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화는 자유주의-식민주의체제에서 수탈과 착취의 뚜렷한 분리를 통해 더욱 강화됐다. 이 국면에서 수탈과 착취는 서로다른 지역에 자리를 잡고 다른 인구집단에 배당된 형태로 나타났다. 수탈은 노예화되거나 식민화된 지역과 인구집단에, 착취는 이중으로) 자유로운 지역과 인구집단에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 분할은 그렇게 경계선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일부자원 채굴 산업은 식민지 예속민을 임금노동 형태로 고용했다.
한편 자본주의 중심부에 거주하는 피착취 노동자들 가운데에서 - P97

는 극히 일부만 당시 계속 진행 중이던 수탈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외관상 분리된 듯 보임에도 수탈과 착취는 체계적으로 중첩돼 있었다. 가령 값싼 식량, 의복, 광물, 에너지를 공급한 것은 주변부 대중의 수탈이었으며, 이것이 없었다면 식민 본국 산업 노동자의 착취는 수익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식민주의 시기에 수탈과 착취는 단일한 세계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서로 구별되면서도 상호 조율되는 축적 엔진들이었다.
그 다음 시대에 수탈-착취 결합체는 다시금 변천했다. 양차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시작돼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공고해진새로운 국가관리 자본주의 체제는, 수탈과 착취의 분리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완화했다.  - P98

말하자면 국가관리 자본주의에서 착취는 더 이상 수탈과 분리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탈과 착취는 한편으로는인종화된 산업 노동 내부에,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 식민 사회의 시민권을 둘러싼 타협 내부에 접합됐다. 그럼에도 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각자의 ‘순수한‘ 변형이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끈질기게 지속됐다. 상당수 주민은 여전히 순전한 수탈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유색인이었다.
다른 이들은 착취‘만‘ 당했으며, 그들은 유럽인이고 ‘백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요소가 있었으니, 일부대중이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혼종적 사례가 출현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가관리 자본주의 아래에서 소수에 머물렀지만, 이후 도래할 세상의 전조였다. - P101

여기에서 주범은 부채다. 예를 들면, 국가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압력 아래, 무방비 대중으로부터 부를 빼앗아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려는 투자자와 결탁한다. 실제로 농민이 자산을 박탈당하고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대기업의 땅뺏기가 치열해지는것은 대개 부채를 통해서다. 하지만 희생양은 이들만이 아니다.
포스트 식민 사회에 사는 사실상 모든 무자산 대중이 국가부채를 통해 수탈을 당한다. 예컨대 국제 채권자에게 담보를 잡히고
‘구조조정‘의 덫에 갇힌 포스트 식민 국가는 자유화 정책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발전주의를 폐기하고, 대기업 자본과 글로벌 금융에게 부를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구조조정은 부채를 줄이기는커녕 재조정만 할 뿐이며, 국내총생산(GNP대비 채무상환비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다. 그 결과 수많은 세대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수탈당할(착취까지 당하게 될지여부와는 상관없이) 운명을 타고나도록 한다. - P102

그리하여 착취와 수탈이 교대로 이어진다. 게다가 중심부에서는 (주변부와 마찬가지로) 밑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인해 법인세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국고가 바닥이 나 더 심한 ‘긴축‘이 필요해지게 되며, 결국 악순환이 벌어진다. 대기업에 계속 선심을 쓴결과, 어렵게 획득한 노동권은 뼈대만 남고 한때 보호받던 노동자는 폭력에 방치된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역시 지구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값싼 물품을 구매하는 처지다. 이런 조건 아래에서 소비자가 지출을 지속하려면 소비자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살이 피둥피둥 찐 투자자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시민-노동자를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극도로 수탈적인 서브프라임 대출이나 고금 - P103

그리하여 현 체제에서 우리는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그리고 정치적 주체화의 새로운 논리와 만난다. 종속적 수탈 예속민과 자유로운 피착취 노동자를 확연히 가르던 과거의 분할대신에 연속체가 등장한다. 한쪽 끝에서는 무방비 상태의 피수탈 주체의 무리가 증가하는 반면에, 다른 쪽 끝에서는 착취‘만‘
당하는 주체인 보호받는 시민-노동자 계층이 감소한다. 그리고그 중간에는 새로운 등장인물, 즉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가 자리한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너무도 취약한상태인 이 새 등장인물은 더 이상 주변부 주민이나 인종적 소수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표준적 존재가 된다. - P104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공적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 소수집단 밀집지가 특히 공장 폐쇄의 충격을 받아 일자리를 잃었을뿐만 아니라, 덩달아 세입원도 사라졌다. 이에 따라 학교, 병원, 기본 인프라 보수 등의 예산마저 사라졌고, 결국은 미시건주 플린트나 뉴올리언스의 로우어 나인스 워드" 같은 곳이 붕괴에 이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차별적 판결과 가혹한 감금, 강제 노동, 사회적으로 용인된 폭력(경찰에 의한 폭력을 비롯한)에휘둘리던 흑인은 대거 징용당하는 신세가 됐다. 이른바 비판적인종이론에서 ‘감옥-산업 복합체라 명명한 곳으로 말이다. 이들은 소량의 크랙 코카인을 타깃으로 삼은 ‘마약과의 전쟁‘ 탓에수용 한계에 도달한 감금 시설에 갇혀 있는데,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실업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렇듯 수탈/착취 결합체내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즐기는 수탈 탐식가인 금융화된 자본주의 안에서 인종주의는 건재하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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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다 가난해도 잘 살아갈 줄 안다는 긍정적인 덕목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노력, 창의성, 그리고 저렴한옷을 찾아내는 예리한 안목이 필요했다. 존스 바겐 스토어에서 별 소득이 없으면 일요일 아침마다 리빙턴 스트리트와 오처드 스트리트의 작은 가게들을 찾았다. 에식스 공설시장에서 멀지 않은 이 거리에서는 야물커를 쓴 남자들이 물건을 팔았다. 1달러 98센트에 산 운동화, 99센트에 건진 단색 긴팔 티셔츠 같은 것은 자랑해도 좋을 수확이었다.
우리는 함께 세계를 새로이 발명하고 있었다. 뮤리얼은 내게 가능성들로 이뤄진 세계를 열어줬고, 그건 유도라의 서글프고도 우스운 눈빛과 느긋한 웃음이 내게 남긴 유산처럼 느껴졌다. 나는 유도라에게서일을 처리하는 방법, 다이크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방법, 사랑하고 살아가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도 솜씨 좋게. 나는 유도라에게서 배운 것을 뮤리얼과 함께 실현해내고 있었다. - P362

뮤리얼과 함께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가 서로에게 주었던 확실성, 폭풍 속 작은 틈새에 함께 깃들어 있던 감각, 마술과 근면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던 경이로움이 기억난다. 이 아침이, 이 삶이, 영영 계속될 수 있을것 같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뮤리얼의 굽은 손가락과 깊은 눈빛과버터 같은 피부의 체취가 기억난다. 바질 향. 우리 사랑의 개방성을 ‘사랑‘이라 불리던 모든 것에 잣대로 들이댔던 것이 기억난다. 훗날 나는 그것이 모든 연인 사이에 오고가는 정당한 요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뮤리얼과 나는 다정하게, 오래, 잘 사랑했지만, 우리의 강렬한 사랑이 언제나 현명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해줄 사람은 없었다.
둘 다 너무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려 있었기에 마침내 찾아낸 사랑 - P362

이 전지전능하다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이 사랑이 아직 시작에 불과했던 나의 고통과 분노에 언어를 부여해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사랑은 뮤리얼이 세상을 마주하고 일자리를 구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우리가쓰는 글을 해방시켜줄 거라고, 인종주의를 치료하고, 호모포비아를 종식시키고, 사춘기의 여드름까지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음식만 있으면 지금 느끼는 온갖 고통은 물론, 오래 지속된 결핍의아픔까지도 치료될 거라 믿는 굶주린 여자들이었다. - P363

1955년의 그 황금빛 여름, 우리는 바빴고 또 빛으로 가득했다. 평일이면 나는 도서관 일을 했고 뮤리얼은 동네 반대편에 사는 믹과 코딜리어를 위해 침대를 만들었다. 주말이면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중국서예를 공부하고 해변과 바에 놀러 다녔다.
헬렌 언니의 시립대학교 졸업식에서는 조나스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발표했는데, 헌터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중 상당수가 소아마비에서 비롯된 다양한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었던 탓에 이 소식은 내게 개인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삶에는 각기 다른 수많은 조각들이 있었다. <제트>는 흑인 시사 잡지를 표방하는 여성지였는데, 나는 드물게 브롱크스에 갈 때마다 헨리형부로부터 잡지를 빌려서는 다운타운까지 돌아오는 내내 지하철에서 열심히 읽은 뒤 내릴 때 슬쩍 옆자리에 두고 왔다. 도서관에서는 내가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 그해 선풍적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인 앤 모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을 언급했다. 그 책과 내 작품은 가리비와 고래만큼이나 딴판이었는데 말이다.  - P364

도서관 책들로 부족한 독서는 4번 애비뉴에 있는 헌책방들에서 꾸준히 책을 거래하며 채웠다. 뮤리얼도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는데,
스트랜드 서점에서 바이런이나 거트루드 스타인의 헌책을 산 후 일주일 뒤 좀 더 싼값으로 같은 거리에 있는 파인 서점에 팔았다. 그 시절 책은 지금만큼 흔하게 넘쳐나는 것들이 아니었다. 한번은 린드버그 책 특별판을 넘기고 페이퍼백 열 권, 비주류 시인들의 하드커버 시집 두 권,
거기다가 10센트짜리 <매드> 잡지 창간호까지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6월, 린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됐다.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뮤리얼과 나는 비와도 조심스레 연락을 이어왔는데, 린은 문제의 새해 전날 파티에서 처음 만났던 비의 전 연인이었다. - P365

그해 가을, 뮤리얼과 나는 뉴스쿨대학교에서 미국 현대시 강의를수강했고 나는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느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때때로 눈앞이 어찌할만큼 심한 두통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또 나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글을 쓰고 꿈을 꾸었지만 직접 묻는말에 답하거나 무언가를 지시할 때 말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뮤리얼과함께하는 생활이 계속될수록 점점 그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게레아와 대화할 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 역할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껏 이야기할 기회가 잘 없었으며,
나는 상대가 하고픈 말에 진심으로 흥미를 보이며 열심히 듣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을 기억해뒀다가 남몰래 타인의 삶을 곱씹다보면 나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뮤리얼과 나는 대체로 직관, 그리고 끝맺지 않은 문장으로 소통했다. - P372

그리고 나는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뉴스쿨대학교에서 듣는 강의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나는 공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이 고등학교를 마쳤음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못했다. 나는 사람은 삼투압처럼 지식을 흡수하며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면밀히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는 거라고 믿으며 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가족의 집에서 생존하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대학교를 그만둘 때, 나는 대학 생활 1년이면 어지간한 흑인 여성들보다는 많이 공부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뮤리얼이 뉴욕에 오자 나는 내가 당분간 멕시코로 돌아갈 일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학위를 얻고 싶어졌다. 마땅한 기술이 없는 흑인 여성이 구직 과정에서 겪는 현실도 이미 체험해본 터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는했지만, 언젠가는 남의 명령을 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갖고 싶었다. 화가 날 때 몸을 덜덜 떨지도, 성이 날 때 울지도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게다가 시립대학교는 여전히 학비가 공짜였다. - P373

누가 내게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기분이 된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손을 뻗어 뮤리얼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손은내 손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누가 자신을 나에게 견주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랑하는 나의 뮤리얼이라니,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의 삶은 상호 탐구라고, 사랑의 힘을 통해 점점 나아지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책에 담긴 그의 냉정한 서술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뮤리얼의 눈에 우리의 결합은 점점 나의 성취, 그리고 그 성취 때문에 두드러지는 그의 무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뮤리얼의공책은 우리의 삶이 공통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우리의사랑도, 뮤리얼이 바라본 진실로부터 그를 보호해줄 수 없다고 분명히이야기해주고 있었다. - P380

답답한 공기 속에서 담배연기와 음악, 머리에 바른 포마드 냄새가향이 피어오르듯 뒤섞이는 가운데, 앞 공간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여자들, 그리고 안쪽 댄스플로어에서 피시를 추는 여자들 틈을 지나고 있노라면, 내가 아웃사이더인 것이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흑인 여성인 내가 지난주에도, 다음 주에도, 이 수많은 얼굴속 나를 닮은 얼굴을 하나도 마주치지 못했을 때는, 내가 바가텔에서 아웃사이더인 것이 내가 흑인이라는 사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지극히 잘 알 수 있었다.
바가텔이라는 제한된 사회는 이 공간을 낳은 더 큰 사회의 부침을그대로 닮아 있었다. 사회성을 발산할 곳도, 함께 어울릴 곳도 없는 외로운 다이크를 상대로 물을 탄 술에 바가지를 씌워 파는 바가텔이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 P382

평소에 나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의미를 모른 척 흘려보냄으로써 자기방어를 했다. 그런데 도티 도스가폴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는 사실에 초조했기 때문인지 이 화제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멋지게 탄 내 피부를 놓고 끝없이 떠들어댔다. 자기 팔을 내 팔 옆에 대본다든지, 옅은 색 금발을 설레설레 저어대며 자신도 햇빛을 받으면 화상을 입는 대신 나처럼 피부가 그을렸으면좋겠다든지, 이렇게 잘 그을리는 피부를 가진 내가 운이 정말 좋다느니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질려버렸고, 그 뒤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에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성이 났다.
"여태까지 내 자연스러운 검은 피부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고 무슨수로 참았던 거야, 도티 도스? 대체 어떻게?"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뮤리얼만 이해한다는듯 희미하게 풉 웃었고, 곧 모두가 다행스럽게도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나는 속으로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그 일을 영영 잊지 않았다. - P387

레즈비언 바를 찾을 때마다 나는 다른 흑인 여성을 마주치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바람을 입 밖에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흑인 여성들은 이 나라로 온 지 400년이 되도록 서로를 짙은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학습해왔던 것이다. 동성애자 세계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흑인 레즈비언은 대부분 벽장 안에 있었는데, 우리는 인종주의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남느라 마주하는 수많은 다른 직접적인 위협들을 알고 있듯 흑인 공동체가 우리의 위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흑인 레즈비언들은 대부분 백인 중심 세계에서 흑인이고, 여성이고, 동성애자로살아가면서 벽장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고작 바가텔에서 춤을 추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이상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터프한 모습이어야 했다. 나는 때때로 그들의 세련된 태도, 옷차림새, 매너, 차, 그리고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펨들 때문에 기가 죽었다. - P388

내가 바가텔에서 보는 흑인 여성들은 대개 역할 수행에 열을 올렸고, 그 모습을 보면 나는 겁이 났다. 나 자신의 흑인성을 거울로 비춰 보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고, 그 가장 속에 담긴 진실 때문이기도 했다.
힘과 통제를 갈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적의 복장을 걸친 채로 백일하에 드러난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방식으로 터프했다. 실제로는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기보호 본능이 그들에게 터프하게굴어야 한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백인 중심적으로 왜곡된 미의 기준 때 - P388

문에 ‘‘ 역할을 하는 흑인 여성들은 바가텔에서 인기가 없었다. 또 부치들은 누가 제일 ‘매력적인 펨‘을 팔에 끼고 다니는지를 놓고 끊임없이경쟁했다. 여기서 ‘매력‘을 정의하는 것은 백인 남성들의 기준이었다.
나에게 바가텔에 혼자 가는 건 마치 변칙적인 여성 금지구역으로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펌‘ 행세를 할 만큼 귀엽지도 수동적이지도않았으며, ‘부치‘로 통할 만큼 험상궂지도 터프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전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은 동성애자 공동체에서조차도 위험할 수 있었다. - P389

펠리시아와 나만 빼고, 바가텔의 흑인 여성들은 몸에 걸칠 수 있는권력의 상징들을 모조리 과시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라이언이나 트립이 평일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금요일 밤마다값비싼 옷을 입은 여자들을 대동하거나, 홀로 이곳에 나타날 때는 관심과 존경을 요구했다. 그들은 돈이 많았고, 옷을 빼입었고, 자기관리에능했고, 컨버터블을 몰았으며, 자기 친구들한테 술을 몇 잔씩이나 돌렸고, 대체로 사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때때로 그들을 알아보는 가드 없이는 입장을 거부당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히피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레즈비언 세계에서 히피였다. 우리 중 여럿이 죽거나 실성했고, 우리 중 여럿은 우리가맞서 싸워야 했던 수많은 전선에 의해 왜곡됐다. 그러나 살아남았을 때우리는 강해졌다.
그 시절 내가 빌리지에서 만난 흑인 여성들은 비록 금요일 밤 바가텔의 머릿수로만 존재했을지라도 모두 내 생존에 크건 작건 기여했다. - P389

