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철학을 음미한 사람이 있었나? 음미해볼 만할 텐데. 산다는 것이 움직이는 것, 세계라는 낯선 여행지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움직인다는 것(동물의특권)은 어쩌면 지성의 열쇠다. 식물의 뿌리(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식물의 임)는 식물을 땅에 치명적으로 고정시킨다. 식물은 어쩌다 뿌리가 내려진 장소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그곳으로흘러오는 양분을 빨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이다. 하지만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 한 장소에 머문다는 것이 그곳과 하나가 되어 그곳이 위험에 처할 때 함께 위험에 처하는 것이라면, 여행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 가진 것 없는 사 - P340

같이 되어 새로 세우고 새로 배울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을 나는 그렇게 여행하는동안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정 장소에만 존재하는 기억과 풍경 간의 조응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려면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남아 있어야 하고 사건을 같은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움직인다는 것과 한곳에 머문다는 것이 꼭 반대말은 아니다. 예컨대 정해진 노선을 돌면서 여러 곳을 거점으로 삼는비정주민들은 정처 없이 앞으로만 움직이는 비정주민들과는 다르다. 변화한다는 것과 움직인다는 것이 꼭 비슷한 말인 것도아니다.  - P341

움직이는 것이 그저 변화를 따라잡거나 앞지르는 것이라면, 움직임의 반대말은 정주가 아니라 정체일 것이다. 나는 새편을 들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휴가 때뿐이었다. 평소의 나는 다섯 살 때 살던 지역에서 지금도살고 있다. 오랫동안 한 지역의 여러 장소들을 지켜보고 있던나는 그런 장소들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던반면에, 잠시 와서 살다가 떠나갈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와있는 지역의 동네, 시내, 도시, 생태, 경제, 기후가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풍경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풍경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풍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한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만약 내가 포터마에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 - P341

지 않은 채로 떠났다면, 과거의 결이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빨리 풀려버리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기만 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 같다.
돌처럼 단단한 정체성의 토대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는 조상의 나라가 그때 내 눈앞에서는 무수한 변신의 강이 되어 흘러나가고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에게, 그리고 아일랜드계미국인들에게도 모종의 단단한 토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아일랜드가 나에게는 그저 단절된 것들과 속도를 높이는 것들의 연속인 듯했다. 아일랜드 그 자체가 식민과 탈식민, 탈출, 도피, 해외 이민, 유출과 유입, 호황과 불황, 개발과 방치, 문화의 변용과전유를 옮겨 나르는 모종의 흐름인 듯했다. 다음 세대 사람들은농촌문화를 쓸어내고 농촌문화의 가톨릭 신앙을 새롭게 바꾸고 ‘유럽공동체‘와 세계시장을 흡수하고 해외 이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넓혀놓은 구멍으로 세계가 쏟아져들어올 것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포터마를 떠나면서 창밖을내다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였고, 푸른 풀밭 위의 모든 가축들은 마치 성탄화 속 동물처럼 그 지극한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 P342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름에 캐나다 여행으로 시작된 긴 여행이 겨울에 과테말라 여행, 늦봄에 아일랜드 여행으로까지 이어지던 그때, 세 가지 풍경은 나의 기억에서 세 가지 꿈을 불러냈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떠돌다 보면 언젠가 기억의 땅에도 가닿지 않을까, 새로운 장소를 요령껏 찾아다니다 보면 의식의 길에서 벗어나 헤매고 있었던 것들을 찾아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 그때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장소를옮기는 평범한 여행이 시간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의지도를 구할 수는 없지만, 꿈의 땅이 지도로 그려져 있지도 않겠지만, 꿈의 땅을 지도로 그릴 수도 없겠지만, 낯선 나라에서낯선 베개를 베고 잠드는 밤에만 꿀 수 있는 꿈을 꾸기 위해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 P371

캐나다에서 로키산맥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친구와개가 뜻밖의 사고를 당한 적이 없다는 듯 살아 있을 때의 모습그대로 내 꿈에 자주 찾아와준 덕에 로키산맥이 낯설게 행복한그리움으로 물들었지만, 과테말라를 여행하는 동안에는 줄곧가족과 관련된 악몽에 시달렸고 나중에 되돌아보면서도 그 장소가 그토록 불안했던 것이 얼마만큼이나 꿈 때문이었는지, 그저 그 장소가 꿈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뿐이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장소마다 그 장소를 거처로 삼는 꿈이 따로 있다면, 로키산맥을 거처로 삼은 꿈은 친구의 꿈, 과테말라를 거처로 삼은꿈은 가족의 꿈, 아일랜드를 거처로 삼은 꿈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나를 사랑했던 남자들과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과 다른 여러 남자들이 꿈에 너무 많이 나타났다.  - P372

거의 잊고 있었는데 마치 어제 만난 듯 또렷하게 나타난 남자도 있었고, 마치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한창 좋아하던 때의 모습으로 나타난 남자도 있었다. 한 친구는 내 책들을 전부 꺼내 내가어렸을 때 살던 집 뒤편 말 목장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푸른 잔디가 책의 액자 같았다. 그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사람들의꿈을 꾸면서 혼자 여행 중이라고 적었지만, 여행의 마지막 구간을 지날 때는 여자들이 여행의 시간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 여행이었다.
이렇게 꿈의 땅을 탐험하는 것도 시간 여행이지만, 장소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과거를 깨어나게 하는 것도 시간 여행이다. 팀 오툴이라는 친구는 자기 친구를 만나러 위클로에 가 - P372

서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시간(Irish time)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친구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시간이라고 하면농장 시간도 있고 시골 시간도 있고 관청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세 가지 시간이 포개져 있어서 누구냐에 따라, 어디냐에 따라시간이 달랐다. 시간을 정해서 만나고 싶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했다.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사람이 어떤시간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과거와 이어져 있느냐를보여주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간을 선택하는사람도 있었고 새로 만들어진 시간을 선택하고 시계를 맞추는사람도 있었다. 지금이 언제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을 언제로 정할 것이냐가 나의 정치적 입장, 내가 과거를 대하는 자세였다. - P373

꿈의 시간, 시계의 시간, 역사의 시간. 아일랜드에 와있는 동안에는 줄곧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낡은관행이나 주먹구구식 일처리를 목격할 때마다, 기억의 길이와행동의 여유를 목격할 때마다, 더블린에서 말이 끄는 수레를 목격할 때마다, 10년 전으로, 아니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웨스트포트의 관광기념품 가게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는 브라이드라는 아일랜드 여자한테 그 여자의 가족 이야기를 듣던나는 40년 전에 그 여자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던 내 엄마를 생각했다. 브라이드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면서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자 남은 가족들이 모욕감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사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어진 상황이었다. 당신이 사는 미국 - P373

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라고 브라이드는 나에게 무심히 말했다. 내가 다년간의 고민 끝에도달한 결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기는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인 듯, 과거가 미래를 누르고 있었고, 내 과거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가장 먼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준 것은 은둔자의 존재였다. 지금! 은둔자라니! 은둔성자 안토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 대략 355년이었다. 중세의 회화나 문헌에는 그런 은둔성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서 왕 전설을 차용하는 중세 로맨스에서는 위험에 빠진 처녀나 길을 묻는 기사가 도움을 받기에 편하도록 깊은 숲속에 은둔자가 사는 것으로 되어 있고(그런 숲은 이제 베어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중세 전기에는 스켈릭스 같은 아일랜드 오지가 실제로 은둔자들과 소규모 수도원들의 활동 무대였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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