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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견문 - 조선 지식인 유길준, 서양을 번역하다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8
유길준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0월
평점 :
<2009년 개항기 한국사회와 문화 숙제>
여행
그는 여행을 떠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기간 동안. 그가 갈 곳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곳, 그저 내가 살던 곳에 들어온 몇몇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 지금껏 내가 배운 책에서도 자주 볼 수 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에 담아 그려내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공부한 것들을 이용해 이것저것 짜맞추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적으로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파견한 외교사절이라는 임무를 띄고,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안은 채 멀고 먼 바다를 건너, 책으로도 보기 힘들었던 그곳에 다다랐다.
이 여행이 없었다면,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도 서양을 소개하는 책은 여러 권이 있었다. 이미 유럽-미국 열강에 한번 크게 데인 청나라에서 출판된 위원魏源의 『해국도지海國圖志』나, 일본의 『서유견문』쯤 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西洋事情』같은 책들이 그렇다. 이 외에도 많은 책들이 청나라, 도쿠가와 막부 치하에서 발행되었을 것이고, 학문적으로 같은 시대와 경향 아래 놓여있던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서적을 수입해 접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에서 시작한 유럽과 미국에 대한 반응은, 청나라와 도쿠가와 막부, 그리고 조선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처음엔 자국의 정체성과 전통을 지키자고 이야기하는 복고주의적인 세력이 등장해, 교류 단절과 쇄국, 그리고 양이洋夷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청나라의 황실과 몇몇 지식인들이 그렇고, 조선의 조정과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유학자들이 그렇고, 일본 내에서 국체론國體論을 주장한 보수적인 유학자들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정치적으로 얼마 안가서 그 기반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데, 세 정부 모두 강제로 개항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 무리의 지식인들은, 이미 이루어진 개항을 물릴 수는 없으니, 개항과 교류라는 조건을 끌어안고서 펼칠 미래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그들의 정치체제와 사고방식 전면을 수용하여 소화하려는, 이른바 개화開化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살펴볼 때, 유길준이 떠난 여행은 단순히 공적인 면모나, 개인의 호기심에 충만한 여행은 아니었다. 이런 조건을 딛고,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지적 판단에 따라 떠난 지식의 여행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에는, 책으로만 읽고 국내에서 그 일부의 행각만 보던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생기있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있다.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선의 언어로 풀어내 자신이 받았던 인지적인 충격을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달하려고 했던 마음. 유길준은 아마 이 책을 쓰면서, 바로 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서양을 전달하려는 의도 이상의 것이 들어있는 것이다.
백과사전의 배치
하지만,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하니,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책으로 보고 그것에 대해 머릿속에 어떤 형태로 그리고 있었어도, 그것이 눈앞에 현현하는 순간에 받는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어떤 것은 전해주고 어떤 것은 전해주지 않아야 할지, 어떤 것은 좋다고 하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할지, 어떤 것은 이런 점이 좋은데 이런 점은 나쁘다고 할지. 아무리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도 이것을 그 짧은 시간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유길준은 ‘다 쓰기’로 마음먹는다. 이것은 당시에 간행된 서양을 소개하는 서적들이 많이들 쓰는 방식이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도 유길준 개인의 욕심이나 포부가 더 많이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지식인의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될 식사예절이라든가, 아이 키우는 방법 따위의 글을 쓸 까닭이 없다. 이런 항목들은, 사실상 우리가 서양의 문물이라고 부르는 것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무 편 가운데 몇 편을 차지하고, 정치나 사상 같은 항목과 같은 수준의 취급을 받는다. 분류에 있어서, 같은 위상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서유견문은, 그래서 백과사전이다. 책 하나에 자기가 보고 들은 것 모두를 담고자 하는 유길준의 기획이 담겨있는 것이다. 물론 유길준 개인의 관심사가 묻어나는 부분들은 그 분량이 매우 많고, 자세하다. 특히 유교적 우환의식憂患意識과 관련된 민생, 정치적 안정에 대한 내용은 그 자체로 한 편씩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분류와 항목화에 있어서 생활 습관이나 의례같은 것이 정치, 사상, 경제와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 그리고 그 내용도 그렇게 허투루 적힌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 백과사전으로서의 면모를 더욱 크게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서도 정치, 사회, 경제적인 것이 책 전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유길준이 선택한 일종의 전략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피상적으로만 알려져 있었을 개인의 자유(4편), 만국공법에 기초한 국제질서(3편), 사회계약론을 기반으로 한 정부구성이론(5편), 시장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자유주의(자본주의) 경제체제(4편), 개인의 정치-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적 구성(6편), 강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한 조세제도(7편, 8편) 등은 그 자체에 대한 내용으로만 한 편씩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앞쪽에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단순한 소개와 분석의 수준을 넘어서서 우리도 이렇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 어떤 조세제도가 좋으며 어떤 것은 좋지 않은지에 대한 유길준의 견해도 다소 강력하게 표명되어있다. 현재 근대화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당시에 개화파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던 유길준에게는 무엇보다도 이런 면이 빨리 소개되는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도가 하루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이런 형태로 변화하는 것만이 국제사회에 적절한 위상으로 편입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묻어나온다.