흑인이건 백인이건 키키건 부치건 펨이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제각기 다른 비율로 공유하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아래서 감히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우리는 그런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도 여성으로 정체화한 여성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 노력했으며, 우리가당면한 경계 너머에 그런 말들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는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는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법도 했다. 기우뚱하게나마 하나가 되어 우리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시도는 양철 호루라기로 디누줄루 전쟁가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방불케 했으므로. - P390

중요한 건, 우리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스스로에 관해 느끼는 그 무엇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건 없건, 연료를 새로채우고 날개를 점검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만 했다.
결핍과 엄청난 불안정성의 시기에 공간이란, 우리가 애초 그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된 본질보다는 의미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때로 후퇴가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카페에 죽치고 앉아 단 두 단어도 쓰지 않은 채자기 작품을 죽어라고 논하는 사람들. 여성 그리고 자신의 여성성을 맹렬히 혐오하는 남성만큼이나 정력적인 레즈비언들. 1950년대 빌리지의 바, 커피숍, 거리는 애써 얻어낸 집단을 거역하길 죽도록 두려워하는비순응주의자들로 넘쳐났다. 결국 이들은 집단의 욕구와 개인의 욕구사이에서 괴리를 겪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특정한 장소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공간이, 위로가, 고요가, 미소가, 비판하지 않는 태도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 P391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만으로는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각자만의 욕구와 목표, 다양한 여러 동맹을 지니고 있었다.
자기보호 본능은 우리가 한가지의 쉬운 정의, 좁은 의미의 하나의 개별 - P391

적 자아에 머무를 여유가 없다고 경고해줬으므로 진정한 나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각각 바가텔, 헌터대학교, 할렘 업타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얽매인 채로 성장했다.
우리의 자리란 그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 차이라는 집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배움 앞에서 겁쟁이가 된다.) 매일같이 살아남음으로써 얻은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은, 두려움이 반드시 무력함을 가져오는 게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반드시 같지 않아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950년대 빌리지의 레즈비언 바를 드나들던 흑인 레즈비언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았으나 서로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검은빛을 좇다 보면 스스로의 외로움이, 스스로의 약해진 힘이 거울처럼 비춰 보일 테니까. 우리 중 몇몇은 거울과 이를 외면하는 시선 사이의 간극 속에서 죽어버렸다. - P392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무거운 슬픔에 젖어 어둠 속에서 돌아눕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문득 부모님 집에서 보낸 마지막 해가 떠올랐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머리를 펴려고 동이 트기도 전에 부모님 침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어둑한 아침 빛 속에서 내가 소리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어머니가 한참 전에 잠에서 깨, 내가 적막한 집 안을 돌아다니며 십 대다운 일을 하고 있는 기척에 귀를 기울였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의 눈이 잠시 마주쳤고, 우리 사이에서영영 사라질 줄 모르는 적대감에 대한 어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무거운것인지를 내가 완연히 느낀 건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짧고도 날카로우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무치던 순간이었다.
나는 침실 문손잡이를 쥐고 서 있었다.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나, 문득 첫 월경을 한 날이 떠오르는 바람에 울음이 터질 것같았다. 나는 고데기를 품 안에 숨긴 채 침실을 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 P399

나는 점점 다른 곳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싶었다. 뮤리얼과 함께하는 삶이 이전만큼 목가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도 나는 여전히 그것이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만들고자 헌신할 만큼 소중한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뮤리얼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얻은 것만 같았다. 더 잘 잤고, 가운데 방 소파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13302오래지 않아 체구가 크고 무뚝뚝한, 체조용 재킷 차림에 꼿꼿이 쳐든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레이스 달린 간호 모자를 쓴 토니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일요일 오후면 토니는 직접 만든 블린츠와 차트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왔고, 우리는 그 차트 위에다가 훗날 우리가 함께 만들 여성들의 세계에서 가능해질 상호관계들을 그려보고자 했다. - P400

나는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심정으로, 깨어 있지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지도않은 심정으로, 창밖의 7층 높이의 허공과 옆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위 사이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갇힌 채 덫에 걸린 야생동물처럼 뻣뻣이누워 있었다. 출구가 없었다.
뮤리얼과 함께 소파에 있는 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통과 분노는덜했을지도 몰랐다. 질과 나 사이엔 아직 풀리지 않은 앙금이 너무 많았다. 질은 뮤리얼이 택할 수 있는 잔인한 흉기였고,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에서. 그것도 옆방에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어머니 집에 살던, 눈물 대신 코피를 터뜨리곤 하던 그 시절이후로 느낀 적 없던 새빨간 분노의 너울이 내 의식을 온통 뒤덮었다.
모직 담요를 입에 물고 짓씹으며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죽일상대가 없었다. 나는 절박한 자기보호 본능에 의지해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 P401

거리도 하늘도, 모두 분노의 너울로 뒤덮여 있었고, 그 너울의 끄트머리에 링으로 고정된 금속볼트는 내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브롱크스의 도서관으로 출근해야 했다. 다가오는 열차 앞으로 내가누군가를, 어쩌면 나 자신을 밀어버릴지도 몰라 두려운 나머지 나는 애스터 플레이스 지하철역 뒷벽으로 다가가 섰다.
모리스 애비뉴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눈앞이 시뻘겋고 손은벌벌 떨렸다. 배신당한 고통과 날것의 분노가 주는 고통이 뒤섞였다. 뮤리얼을 향한 분노, 질을 향한 분노, 둘 다 죽여버리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한 분노. 열차는 34번가에서 잠시 지연되었다가 다시금 쏜살같이 나아갔다. 내 안에 들끓는 독을 내보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다.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사이, 번뇌는 늘지도줄지도 않은 그대로였다.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역쯤 왔을 때 코피가 쏟아졌다. 누가 티슈를 건네주고 자리까지 양보해주어서, 자리에 앉은 채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을 스크린 삼아 번득이는학살극의 장면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도착할 때까지 애써 눈을 뜨고 버텼다. - P402

그 뒤로 며칠간, 내가 고통 외에 느낀 감각이라고는 마치 용서받을수 없으며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만 같은 죄책감과 수치심뿐이었다. 자해. 고통을 표출하는 쿨하지도 힙하지도 않은 방식. 그 밖에는 그 어떤 열정도 느낄 수 없었다.
뮤리얼과 나는 질에 대해서도, 사고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입 밖에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다정했고,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침묵으로 수긍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소 구슬펐다.
질은 떠났고, 훗날 전혀 예기치 못했던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게된다. 질은 이곳에서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중요한 건 오로지그가 상징했던 무언가였다. 지금, 대화가 우리 사이에서 그 무엇보다도중요한 이 순간 뮤리얼도 나도 입을 다물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그무언가는 과거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고, 우리는 둘 다극도로 혼란스럽고 두려운 나머지 새로운 언어를 시도할 수 없었다. - P404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몸을 밀착하고 복잡한 미뉴에트를추고 있는 두 파트너였다. 둘 중 누구도 춤을 그만둘 수 없었다. 우리 둘다 우리의 작고 빠듯한 춤의 분위기나 스텝을 바꿀 만한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파괴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고통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사는 건 심지어 편의를 위해서조차도 아니었고, 다만 우리 둘 다 서로를 놓아줄 수 없으며, 파괴적인 접촉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해서일 뿐이었다. 이 관계를 끝내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질문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이제 사랑은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었다.
그즈음 뮤리얼은 6번가와 애비뉴 B에 있는, 니키와 존이 얼마 전부터 세 들어 살기 시작한 지층 아파트에서 종일 머무르다시피 했다. 우리둘만 있는 때면 내 입에서 앙심과 비난이 야생 개구리처럼 튀어나와 반응 없이 시큰둥한 그의 머리 위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 P406

내 심장은 내가 머리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삶은 끝났다. 존이 아니더라도 뮤리얼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끈질기게 생각했고, 꿈을 꾸면 살인과 죽음과 지진의 장면들에 시달렸다. 정신의 불협화음이 뇌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분명 내가 모든 걸 해결할 수있는, 헤어짐 때문에 느끼는 번뇌에 종지부를 찍고 뮤리얼에게 이성을찾게 해줄 다른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를 설득해 이 모든 게 불필요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알려줄 수만 있다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 P407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운 분노가 눈꺼풀 속에서 지끈거릴 때도 있었다. 뮤리얼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나는 걷잡을 수 없이휘몰아치는 정서적 태풍에 휩싸인 채 그와 존을 찾아 빌리지의 거리를헤집고 다녔다. 증오. 나는 제정신인 사람이면 감히 뚫고 들어오지 못할만큼 짙은 고통과 분노의 구름에 둘러싸여 동트기 전의 여름 거리를 겨울바람처럼 쏘다녔다. 그렇게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내 쪽으로 다가오지않았다. 그 점이 때로는 아쉬웠다. 누굴 죽일 핑계가 간절했으니까. 머리를 도려내는 것 같던 두통은 사그라들었다. - P408

우리가 알았던 것을 알고 우리가 나눈 것을 나눈 뮤리얼과 내가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두 여자가 함께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그어떤 두 인간이 과연 함께할 수 있을까? 또다시 다른 누군가와 맺어지길 시도하며 느낄 아픔보다는 뮤리얼에게 매달리는 아픔이 더 견딜 만할 것 같았다.
살면서 겪었던 고통과 여태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온갖 고통까지 회색 박쥐처럼 내 머리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것들이 내 눈을 쏘고, 목구멍에, 명치 아래 집을 지었다.
유도라, 유도라, 당신이 나한테 뭐라고 했었더라?
그 무엇도 허투루 쓰지 마, 치카, 고통마저도. 특히 고통을 낭비해서는안돼.
- P409

그해 여름, 모퉁이 술집에서 새어나온 톱밥과 술 냄새가 거리로 스며들고, 흑인 남자들이 나이를 가리지 않고 엎어놓은 두 개의 우유 상자앞에 번갈아 자리 잡고 체스를 두던 8번 애비뉴의 그 구역으로 나는 얼마나 여러 번 발길을 옮겼던가? 모퉁이를 돌아 113번가로 들어간 뒤 공원을 향하는 내 걸음은 급해졌고 아프레케테의 흙을 가지고 놀 생각에손끝이 아릿아릿했다.
그리고 나는 아프레케테를 기억한다, 꿈에서 빠져나온, 언제나 내 배꼽 아래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불의 털만큼이나 단단한 실체이던 이. 그는 덤불에서 난 살아 있는 것들을 가져다주었으며 그의 농장으로부터 코코암과 카사바를 가져왔다. 키티가 140번가의 레녹스 애비뉴에 늘어선서인도제도 상점에서, 또는 머리 위로 센트럴 철도 구조물이 지나가는파크 애비뉴와 116번가의 북적거리는 시장 안 푸에르토리코인이 운영하는 보데가에서 사온 마술적인 과일들. - P430

우리는 프랑스산 캐슈 열매만 한 맛 좋은 빨간 피핀 사과를 샀다. 녹색 플랜테인도 사서 껍질을 반만 벗긴 뒤 서로의 몸에 심는다. 위쪽으로활짝 벌린 우리의 허벅지 사이 곱슬곱슬한 어둠 위로 꽃잎 같은 플랜테인 껍질이 커다란 초록 불길의 촉수처럼 놓일 때까지. 작달막하고 달콤한, 붉게 농익은 핑거 바나나, 그것으로 너의 입술을 조심스레 벌린 뒤 껍질 벗겨진 바나나를 포도처럼 짙은 보랏빛 꽃 속에 밀어넣는다.
나는 네 갈색 다리 사이에 누워 너를 안은 채 네 익숙한 숲속을 천천히 혀로 더듬어 느릿느릿 핥고 삼켰고, 네 강인한 몸이 자아내는 깊은 파형과 밀물과 썰물 같은 움직임은 바나나를 으깨어 전류가 흐르는 네 몸의 즙에 뒤섞인 베이지색 크림으로 만들었다. 또 한 번 우리의 몸은 구부린 발가락 끝에서부터 혀끝까지 표면이란 표면은 전부 서로의 뼈대에 맞닿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격렬한 리듬에 사로잡힌 채 천둥이휘몰아치는 공간을 가로질러 서로를 몰아가 서로의 혀끝에서 빛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 P431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
여름이 다가왔을 무렵 아프레케테의 아파트 벽은 옥상에서 전해지는 열기 때문에 늘 따뜻했으며, 창을 통해 불어온 우연한 바람은 창가의식물들을 살랑 흔들고 사랑을 나눈 뒤 휴식 중이던 우리의 땀에 젖어 미끈한 몸을 쓸고 지나갔다. - P432

때로 우리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비록 수시로혀를 깨물며 침묵해야 한다 해도 태풍의 눈 속에서 그것이 얼마만큼 위안인지 이야기했다. 아프레케테한테는 일곱 살 난 딸이 있었고, 그 애는조지아에 사는 어머니 집에 있었고, 우리는 수많은 꿈을 함께 나눴다.
"그 애는 사랑하고 싶은 그 누구나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야." 아프레케테는 맹렬히 말하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찬가지로 그 애는 원하는 그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될 거야. 그 애 엄마가 눈똑바로 뜨고 지켜볼 테니까."
한번은 흑인 여성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적군의 근거지에서 활동에임하는 데 전념하는 일이 너무 많고 또 잦다고, 이러한 반복되는 전투와활동으로 우리의 정신적 지형은 약탈당했으며 지쳐버렸다고 이야기한적도 있었다. - P432

해는 먼지 낀 유리창을, 아프레케테가 세심하게 가꾼 수많은 초록식물들을 통과해 우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농익은 아보카도를 하나 찾아 들어서는 초록색 껍질 속에서단단한 씨앗을 품은 과육이 부드럽게 으깨질 때까지 양 손바닥 사이에서 굴렸다. 네 입술이 남긴 입맞춤 속에서 깨어난 나는 과일 껍질 탯줄 가까운 곳을 살짝 베어 물고 옅은 황록색 과즙을 짜내 코코넛 같은 네 갈색배 위로 가느다란 의례의 선을 남겼다. 우리의 살갗에 흥건한 기름과 땀덕분에 과일은 말랑거리고, 나는 과일로 네 허벅지 위와 양 가슴 사이를마사지한다. 마침내 연하디연한 녹색 아보카도의 베일, 내가 네 몸에서 느릿느릿 핥아낸 여신의 배 열매로 이루어진 너울 아래서 네 갈색이 빛처럼 배어나올 때까지. - P433

어느 날 제니는 내 무릎을 베고 있던 고개를 돌려 불편한 기색으로이런 말을 했었다. "있잖아, 난 가끔 엘라가 미친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성스러운 건지 모르겠어."
이제 와 생각하면, 여신이 엘라의 입을 통해 무언가 말하고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잔인무도한 필립 때문에 쇠약해지고 감각을 잃은 엘라는 자신이 하는 말을 믿지 못했고, 우리, 제니와 나는 오만하고도 유치하기 그지없었기에 (우리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으니 그러고도 남았겠으나 저 - P434

비질하는 여인의 단조로운 노래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을 가능성을알지 못했다.
ma나는 내 자매 제니를 잃었다. 내 침묵 때문에, 그 애의 고통과 절망때문에, 우리 둘 모두의 분노,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파괴하는 세상의 잔혹함 때문에. 그것도 반항적인 제스처나 희생, 영혼이 새로운 삶을 얻으리란 희망 때문조차 아닌, 그저 이 파괴에 대한 무지와 무심함 때문에나는 그 잔혹함으로부터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었고, 정신건강에 대한널리 퍼진 한 가지 정의에 따르자면 그 때문에 나는 정신적으로 불건강해졌다. - P435

수영장아프레케테의 집은 모퉁이 근처의 가장 높은 건물에 있었다. 대로 한편에서 모닝사이드 파크의 높다란 절벽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하지절전날 밤, 달이 뜨자 우리는 담요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의 집은꼭대기 층이었고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옥상은 지붕이 전달하는 열기를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간이었다. 옥상은 공동주택에 사는 이들의 주된 휴식공간으로 타르 비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는 운동화 신은 발로 옥상 문을 차서 쾅 닫은 뒤, 뜨뜻한 벽돌굴뚝과 건물 전면의 높은 난간사이 공간에 담요를 펼쳤다. 유황 가로등이 등장해 뉴욕의 길거리에서 나무와 그림자를 지워버리기 이전이었으므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은 이렇게 높은 곳까지 닿지 못하고 희미해졌다. 길 건너편 공원에서 우뚝 솟아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노출된 현무암과 대리석 절벽이 묘하게 가깝고 또 도발적으로 보였다. - P435

