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의자는 어디에 있는가
운명적인 의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나는 좋은 의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쁜 의자만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의자를 주제로 세 편의 시와 한편의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이 의자에 대한 내 동경을 모두 해소해주진 못했다. 결국 나는 내 의자를 직접 만드는 경험을 가지게 될 것같다. 의자를 찾기 위해 긴 골목 끝으로 나아가 세상 앞에 첫발을 내딛은 적이 있다. 나의 의자는 어디에 있는가. 내 의자에 쓰일 나무는 어느산에서 자라고 있나. 이제 곧 북반구의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겨울은,
얼음과 불 따위 어떤 결벽들을 거느리는 계절이다. 얼음과 불은 언제나서로를 긴장하게 만든다. 방심을 느슨하게 대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달아난다.
민망하게도 나는 사람의 눈을 보면 그가 외로운 사람인지 뻔뻔한 사람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에 가깝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신발을 신어왔다. 신발에 이끌리느라 의자를 갖 - P14
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공주가 되지 못한 여자 친구에게 따뜻한 저녁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의자를 찾아야 해.
이 세계는 자본가들에게 충분히 장악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이상의 의자를 가진 자들이다. 이 지상의 사람들은 의자를 가진 사람과 의자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다만 착한 식물들과 함께살고 있다. 이런 비애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의자는 식물이 동물의 욕망을 가지는 동안 스스로 변한 것이다. 운명적인 의자를 결국 만나지 못하고 이 생이 끝난다면,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픔것이다.
먼지 쌓인 의자가 가득한 술집에서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워한다. - P15
지난 봄, 투병 중인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을 모시고 경기도 성남으로 보신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화려한 삶,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리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신 선생님은 가톨릭에 귀의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궁구하고 있던 터에암 선고를 받으셨다. 삶의 유한함과 오만이 낳은 죄를 깨닫고 당신을 모시기로 했는데, 상을 주는 대신 병을 선물로 주셨을 때 신에 대한 원망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수십 차례의 방사선과 항암 치료, 세간의 지나친 관심 등 어지간히 투병생활에 이골이 난 그 즈음의 선생님은 모든것을 달관한 듯, 인자하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시 삶을 산다면 이름을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모든 표식을 버리고, 이런 시골에 파묻혀 시골 무지렁이 여인과 살 섞으며 빈대떡이나 붙여 팔며 살고 싶다. 탁주는 직접 손님들이 먹고싶을 만큼 떠먹게 ‘다라이‘ 속에 쟁여놓고 바보처럼 단순하게 살고 싶다. -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