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지은이 김열규 한국인의 내면이 도깨비를 꼭 닮았다고? 도깨비는 어릴 적 할머니의 이야기 속 존재이다. 요즘 나오는 판타지 소설은 비교도 되지 않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지는 한국인들의 대표 판타지이다. 금나와라 은나와라 하며 두들기면 금은보화가 나오는 방망이를 가졌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 도깨비 방망이를 원하고 또 원한다. 이 방망이만 있으면 양반 못지않은 부자가 되어 그간 고된 설움 다 떨치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사실 도깨비들은 뭐든 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로 돈을 쌓아놓지도 떵떵거리지도 않는다. 이 책의 도깨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덤빈다. 그 장난이 간혹 심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지언정 남을 해코지하고자 하는 악의는 없다. 도깨비 놀이 목록을 만들자면 백 가지도 더 될 것이며 이 세상 어떤 것도 그들의 놀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도깨비의 그러한 습성이 그들의 천성이라고 한다. ’원래’ 그런 것이기에 놀지 않는 도깨비는 왠지 이상하다. 여기에서 조금은 도깨비와 한국인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인도 ’노는것’에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도깨비가 활개를 치던 시대는 조선시대란다. 조선시대 통치이념이었던 유학 성리학 뭐 이런것들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서, 양반을 제외한 서민들은 숨 죽이고 살아야 했던 그 시기. 서민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질수록 도깨비는 더 많이 나타난다. 마치 서민들의 억눌려 있던 얽힌 무언가를 풀어주는 듯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가릴 것 없고 숨길 것 없이 부글거리는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도깨비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 일에 몰두하는 아버지의 눈에서, 부당함을 토로하는 노동자의 눈에서, 미래를 위해 머리로 발로 뛰는 88만원세대들의 눈에서 도깨비가 보이는 것은 아마 ’나’의 안에도 도깨비가 두 눈을 번뜩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