서로의 축축한 가슴에 파고들어 달을, 영광을, 사랑을 나눴다. 거리로부터 뿜어져 나온 유령처럼 흐릿한 가로등 불빛과 보름달이 뿌리는달콤하고도 차디찬 은빛은 밀물의 바다처럼 성스러운,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 우리의 검은 몸을 너나없이 거울처럼 비추었다.
비스듬히 쳐든 그의 허벅지 위로 달이 떴던 것이, 빛이 어룽진 처녀의 숲을 이루는 곱슬곱슬한 덤불 속에 반사된 빛을 내 혀가 담았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네 커다란 홍채 한가운데에 박힌 새하얀 동공 같던 보름달이 기억난다.
달이 사라지고, 내 위로 몸을 굴려 올라오는 네 눈이 새까매지고, 나는달의 은빛 광채가 내 눈꺼풀을 더듬는 너의 젖은 혀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아프레케테, 아프레케테, 우리가 여자의 힘으로 감싸여 잠들 수 있는그 교차로까지 나를 몰아가줘. 우리의 몸이 맞닿는 소리는 모든 낯선 이들과 자매들의 기도이기에, 교차로마다 버려져 폐기된 악마들은 우리의 여정을 쫓아오지 못할 거야, - P436

7월 몇 주간 아프레케테를 만나지 못했고, 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으므로 나는 업타운으로 그를 찾아갔다. 문은 잠겨 있었고 층계참에서소리를 질러 불러보았지만 옥상에도 아무도 없었다.
일주일 뒤 포니 스테이블 바텐더 미지가 아프레케테가 주었다는 쪽지를 내게 전했다. 9월 내내 애틀랜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으며, 한동안 어머니와 딸을 보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한데 모이면 뇌우가 되어 터지는 요소들처럼 짧은 시간이지만 흠뻑 젖은 채 하나가 되어 에너지를 교환하고 전류를 나누었다. 그뒤에는 헤어지고, 지나치고, 개선되었고, 더 나은 교환을 할 수 있도록스스로를 다시금 빚어냈다.
그 뒤 나는 다시는 아프레케테를 만나지 못했으나, 그의 흔적은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내 삶에 남아 있다. - P437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나 자신의 일부면서도 나와는 별개인,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그를 알아보기위해서 자라나고 뻗어나가야 했던 귀중한 일부분을 내가 사랑했던 자리에. 그렇게 자라다가 우리는 헤어짐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자리다. 또 다른 만남.
1년 뒤, 나는 사서 학교를 졸업했다. 나 다음으로 이곳을 찾을, 쉼터가 필요할 그 누군가를 위해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7번가를 걸으며 1960년의 첫 여름이 저물었다. 욕실 변기와 욕조 사이의 벽에는 미완성의 시 네 편을 끄적거려두었고, 나머지 시들은창문의 세로 기둥에, 꽃무늬 리놀륨 아래 나무 바닥에 쓰인 채 유령처럼희미하게 남은 다채로운 음식 냄새들로 뒤덮이고 있었다.
이 공간이라는 껍데기가 7년간 나의 집이었다. 죽은 세포가 새로운세포로 교체되며 인간의 몸이 완전히 재생되는 데 필요한 시간인 7년.
그리고 그 7년 동안 내 삶은 점점 더 여성들의 터와 다리가 되어갔다.
자미. - P439

자미,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캐리아쿠식이름.

우리는 그 전통을 이어간다. 웨스트체스터의 새 아파트에 가져갈적십자 소금 몇 상자와 옥수숫대로 만든 새 빗자루를 산다. 새로운 일자리, 새 집, 오래된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새 생활. 내게 본질을불어넣어준 여자들을 언어로써 다시금 창조하면서.

마 리즈, 들로이스, 루이즈 브리스코, 안니 이모, 린다, 제너비브. 천둥이자 하늘이고 태양인, 우리 모두의 위대한 어머니인 마울리사. 그리고 그의 가장 어린 딸이자, 장난기 많은 언어학자, 변신가, 최고의 사랑인, 우리모두가 되어야 하는 모습이 아프레케테 - P440

이 이름, 자아, 얼굴들이 노동하기 전의 옥수수처럼 나를 먹여 살렸다. 나는 나의 일부인 그들을 살아가고, 주요한 핵심이자 우리 모두의삶을 예지하는 시각인 시를 쓸 때 말을 고르는 것과 똑같이 깊은 관심을담아 이 말을 고른다.


한때 집은 무척이나 먼 곳,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오로지 어머니의입을 통해서만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더는 내 집이 아니게 된 뒤에야나는 캐리아쿠의 위도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다른 여성들과 눕는 일이 내 어머니의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 P440

감사의 글


삶을 가능케 한 모든 이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이 책이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꿈, 신화, 이야기를 나누어준 여성들각각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한다.
특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용기, 그리고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바버라 스미스. 제3의귀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체리 모라가. 그리고 두 사람이 편집과정에서 보여준 배짱에도 감사한다. 내가 적절한 책을 들고 두 번째 도전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있어준 진 밀러. 섬사람의 귀, 초록 바나나,  - P441

그리고 세밀하고 날렵한 연필을 지닌 미셸 클리프 캐리아쿠를 방문해 이야기를 전해준 도널드 힐. 내 역사가 악몽을 넘어 미래를 위한 구조물이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블랜치 쿡.모계보를 통해 나와 연결된 클레어 코스. 언어가 일치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럴 것이라믿었던 에이드리언 리치 내 나날을 이어 붙여 노래들을 만들어준 이들.
차이 중의 차이를 처음 만들어준 버니스 굿맨.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프랜시스 클레이턴. 영원에 이름을 붙여준 매리 - P441

언 메이슨. 내가 단순함을 유지하는 걸 잊지 않게 해준 베벌리 스미스.
나의 전투와 생존에 있어 최초의 원칙을 알려준 린다 벨마 로드. 내가솔직하고 현재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 엘리자베스 로드롤린스와 조너선 로드 롤린스, 마 마리아, 마 리즈, 안니 이모, 시스터 루를비롯해 내 꿈을 교정해준 벨마 집안의 여성들, 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밖의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 P442

옮긴이의 글


1934년 그라나다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오드리 로드는 평생 인종주의와 성차별, 동성애혐오와 싸워온 흑인 페미니스트이론가이자 활동가, 그리고 시인이다. 1968년 첫 시집 《최초의 도시들The First Cities》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나그가 본격적으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흑인 페미니스트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와서다. ‘레즈비언이자, 어머니이자, 전사이자, 시인‘ 등의 수많은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던 로드는중첩되는 정체성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형태를 긍정하고 ‘차이를가로질러 함께 손을 맞잡을 때 생기는 다양성의 힘을 운동의 동력으로삼은, 훗날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페미니즘 이론을 일찍이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 P443

때로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형성된 모습으로 상상한다. 마치 서너 살의 어린 오드리 로드가 진짜가 되기를 염원하며 밀가루 점토로 빚고 색칠하고 향을 입혀 만든 사람의 형상처럼 (4장), 처음부터 인상적이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나 1970년대 페미니즘에 목소리를 내며 줄곧 흐름을 주도한 사람처럼 말이다. 《자미》에는 그가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이 되기 전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그는 뉴욕에 사는서인도제도 이민자 가정의 막내였고, 두꺼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아이였으며, 나아가 위험한 저임금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여성이자, 1950년대 뉴욕의 레즈비언 신을 누비며 환대에 반드시 따라오는차별을 감지하던, 갓 정체화한 레즈비언이기도 했다. 《자미》는 이 기념비적인 인물이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또한 그가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 P444

《자미>의 원서 표지에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대신 ‘자전신화 biomythography‘라는 생경한 설명이 붙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회고록은 대개가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선형적 시간 순서대로 다루며 삶의 특정한 한 국면에 초점을 맞추는 서사다. 이 책 역시 어린 시절부터젊은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회고록의 플롯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가 이 서사의 시작, 즉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향신료 가득한 서인도제도의 섬에서 서로를사랑했던 여성들이다. - P444

<자미》가 출간된 것은 오드리 로드가 이미 퀴어 페미니스트 지식인이자 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1982년이지만, 《자미》의 서사 속에서는 젊은 오드리가 곧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거나, 이후 그가 평생을 헌신한 투쟁의 장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1960년대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아프리케테와함께 이 책 역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오드리 로드라는 존재 역시 한 가지 결정적인 정체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시작으로 경험하는 첫 불편한 자각에서부터, 대학을 마치지 못한 데다가 타이핑을 할 줄 모르는 흑인 여성이 현실적으로 마주하던 일자리의 제약, 매카시즘이 득세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 급진주의자로 각성한 경험, 그리고 그리니치빌리지의 레즈비언 바의 생생하고 풍요로운 풍경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시와 꿈, 다호메와 아보메의 여신들, 기억인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인 것 같기도 한 짤막한 단편들이 그 사이에 끼어든다. - P445

한편, 《자미》의 서사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 또는 그의 근원을 이루는 신화에 도사린 여성들을 시작으로 삶 전반에 흩뿌려져 있던 다양한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에필로그를 여는 첫 문장처럼, 오드리 로드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이런 관계들은 점을 차례차례 이어 그림을 그려내듯 끊김 없이 유연한 선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려간 그림들이 겹쳐지고 또 짙어지면서, 훗날우리가 알게 되는 오드리 로드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오드리 로드가 스스로에게 써주고 싶어 했던 신화는 그런 식으로이루어진 것이었으리라. 《자미》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람을 선명하고 단호한 선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대담하게,
그때그때 수선해 입는 옷을 걸친 채 춤을 추고(13장), 낯선 소리와 냄새를 들이마시며 어두운 피부를 자랑스레 드러낸 채로(21장), 자신을 끊임없이 바깥과 연결하고자 시도하는 모험이다. - P445

오드리 로드는 <성애의 발견>에서 "나에게 좋은 시를 쓰는 것과, 내가 사랑하는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함께하는것은 아무 차이가 없다"고 썼다(《시스터 아웃사이더》). 그에게 에로틱한것이란 여성에게 내재된 고유의 힘이며, 외부의 제약 없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자원이다.
《자미》를 읽고 우리말로 옮기는 동안 젊은 흑인 레즈비언 여성으로서의 오드리 로드를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로 설렜다. 여성들과의 에로틱한 관계, 그리고 레즈비언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기록은 《자》라는 자전신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드리 로드의 생각과 시론, 그리고 그가 살아온 용감하고도 위태로운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향신료를빻는 절구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속에서 (11장), 자신 안에서 침묵하던 에로틱한 힘을 끄집어내고 나아가 서로에게 그 힘을 불어넣는 과정을, 또여성을 향한 깊은 사랑과 육체적 마주침을 통해 나눈 강렬한 기쁨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기쁘다. 《자미》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외로움과 차별에 저항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미>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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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으로서 수탈: 경제적 논의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 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종속 집단이나 하위 집단 구성원일 수도 있다. 한때 수탈을 당했더라도 운이 좋으면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빈민, 슬럼거주자, 물납 소작인sharecropper˝, ‘원주민, 노예, 임금 계약 바깥에서 계속 수탈당하는 주체로 끝날 수도 있다. 징발된 자산은노동, 토지, 가축, 도구, 광산이나 에너지 매장지일 수도 있지만, 또한 인간, 인간의 성적·생식적 역량, 자녀와 장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징발된 역량들이 자본의 핵심 특징인 가치 확장 과정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도둑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강탈 같은 행위와는 달리, 내가 말하는 수탈은 징발과 징용을 통해 축적에흡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탈은 다수의 죄악을 포함하며, 그중 대다수는인종적 억압과 강한 상관성이 있다. 그 관련성은 영토 정복, 합병, 노예화, 강제 노동, 아동 유괴, 조직적 강간처럼 자본주의 초기 역사(물론 지금도 계속되지만)와 광범하게 결합된 행위들에서는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대적인‘ 형태(이를테면인종적 억압과도 연관된 수감 노동, 초국적 성매매, 대기업의 땅뺏기, 약탈적 대출에 따른 압류 등)를 취하기도 하며, 현대 제국주의와 함께하기도 한다. p85, 86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1947~)

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 뉴욕 뉴스쿨의 철학·정치사회이론 담당 교수로 있다. 독일 비판이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프레이저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계급과 젠더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펼쳤다.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그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197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여성운동, 흑인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의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정의론은 악셀 호네트와 벌인 논쟁의 기록 《분배냐, 인정이냐?》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프레이저의 정치사회이론은 부단히 진화했다. 그는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서,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그의 이러한 정의론 작업을 결산한 저작이다.
경제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 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특히 페미니즘의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식의 낡은 틀

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 그 결실이《전진하는 페미니즘> <99% 페미니즘 선언》(공저) 같은 저작들이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에 펴낸 팸플릿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에서 그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원홍이기에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즉, 극우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흑인운동 등이 굳건한 동맹을 발전시켜야 할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토대 자체에서 찾아내려 한다. 다만, 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이야기하던 그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자본- 임금노동관계만으로 환원되지않는, 더 복잡한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프레이저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그 전모를 드러낸다.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했고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진보신당 부대표,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으며, 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의 기획위원이다. 저서로 《근대의 가을》 《장석준의 적록서재><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사회주의》《신자유주의의 탄생》《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유령들의 패자부활전》(공저) 등이 있고, 《길드 사회주의><G.D. H. 콜의 산업민주주의》《유럽민중사》《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이전》(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굳이 지금이 혼란기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난마처럼 서로 얽힌 미래의 위협과 현재의참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실은 이로 인해 이미 요동치고 있다. 부채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고, 노동은 불안정하며, 생계는위협받고 있다. 공공 서비스는 퇴보하고, 인프라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며, 국경 감시는 더욱 가혹해진다. 거기에다 인종화된폭력,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극단적인 기후까지 엄습한다. 그리고 그 해법을 상상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정치의 기능 장애가 이 모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중에서 처음듣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으므로 여기에서 굳이 장황하게 부연할 필요는 없겠다. - P15

‘식인[동족포식]cannibalism‘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가장 익숙하고도 구체적인 의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신체를 먹는 의례‘
라는 것이다. 기나긴 인종주의의 역사에서 이 말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묘사하는 데 주로 쓰였는데, 실은 이들이야말로 오히려유럽 제국주의의 식인적 약탈의 희생자들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식인종‘을 자본가 계급을 묘사하는 말로 다시 불러내면서우리는 얼마간 복수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집단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좀 더 추상적인 의미도 있는데, 여기에는우리 사회를 둘러싼 더 심층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 ‘cannibal-ize"라는 동사에는 ‘어떤 설비나 사업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 - P16

하는 부품이나 부서를 떼어내 다른 설비나 사업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쓴다‘는 파생적 의미도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시스템 내부의 ‘비-경제적‘ 주변 영역과 맺는 관계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 관계란, 자본주의 경제가 제 배를채우기 위해 가족과 공동체, 생활터전, 생태계의 피와 살을 다빨아먹어 버리는 현실이다.
게다가 특별한 천문학적 의미도 있다. 우주 공간의 물체가 중력을 통해 다른 물체의 상당부분을 흡수할 때에도 ‘cannibal-ize‘라는 동사를 쓴다. 역시 이 책에서 다루겠지만, 이는 자본이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천연자원과 사회적 부를 끌어다 자기궤도에 가둬놓는 과정을 적절히 묘사한다. 이것은 결국 우로보로스ouroboros, 즉 제 꼬리를 먹으며 자멸하는 셈이다. 역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바로 자신을 지탱해주는 사회·정치·자연의 토대(우리의 토대이기도 한)를 먹어 치우느라 여념이 없는 이시스템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다. - P17

이 모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식인‘이라는 은유가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분석을 발전시킬 여러 통로를 열어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먹이 떼를 향해 달려드는 포식자 무리를제도화한 것‘으로서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서 중심 메뉴는 우리다.
‘자본주의capitalism‘ 역시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할 단어다. 보통 이 말은 사적 소유, 시장 교환, 임금노동, 그리고 이윤을 위한생산에 바탕을 둔 경제 시스템을 일컫는 데 쓰인다. 그러나 이정의는 너무나 협소하여, 시스템의 참된 특성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더 커다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 때 좀 더 쓸모 있음을 주장하려 한다. ‘더 커다란 무엇‘이란, 이윤 주도 경제가 그 작동에 필요한 ‘경제 외적 기둥‘들을 포식하도록 북돋는 사회societal 질서를뜻한다. 자연과 예속민subjects으로부터 수탈한 부富, 오랫동안 - P18

가치를 무시당해온 다양한 형태의 돌봄 활동, 자본이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감축하려 드는 공공재와 공적 권력public power,
노동 대중의 열의와 창의력 등이 그런 경제 외적 기둥에 해당한다. 이런 형태의 부는 기업 회계장부에 표시되는 이윤과 수익의필수 전제조건이지만, 정작 회계장부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축적의 핵심 기반인 이런 형태의 부 역시 자본주의 질서의 구성적costitutive 요소다.
따라서 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의 한 유형만이 아니라 사회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 투자자와 소유주를 위해 화폐화된 가치를 축적하는 공식적으로 ‘경제‘라 지정된 영역을 인가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화되지 않은 모든 부를 먹어 치우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사회는 그 부를 접시에 담아 대기업 소유 계급에게 대접한다. 또한 이 사회는 그들이 우리의 터전인 지구와우리의 창조적 역량에서 먹을 것을 뽑아내도록 해준다. 저들에게는 자신들이 소비한 것을 보충하거나 훼손한 것을 원래대로고쳐놓을 책임은 애당초 면제돼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온갖 곤경이 생겨난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마저 먹어 치울 태세다.  - P19

