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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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풍천장어집

                            김사인

김씨는 촘촘히 잘도 묶은 싸리비와 부삽으로

오늘도 가게 안팎을 정갈하니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새 남방을 입고 가게 앞 의자에 앉은 김씨가

고요하고 환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도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드리는 일인가.

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2015)]중에서

선운사에 가보셨는지요?

선연한 동백만큼이나 풍천장어집들이 즐비한 그곳의

어느 집 앞에 서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그 집의 장어도 먹는 사람을

‘고요하고 환’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서

먹는 이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요.

그러나,

시의 행간과 자간사이가 이제 육 개월 남짓한 초보에겐 영 닿을 수 없이 멀고도 심오합니다.

‘우주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일의 거룩함이

어떤 거창한 세속의 위대함에만 있는 것은 아닌

깨달음을 얻기까지

‘누가 알든 모르든’,‘누가 보거나 말거나’

얼마나 더 가야할지 아득한 것이지요.

그래도,

그.

래.

도.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두부]에 온 마음을 담아 그저 가보려 합니다.

묵묵히 쭈욱.

여기 콩콩두부家에 오신 그대, 오래 지켜보아주세요.

 
 
 

  유월이 시작되기 전 [선운사 풍천장어집]을 준비할 때 만에도 [콩콩두부家]의 유월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대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 구월이후부터 이 여름을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열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이상을 두부를 만들고, 쓸고, 닦고,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바꾸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 여름을 제대로 넘기면 안정권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오월을 지나면서부터는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는 희망은 아니었다. 그렇게 맞은 유월이고 [선운사 풍천장어집]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으니 이름은 들어봤나? 증상은 또 뭐라나? 하여간에 ‘메르스’

  치명타다.

  초 긍정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도 이제는 슬슬 초조해진다. 이 무능한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희망을 앗아가게 하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을 다시 살고 있는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터. 이번엔 어느 부처를 없앨 것인가.

  "너나 가라 하와이!!"에서 시작한 중동 붐이 [중동 독감 @.@] 으로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놈의 '메르스'가 지나 가고 나면 우리는 슬그머니 유신헌법의 시대를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해서 심란하고 의기소침해진다.

  이래가지고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도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부처님의 직무를" 도와드리기는 커녕 불목하니 노릇도 못 하겠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에 담긴 저 무수한 순수한 독자로도 국민으로도 살아가기 참 어려운 시절이다. 이렇게 작은 가게 하나 운영하는 일도 지구의 무게를 짊어진 듯 책무가 무겁고 철학이 없다면 흔들릴 일 투성이인데 한 나라를 경영하는 처신이 '아몰랑' 이어서야.

 
  '메르스'는 물러가는 모양이다.
  '유승민'도 물러갔다.
  '저 분분한 낙화'​ 태풍 '찬홈'의 빗속에서 떨어져 내리는 능소화를 눈에 담는다.
  초복인 오늘, 여름이 아직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인데 지친다. '광복 70년 기념 특사'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나!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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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14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우리에겐 아직 중복과 말복이 남아 있습니닷~^^

2015-07-20 20:39   좋아요 0 | URL
중복과 말복이 남아있다니 절로 힘이 나네요^^
와~새벽에 일어나시는군요
저는 그 시간이면 거의 죽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