정치와 전략적 글쓰기
유길준이 변화의 모델로 제시한 근대적 정치체제는, 크게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천부인권으로서 보장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이다. 이것은 근대적 정치체제의 가장 특징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요소로서, 이것을 부정하면서 결코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둘째는 사회계약론적인 정부구성이론이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각각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할애하여 정부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입장이다. 셋째는 법에 의한 지배이다. 이것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적인 요소에 구애받지 않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체제이다. 넷째는, 이렇게 성립된 정부들을 지배하는 만국공법적인 국제질서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발생적인 순서로 따졌을 때는 가장 뒤에 나와야 할 만국공법 질서에 대한 설명이 순서상으로는 가장 앞에(3편) 나온다는 점이다. 유길준이 전략적 글쓰기를 수행한다는 점이 이 대목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내용은, 『서유견문』을 쓰던 당시에 가장 조선에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바로, 근대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조공을 바치던 청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성립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있는 내용인 것이다. 즉, 조공을 바치는 것이 독립국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해서였는지, 아니면 독립국가이긴 하지만 조공을 주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인지 묻는 것이다.
유길준은 이에 대해서 본국-속국의 관계와 수공국(공물을 받는 나라)-증공국(공물을 주는 나라)의 관계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본국-속국은 속국이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본국으로부터 총독이 파견되며, 경찰이나 의회의 결정권 등등이 모두 본국에 비해 하위인 나라를 뜻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식민지 상태에 있는 국가의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인 것이다. 반대로 수공국-증공국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두 나라는 실제로 독립국이며, 서로에게 국가의 권리를 침해할만한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또한 사법권 또한 각국 정부에 있으며, 정부 역시 부속기관이 아니라 서로 따로 세운 정부라는 것이다. 이것이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던 관계이며, 따라서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유길준은 공물을 주는 것은 외교적 의례 혹은 자신이 당장 급한 위험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속국임을 증명하는 표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이런 이야기하는 근거로서 만국공법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조선은 독립국이라고 하는 주장은 있었다. 특히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에 의해 정부가 세워지자, 의식적으로 명나라를 추모하며 자신들이 그 적통을 이었다고 생각하는 소중화의식이 퍼져있었다. 이런 기반에서도 물론 조선은 청나라에 대해서 독립국이다. 하지만 유길준은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 국가를 기반으로 한 근대적인 국제정치질서를 수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시대를 규정하고, 또한 조선이 적응해야 할 체계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제대로 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유길준의 생각인 듯하다. 만국공법에 대한 설명 뒤에 국가내부의 개혁에 대한 기획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과 행위, 집회, 종교, 언론의 자유 등을 포함한 인간의 자연권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 자유로운 행위 사이의 경쟁을 통한 경제, 정치적 발전, 경쟁사회 안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연결된다는 자본주의적인 발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 이런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고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근대적인 정부의 목표에 대한 인식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정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조세제도를 포함한 일련의 법체계, 그리고 이를 통해 강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시행하는 군제개편과 교육제도, 경찰, 정당제도에 대한 소개가 등장한다.
이처럼 서유견문의 전반부는 유길준의 사유의 순서에 따라 전개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서양에 대해 묻고, 권하는 것이다.