즉,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위기는 다양한 폭식증의 발작이 한데 모인 예외적유형의 위기다. 수십 년에 걸친 금융화로 인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극단적인 불평등이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위기만이 아니다. ‘단지‘ 돌봄이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만도 아니고, 이민과 인종화된 폭력의 위기만도 아니다. 또한 뜨거워진 지구가 치명적 전염병을 토해내는 ‘단순한‘ 생태적 위기만도 아니고, 무너져가는 인프라와 군사주의 증대, 독재자의 만
‘연을 특징으로 하는 ‘오로지‘ 정치적인 위기만도 아니다. 아니,
이 위기는 ‘더 나쁜 무엇‘이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 P20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는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우리가추구하는 대안은 시스템의 경제 영역 재편만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경제 영역이 현재 제살 깎아먹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저 모든 형태의 부가 경제 영역과 맺는 관계 역시 재편해야만 한다. 즉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의 관계,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한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라 느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최선의 희망이 있다. 오직 더 커다란 대안을 사고해야만, 우리 모두를 잡아먹으려는 식인 자본주의의 끝없는 식욕을 제압하기 위해 싸울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 P23

요점은, 우리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살고 있지만 그 위기를 명쾌히 정리해주는 비판이론을 갖추지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방의 해법으로 인도할 이론이 없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분명 오늘날의 위기는 우리가 물려받은 표준적인 이론 모델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현 위기는 금융 등의 공식 경제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돌봄 결핍‘, 광범위한 공적 권력의 유명무실화 같은 ‘비경제적‘ 현상까지 포괄하는 다차원적 위기다. 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위기 이론은 경제 측면에만 집중함으로써 이를 다른 측면들과 분리하고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 - P29

나는 이런 개념의 하나로 ‘식인 자본주의‘를 주창한다. 먼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Capital》 제1권이 제시하는 핵심 주장의 이면에 숨은 내용을 물으면서 이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본>은 일반적인 개념들의 재료 면에서 풍부한 내용을 제공하며, 원칙적으로는 내가 위에서 언급한 광범한 관심들에도 열려 있다.
하지만 젠더, 인종, 생태계, 정치권력을 자본주의 사회 내부 불평등의 구조적 축으로서 체계적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회 투쟁의 관심사로서나 그 전제로서도 마찬가지다. - P30

하나, 상품 생산에서사회적 재생산으로


인식의 전환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은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subjectiv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닌 자연적 존재로지속시킨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habitus‘ 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을 형성한다. - P40

게다가 사회적 재생산과 상품 생산의 분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중심을 이룬다. 실로 이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강조한 것처럼, 이 구별은 심각하게 젠더화되어 있다. 재생산은 여성과 결합되고, 생산은 남성과 결합되는 식으로 말이다. 역사적으로 ‘생산적인 유급 일자리와 무급 ‘재생산‘ 노동의 분할은 여성 종속의 근대 자본주의적형태를 뒷받침했다. 소유주와 노동자의 분할과 마찬가지로 이분할 역시 이전 세계의 해체에 바탕을 둔다. 파괴된 이전 세계에서는, 여성의 일이 비록 남성의 일과 구별되기는 했지만 그래도눈에 잘 띄었고 공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사회적 우주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었다.  - P42

둘, 경제에서 생태로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감춰진 장소로 이끄는, 중대한 두번째 인식의 전환을 고찰해야 한다. 이 전환은 생태사회주의 사 - P43

상가들의 저작에 가장 훌륭하게 담겨 있는데, 요즘 이들은 자연을 둘러싼 자본주의의 제살 깎아먹기에 초점을 맞추며 또 다른배경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 이야기는 생산 ‘투입물‘의 원천이자,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폐기물을 빨아들일 ‘하수구‘로서, 자본이 자연을 ‘합병‘(로자 룩셈부르크가 ‘병탄[땅뺏기]Landnahme‘이라칭한하는 것과 관련된다.
여기에서 자연은 자본을 위한 자원이 되는데, 그 가치는 전제됨과 동시에 부인된다. 자본 회계에서 자연은 마치 비용이 제로인 듯 처리된다. 그래서 아무런 수선이나 보충도 없이 무상으로혹은 헐값에 전용되는데, 이런 행위의 노골적인 전제는 ‘자연은스스로 무한히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명을 지탱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자연의 역량이 상품 생산과 자본 축적의 또 다른 필수 배경조건이 되며, 따라서 이를 놓고 또 다른제살 깎아먹는 짓이 벌어진다. - P44

셋,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다음으로 세 번째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살펴보자. 이는자본주의를 존립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조건, 즉 자본주의가 자신의 구성적 규범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적 권력에 의존하는현실을 가리킨다. 사기업과 시장 교환의 토대를 이루는 법률적틀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존립은 꿈도 꿀 수 없다. 자본주의의 본이야기는 이 공적 권력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이를테면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을 실행하게 하며, 분쟁을 심판하고, 반자본주의 반란을 진압하며, 자본의 생계수단이라 할 화폐 공급을 지속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공적 권력은 대개영토국가 안에 고정돼 작동했으며, 여기에는 식민지 보유국이나제국주의 강대국처럼 초국적으로 움직이는 국가도 포함되었다. - P47

넷, 착취에서 수탈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사고의 전개 전반에 영감을준 생각, 즉 원시 축적이 자본 축적의 역사적 전제조건이라는 마르크스의 설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생각을 이제는 옛일이 되어버린 초창기의 흔적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에서도 지속되는 특징으로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 사회 시스템에서 구조적으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감춰진 장소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를 개념화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감춰진 필수 요소란 수탈, 즉 종속되고 소수자화된 사람들의부를 지속적으로 강제 탈취하는 것이다. 대개 수탈을 자본주의만의 특징인 착취 과정의 반反명제로 여기지만, 오히려 착취가 - P50

이뤄질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보는 것이 수탈을 더 잘 이해하는길이다.
착취와 수탈 모두 축적에 기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위장한채 가치를 자본에 이전시킨다. 즉, 노동자는 노동력 사용 대가로임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본은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는 한편 ‘필요노동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한다. 반면에 수탈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거의 혹은 전혀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는 쪽을 선호하기에 이러한 온갖세심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 강제 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늘린다. - P51

게다가 수탈과 착취의 구분은 지위 위계와조응한다.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당당한 개인과 시민의 지위에 해당하며, 국가에 의해 보호받을 자격을 갖추고 자기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반면 수탈의 대상이 되는 ‘타자‘는 부자유하고 종속적인 존재이며, 정치적 보호 바깥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채 본질적으로 ‘불가침하지 않은violable" 신세가 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 계급마저도 서로 다른 두 범주로 나누니, 하나는 ‘순수한 착취에 어울리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 수탈을 당하는 운명이다. 이 분할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제도적 단층선 - P52

으로서, 앞에서 이미 살펴본 생산과 재생산, 사회와 자연, 정치와경제의 분할만큼이나 자본주의 사회에 구성적이며 그 구조적토대 노릇을 한다.
게다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 노동자/타자의 분할은자본주의 사회에서 특별한 지배 양식을 강화한다. 즉, 인종적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억압이다. 제2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보호가 거부되고 반복적으로 폭행을당하는 이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인종화된 인구집단이다. 동산動産 노예chattel slaves, 식민지 예속민, 정복당한 ‘원주민‘, 부채 노예, ‘불법 체류자‘ 유죄 확정 중죄인, 인종분리국가와 그 후예들 내부의 인종화된 예속민 등등. 이들은 모두 시민노동자로인정받은 이들과는 달리) 일시적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 수탈의대상이 된다. 즉, 수탈/착취 분할선은 전 지구적 피부색의 경계선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분명히 겹친다. 이로부터 인종적 억압, 제국주의(구식이든 신식이든), 토착민 자산 박탈, 인종 학살에이르는 구조적 불의가 줄지어 나온다.
말하자면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구성적인 또 다른 구조적 - P53

분할이다. 그리고 이 분할 또한 역사적으로 변천해왔고, 제살 깎아먹기의 토대 노릇을 했다. 이는 이 책에서 개념화한 다른 분할들과 깊이 얽혀 있으며, 따라서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위기와도 얽혀 있다. 위기의 여러 갈래들, 즉 정치 위기, 생태 위기, 사화재생산 위기는 주변부와 중심부 모두에서 벌어지는 인종화된 수탈과 분리될 수 없다. 예컨대 자본은 수탈한 땅, 강제 노동,
광물 약탈품을 획득하고 소유하기 위해 공적 권력에 기대고(일국적이든 초국적이든), 독성 폐기물 처리장과 무급 돌봄 활동 공급자로서 인종화된 지역에 의존하며, 정치 위기를 진정(또는 치환)시키거나 아니면 오히려 조장하기 위해 지위 분할과 인종적 원한에 호소한다. 한마디로 경제·생태·사회·정치 위기는 제국주의적·인종적 억압과 긴밀히 얽혀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억압과결합해 점증하고 있는 적대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 P54

었다. 즉사적 소유, ‘자기‘ 확장하는 가치의 축적,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 등 상품 생산 투입요소의 시장적 할당, 사회적 잉여의시장적 할당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각각 사회적 재생산, 지구 생태계, 정치권력, 인종적 피억압자에게서 수탈한 부의 지속적 유입 등 네 가지 결정적 배경조건 덕분에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 네 가지 배경이야기와의 관계 속에서 마르크스의 본이야기가 차지하는 위치를다시 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마르크스적 관점을 비판적 이론작업의 다른 해방적 흐름들, 즉 페미니즘, 생태주의, 정치이론,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와 연결해야만 한다. - P55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 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 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자본주의의 구조적분할, 특히 앞에서 확인한 제도적 분리들이 부각된다. ‘경제적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의 제도적 분리, 즉 남성 지배의 특수한 자본주의적 형태에 토대를 제공하는 젠더화된 분리는 자본주의에구성적인 것이며, 노동력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이뤄질 수 있게하고 이를 통해 공인된 축적 양식이 존립하게 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 역시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것인데, 경제적이라 규정된 사안들을 영토국가의 정치 의제에서 추방함으로써, 자본이주인 없는 초국적 무대를 자유로이 떠돌며 어떤 정치적 통제도없이 패권적 질서에서 떨어지는 이익을 주워 담게 해준다.  - P58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전경/배경 관계에 관한 설명이 정확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자본주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조건 구실을 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그 존립 자체를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에서 나오는 가치들과 투입요소에 의존한다. 하지만 둘째로,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각기 고유한 무게와 성격을 지니며, 특정한 환경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에 자원을 제공할 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로, 이 영역들은 자본주의 사회의본질적 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로를 구성해왔고 이러한 공생관계가 각 영역에 자취를 남기고있다. - P64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벌이는 투쟁을 더 잘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제 많은 이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위기 심화가 반인종주의와 인종주의적 포퓰리즘의 발전 모두에폭넓은 배경이 되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위기는 자본주의에서 특유하게 나타나는 인종적 억압을좀 더 눈에 잘 띄게 하면서, 동시에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마침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게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부흥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질문이 다시금 절박하게 제기되었다. 자본주의는필연적으로 인종주의적인가? 과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인종적억압이 극복될 수 있을까? - P76

자본주의는 그 필수조건으로서 착취만이 아니라 수탈에도 의존하기에 인종적 억압의 구조적 토대를 장착한다는 명제를 옹호할 것이다. 다음으로, 착취/수탈이 자본주의 역사의 주요 국면에서 그 형세배열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윤곽을 그려 보임으로써 이 구조를 역사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여전히 착취와 수탈에 의존하지만 이들을 서로 극명히 나뉘는 인구집단에 적용하지는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종적억압을 극복할 전망을 따져볼 것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특정 인구집단을 인종화함으로써 더 쉽게 제 살깎아먹기를 벌이려 하는 내재적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는 ‘잔혹한 처벌을 즐기는 수탈탐식가‘로 이해되어야만 함을밝힐 것이다. - P78

충동 일체를 시장 바깥으로 추방하고, 이를 시장의 작동을 왜곡하는 요소로 본다. 따라서 인종주의의 원흉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더 큰 사회가 된다. 인종주의는 역사·정치·문화에서 연유하며, 이 모두는 자본주의에 외재적인 것으로서 오직우발적으로만 이와 연결된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목적으로 축소되고, 역사적·정치적 내용이제거되면서 형식화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교환 중심 관점은 자본주의 경제에 구조적으로 인종적 억압을 발생시키는 ‘비-경제적‘ 전제조건과 투입요소가 필요하다는 점이 눈에 잘 드러나지않게 한다. 그러한 의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탓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독특한 축적, 지배, 제살 깎아먹기 메커니즘이 잘 보이지않도록 만든다. - P80

바로 이것이 요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핵심이 착취이고, 이는 두 계급의 관계라고 봤다. 이 관계의 한쪽은 사회의생산수단을 소유하며 잉여를 전유하는 자본가이고, 다른 한쪽은자유롭지만 재산이 없는 탓에 나날이 자기 노동력을 팔 수밖에없는 생산자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만은 아니며, 상품 생산을 통해 자본이 자유로운 노동을 착취하는계급 지배의 사회적 시스템이다.
마르크스의 시각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한 가지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를 착취의 렌즈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교환의 시각이 가리고 있던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자에 대한 계급 지배가 이뤄지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구조적 토대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 P81

내 주장은 수탈이 자본주의 사회에 실로 필수불가결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인종주의의 얽힘에도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자본의 수탈 대상이 되는 이들의 예속은 착취 대상이 되는 이들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감춰진 조건이다. 그러므로 전자에 관한 설명이 없다면 후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와 인종주의를 역사적으로얽히게 만드는 구조적 토대 역시 엿볼 수 없게 된다.
이 주장을 풀어놓기 위해 나는 제1장에서 소개한 자본주의에관한 확대된 인식을 활용하고자 한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세가지 시각 가운데 뒤의 두 가지, 즉 착취의 시각과 수탈의 시각의 요소들을 결합한다. 그리고 이는 마르크스가 익숙한 교환의수준 이면으로 파고들어가 밝혀낸 착취의 ‘감춰진 장소‘를, 훨씬더 어둠에 가려진 수탈의 순간과 결합시킨다. 이렇게 착취와 수탈의 관계를 이론화함으로써 나는 자본주의와 인종주의를 끈덕지게 얽히게 만드는 구조적 토대를 식별해낼 것이다. - P84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 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종속 집단이나 하위 집단 구성원일 수도 있다. 한때 수탈을 당했더라도 운이 좋으면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빈민, 슬럼거주자, 물납 소작인sharecropper", ‘원주민, 노예, 임금 계약 바깥에서 계속 수탈당하는 주체로 끝날 수도 있다. 징발된 자산은노동, 토지, 가축, 도구, 광산이나 에너지 매장지일 수도 있지만, - P85

또한 인간, 인간의 성적·생식적 역량, 자녀와 장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징발된 역량들이 자본의 핵심 특징인 가치 확장 과정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도둑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강탈 같은 행위와는 달리, 내가 말하는 수탈은 징발과 징용을 통해 축적에흡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탈은 다수의 죄악을 포함하며, 그중 대다수는인종적 억압과 강한 상관성이 있다. 그 관련성은 영토 정복, 합병, 노예화, 강제 노동, 아동 유괴, 조직적 강간처럼 자본주의 초기 역사(물론 지금도 계속되지만)와 광범하게 결합된 행위들에서는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대적인‘ 형태(이를테면인종적 억압과도 연관된 수감 노동, 초국적 성매매, 대기업의 땅뺏기, 약탈적 대출에 따른 압류 등)를 취하기도 하며, 현대 제국주의와 함께하기도 한다. - P86

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두 용어는 (분석상으로는 구분되지만 서로뒤얽혀 가치를 확대하는 ‘자본 축적‘ 메커니즘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지배‘ 양식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특히 권리를 보유한 개인시민과 예속민·부자유한 노예·하위 집단의 종속적 구성원을 구별하는 지위 위계제와 관련된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착취 노동자는 법률상 자유로운 개인의 지위를 갖고 있어, 임금을 대가로 자기 노동력을 판매할 권한이 있다. 일단 생산수단에서 분리돼 프롤레타리아화하면 노동자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추가적인) 수탈로부터 보호받는다. 이 점에서 노동자의 지위는, 노동·재산·인격이 여전히 자본 측의 징발에 내맡겨져 있는 이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징발 대상이 되는 집단은 정치적 보호를 누리기는커녕 수탈하기에 안성맞춤인 무방비 상태가 되며, 이 상태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 P89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호를 제공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자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국가다. 시민을 예속민이나 체류 외국인과구별하고, 권리를 지닌 노동자를 종속적인 상습 채무자와 구별하는 지위 위계제를 법률로 정하고 집행하는 것 역시 국가다. 이러한 국가의 정치적 주체화 기능은 피착취 주체와 피탈 주체를 구축하고 이 둘을 서로 구별함으로써, 자본의 ‘자기‘ -확대에필수 전제조건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 국가는 홀로 역할하지 않는다. 지정학적제도배열 또한 관련돼 있다. 일국 수준에서 이러한 정치적 주체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를 ‘승인‘하고 국경 통제권(합법적 주민을 ‘불법 외국인‘과 구별하는)을 인가하는 국제적 시스템이다. 이렇게 지정학적인 권능을 부여받은 정치적 지위 위계제에 얼마나 쉽게 인종적 내용이 각인되는지 확인하려면, 이민과 난민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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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1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5:36   좋아요 1 | URL
아, 이해...가 될 때까지 읽다가는...도무지 마칠 것 같지 않아서ㅠ,ㅠ 읽고 또 읽어보고 (뜨거운 음식 빨리 먹으려는 것처럼, 지저분하게 먹는 모습 떠오르시죠.) 그렇게 집어 삼키듯 읽고 있어요. 스스로 위안을 삼듯... 그러다보면 알 듯도, 알겠는 듯도 해지더라구요. ㅎ
 

