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밖 지리여행 / 노웅희 박병석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006.12.10

 



 백두대산인가, 태백산맥인가    우리 삶에 알맞은 산줄기 체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조선부분조선 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오늘날 으레 쓰는 태백산맥 말고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썼다. 선조들이 호랑이처럼 생긴 우리 땅의 등줄기로 인식해 온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이른바 함경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을 거쳐 남해안 지리산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백두대간’이 사라지고 ‘태백산맥’이 생겨났을까? 그리고 우리의 자연과 문화, 생활에는 어느 이름이 더 알맞을까?
‘산맥’은 20세기 초 일제 통치자들에 의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이는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이다. (중략) 일본의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가 『한국 지리』를 집필하면서 지형 부분의 내용을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지질 이론의 틀에 따랐다. 이 책은 한국 지리와 관련된 다른 책들과 함께 일본에서 출판되었고, 식민 지배의 야욕에 휩싸여 있던 일본의 기업가와 민간인들에게 널리 읽혔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최남선이 주도하고 장지연 등이 실무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조선 광문회는 위기감을 느꼈다. 우리 땅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일본식 지리 인식 체계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전통 문화가 사라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중략) 『산경표』는 우리나라 옛 문헌에 나오고 지도에도 오랫동안 표시되어 왔으나 그동안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산들의 이름과 산줄기의 흐름을 체계화한 책이다. 이러한 정리 작업을 한 사람은 조선 영조 시대의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이라고 전해지며, 1770년경에 필사본으로 엮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심이 되는 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중략)
  







고토 분지로가 지질학적 연구 방법을 써서 새로 만든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는 정작 우리의 실제 지형과 삶에 온전히 맞지 않다. 높고 연속성이 강한 산줄기들은 지질 구조선을 반영하지만, 그 밖의 많은 산줄기들은 빗물과 하천에 의해 오랫동안 침식되어 지질 구조선이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략)

전통적인 산줄기 체계는 일본 학자가 만든 산줄기 체계보다 우리 자연과 문화, 생활에 잘 들어맞는다. 그래서 산줄기를 따라갈 때 산맥도를 보고 가면 하천을 만나는 바람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산경도를 보고 가면 그럴 일이 없다. 우리의 전통적인 산줄기 체계는 선조들이 물줄기를 고려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만약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지 않았다면 ‘산맥’이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제게 의해 그렇게 되었더라고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 한쪽에 치우쳐 있는 태백산맥을 우리나라 등줄기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태백산맥’이 아닌 ‘백두대간’이 우리 의식과 실생활에 자리 잡을 때, 우리 한겨레의 오랜 역사와 삶이 끊어짐 없이 되살아 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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