담담한 서술의 전략
책의 후반부에는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는 않은 항목에 대한 사전적인 소개로 채워져있다. 즉, 생존에 직접 필요하지는 않지만 서양에 대한 정보로서 유익하고 또 필요한 것들을 계속 나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선의 전통에 대비되는 서양의 학문적 전통과 그 분류, 그리고 조선의 예법과 다른 서양의 예식과 행사, 그리고 조선에서만 살고 있다면 보기 힘든 여러 풍경들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때에는 개항에 긍정적인 의식을 가진 지식인이 아니라면 이런 풍경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조선을 침략하고 정복하러 온 사람이라는 의식이 명확해진 시기였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뒤에, 경제적으로 점점 일본과 유럽-미국 세력에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었고, 압도적으로 앞서있던 산업화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의 산업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은 조선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겨가지만, 이것은 결코 조선의, 더 정확히는 조선 민중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곧장 전국적인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식인들은 척사를 내세워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려 했고, 민중들은 농민전쟁 시기에 동학이 ‘서학에 반대한다’는 모토를 내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호응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유길준의 필치는 더욱 돋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후반부에는 건의나 변화에 대한 강력한 변화의 열의가 엿보이는 전반부와는 다르게, 변화에 대한 어떤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 수그러들거나 줄어드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이런 모습에 대해 부정적이었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술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어떤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저 이런 면모도 있다는 것을 기술하고, 그것에 대해 가치판단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객관적인 태도는,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서술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 책의 ‘백과사전적 면모’를 더해준다. 일견 자신의 견해가 다소 강력하게 드러난 전반부는 객관적이지 않은 서술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조선은 정치철학적인 면에서 매우 뒤떨어져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후진적이고 낙후되어있다. 따라서 이것을 쇄신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옳은 일이다. 반면에 풍습이나 예법에 대한 것은 애초부터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대상이 아니다. 이것을 조선의 예법을 지켜야한다는 모토 아래 서양의 예법에 대해서 금수라고 비난하거나 인간으로서의 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격하하는 것은 이런 객관성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유길준은 자신이 배운 전통과, 서양에서 지금 행하는 예법을 비교하면서 가치판단적인 언술을 배제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여행한 도시의 여러 면모를 스케치하는 것으로 자신의 저술을 마치는데, 이것은 일견 자랑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객관적 기술, 백과사전식 편집의 마침표로서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적어놓은 모든 내용이, 단순히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을 엮어서 쓴 것이 아니라, 정말 있는 그대로, 날것의 서양을 그대로 전해준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더없이 알맞은 끝맺음인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앞에 서술했던 다소 학술적이고 정치적인 내용들은 그 생생함이 배가 되고, 자신의 여행에 대한 자랑까지 덧붙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은, 내용과 판이하게 『서유견문西遊見聞』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변화
이런 유길준의 서술과 사유방식, 그리고 그가 내면적으로 내렸을법한 결론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가 소개해주고 있는 서양사회의 모습은, 사실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자유방임주의’, ‘야경국가’라고 부르는 정부형태의 전형이다. 그는 국가에 의한 무상복지정책은 국민을 게으르게 만들 뿐이라면서 부정한다. 대신 국민연금제도과 사립 보험회사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좋은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연금의 목적이 국민의 복지에 있지 않고, 단기간에 큰 자본을 모아 국가발전에 사용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청나라와의 관계를 만국공법에 입각해 기술하는 부분에서도, 순진하다 못해 종교적 열정에 가깝게 만국공법을 신뢰하는 모습도 보인다. 약자의 위치에서 그 질서에 편입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결점은, 19세기라는 그의 위치를 이해해야지만 그 공과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을 뛰어넘는 정치이론으로서 사회주의가 동아시아에 수입되는 것은 20세기가 들어서고 나서도 몇 년이나 더 지난 뒤의 일이다. 당대에는 유럽에서보다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만국공법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조선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또한 우리가 근대의 폭력으로 인식하는 많은 면모들은, 20세기가 중반을 넘어가고 나서야 사람들이 충격으로서 받아들이는 경험일 뿐, 이 당시에는 그런 면모를 발견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만큼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숨이 가빴고, 유럽-미국의 열강에 대해 다각도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대였다.
침략자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나를 해하려는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것. 이것이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서양에 대한 그의 견해이다. 이것에 대해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누구도 초월적인 기준에서 ‘올바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서술방식과 편집에서, 당시에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시선을 유지하려 애썼는지는 읽을 수 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그 고민과 시선, 그리고 그것을 당대에 보여주려 했던 그의 노력이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한국적인 가치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럽-미국의 사유방식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유길준이 안고 있었던 문제를 여전히 우리도 껴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이 기행문이면서도 단순한 기행문으로 쓰일 수 없었으며, 또한 우리가 기행문으로 읽을 수도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