향신료를 쌓고 있는 동안, 매끈한 절굿공이를 꼭 움켜쥐고 아래로내리찧는 내 손가락 근육과 내 몸의 녹진한 핵심 사이에 근원적 관계가생겨난 듯했다. 뱃속 깊은 곳에서 발산되는 새로이 무르익은 충만감이나의 핵심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드러난 클리토리스처럼 팽팽하고민감한 이 보이지 않는 실은 구부린 손가락 끝에서 토실토실한 갈색 팔을 따라 축축한 겨드랑이까지 이어졌고, 겨드랑이에서 풍기는 뜨뜻하고 날카로운 체취는 절구 속 마늘 냄새, 그리고 한여름 특유의 가득한땀 냄새와 뒤섞여 향기를 한 겹 덧입혔다.
보이지 않는 실은 아릿하게 노래하며 갈비뼈 위를, 등줄기를 타고내려가 내 골반 사이 위치한 옴폭한 곳, 지금 내가 향신료를 빻는 동안낮은 조리대에 대고 꾹 누르고 있는 그 부위로 들어갔다. 이 옴폭한 곳에서 피로 이루어진 바다가 차올라 진짜가 되어 내게 힘과 지식을 전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 P135

내 움직임의 리듬은 갈수록 누그러지고 또 길게 늘어졌으며, 나는결국 꿈을 꾸는 기분으로 부조가 새겨진 절구를 한 손으로 단단히 움켜쥔 채 내 몸 한가운데에 대고 절굿공이를 든 다른 손으로는 촉촉해진 향신료를 누르며 둥글게 둥글게 문지르고 있었다.
따뜻한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내내 나는 음조가 없는 콧노래를흥얼거리면서 이제 여성이 되었으니 앞으로의 내 삶이 얼마나 단순해질지 생각하며 안도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알려준 월경의 주의사항 따위는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온몸이 강하고, 꽉 차고, 열린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절굿공이의 부드러운 움직임, 그리고 부엌을 가득 채운 풍부한 향기, 초여름의 열기가 품은 충만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머니가 현관문에 열쇠를 꽂는 소리가 들렸다. - P136

하지만 우리는 흑인 또는 백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 사실이 우리의 친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논쟁의 여지없이 인종주의를 규탄했다. 우리는 인종주의를 무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차이를 위협이라고밖에는 느낄 수 없는 고립된 세계에서 자라났고, 대개는 실제로 그랬다. (헬렌 언니가 벌거벗고 목욕하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열네 살이 다 된 나이였음에도 옅은 갈색 가슴에 달린 언니의 젖꼭지가 나처럼 짙은 보랏빛이 아닌 옅은 분홍색인 걸 보고 언니가 마녀인 줄 알았다.)그러나 때때로 나는 나와 나의 백인 친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만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칠것같았다. 왜 친구들은 나를 집에, 파티에, 주말 동안 여름 별장에 오라고 초대하지 않는 걸까? 우리 어머니처럼 그 애들의 어머니들 역시 친구를 데려오는걸 싫어해서?  - P140

우리는 스스로가 유별나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사용하는 특이한 잉크와 깃펜을 자랑스러워하는 ‘낙인찍힌 자들‘이자 ‘과격한주변인들‘이었다. 고지식한 무리를 조롱하는 법을 배웠고, 우리가 가진집단적인 편집증을 퇴학당하지 않을 선에서 멈출 수 있는 본능적인 자기보호에 이르도록 계발시켰다. 모호한 시를 쓰고, 불복종의 전리품인우리의 괴상함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통과 거부가 상처를 준다는 걸 배웠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치명적이지는 않으며, 또피할 수 없기에 쓸모 있다는 걸 배웠다. 우리는 아픔이 무감각보다 낫다는 걸 배웠다. 그 시절엔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을 미덕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기에
‘낙인찍힌 자들‘이 되었다. - P141

고등학교를 다니던 4년간 나는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빈약하기 짝이 없는지, 그러나 그런 생계가 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수용소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내면서 이 쓰레기 없이는 굶어 죽으리라는 걸 아는 내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을 보는 기분이다. 내가 짝사랑하던 이들을 포함해 선생님들은 대부분 극도의 인종차별을 일삼았다. 사람과의 접촉에 있어 나는 내가 의식하던 욕망에 비해 얼마나 미약한 정도로만족해야 했던가.
내가 백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 내가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라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 P141

나는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 전부 무척이나 단순하고 무척이나슬프다고 여겼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 때문에 두 분이 그렇게나 짜증을 낼 리가 없을 터였다. 두 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나는자기보전이 가능한 선 안에서 내가 최대한 그들을 역정 내게 만들어도마땅하다고 여겼다. 이따금 어머니가 내게 고함을 지르는 대신 두려움과 고통이 남긴 눈으로 나를 관찰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심장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느라 아프고 또 아팠다. - P146

그때부터 인생은 내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를 목표로 하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사물함 뒤에서 서로의 부드러운 몸을 만져보면서 ‘만지기 놀이‘ ‘느낌이 어때‘ ‘내가 더 세게 때릴 수 있어" 같은 온갖 이름을 붙인 온갖 게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니가 물었다. "네가 아는 친구 사귀는 방법은 이런 것뿐이야?" 그때부터 나는 친구를 사귀는 다른 방법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느끼고 질문은 그다음에 하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에는외면을, 그다음에는 무법자라는 사실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 P148

우리는 한때 아이였던 것을 위해 울지 않았네.
한때 아이였던 것을 위해 울지 않았네.
한때의 것을 위해
어리디어린 살을 뜯어 먹은
깊고 검은 어둠을 위해 울지 않았네.
그러나 우리는하늘아래 외따로이 서서
어린 피를 잠재우려
담요처럼 흙을 퍼내며 서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고 울었네.
검고 따스한 어머니의 담요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대지의 가슴 깊은 곳에서
더는 어리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보았으므로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가
외따로이 죽어 있음을 알았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울지 않았네 - 울지 않았네
우리는 한때 아이였던 것을 위해
울지 않았네.

1949년 5월 22일 - P166

"차를 한잔 타주마, 얘야, 그렇다고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거라. 어머니가 돌아서더니 차 거름망 테두리를 몇 번이나 문질러 닦았다. "얘,
우리 아가야. 그 애랑 친했던 것도, 그래서 속상한 것도 알지만, 여태 내가 늘 너한테 잔소리하지 않았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때는 조심해야한다. 너희들은 항상 특이한 짓을 하면서 어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생각하지. 그러나 이 늙은 엄마도 알건 다 안다. 세상엔 처음부터 잘못된 것들이 있어. 내 말 똑똑히 듣거라. 아버지 행세를 하는 그 남자는 네친구를 입에 담지도 못할 그런 일에 이용하고 있었단 말이다."
어머니의 어설픈 통찰은 잔인했기에,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는 또 한 번의 살인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혹독한 말이 내게 강인함을 전해줄 수 있기라도 하다는 걸까. 어머니한테는 진실로 보이는 그 불꽃 속에서 내가 제련되어 종국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당신을 꼭 닮은 복제물이 될 수 있기라도 하다는 걸까.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지는 않았다. 캄캄해지는 창밖, 맞은편 집 와셔 씨가 자기 집 블라인드를 내렸다. 제니는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동전한닢 토끼의 머리. - P174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바닷가로 걸어갔다. 보름달 아래 밀물이들어오고 있었다. 잘게 이는 파도의 물마루는 하얗게 부서지는 대신 형광빛을 뿜어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는 아물아물 보이지 않았다. 비스듬한 녹색 불꽃들이 층층이 겹쳐지며 밤을 가득 메우더니, 물결에 실려 리드미컬하게 물가로 밀려오는 파리한 부채꼴의 빛 덕에 칠흑같던 어둠이 환해졌다.
무슨 수로도 그 흐름을 멈출 수 없었고, 다시 물러가게 할 수도 없었다. - P183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청명한 일요일 아침, 저렴하게 장을 보려고 작정하고 나온 뉴욕 사람들은 길거리에 내놓은 통을 뒤지며 값싸고 낡은 물건들을 열심히 찾았다. 오처드 스트리트 한구석에서 피클장수가 나무통에 다양한 크기와 온갖 색조의 녹색으로 된 즙 많은 잠수함들을 펼쳐놓았는데, 그 온갖 색조 하나하나는 피클의 여러 단계와 여러 맛을 담고 있었다. 둥둥 뜬 마늘이며 후추알과 딜 가지 아래에서 피클들이 한 떼의 양념한 물고기처럼 한 입 맛보라는 듯이 배를 뒤집고 반쯤 잠겨 떠다녔다. 멀지 않은 곳, 길가 줄무늬 차양 아래 펼쳐놓은 톱질 모탕 위에 납작하게 말린 살구들이 신비롭게 반투명한 짙은 오렌지 빛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 옆, 반쯤 열린 기다란 사각형 나무상자 안 열어젖힌 유산지 아래로깨를 갈아 반죽한 사탕인 기다란할바가 보였다. 바닐라맛 상자, 부드러운 초콜릿 맛 상자,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누비이불처럼 섞어놓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마블 맛도 있었다. - P225

크리스퍼스 애턱스. 무엇보다도 나는 나일론이 풍기는, 톡 쏘는 것같고 생명력도 인정머리도 없는 냄새가 싫었고, 그 냄새가 그 어떤 인간적이거나 연상작용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점이 싫었다. 나일론이가진 거슬리는 성질은 그것을 신은 사람의 체취로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신었건, 날씨가 어떻건, 나일론 스타킹을 신은 사람은늘 내 코에는 사슬갑옷을 온몸에 두른 채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전사 같았다.
나일론을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데를 배회하고 있었다. 크리스퍼스 애턱스, 보스턴? 진저는 알고 있었어. 나는 열렬한호기심과 풍부한 독서 덕분에 쓸모가 있건 없건 잡다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의식의 뒤편에 그런 잡다한정보들을 모아두었다가 적절한 기회가 오면 꺼내 썼다. 대화 중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 역할을 하는 데 익숙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다 안다고 믿었던 건 아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걸 알았을 뿐이다. - P228

진저는 잠시 나이를 계산해보더니 "너 같은 열여덟 살은 처음이야"
하고 스물다섯 살에 어울리는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어느 날은 진저가 나를 위해 바닷가재 집게발을 슬쩍해왔다. 찰리가 코라와 화해하려고 사 온 식재료였는데 사실을 알게 된 코라는 진저를 집에서 내쫓겠다고 을러댔다. 진저는 자기가 치르는 대가가 너무 커진다고 결론 내렸고, 뒷문 포치에서 나누는 길고 긴 굿나잇 키스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저는 먼저 다가오기로 했다.
11월 초, 가을이 끝나고 있었다. 나무들은 여전히 강렬한 빛깔이었지만 공기에는 벌써 겨울의 냉기가 감돌았다. 낮은 점점 짧아졌고 나는점점 불행해졌다. 일이 끝나면 오래지 않아 해가 졌다. 도서관에라도 가면 밀 리버 로드로 돌아올 무렵에는 이미 어두컴컴했다. 진저가 따뜻한마음으로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키스톤 일렉트로닉스에서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도 쉬워지지도 않았다. - P231

나는 그의 몸과 그의 욕망에 대한 나의 삶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날 밤 진저를 사랑하는 일은 집으로 돌아가 애초 내 것이었던, 어떻게 여태 모르고 살 수 있었는지 남몰래 생각에 잠기게 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았다.
사랑을 나눌 때 진저는 웃을 때와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수월하게몸을 움직였고 나는 그와 함께, 그와 몸을 맞댄 채, 그라는 따뜻한 갈색바닷속에서 움직였다. 손끝을 살며시 움직이면 그의 몸에서 기쁨의 소리와 깊은 안도감으로 인한 떨림이 쏟아져 나왔고, 그러면 나는 기쁨,
그리고 그를 조금 더 느끼고 싶다는 허기에 사로잡혔다. 그의 달콤한 몸이 내 입술에 닿아 내 입 안을 가득 채웠고, 내 두 손은 그의 몸 어디에닿더라도 안정감과 충족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이제 막 처음으로 그 몸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그의 몸을 불러내고 있는 것처럼. - P240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한두 시간이 더 남아 있었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머릿속으로 모든 조각을 하나로 맞춰보려고, 내가 상황을주도하고 있으니 겁낼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제 내 품에 안겨 있는 이 감미로운 여자와 나는 어떤 사이인 걸까? 밤의 진저는 낮에 알던 진저와는 사뭇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내 욕망이 빚어낸 아름답고 신화적인 피조물이 쾌활하고 현실적인 내 친구의 자리를 차지한 걸까?
예전에 진저가 손을 뻗어 촉촉하게 젖은 내 몸을 만지려 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유도 모른 채 그 손길을 쳐냈었다. 그런데 나는 진저의 몸이 맞닿아 있는 내 몸의 핵심으로부터 흘러넘치는 힘에 이끌린채 움직이며 토해내던 기쁨의 비명과 솟구치던 경이를 아직까지도 원하고 있었다.
진저는 내 친구, 이 낯선 동네에서 하나뿐인 친구였고,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같이 잤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인이 된걸까? - P241

그러면서 나는 권력과 특권을느꼈고, 비록 그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역할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환상에 불과했을지언정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진저에게도 하나의 역할놀이였는데, 그는 두 여자 사이의 관계를 결코 장난스러운 것 이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관계를 추구하고 또 소중히 한다고 해도 진저로서는 도저히그 관계를 중요한 것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동시에 진실하고도 더 깊은 어떤 차원에서, 진저와 나는 서로의 온기와 피로 이어진 확신을 필요로 하는 두 명의 젊은 흑인 여성으로서 만났고, 우리 몸에 담긴 열정을 나눌 수 있었으며, 아무리 우리가 그저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는 듯 행세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자신이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부정하려 무진 애를 썼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우리 둘 다, 딱히 개의치 않는 척할 필요가 있던 것이다. - P244

크리스마스 전주, 공장에서 일하던 나는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면서절삭실과 판독실을 가르는 벽돌 반벽에 머리를 부딪쳐 약한 뇌진탕을겪었다. 병원에 있을 때 진저가 언니가 보낸 전보를 가져다주었다. 아버지가 또다시 심한 뇌졸중을 일으켰다는 전보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나는 직접 퇴원 절차를 밟고 뉴욕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가족을 만나는 것은 1년 반만이었다.
그 뒤로 몇 주는 두통 속에서 희미했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들이 내주변에서 빠르게 소용돌이쳤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에는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병문안 때문에 뉴욕에서 지내며 출퇴근을했다. 가끔 진저가 퇴근 후에 나와 함께 병원에 가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스탬퍼드의 밤거리에는 무겁고 선뜩한 안개가 드리웠다. 도로 위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9시 30분 뉴욕행 기차를 타려고 3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 역으로 갔다. 크리스퍼스 애턱스 센터까지는 진저가 함께 가주었다. 안개가 너무 짙어 연석에 걸려넘어질까봐 겁이 났다. 가로등은 먼 곳에 걸린 달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 P247

그 주에 나는 내가 이젠 이 집에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건 사실이다. 어머니가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보았던 인간은 온 세상에 오로지 아버지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이 배타성이 어머니에게 부여한 쓸쓸하기 그지없는 고독감이, 그리고 이에 맞서느라 때때로 눈을 감아버리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와언니들을 볼 때면 그의 시선은 마치 우리가 유리라도 되는 듯 통과해버렸다.
나는 어머니의 고통, 맹목성, 힘을 보았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나와별개의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진기분이었다.
헬렌 언니는 자기보호를 위해 경박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거실에 있는 축음기로 최근에 산 레코드 한 장을 끝도 없이 틀었다. 이레 내내 낮이나 밤이나 같은 음악을 틀고 또 틀었다. - P248

판독실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첫 2주간 나는 아무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매일같이 개수를 늘렸으며 보호덮개를 젖히지 않은 대가로 3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이 상황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밤 나는 진저와 대화를 나누었다.
"일하는 속도 좀 늦춰. 사람들 사이에서 네가 로즈 눈에 들려고 안달이라는 말이 돌아."
나는 그 말에 기분이 상했다. "나 로즈한테 아부하는 게 아니라 돈을벌려고 하는 거야. 그게 뭐가 문제야?"
보너스를 받는 생산량 기준이 아무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거 몰라? 네가 그렇게 많은 양을 처리하면 다른 애들이 무안해지잖아. - P251

