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밖 국사여행 / 역사학연구소 / 사계절출판사 / 2010.03.02

 

<교실밖 국사여행>이 세상에 나온 지 17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초판에서 조선 전기와 후기로 나누었던 것을 하나로 하고 근현대 부분에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마당에서 일곱째마당까지 시대순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시대별 중요 쟁점을 추려 구성하였습니다.

아래 마당 중 넷째마당 조선만 자세한 차례를 적습니다.

첫째마당 고대
둘째마당 남북국
셋째마당 고려
넷째마당 조선

백성은 도덕을 실천할 능력이 없다? - 민본 이념의 실상
백성의 생활을 하늘의 운행에 맞추다 - 세종 대의 천문학
김시습과 『금오신화』 - 저항하는 지식인의 한 유형
정벌의 대상이 배움의 대상으로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세계관의 변화
흥겨운 탈놀이 - 서민 문화의 발달
개성에는 남자가 없다 - 상업의 발전과 개성상인
농민에게 토지를! - 여전제와 정전제
봉기를 일으키는 농민들 - 19세기의 농민 항쟁
비할 데 없이 상세하고 정밀한 고지도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다섯째마당 근대 태동기
여섯째마당 일제 강점기
일곱째마당 현대





 ❁ 비할 데 없이 상세하고 정밀한 고지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전시실 바깥 벽면에는 22첩의 목판본 「대동여지도」의 모사본을 모두 연결하여 전시해 놓았다. 전시실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은 세로가 약 6.6미터, 가로가 약 4미터나 되는 「대동여지도」를 바라보면서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크기와 정밀함에 놀란다. ‘김정호는 저렇게 크고 자세한 지도를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면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하고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라갔다 왔다는 항간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물론 요즘은 김정호가 전국을 직접 답사하였다거나 백두산을 일곱 번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잘못된 이야기에 혹하는 사람이 꽤 있다.

‘김정호’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861년에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만 떠올린다. 하지만 그가 1834년에 처음으로 만든 대형 지도는 「청구도」이다. 이를 모두 연결하면 크기가 목판본 「대동여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중략

김정호는 꼼꼼하고 정직했다. 그는 처음으로 만든 「청구도」 일러두기에 “지도와 지리지 등 여러 자료 사이에 서로 다른 것이 많은데, 현재로서는 어떤 것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청구도」에서는 내가 주로 참고한 옛 지도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나중에 누군가 고쳐 줄 것을 기다려 본다.” 하고 기록해 놓았다.

중략




청구도의 모습

때문에 국가가 자신의 지도를 전국의 모든 고을에 보내 직접 교정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도 있다. 또 각 고을에 전문 지도 제작자가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지도의 내용을 고치는 방법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으며, 나아가 문장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림으로도 제시하였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김정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김정호는 「청구도」의 오류를 직접 교정하려고 시도하였다. 



대동여지도의 목판과 각 첩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호를 지도 제작자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김정호는 「청구도」의 제작 이후 지도와 함께 지리지 편찬에도 노력하였다. 지리지는 한 지역의 산천, 사방 경계, 역사적 연혁, 인구와 산업 등을 상세히 기재해 그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종합하여 볼 수 있는 자료다. 김정호는 전국의 모든 고을을 한눈에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도와 지리지를 함께 이용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지도와 지리지를 함께 편찬하려고 한 것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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