에서 60개다. 한 곡을 50회에서 60회씩 매일 불며 연습한 것이다.


하루 반짝 글을 잘 쓴다고 장편작가가 되진 않는다. 꾸준히 수준 이상을 매일 써낼 때 비로소 장편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다. 계획도를그리고 목표량을 정한 뒤 매일 채워나가는 일상을 나는 엄마에게서 배웠다. - P53

"어떤 잡음이었어?"
"읽는 인간이 아니라 쓰는 인간이 되자는 잡음. 남의 작품을 평하는 인간이 아니라 내 작품을 쓰는 인간이 되자는 잡음."
"그전에는 그런 잡음을 들은 적 없어?"
"잡음이야 늘 들렸죠. 하지만 예전엔 대부분 무시했어요. 잡음은 그냥잡스러운 소리에 불과하니까요. 그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오래듣고 또 들은 잡음은 달랐어요. 잡스럽게 끊기고 딴 소리가 섞여들수록더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비 내리는 바다가 바로 제 앞에 아침 7시 30분부터 펼쳐져 있어서 그랬던가봐요. 요즘도 독자들이 어떻게 소설가가되었느냐고 물으면, 바다가 저를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답해요. 독자들은 문학적인 비유로 받아들이겠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라 완전한 사실입니다. 바다가 저를 소설가로 만들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처럼비 내리는 가을 아침 바다가 저를 유혹한 거죠."
"바다의 유혹에 걸려들어 독자를 유혹하는 작가가 된 셈이네."
"네. 저 바다처럼 독자들을 유혹하고 싶어요." - P67

"소설을 쓰며 단련된 거니?"
"왜요?"
"시를 쓸 때 기억나? 스물여섯 살까지는 내가 아무리 네 두 발을 땅에붙여두려고 해도 훨훨 날아가려고만 들었어. 내 집에서 잠자고 일어나고 먹고 공부했지만, 네 눈동자는 늘 그 너머 어딘가를 향했단다."
"시인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럼?"
그건 차라리 새 풍경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의 마음이죠,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과연 치숙이 만든 ‘단추의 공간‘을 몇 개나 확인할 수 있을까. 치숙은 그 공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렸을지도모른다. 그렇지만 소설가인 나는, 힘닿는 데까지 확인하고 싶다. 그런데치숙과 나 사이의 매개는 엄마뿐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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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추는 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춤추고 싶어서다.

나는 더 춤추고 싶었으나, 신은 내게 "이제 그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만두었다.

나는 삶이고, 삶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신이다.
신은 감정이 깃든 아름다움이다.

바츨라프 니진스키

내가 말했듯이, 아무리 멀리 날아가는 새도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온다. 최대 수년간 땅에 발 한 번 딛지 않고 공중에서 잠자며, 같은종을 한 번도 보지 않으면서 홀로 바다 위를 나는 앨버트로스도 결국은 영겁의 서식지, 이들 모두가 태어난 바로 그곳으로 돌아온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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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거운 장롱과 서랍장을 뒤지러 침실로 향한다. 이 두 군데속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롱 안에는 낡고해진 티셔츠와 하도 많이 빨아서 형태를 잃어버린 바지들이 잔뜩들어 있다. 거의 다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집을 떠난 이후로 엄마를 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나에게 익숙한 건 옷에 밴 냄새다. 눈을 감고 옷감을 어루만지니, 침대에 나란히 누워 엄마가 내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다. 엄마를 향한 깊은 두려움, 그리고 똑같이 깊은, 엄마를 기쁘게 하려는 결의가 나를 채운다. 별들 사이를 오가는 빛처럼 엄마에게서 내게로 또 내게서 엄마에게로 흐르는, 너무 절대적이라 숨 막히는 우리의 사랑이. 엄마의 좀먹은 스웨터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로 적신다. 수년간 기억조차 나지 않던 숱한 추억이 순식간에 생생히 아른거린다. 바가노바 오디션을 봤던날, 스베타 이모가 합격 소식을 발표하자마자 나는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쌩쌩 내리쬐는 햇볕 아래 키 작고 통통한 엄마가 서 있었다. 그날 엄마는 하늘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왠지 흑곰처럼 어두워 보였고, 벌겋고 땀에 젖은 얼굴이었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 더 - P400

위 아래 한참을 서서 나를 기다렸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엄마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소리쳤다. "제가 해냈어요, 엄마를 위해서!" 그런 다음,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간 우리 모녀는 가판대 앞에 서서 스타칸치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때 우리는 그런 군것질을 할 돈이 없었고, 풍미 진하고 농염한 햇빛에 살짝 녹아 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내게 기적의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내 평생 가장 순수한 행복을 바로 그때 누렸다. 과거와미래를 통틀어서 내 인생의 가장 순수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해일처럼 나를 뒤덮으며 숨을 조른다. 어떻게 내가 엄마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입을 채 틀어막기도 전에 짐승의 울음소리가 내 목구멍을 타고 나온다. 나는스웨터를 비틀어 잡고서 엄마를 부르며 흐느끼고, 급히 들어온 스베타 이모가 나를 두 팔로 안아준다.  - P401

내 일에만 신경 쓰기에도 벅차게 삶은 이어졌다. ‘지젤‘로 데뷔한 후 나는 골절로 인해 파리에서 두 번째 시즌 대부분을 쉬어야 했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나를 한 조각씩 제자리로 돌리는 과정은 길고 예측할 수 없었다. 마침내 복귀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내 춤은 이전보다 더 나아졌고, 동시에 더 못해졌다. 전보다 나아진 부분은 명확했다. 나는더 이상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그러자 내 존재감은 나만의 것이 되어 더욱 자유로워졌다. 정식 교육이 다듬고 망쳐놓기 전의 어린아이들이 이렇다. 전문 무용수 중에 그 정도로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실비 길렘이 그랬고, 남자무용수 중에는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가 떠오른다. 이런 태도를허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극도의 예술적 진정성이라고 볼 수도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런 자질은무용수에게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특수성을 부여한다. 내가 무대에 복귀한 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월을 보내면서 얻은 게 바로 이것이었다. - P405

그러나 내 춤 실력은 예전 같지 않기도 했다. 거기에는 자유로운존재감 따위의 신비와는 거리가 먼 아주 간단하고 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끊어진 백금 반지를 다시 용접해 놓은 듯, 금이 갔던 내뼈도 겉으로는 멀쩡히 붙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해져 있었다. 내 점프는 이제 믿기지 않게 가볍지도, 경이롭지도 않았다. 테크닉 면에서 나를 돋보이게 했던 폭발적인기교도 이미 잿빛으로 바래버린 뒤였다.  - P405

여기서 잠시 명품 쇼핑에 별 관심 없이 살았던 그간의 세월을 후회했다. 내가 입은 샤넬 드레스는 발레단 의상 협찬과 함께 받은 선물이었다. 처음 파리에 왔던 그 주에 녹색 핸드백을 산 다음부터는아름다운 물건으로 나를 입증하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현실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에는 사물이 나를 받치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별것 아닌 머그잔이나 소파 같은 물건이 때로는 인간의마음보다 훨씬 굳건하고 의리 있고 믿음직스럽다. 내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칼라스처럼 내 상처를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감추고 대중 앞에 나섰을 텐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감독에게 계약 해지를당했던 그날 밤, 칼라스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보석을 한꺼번에 휘감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값비싼 보석이라고는 달랑약혼반지 하나뿐이었다. 나는 몇 분 동안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빼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끼고 가기로 했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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