게다가 네가 할 수 있다면 모두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고 부지불식간에생산량 기준이 또다시 높아질걸. 그러면 모든 사람이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저 사람들은 네가 돈을 벌게 놔두지 않을 거야.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 그것도 몰라?" 진저가 몸을 숙여 내가 베개에기대놓고 읽던 책을 툭툭 쳤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어차피 키스톤 일렉트로닉스에서 버틸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곳을 떠나기 전에 돈을 좀 모아놔야 했다. 뉴욕으로 돌아가면 어디로 가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어디서 살지? 게다가 얼마나 오랫동안 구직생활을 해야 할까? 그리고 저멀리 지평선 위 어둑어둑한 별처럼 멕시코로 가겠다는 소망이 걸려 있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 P252

금요일, 로즈는 공장에서 인원을 감축한다며 나를 해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내가 노동조합원이므로 2주 치 주급을 해고수당으로받게 될 테니 당장 그만두고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다. 내가 바라던바였음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울었다. "해고당하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없지." 진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닉코라는 가외소득을 잃게 된 걸 아쉬워했다. 진저는 내가 그리울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가 속으로 안도하리란 걸 알았다. 그가 몇 달 뒤털어놓은 대로 말이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P254

멕시코로 가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이유는 모르겠다. 기억 속 나는 언제나 멕시코를 내가 갈 수 있는 곳 중 색채와 환상과 기쁨의 땅이햇빛과 음악과 노래로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또 초등학교 시민 수업과 지리 수업에서 내가 사는 곳과 멕시코가 바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므로 흥미가 일었다. 그건 필요하다면 내가 걸어서도 갈 수있는 곳이라는 의미였으니까.
멕시코에서 그림을 그린다던 진의 남자친구 앨프가 조만간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뉴욕으로 돌아갔을 때 내 가장 큰 목표는 멕시코에 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거의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깃들 줄 알았던 곳에는 그저 무감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자리를 찾는 동안에는 진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웨스트사이드의 아파트에 머물렀다. 결국 의료센터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구한 뒤 진과앨프의 진보주의자 친구인 백인 여성 레아 헬드와 같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 P255

그해 여름, 내 마음은 생채기투성이였으나 멕시코라는 꿈이 의지할수 있는 횃불처럼 빛나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일을 해서저축한 돈을 아버지 보험금에서 나눠 받은 얼마 안 되는 돈에 합치면 멕시코에 갈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고, 정치적 상황이 갈수록 암울해지고 공산주의 탄압이라는 히스테리가 심해질수록 내결심은 더욱더 단단해졌다.
나는 로젠버그 부부* 석방 위원회 일에 갈수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스탬퍼드에서 돌아온 뒤 멕시코에 가기 전까지 뉴욕에서 보낸 몇 달은 단기 체류에 가깝게 느껴졌다.
레아 헬드와 나는 로어이스트사이드 7번가, 당시에는 이스트빌리지라고 알려진 지역에 있는 승강기는 없으나 환하고 해가 잘 드는 7층아파트에서 꽤 사이좋게 살았다. 레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 그것도 백인 여성과 한 공간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건 때때로 힘겨웠고 또 새로웠다. 특히 나와 레아는 따뜻하고 일상적인 유쾌함을 나눴을 뿐 깊은 정서적 유대감은 없었기에 더했다. - P256

나에게 로젠버그 부부를 위한 투쟁은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한투쟁이자 적대적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진보주의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과 맺는 연결감은 의료센터의 동료들과 맺는 것과 매한가지로 미약한 것이었다. 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함께 어울려 피부색과 인종의 차이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탐구하고 대화하다가도, 어느 날 ‘당신은 현재 동성애 관계에 가담한상태이거나 한때 가담한 적이 있는가?‘라는 비난 섞인 질문을 받는 상상을 했다. 그들에게 동성애자라는 것은 ‘부르주아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의심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또한 이 때문에 ‘FBI에게 꼬리를 잡힐가능성도 큰 존재가 되었다. - P258

비와 나는 지난해 내가 질을 만나러 베닝턴대학교에 갔을 때 만난사이였다. 비 역시 친구를 만나러 왔었다. 만취한 채 보냈던 그 주말 우리는 여러 번 눈이 마주쳤는데 그중 한 번은 새벽 2시 학생식당에서였다. 모두가 잠든 밤에 대화를 나누던 우리 둘은 다른 친구들보다 몇 달더 일찍 태어난 데다가 둘 다 혼자 살고 있으므로 그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또 우리 둘 다한 기숙사에 수많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사실을 놓고 짧지만 조심스러운, 지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이후로 비는 애인과 헤어지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집을 빌려 필라델피아에살고 있었다. 내가 스탬퍼드에서 진저를 만나던 시기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동쪽을 향해 걸었다. 나는 묵묵히 에 로젠버그와 줄리어스 로젠버그를 향해 추모하며 울었고, 비는 공감한다는 듯침묵했다. 차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한 해간 우리 둘 다 여자를사랑한다는 것에 있어 흥미 섞인 대화의 단계를 넘어선 것은 분명했다. - P259

그가 남긴 쪽지에는 어째서 이런 식으로 관계를 끝낸 것인지 묻고싶었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이유를 몰랐으니까. 꼭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자기보호, 또는 자기보호라고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고, 내가 아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다시는 누구와도 이런 관계를 맺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죄책감은 쓸모 있는 감정이다. - P264

사흘간 복도에서 일어난 소동에 대해 레아는 어리둥절해하는 한편, 평소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비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지만, 우리 관계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비에 대한 나의 감정을 되물을 겨를이 없도록 말을 잇던 와중에도 레아가 한 말은 옳은 말 같았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너한테 지나치게 의존하게 하면 안 돼. 그건 상대에게도 부당한 일이잖아.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면 상대는 너한테 실망하고 넌 괴로워지니까." 레아는 때로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현명한 말과 행동을 했다.
나는 그 대화를 잊지 않았고, 이후로 비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일주일 뒤 나는 멕시코로 떠났다. - P264

공원 곳곳 오솔길에 대리석으로 된 석상들이 포진해 있었고 점심때가 되면 길 건너 건물들에서 일하던 주간 근로자들이 이곳으로 와 점심시간을 맞아 파세오**를 즐겼다. 석상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것은베이지색 돌로 만든 것으로, 벌거벗은 소녀가 몸을 움츠리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 숙여 새벽을 맞는 형상이었다. 인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소음이 점점 커지지만 아직은 빛이 희미한 가운데 알라메다 공원의 향기롭고 고요한 아침을 헤치고 걷노라면 꼭 그 무릎 꿇은 소녀의 석상이살아나 고개를 들어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큼지막한 꽃송이처럼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른 아침 아베니다(대로)의 흐름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공원에서 들이마신 빛과 아름다움이 내 안에서부터 빛을 발했고 골목 구석에서 화로의 숯에 불을 붙이던 여자도 내 얼굴의 환한 빛에 화답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 P269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첫 몇 주간 걸을 때 발만 내려다보던 평생의습관이 깨지기 시작했다. 볼 것이 너무 많았고, 읽고 싶은 흥미롭고 천진한 얼굴들도 너무 많아서, 나는 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드는 연습을 했고 얼굴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기분이 좋았다. 어디를 가든 온갖 색조의 갈색 얼굴들이 내 얼굴과 마주쳤고, 거리에서 나와 같은 피부색을 - P269

수도 없이 보며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도 짜릿했다. 이전까지는 나 자신이 가시적 존재라 느낀 적도 없었으며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아직 친구를 하나도 사귀지 못했지만 객실 청소부와 반은 영어, 반은 스페인어로 날씨나 옷차림, 비데에 대해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나는 꽤나 즐거웠다. 내가 아침마다 저녁에 옥수수껍질로싼 뜨거운 타말레 * 두 개와 파란 딱지 붙은 우유 한 병을 사는 세뇨라와도, 내가 조그만 방을 빌린 작은 2등급 호텔의 주간근무 직원과도 비슷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 P270

새로운 주민이 등장하면 모두가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한편, 낯선 얼굴을 반기고 또 기대했다. 아직은 알 수 없는 북미의 또 다른 정치적 재난에 대한 기대감도 만발했다. 감미롭게 무르익은 부겐빌레아가 피워내는 불꽃 같은 관능 이면에, 흰색과 분홍색과 보라색의 작은 꽃잎들로이루어진 섬세한 자카란다 꽃비 이면에 도사린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숲속에서는 실제로 침묵하기가 더 쉽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바로 쿠에르나바카의 숨 막히게 아름다운 새벽빛과 빠르게 언덕을뒤덮는 땅거미 속에서였다. 어느 날 새벽, 디스트릭토 페데랄행 버스를타려고 언덕을 내려가 광장으로 향했다. 믿기지 않게 달콤하고 따뜻한공기 속, 온 사방에서 문득 새들이 날아올랐다.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예기치 못한 소리는 처음 들었다. 나는 새가 노래하는 소리의 파도 속에서 몸을 떨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詩에 담긴 가능성에 눈을 떴다. 여태 나는 꿈을 창조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느낌을 재창조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76

신문 속 대법원의 결정문은 마치 내게 특별히 전해진 개인적 약속이나 지지의 메시지 같았다. 하지만 그날 아침, 광장에 모인 모두가 그이야기, 또 이 결정이 미국인의 삶에 일으킬지도 모르는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니그로라는 말을 색채의 이름이자 아름답다는 의미로 입에 담는 어두운 피부를 가진 이들,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 존재를 알아보는 이들이가득한 이 땅에 있는 내 작은 집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내가 마침내 승인받을 수 있으리라는 반신반의하며 믿게 되는 약속처럼 다가왔다.
희망. 나는 이 결정이 내 삶의 속성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거라고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는 오히려 진보라고 느끼는 흐름 속에 나를 적극적으로 위치시키는 일이자, 내게 멕시코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자각의 핵심적 부분으로 느껴졌다. - P299

내 말은 단지 고통의 비명이 아니라, 내가 시작한 일을 끝내고자 하는 새로운 다짐이었다. 나는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에? 내 몸이했던 맹세에? 아니면, 의자 등받이 너머로 보이는 둥그런 머리에서부터내게로 쏟아지는 저 부드러움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그 무엇에 매달리려고, 막막해지지 않으려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유도라는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유도라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지않았다. 유도라는 내 앞에서 솔직하게 행동했다.
유도라는 내게 떠나라고 했다.
나는 상처를 입었지만 길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그를 처음 안던 그날 밤처럼, 나는 내가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라고, - P303

나는 젊고, 흑인이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기억한다. 대체로 내가 진실과 빛과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괜찮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순전히 지옥 같았다.
우리한테는 어머니도 자매도 영웅도 없었다. 우리는 아마존의 자매들처럼, 다호메 왕국에서 가장 외딴 전초기지의 기수들처럼, 뭐든지홀로 해내야 했다. 우리, 젊고 흑인이고 괜찮았고 동성애자였던 우리는점심시간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하나 없이 첫 실연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가 행복하고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게 하는 그이유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반지가 없었듯, 우리의 실험실 보고서나 도서관 문서에 얼룩지는 눈물에는 어떠한 이름이나 이유가 주어지지도, 공유되지도 못했다. - P306

웨스트 빌리지의 거리나 로어이스트사이드 시장을 돌아다니는 우리가 매서운 시선이나 웃음의 대상이 될 때, 그게 우리가 흑인 여자와백인 여자의 조합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성애자이기 때문인지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길 때면 나는 적당히 뮤리얼의 생각에 동조했다. 그럼에도 나는 펠리시아와 내가 남들은 할 수 없는 싸움,
남들은 가질 수 없는 힘을 나누는 사이란 걸 알았다. 우리는 남몰래 그사실을 받아들였기에, 우리는 백인 친구들은 들어올 수 없는 세계에 동떨어진 존재들이었다. 이곳은 심지어 내가 아무리 뮤리얼을 들여놓고싶다 해도 그조차도 들어올 수 없는 세계였다. 그리고 심지어 연인마저도 자신들이 접근할 수 없는 이 세계를 무시하고, 묵살하고,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면서 우리 사이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착각에 빠졌다. - P353

그러나 차이란 실제로 존재했고 또 중요했다. 아무도, 심지어 자신이 수영모자 없이는 수영하지 않는 이유가, 비 맞는 걸 싫어하는 이유가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진력이 난 플리 자신조차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뮤리얼과 나 사이에는 나를 영영 그에게서 동떨어진 사람으로 만드는 사실이 존재했으나, 내가 고통을 홀로 간직하기로 하는 이상 그 사실은 나만 알고 있을 터였다. 나는 흑인이고 그는 아니었으며,
우리 사이에는 좋고 나쁨은 물론 바깥세상의 광기와도 무관한 차이가 - P353

존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차이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리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이 차이를 우리 둘의 관계와는 별개로 마주해야 하리라는 것을알게 됐다.
그것이 사랑과는 별개로 우리 사이에 처음으로 생겨난 틈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차이가 가리키는 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이가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 차이에 담긴 의미로부터 재빨리눈을 돌렸다. 나는 우리 둘의 인종적 차이를 너무 자주 생각하지 않으려애썼다. 애초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레즈비언은 모두 흑인, 특히흑인 여성과 똑같이 억압받고 있다는 뮤리얼의 생각에 동의하는 척할때도 있었다. - P354

우리 모임을 이루는 여자들은 다들 우리 모두 옳은 편에 서 있다는사실을 당연히 여겼으며 누군가 물어보았다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편들고 있다고 여기는 그 옳음의 속성은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이 작은 모임을 이루는, 독립적인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레즈비언들은 서로가 삶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자세히 살펴보기를 암묵적으로 꺼렸다. 우리는 이 차이가 영영 해소될 수 없는 것임이드러날까봐 지나치게 겁을 냈다. 단 한 번도 그런 문제를 대하는 방법을배운 적 없었으니까. 우리는 각각의 개인을 무척 소중하게 여겼으나 모임도, 고독이 가진 보다 사회적 측면을 나눌 수 있는 다른 아웃사이더들도 마찬가지로 소중했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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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 Audre Lorde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시인, 흑인이며 다양한 인종의 존엄을위해 싸운 전사, 문학과 철학 교사, 도서관 사서, 출판인, 암생존자, 엄마,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레즈비언, 그리고영원한 아웃사이더. 1934년, 뉴욕시 할렘에서 카브리해국가인 그레나다 이민자 가정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인도제도에 관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 살 때부터읽기, 말하기, 쓰기를 익혔다. 헌터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전공했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아공공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레즈비언 게이공동체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게이인 에드워드 롤린스와 결혼해두 아이를 낳았다.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분노,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투, 아프리카여성 신화로서의 블랙 페미니즘을 미려하면서도 생동하는언어로 담아낸 시집 《최초의 도시들The First Cities》《타인이 사는 땅으로부터 From a Land Where Other PeopleLive》 《석탄Coal》 《블랙 유니콘>><<거리의 놀라운 산수TheMarvelous Arithmetics of Distance: 1987-1992》 등을 펴냈다.
자기 인식의 진화와 섹슈얼리티를 다룬 자전신화 《자》,
페미니즘 바이블로 손꼽히는 에세이와 연설문 선집 시스터아웃사이더>, 유색인종 여성들에 관한 에세이 《나는 너의자매다 Am Your Sister》, 암과의 사투를 진솔하고도 날카롭게담아낸 《암 일지The Cancer Journals》 등을 펴내며 인종, 성,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목소리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에 유방암을 선고받았다. 6년 만에 간암으로전이되었고, 투병 끝에 1992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 레즈비언, 엄마, 전사, 시인‘으로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절망을 혁명의 고질병으로 여기며˝
평생 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혐오에 맞서 결연히 싸웠다.

오드리 로드는 인종, 계급, 젠더에서 모두 비주류 쪽의 카드를 가지고 태어났다. 보통 이런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다. 소수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언어를 찾는 일은 생존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건 눈에 띄고 싶을 때는 보여지지 않다가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도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견뎌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다행스럽게도오드리 로드는 스스로 ‘낙인찍힌 자‘라고 부르는 것을 겁내지 않는 유별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다이크 등 그 시대의가장 불온한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었고 그에 걸맞는 삶을 기꺼이 살아갔다.
이렇게 살 수 있었던 뿌리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세계에서 꼿꼿하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되 아무것도 잊지 않는 어머니의 방어술은 뿌리를 옮겨온 이들이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매일 조금씩 자신을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수자들은 적응할 수 없는 것을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 경험과 지식이 분리된 세계에 살아간다. 그것은 무지개가 되지만 종종 올가미인 ‘우리‘를 만들어낸다.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지배자의 연장으로는 지배자의 집을 부술수 없다." 이 두 문장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오드리 로드의 불굴의 정신을 담고 있다. 《자미》는 그 정신의 뿌리를 알려준다. 이 책에는 저자에게 흔적을 남긴 아름답고 강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신을죽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다시 짓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면, 여자인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당장.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여자들의 사회》 저자

오드리 로드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능한 일일까?
가만히 오드리 로드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또한 지구에태어나 인간으로서 인생이라는 것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된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의 빼곡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가 살아 있다고, 인생은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자미》의 모든 문장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알려주는 이 또한 오드리 로드 자신이다. 분명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토록 자세하고 내밀하고 풍성하게 삶을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게도어둡고 빛나며 복잡하고 단순명료한 순간이 삶으로써 언제나 나와 함께했음을 나는 오드리 로드를 통해서야 가까스로 믿게 되었다.

