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자신 그대로를 상대에게 보여주고, 상대방은 나라는 사람 자체를 매력적이라고 느껴야 한다. 나의 외모와 성격 모두가 나를 형성하고 있고, 그것을 상대에게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거다. 친구나 연인이 되는 데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되는 거다.
호프밀러 소위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는 우유부단해서 소녀를 절망에도 빠뜨리기도 하고 또 가장 황홀한 희망을 품게도 한다. 그러나 그 희망조차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결국 절망으로 바뀔 것이 뻔하다. 우유부단한 연민이 끊어내지 못한 동정심이 그녀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준다. 아, 이 빌어먹을 연민, 그는 자신의 연민에 대해 후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걸 반복한다. 더 큰 절망을 줄 거라는 걸 알면서 제대로 된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진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을뒤로 늦춘다. - P119

예전에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과 좋은 관계가 되고, 예전 같으면 허락하지 않았을 일을 허락하게 된다면, 나이를 먹는 것도 그다지 나쁠 것 같지 않다. 혼자서 산을 오르며 생각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일흔넷이 되어도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고 새로 사귄다는 게근사하게 느껴진다. 스무 살이 아니어도 서른다섯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벨이 울리는 순간 ‘무지개가 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아,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 P179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먹는 양이 적어지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일러지고 쉬는 시간이 길어져도 내 안의 감정들은 생생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게 경이롭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만나고, 기대하고 기다리고, 사랑을 주고 싶어지는 일들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가능하다면, 이 세상을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그 순간이 빨리 오기를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여전히 한 사람의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시간이 가는 것을 온몸으로 막고 싶다는 생각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대부분은 두려운 마음이지만, 가끔은 설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묵묵히 산에 오를 수있는 것 같다. - P179

누군가는 커피가 필요한 사람에게 커피를 건네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미를가질 것이고, 누군가는 요리를 하면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누구나어떤 식으로는 다른 이의 삶에 혹은 이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텐데, 나만 내가 하는 일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가. 이 일을해 번 돈으로 나는 소주를 마시고 고기를 먹고 책을 읽지만, 그런 내가 이렇게 먹고사는 일 말고 대체 이 세상에 어떤 쓸모가 있는가. 내가 여기서 일함으로써 이 회사에, 이 지역사회에 혹은 타인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의미 없 - P226

는 삶을 사는 걸로 여겨지는 거다.
이건 이 책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영화 <26>을 보면서도든 생각이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아픔을 누군가는 몸소 겪었고 누군가는 그 영향을 받았다. 세상에 알려야 할 일에 대해 누군가는 그걸 만화로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영화로 만들어냈다. 나는 관람석에 앉아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초반부터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자꾸만 등장인물들 앞에 부끄러워졌다. 내가 그들과 같은 일을 결코 할수는 없겠지만, 나는 소심하니 앞에 나서서 어떤 일을 진행할 수는없겠지만, 작게라도 어떻게든 무언가는 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 P227

각자의 자리에서 아프고 힘들고, 그래서 외면하기도 하고 정당화해보기도 했던 사람들을 보노라니, 나는 뭐하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반드시 그 자리에서 혹은 그 일에 대해서 뭔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내 삶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무엇 때문에사는 걸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울적하다.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걸까. 그러면 나는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책의 저자인 엘린 켈지는 전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한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직업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되리라는 것을.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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