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먼지보다는 재가 되리라
내 삶의 불꽃이 마르고 부패되어 숨막혀 죽기 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불길 속에서 타오르리라
졸린 듯 영원한 행성보다는 차라리 떨어지는 최고의 별똥별이 되어 내 모든 원자 하나하나가 장엄한 빛을 발하리라
존재가 아니라 사는 것이 곧 인간의 본분일지니 나는 생의 연장을 위해 주어진 날들을 허비하지 않으리 내게 허락된 시간들을 모두 쓰리라
잭 런던, [먼지가 되기보다는 재가 되리라]
의미 없는 먼지가 되기보다는 찬란한 재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 작가 잭 런던은 187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잭의 생부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를 외면했고, 잭의 어머니는 곧 ‘존 런던‘이라 - P7
는 남자와 재혼한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잭 런던은 소년 시절부터 통조림 공장에서 하루 18시간 노역을 하곤 했다. 가끔 도피처가 되어준 건 도서관이었고, 사서와도 친해져서 독서 지도를 받곤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런던은 학업을 중단하고 노동자, 도둑, 선원, 부랑자 생활을 하며 밑바닥 세계를 떠돈다. 그 시기에 그가 경험으로 체득한 사실은,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칙으로 돌아가며 그 바닥에서 생존하려면 모든 면에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15세되던 해, 양식장의 굴을 약탈해서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배를한 척 사서 어린 해적이 되기도 한다. 2년 후엔 직업 선원이 되어 생애 처음 일본과 시베리아까지 항해를 하고 돌아온다. - P8
잭 런던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이 항해에서 돌아오고 난 다음이다. 그는 엄청난 에너지로 작품을 써 나갔고, 여러 잡지사에 응모했으나 모두 반송되는 수모를 겪는다. 10대 후반부터 시작된 소설습작 시절에도 그는 여전히 가난했고, 고된 노역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사회주의자가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19세가 되어 뒤늦게 오클랜드 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여세를 몰아 버클리 대학에 입학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금 노동자가 된다. 그러고는 곧 금광을 찾아 떠났고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끝내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 공무원의 길을 포기한다. - P9
1903년, 마침내 소설 「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잭 런던은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 최고의인기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 이후 발표한 「바다 늑대, 하얀 송곳니도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잭 런던은 저택과 목장, 최고급 요트를 소유한 부유한 작가가 된다. 노동자로 태어나 부르주아의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하지만 1908년에는 선명한 사회주의 소설 『강철군화』를 발표하며 또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소설 「마틴 에덴」은 「강철 군화를 발표한 이듬해에 출간되었고, 잭 런던의 자전적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소설이다. 마틴과 루스의사랑이라는 주요 내용에 작가가 되기 전 고난의 경험을 함께 담고있다. 이 소설은 2019년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2020년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다.
「마틴 에덴이 다른 사랑의 이야기와 가장 차별화 되는 부분은 로맨스에 계급의 문제를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사랑은 모든 역경을 - P10
뛰어넘을 수 있는 사건 같지만, 실은 계급적 차이를 포함한 여러 가치관이 가장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짧은 단어로 압축해 본다면, ‘추앙‘과 ‘붕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의 노래인 랙타임을 들으며 성장한남자가 클래식이 흐르는 배경에서 자라 수준급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지닌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남자는 추앙하는 여자가 사는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 부르주아 문화를 습득하고 최고의 작가가 되는 꿈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이 두르고 있는 계급의 껍질을 찢고 나와 다른 계급의 껍질을 입는다는 것은 ‘붕괴‘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일이 아닐까? 마틴이 가고자 하는 ‘그 곳‘이 ‘에덴(Eden, 천국)‘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긴장을 추동하는 힘이다.
아름다움을 동반하는 붕괴들은 도처에 존재한다. 독자분들께서마틴의 붕괴에서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이라도 발견하기를 바라는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모순과 붕괴가 매력적으로다가오는 것은 문학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므로.
2022년 9월 녹색광선 편집부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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