_유진목 시인, <연애의 책》 저자

‘언어와 시와 사랑과 좋은 삶‘이 한데 버무려진 이야기를 오래 꿈꿨다. 바닷가에 발을 조금 적시고 마는 그런 사랑 말고 파도에 휩쓸려 정수리까지 젖어버려서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신나는 사랑 사랑이 끝나도 시로 남아서 영원의축복을 누리는 사랑. 자발적인 헌신과 상스러운 섹스가 있지만 나쁜 남자는등장하지 않는, 마음이 놓이는 사랑 이야기.
《자미》에서 이 모든 서사의 욕망이 충족되었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형벌이던 시대를, 거짓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위엄 있게 살아낸다. 사랑과 글쓰기의 힘이다. 그래서 그의 자전신화는 상호 탐구와 존재 연결에 관한 보고서다. 얼마나 멋진가. 추방된 존재의 서사가마침내 사랑의 역사로 재배열되는 삶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더 큰 우주로팽창하는 그의 생애는 별빛 같은 언어를 쏟아낸다.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찬탄과 동경을 담아 숨죽이며 읽었다. 시시하게 살기싫지만 고통이 두려워 잔뜩 움츠린 내 삶에 그의 이름을 "정서적인 타투"로 새기고 싶다. 사랑, 여성, 글쓰기로 된 구축물 <자미》는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미래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 은유 작가, <크게 그린 사람》 저자

《자미》는 오드리 로드의 삶을 ‘관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관계를 촘촘히 채운 이들은 여성들이다. 어머니와 자매처럼 가족관계에서 시작해 수많은친구와 연인 등으로 뻗어나간다. 로드가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그 관계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뉴욕의 흑인·여성·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일종의 문화기술지로도 읽힌다.
‘자매들‘과의 관계는 로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생존을 위한 단단한 의식주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무엇보다 로드에게 정서적으로 사랑이 충만한 일상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한편, 이 관계들은 굵직한 상처와 커다란 상실감도남겼다. 다시 말해 《자미》는 이 관계들에 대해 로드가 보내는 사랑의 언어이며 동시에 애도의 언어로 가득하다. 로드에게 영양분을 준 만큼 상처도 준 관계들이지만 그 상처마저도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로드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서로를 북돋아주며 성장한 관계들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사랑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의 약자와 소수자가 사랑하기를방해하는 권력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사랑을 굳건히 믿는 마음만큼 질긴 저항도 없다.

-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말을 부수는 말》 저자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여성 운동 연대기가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나는클리토리스 이야기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읽을 때부터 조금 당혹했다. 《자미》

는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 내내 여성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했고그 사랑은 운동의 동지나 자매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몸을 온전히 드러낸, 침대 위에서 기분 좋게 엉켜 있는 두 여자의 땀에 젖은몸에서 흘러나오는 그러한 사랑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과 투쟁의 영역이 키스와 관능과 성애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메마른상상은 언제부터 왜 하게 되었던 걸까?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말했듯, 성애는 "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우리안의 가장 깊고 강력하고 풍요로운 것을 신체적·감정적·심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즉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향한 열정"이다.
이 열정은 힘과 앎과 연결의 원천이 되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 나와 타자를 섞어주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뻗어나가 자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키스가 없다면 운동도 없다. 아아, 오드리 로드처럼 쓰고 오드리 로드처럼 살고 싶다. 《자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가장 정치적인 자전신화다.

_하미나 작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

흑인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과 혐오를 목격할 때마다 나는 오드리 로드에게 의지한다. 로드가 그러한 공격들에 어떻게 응전할지 궁금하다. 로드의 우아함과 힘, 맹렬한 지성은 모든 흑인 여성을 옹호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록산 게이 작가,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저자

《자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오드리 로드의 아웃사이더 성향에 관한서술은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

_앨리슨 벡델 작가, 《펀 홈》 저자

내 목소리에 담긴 힘을, 멍든 살갗의 수포 아래서 문득 거품을 일으키듯 부풀어 오르는 강인한 나를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

아버지는 나에게 묵묵하고, 강렬하며, 집요한 정신적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버지의 흔적은 먼빛이다. 나와 혼돈 사이에는 횃불처럼 활활 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다이크들처럼 서서 내 여정의 경계를 장식하고 구분한다. 이 친절하고도 잔혹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나를 집으로이끌었다.

내 생존의 상징들을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

호박의 계절부터 그해의 자정까지 언니들과 나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거실의 장밋빛 리놀륨 바닥에 난 구멍에 대고 돌차기 놀이를 했다.
토요일이면 누가 바깥으로 심부름하러 나갈지, 누가 빈 퀘이커 오트밀상자를 가질지, 밤에 누가 마지막으로 욕실을 쓸지, 누가 제일 먼저 수두에 걸릴지를 놓고 싸워댔다.

여름철 사람들로 가득한 할렘의 거리에서 풍기는, 살수 트럭이 잠시 물을 뿌리고 간 뒤 길에서 다시 태양을 향해 피어오르는 썩은 내. 나는 목이 짧은 가게 주인한테서 우유와 빵을 사러 길모퉁이로 뛰어가다가 어머니에게 꺾어다 줄 풀을 찾으려고 걸음을 멈췄다. 지하철로 이어진 철제 살대 아래 새끼 고양이처럼, 반짝 빛나는 동전을 찾으려고 또걸음을 멈췄다. 나는 늘 신발 끈을 묶으려 허리를 숙인 뒤 그대로 미적거리며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했다. 돈을 수중에 넣는 법을, 어떤 여자들이 꽃무늬 블라우스 주름 아래에 부어오른 위협처럼 품고 다니는 비밀을 슬쩍 들여다보는 방법을.

‘오늘의 나‘라는 여성이 되기까지 나는 어떤 이들에게 빚을 졌는가?

멜로이스는 142번가에 살았고 머리를 다듬는 법이 결코 없었으며이웃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쯧쯧 혀를 찼다. 델로이스가 커다란배를 당당하게 내밀고 거리를 걸을 때면 여름철 햇빛을 받은 푸슬푸슬한 머리카락에서 빛이 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그가 시詩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면 신발 끈을 묶는 척 몸을 숙이고블라우스 아래를 들여다보려 했을 때조차도 나는 델로이스에게 말을걸지 않았는데 내 어머니가 그와 말을 섞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마치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내가 언젠가 알고 싶은 누군가처럼 움직였으므로, 신의 어머니도, 그리고 오래전 내 어머니도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고, 어쩌면 언젠가는 나도델로이스 같은 몸짓을 지니게 될 터였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델로이스의 배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후광 같은 고리 모양 햇빛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내 배가 납작하다는게, 나는 머리와 어깨로만 햇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서운했다. 바닥에등을 대고 눕지 않는 한 햇빛이 그렇게 내 배에 내리일은 없었다.
나는 크고, 흑인이고, 특별하고, 늘 웃는 델로이스를 사랑했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그를 무서워했다. 어느 날 나는 델로이스가 142번가에서 신호등을 무시한 채 느리고 신중한 동작으로 연석 아래로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았다. 흰색 캐딜락을 몰고 지나가던 하이 옐로* 남자 하나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델로이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빨리빨리 좀 움직이라고, 느려터진 데다가 얼빠진, 얼굴도 웃기게 생긴 년아!" 캐딜락은 델로이스를 거의 치고 지나갈 뻔했다. 델로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걷던 대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집, 부엌을 쓸 수 있고 가구가 구비된, 그러나 침구는 제공되지 않던 방에 세 들어 살다 죽었던 루이즈 브리스코에게. 내가 우유를

한 잔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마시지 않았고, 내가 침구를 갈고 의사를 불러주겠다고 하자 웃었다. "그 의사가 엄청나게 귀여운 남자가 아니라면불러봤자 소용없지." 브리스코 씨의 말이었다. "날 위해 아무도 불러줄필요 없어. 내 힘으로 혼자 이 세상에 왔으니 똑같이 내 힘으로 떠나련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엄청나게 귀엽지 않다면야 쓸모가 없지." 방 안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냄새가 났다.
"브리스코 아주머니, 전 당신이 정말 걱정돼요."
그러자 그는 마치 내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한다는 듯, 그럼에도 그 말이 고맙다는 듯 나를 흘낏 보았다. 회색 이불 속, 부종이 심한커다란 몸으로 누운 채 그는 다 안다는 듯 씩 웃었다.
"뭐, 괜찮다, 애야. 널 원망할 마음은 없어. 너야 어쩔 수가 없겠지. 그게 네 천성이니 말이다."

내 꿈속에 등장하는, 공항에서 내 뒤에 서 있다가 자기 자식이 나한테 자꾸만 일부러 몸을 부딪쳐대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백인 여자에게 자식 간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 주둥이에 주먹을 한 방 날리겠다고 말할 셈으로 몸을 돌린 순간 나는 그 여자가 이미잔뜩 얻어맞은 뒤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여자도, 아이도 얼굴은 멍투성이인 데다가 눈가가 시커멓게 물든 만신창이였다. 나는 돌아서서 슬픔과 분노에 젖어 걸음을 옮겼다.

한밤중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얇은 잠옷만 걸치고 맨발로 내 차로달려오며 비명과 고함을 지르던 창백한 얼굴의 소녀에게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아, 제발 병원에 데려가주세요, 선생님……." 소녀의 목소리는 농익은 복숭아와 초인종 소리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내 딸과엇비슷한 나이인 그 소녀가 수풀이 우거진 밴 두저 스트리트의 굽은 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고 차창을 열었다. 한여름이었다.
"그래, 그래. 내가 도와줄게. 타려무나."
그런데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소녀의 얼굴은공포로 일그러졌다.

소녀는 울부짖더니 홱 돌아서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검은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만한 공포를 느낀 것일까? 진짜 나와 그 소녀가 바라본 나 사이의 간극 속에 나를 버려둔 채, 그는 도움도 받지 않고 떠났다.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백미러를 통해 길모퉁이에서 그 소녀가 악몽의 실체에게 붙들리는

장면이 보였다. 가죽재킷과 부츠, 남성, 백인.
소녀가 아마 어리석은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차를 몰았다.

내가 구애했고 또 떠났던 첫 여자에게. 그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는 여성들은 비싸고 때로는 낭비벽이 심하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당신을 빨아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한다.

내가 쉴 곳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 나섰고 때때로 쉼터가 되어준 무장 부대에게. 검게 물든 내가 완전한 이 모습 그대로 세상으로 나설 수있도록 자비 없는 태양 아래로 나를 밀어내준 타인들에게.

아프레케테가.
되어가는.
내 안에 깃든 여행하는 여성에게.

나는 언제나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 되기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진가장 강하고 풍부한 면모들을 내 안에, 내 속에 받아들여 지구가 언덕과산봉우리를 품듯 내 몸에 골짜기와 산맥이 공존하기를 바랐다.
나는 여느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속에 들어가고 싶은 동시에 상대가 내게 들어오기를 바라며, 떠나고 싶은 동시에 떠나보내고 싶으며, 사랑을 할때면 뜨거우면서도 단단하고, 또 부드럽고 싶었다. 밀어붙이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때는 쉬거나 밀어붙여지고 싶다. - P19

목욕물 속에 앉아 놀 때면 미끄럽고 접혀 있으며 부드럽고 깊은, 내 안깊숙한 그곳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나의 진주이자 나의 돌출부인,
다른 방식으로 단단하고 민감하고 취약한 그곳의 핵심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나를 영영 핵심에 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해묵은삼각형이 길게 늘어나고 평평해져, 할머니와 어머니와 나라는 우아하고강인한 삼위를 이루고, 그 안에서 ‘내‘가 필요에 따라 한 방향 또는 양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 P19

영원토록 여성. 내 몸은 더 늙고 오래되고 현명한 다른 삶들의 살아있는 재현이다. 산맥과 골짜기, 나무, 바위․ 모래, 꽃, 물, 돌. 지구상에서 만들어진 것들. - P20

그레나다 사람들과 바베이도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걷는다. 트리니다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레나다를 찾았을 때 나는 내 어머니의 힘을 이룬 뿌리가 거리 위를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내 어머니 조상들, 내 어머니 선조들,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들을 정의하던 흑인 섬 여자들의 나라라고. "섬 여자들은 아내 노릇을 잘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미 더한 것을 겪었으므로 이 여성들이 가진 아프리카인다운예리함에는 보다 부드러운 모서리가 있고, 그들은 비가 내리는 따뜻한거리를 오만하면서도 점잖은 태도로 휘젓고 다니며, 나는 힘과 취약함속에서 그 모습을 떠올린다. - P21

어린 시절, 냉장고 문이 부서지거나 전기가 나갔을 때, 언니가 스케이트를 빌려 타다가 입가가 찢어졌을 때처럼 온갖 위기나 재난이 닥칠때마다 어머니가 입 모양으로 이 기도문을 들릴락 말락 하게 외우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린 나는 기도문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위 같고 엄격한 내어머니가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읊는 상대인 그 어머니란 누굴까 하는수수께끼에 골몰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공공장소에서 얌전히굴게 하는 법을 알았다. 집 안에 남은 유일한 먹거리를 주의 깊게 계획하여 차려낸 식사인 척하는 법도 알았다.
어머니는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는 일일지라도 정성껏 하는 법을알았다. - P24

어머니는 자연사박물관을 오가는 길은 몰랐어도 아이들을 똑똑하게 키우려면 그런 데 데려가야 한다는 건 알았다. 아이들을 박물관에 데려간 어머니는 겁이 나서 오후 내내 우리 자매들의 통통한 위팔을 꼬집어댔다. 우리가 얌전치 못하게 군 탓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단정한 모자 차양 아래서 빛나는 박물관 경비원의 연푸른 눈이 우리에게서악취라도 풍긴다는 양 이쪽을 내내 주시하고 있어 겁이 났던 것이다.
이건 어머니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P26

린다는 초록은 귀중하다는 것, 물에는 평온과 치유를 가져다주는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 토요일 오후 집 청소를 끝낸 후면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공원을 찾아가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다. 때로는 142번가에 있는 할렘 강가에 가서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D트레인을 타고바다에 갈 때도 있었다. 물가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말이 없어지고, 나긋나긋해지고, 정신을 딴 데 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그레나다의 그렌빌, 카리브해가 내려다보이는 노엘스 힐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짙은 라임 향기 속에서 어머니가 태어난 곳, 캐리아쿠섬이야기도 해주었다. 치유의 효과를 가진 식물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지만 우리는 그런 식물들을 한 번도 본 적 - P27

이 없었으므로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어머니가 살았던 집 앞에 자라던 나무와 과일과 꽃 이야기도 해주었다.
한때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노엘스 힐의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흥얼거렸지만, 나는 코 고는 소리와 악몽 때문에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공동주택어둠 위로 그물처럼 걸려 있는 사포딜라와 망고를 상상해야만 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믿었기에 견딜 만했다. 비록 엄청난 에너지와집중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그저 잠깐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영영 생각할 장소도 아니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곳도, 정의하는곳도 아니라고 상상했다. 우리가 올바르게, 또 검소하게 살아가고, 길을건너기 전에 양옆을 확인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달콤한 장소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 P28

캐리아쿠에서 안니 이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나버린 다른 여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염소를 치고 땅콩을 기르고 곡물을 심고 땅이 옥수수를 잘 길러내도록 흙에다가 럼주를 부었으며, 여자들이 살 집과 빗물 집수장을 지었고, 라임을 수확했고, 자신들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한데 엮었다. 바다로 나간 남편 없이도 잘 살아남은 여성들, 남편이 돌아오지않더라도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마디빈, 프렌딩, 자미. 캐리아쿠 여성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그레나다의 전설이며,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캐리아쿠의 레스테르와 하비 계곡 사이 언덕에서 나의 어머니, 벨마 집안의 딸이 태어났다. 안니 이모의 집에서 여자들과 라임을 따며 여름을 보냈다. 훗날 내가 그레나다를 꿈꾸게 되듯, 어머니는 캐리아쿠를 꿈꾸며 자랐다. - P29

캐리아쿠. <구드스쿨 아틀라스>에도, <주니어 아메리카나 월드 가제트>는 물론, 내가 찾아본 그 어떤 지도에도 실려 있지 않은 곳. 그래서지리 수업시간이나 도서관 자습시간마다 이 마법의 섬을 찾아다녔지만찾지 못한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곳은 환상이거나 망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옛날식 이름일 거라고, 어쩌면 실제로 어머니가 말하는 곳은 사람들이 퀴라소라고 부르는 서인도제도 저 먼 곳 네덜란드령의 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집이란 사람들이 여태까지지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 목을 졸라 교과서의 페이지 사이에 가두지못한, 여기가 아닌 어느 다정한 곳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곳은오로지 우리만의 공간, 나무에 매달린 블루고*와 빵나무 열매, 너트메그와 라임과 사포딜라, 통카콩, 그리고 붉고 노란 파라다이스 플럼 사탕으로 가득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이었다. - P30

나는 어째서 늘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어째서 머무르기 힘들며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극단에 있는 것이, 냉정을 잃지 않고 한가운데로 똑바르게 이어지는 한가지계획을 고수하기보다 편안한지 말이다.
내가 분명 이해하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결단이다. 그것은 완고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움을 유발하지만, 종종 효과를 발휘한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일상어에서 여성과 강한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눈먼, 등이 굽은, 미친, 아니면 흑인 따위의 일탈적인 형용사가 뒤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어렸을 적 강한 여성이라는 말은 평범한 여성, 그러니까 그저 ‘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남성‘과 동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이 제3의신분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 P31

덕분에 우리는 토요일 아침마다 살을 얼만큼 추운 날에도 시내 곳곳의 슈퍼마켓이 문을열기도 전에 줄을 서야 했다. 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들어가서 한 사람당 약 100그램씩 할당된 보급품이 아닌 버터를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슈퍼마켓을 기억해두었다가 차비가 공짜인 나를 종종 함께 데리고 다녔다. 어떤곳이 흑인에게 호의적이고 또 아닌지도 모두 기억해둔 덕분에 전쟁이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특정 시장이나 가게에는 발길을 끊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전쟁 중 귀한 물자를 놓고 어머니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였는데, 어머니는 그 무엇도 결코 잊지 않았으며,
용서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 P40

내가 다섯 살, 여전히 법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있던 시절, 처음 간학교는 135번가와 레녹스 애비뉴에 있는 지역 공립학교에 개설된 시각장애인 학급이었다. 학교 한구석에 있는 파란 나무 부스에서는 백인 여자들이 아이가 있는 흑인 어머니들에게 우유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그시절의 나는 허스트 무료우유기금에서 주는 빨갛고 흰 뚜껑이 달린 작고 귀여운 병에 담긴 우유가 정말 먹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것은 자선이고, 따라서 나쁘고 모욕적일 뿐만 아니라 우유가 미지근해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며 절대 받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두 언니가 다니던 가톨릭 학교에서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공립학교는 내 기억대로라면 언니들에게는 협박용으로 쓰이던 장소였다. 둘중 누군가가 잘못을 한다든지, 학교 성적이나 품행 점수를 나쁘게 받아오면 그 학교로 ‘전학시킨다는 식이었다. ‘전학‘이라는 말은 수십 년 뒤
‘주방‘이라는 말이 암시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 P41

영원한 도움의 마리 수녀님은 십자가의 형태를 한 압제를 휘둘러1학년을 다스렸다. 그는 기껏해야 그때 열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싶다.
덩치가 컸고, 아마 금발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엔 수녀들이 머리카락을 꽁꽁 감추고 다녔으니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눈썹은 금빛이었고, 성체수녀회의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유색인과 원주민 아동들을 돌보는 데 전적으로 헌신해야만 했다. 돌본다는 것이 꼭 마음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게다가 영원한 도움의 마리 수녀님은가르치는 일을 싫어하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반을 ‘페어리‘와 ‘브라우니‘라는 두 모둠으로 나누었다. 인종주의는 물론이고 색의 사용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에 와서는 어느 쪽이 우등생이고 어느 쪽이 문제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매번 브라우니 모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말이 너무 많아서, 안경을 깨뜨려서, 아니면 끝도 없는 행동 규범 중 또 무엇을 어겨서등등 그 이유는 수도 없었다. - P51

"발없는새는 날아가는 곳마다 가지 없는 나무를 찾는다"

하고 싶은 말이 가장 힘센 언어가 되어 내게서 쏟아져 나올 때면 그것들은 기억 속 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을 닮았고, 그러면 나는 지금 해야 할 모든 말의 의미를 다시금 평가해보거나, 어머니가 옛날에 했던 말의 가치를 다시금 검토하게 된다.

내 어머니는 말word과 특별하고도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언어language라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말을 시작한 것은 네 살이 되어서였다. 세 살이 되었을땐 안경을 통해 보이는 사물의 새로운 본질을 배웠고, 희한한 빛과 매혹적인 형상들로 이루어졌던 나의 세계는 차츰 본래의 시시한 윤곽을 찾아갔다. 그렇게 인식한 세상은 다채롭거나 혼란스러운 면에 있어서는예전만 못했으나 심한 근시 때문에 초점이 고르지 못한 눈으로 보던 세상에 비하면 훨씬 더 편안했다. - P57

삶의 육감적인 요소들은 가려져 있고 불가해했으나 암호화된 구문에 실려 등장했다. 어쩌다 보니 사촌들 모두가 시릴 삼촌이 "뱀뱀쿠" 때문에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탈장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것이 분명 "저쪽 아래와 관련 있는 문제임을 경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목에 담이 걸리거나근육이 당겨 기분 좋게 손으로 주물러주는, 아주 가끔 일어나는 마술 같은 일을 할 때 어머니는 척추를 마사지하는 것이 아니라 "잔달리zandalee를 깨웠다."
나는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 "코훔코훔에 걸렸고, 그러면 모든 게
"크로-보-소", 즉 뒤죽박죽이거나 적어도 약간 기울어졌다.
나는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다. - P59

오늘날까지도 내 마음속에 피카소가 그린 정물처럼 영영 살아 있는슬픔과 비애의 정수는, 바로 우리 집 부엌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다세대주택의 벽돌 외벽에 버려진 실크스타킹 한 짝이 비바람을 맞으며 걸려있던 쓸쓸한 풍경이다. 어머니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동생들을 돌봐야했던 큰언니를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한 손으로 창틀을 붙들고 매달려 있던 그 부엌 창문에서 보인 풍경이었다.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맞게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나를 컴컴한 부엌 안으로 끌어올려줬던 덕에 나는 한 층아래 통풍구 속으로 떨어지는 일을 면했다. 그 순간 느낀 공포와 분노는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회초리로 얻어맞은 건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버려지고 찢어진 채 벽돌 벽에 걸려 비를 맞고 있던 스타킹이 뿜어내던슬픔, 박탈감, 외로움이 기억난다. - P76

며칠 뒤, 수업이 끝나자 전교생이 반별로 강당에 모여 줄을 섰고, 수녀님들이 우리에게 푸른 잉크로 각자의 이름, 주소, 나이, 그리고 혈액형이라는 것이 새겨진 둥글납작한 크림색 뼛조각을 하나씩 줬다. 걸쇠없는 금속 사슬에 달린 이 원판 조각을 전교생이 목에 줄곧 걸고 다녀야 하며, 그동안 내내 절대로 벗으면 안 되고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체벌을 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동안 내내라는 말에는 무한이라거나 영원같이 그 자체로 구체적인생명력과 에너지가 담긴 것 같았다.
수녀님들은 조금 있으면 방독면이 도착할 거라며, 우리가 안전한곳을 찾아 부모를 떠나 시골로 가야 했던 가여운 영국 아이들 같은 신세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남몰래 그건 정말 신나는일이 될 텐데 하고 생각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바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였지만 도저히 그런 신세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차마 나오지 않았다. - P95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할 수 있던 가장 두려운 상황은 잘못을 저지르고 들키는 것이었다. 실수란 폭로, 어쩌면 절멸을 뜻했다. 어머니 집에는 오류를 범할 공간이 잘못을 저지를 공간이 없었다.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흑인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내면에 있는 충족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본뜬 대로 나는 몇 번의 내 다음 생이 지나간 뒤에 아보메의 진흙으로 만든 서늘한 방에서 만나게 될 세불리사만큼 검게, 그리고 외롭게 자라났다. 어머니는 백인 남성들의 혀에서, 당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인해 배운 온갖 교활하고 견제적인 방어술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이런 방어술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조금씩 죽었다. 모든 색채는 변하고 서로가 되었으며섞이고 나뉘고 무지개와 올가미로 흘러들어갔다. - P102

세인트마크플레이스의 성체수녀회 수녀들도 나를 내려다보는 태도이긴 했으나 최소한 그들은 수녀로서의 사명 속에 인종차별을 숨기기라도 했었다. 세인트캐서린학교, 자선수녀회 수녀님들은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장식도 핑계도 없이 인종차별을 일삼았으며, 나는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집에서도 도움받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땋은 머리를 놀려대자 교장인 빅투아르 수녀는 내가 "돼지꼬리‘ 머리를 할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머리 모양을 더 ‘적절하게‘ 바꿔주라"는 가정통신문을 나한테 들려 보냈다. - P105

전교생이 입던 푸른색 개버딘 교복은 아무리 자주 드라이클리닝을해도 봄이 오면 곰팡내가 풍겼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리로 돌아오면 내자리에 "냄새 나"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곤 했다. 블랑슈 수녀에게 쪽지를 보였더니, 그는 유색인들이 실제로 백인과 다른 체취를 풍긴다는걸 내게 알려주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못된 쪽지를 쓴 건 잔인한 일이기에, 내일 점심시간이 끝난 뒤 내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이 다른 아이들한테 나에게 잘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 P105

하지만 나는 너무도 내 어머니를 닮은 딸이었기에 남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파괴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난 우리 학년에서 제일 똑똑했다. 그런데 부반장으로 뽑히지 못했다. 무언가 엄청나게 잘못됐다. 억울했다.
기독교인의 의무로서 내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헬렌 램지라는 체구가 작고 다정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겨울 동안 자기 썰매를 빌려준 적도있었다. 그 애는 교회 옆집에 살았는데, 그날 학교가 끝난 뒤에 자기 집에 코코아를 마시러 오라고 초대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벗어나 안전한 우리 집을 향해 길 건너로 내달렸다. 책가방을 다리에 부딪쳐가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교복 주머니에 핀으로 고정해놓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따뜻하고 어둡고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나는 그대로 집 앞쪽에 있는 내 방까지 달려가서 책과 외투를방구석에 집어 던진 뒤 분노와 실망으로 꺼이꺼이 울며 그대로 소파베드에 몸을 던졌다. 혼자가 되고 나서야 지난 두 시간 동안 내 두 눈을 타오르게 했던 눈물을 마침내 쏟아낼 수 있었다. 나는 한없이 울었다. - P111

예전에도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싶어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너무 커서, 나중에는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절대 가질 수 없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반장선거도 마찬가지였을까?
내가 너무 간절히 원했던 걸까?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 그 말이었던 걸까? 어머니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원하면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쩐지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선거는 내가 간절히 원하면서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라고 처음으로 확신한 일이 - P111

었다. 제일 똑똑한 학생이 반장이 될 거라고 했고, 내가 제일 똑똑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건 내가 나 스스로 해낸 일, 그래서 반장이된다는 결과를 보장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제일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제일 똑똑한 학생, 그건 나였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되어주지 않았다.
어머니 말이 맞았다. 나는 선거에서 떨어졌다. 어머니 말이 줄곧 옳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팠고,
그 아픔 때문에 나는 아까만큼이나 격렬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식구가 있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 만큼 나는 빈집에서 마음껏 슬픔을 누렸다. - P112


"봐라, 새는 잊어버리더라도 덫은 결코 잊지 않는단 말이다! 내가 분명 경고했지!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울며불며 집에 돌아오다니, 무슨 짓이냐? 내가 백번은 말하지 않았니, 그 사람들 뒤꽁무니나 따라다니지말란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인 오줌싸개 녀석들이 너 같은 검둥이 꼬마한테 뭐라도 넘겨주길 기대했다니, 무슨 이런 얼빠진 게 다 있냐?" 퍽!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니?" 내가 어머니의 성난 주먹세례와핸드백 모서리를 피해보려 몸을 옹송그리자 어머니는 내 양어깨를 붙들었다.
"그래, 내가 바보 같은 반장선거 때문에 쓸데없이 울면서 집에 오지말라고 말하지 않았니?" 퍽! "우리가 널 학교에 보내주는 이유가 대체뭐라고 생각하니?" 퍽! "남들 일에 기웃거리지만 않아도 훨씬 잘 지낼거다. 울음 그쳐, 어서, 울음 그치라고!" 퍽! 어머니는 아까 내가 쓰러져울던 소파베드로 나를 질질 끌고 갔다.
"그래, 울고 싶어? 그럼 울 일을 만들어주마!" 이번에는 아까보다 내어깨를 살짝 잡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남들일 때문에 발 동동 구르는 바보짓은 그만하고 일어나라. 당장 나가서 얼굴 씻고 오거라. 사람처럼 굴란 말이다!" - P113

"선거가 공평하지가 않았다고요, 어머니. 그래서 운 거예요" 나는식탁에 놓인 갈색 종이봉투를 열었다. 상처받은 걸 인정하면 고통을 받게 된게 내 탓이 될 터였다. "반장선거 때문이 아니라 불공평한 게 싫었다고요."
"공평, 공평이라, 대체 공평한 게 뭐냐? 공평한 걸 바라거든 하느님얼굴이나 바라봐라." 바삐 손을 놀려 양파를 통 안에 집어넣던 어머니가동작을 멈추고 몸을 돌려 손으로 내 턱을 받치더니 우느라 퉁퉁 부은 내얼굴을 쳐들게 했다. 아까는 그렇게 날카롭고 노엽던 어머니의 눈은 이제 그저 피곤하고 슬퍼 보였다.
"아가, 공평하건 아니건 그걸 뭣하러 고민하고 있니? 그냥 너는 네할 일을 하고 남들 일은 남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거라." 어머니는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치워주었고, 나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분노가 가셨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봐라, 바보 같은 일로 몸부림을 치다가 머리가 다 엉망이 되었잖니. 얼굴이랑 손 씻고 와서 저녁으로 먹을생선 재우는 거나 도와다오." - P114

녀오자고"
미국의 인종주의는 부모님이 미국에 온 이래로 매일같이 헤쳐 나가야 했던 새롭고도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부모님은 인종차별을 개인적인 괴로움으로 취급했다. 두 분은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는 현실과 미국의 인종주의라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아이들을 가장 안전히 지키기위해서는 그것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아가 그 속성조차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백인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그들이 품은 악의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나에게 꼭 필요했던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도 역시 배우지 않고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고가, 절대 믿지 말라는그 사람들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를 지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게 참이상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어머니는 왜 백인이 아니냐고, 또 아버지와나처럼 문제적인 피부색이 아닌 것은 물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언니들과도 완전히 다른 피부색을 지닌 릴라 이모와 에타 이모는 왜 백인이아니냐고 물어보면 안될것 같았다. - P120

"하지만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옳지도, 공정치도 않았다! 심지어 나는 바탄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시까지 쓰지 않았던가.
부모님은 이런 부당한 일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몸을사렸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나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한테서 내 분노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두 언니마저도 그 어떤 이례적인 반미 행위도 일어나지않은 것처럼 구는 부모님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 했다. 미국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담은 편지를 쓴 건 나뿐이었다. 내가 습자지 일기장에 쓴 편지를 보여주자 아버지가 다음 주 사무실 타자기를 쓰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종업원의 피부는 희고 카운터도 흰색이었으며 내가 어린 시절을 떠나보낸 그해 여름 워싱턴에서 내가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도 흰색이었다. 워싱턴에 처음 갔던 그 여름의 하얀 열기와 하얀 보도블록과 하얀석조 기념물 때문에 여행이 끝날 때까지 구역질이 났으므로 결국 그 여행은 딱히 졸업 선물이라 하기도 뭣한 것이었다. - P123

띠 모양의 긴장이 달 표면에 부는 월풍처럼 내 몸의 앞뒷면을 휩쓸고 있었다. 다리 사이로 살짝 볼록한 생리대의 촉감이 느껴졌고, 날염블라우스 앞섶에서 빵나무 열매 냄새가 옅게 피어오르는 것도 느꼈다.
그것이 내 몸에서 풍기는 여성의 내음, 따뜻하고, 수치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러운, 너무나 다디단 향이었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뒤 그날 내게서 풍기던 그 냄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상상한다. 손을 씻고 물기를 훔친 뒤 앞치마 끈을풀어 단정하게 벗어놓은 어머니가 소파에 누운 나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또 빠짐없이, 우리는 서로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어루만진다.
마늘의 속껍질을 빨리 벗겨내려고 절구 밑면의 단단한 모서리로내리쳐 으깼다. 마늘을 썰어 절구에 던져 넣고 흑후추와 셀러리 잎을넣었다. 흰 소금을 뿌려 마늘과 후추와 옅은 녹황색 셀러리 잎을 눈처럼소복이 덮었다. 양파와 피망 몇 조각을 넣고 절굿공이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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