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신서 377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개항기 한국 사회와 문화 숙제>

 

 

한국의 민족주의는 문제다. 건드리기 힘들다. 여기에 대해서 비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한다. 특히나 국가가 주도하여 민족이라는 개념을 가르치는 면모를 많이 보이기 때문에, 한국 안에 사는 사람들은 민족을 벗어난 삶을 상상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TV가 시작하고 끝날 때 꼭 애국가가 나온다. 어찌되었든 여러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와 관련을 짓는 사건이 한 해에 꼭 두어 건씩은 벌어진다.

하지만 민족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만큼, 민족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해보았는가 되묻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한민족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 한민족보다 상위개념인 민족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이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각도로 접근했는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얼마나 질문을 했는가. 이런 질문에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다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자리잡은 민족주의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는 민족주의를 분석한 유명한 책이다. 그가 유지하는 관점은, 민족을 사회적인 실재라는 주장이다. , 민족주의의 틀 내에서 민족을 초역사적이고 근원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어떤 개념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어떤 개념이 어떻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분석한 뒤 보여준다.

그가 남긴 이런 분석이 한국을 규정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베네딕트 앤더슨은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살펴보고 적절한 결론을 내리는 데 좋은 분석의 틀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한국은 민족주의적으로 민족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과 반대되는 관점에서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크나큰 충격이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세계의 국가들이 민족주의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민족주의가 구축되는 과정을 돌아보는 것도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우선,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또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표하는 두 나라, 중국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에도 엄청난 다툼이 있었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 틀 안에서는, 모든 사회주의 국가가 계급해방을 위해서 연대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인 사상 밖에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석의 틀이 있어야만 이런 사건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틀은 바로 민족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에 등장하였다. 따라서 기존에는 민족을 근대의 산물로 파악하고, 근대화와 함께 이 과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앤더슨은 민족을 단절적인 변화로 이해하지 않고, 기존에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던 어떤 공동체 의식의 양상이 변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역사적인 사건과 사람들의 변화한 세계관이 우연히 결합해 양상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근대 이전에는 종교 공동체가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맺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공통된 경전을 익혔기 때문에 문자언어로서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둘째, 성지를 중심으로 짜여진 지역별 위계 때문이다. 종교공동체의 구성원은 성지를 여행하는 경험을 통해 거쳐가는 모든 곳, 그리고 성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원래 살았던 영역 모두를 성지를 중심으로 한 단일한 공동체의 소속 지역으로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의례에서 보여지는 현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예언된 사건의 이미지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동일한 이야기 구조의 재생을 경험하고, 이것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동일한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직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과학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발달, 해양 진출 등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종교 경전에서 말하는 세계가 실제로 이루어진 세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적인 세계 안에서 인간은 수직적으로는 초월적인 존재와 맺는 관계속에서만 시간에 의미가 주어지기 때문에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또한 수평적으로는 초월적인 존재과 맺는 각각의 인간들이 초월적인 실재를 재현해내고 있으므로 재현의 시간이다. 반대로 근대적인 세계에서는 자신과 다른 공간의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시간이 수평적으로 같다. 또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확실하게 나누어진다고 믿고,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에 시간은 수직적으로 진행의 시간이다.

또한 전근대적인 공간은 정치적으로 진공이거나 회색지대인 곳이 훨씬 많았다. 권력은 봉건영주들에게 분권화되어있고, 그들의 힘이 미치는 곳은 성 안쪽이 전부였다. 반대로 근대적인 공간은 실제로 보이지는 않지만 분절적이다. 경도와 위도가 그렇고, 국경이 그렇다. 국경선이 그려진 안쪽은 정치적인 영향이 미쳐야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그 크기는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 민족의 출현은, 사실 많은 우연이 겹친 것이다. 그 누구도 민족에 대해서 고의적으로 말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았다. 출판업자, 유럽 열강 정부, 소설가, 신문은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이다. 공간과 시간의 변화는 이것을 체험할 수 있는 몇몇 지식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이 합쳐져서 우연히 공동체의식을 형성하였고, 이것은 과거의 어떤 공동체의식과도 그 양상이 달랐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태어난 민족주의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남아메리카의 식민지 관료들에서부터 시작된 식민지 민족주의이다. 앤더슨의 관점은, 대개 유럽을 출발지로 보는 민족주의에 대한 널리 퍼진 관념과는 다르다. 저자 본인도 이 부분을 강조한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민족주의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이 보이는 장소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관료들의 의식 속이다. 식민지 출신인 사람들은 본국의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차별을 당했다. 이것은 식민지 출신 백인들 사이에서 어떤 괴리감을 느끼게 하였다. 자신은 분명히 본국과 언어, 문화, 세계관 등을 공유하고 있고 혈통으로도 아무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본국으로 진출할 수 없다는 이상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또한 식민지 출신 백인들은 본국에서 지정해준 행정구역 내에서만 관리에 임명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마치 종교공동체에서 순례를 통해 공간적 공동체성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식민지 출신 백인들은 봉건 영주나 그 밑에서 일하는 가신이 아니라 관료이기 때문에, 발령지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자신이 움직이는 그 한계가 곧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한계라고 여긴 것이다.

이것이 곧 자신들을 독립된 공동체로 규정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이전에 존재하던 어떤 공동체와도 다른 것이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이는 민족을 앞세운 아메리카 각 국가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관료 시절 움직이던 한계가 곧 공동체의 경계로 인식되었고, 아메리카 전체의 통합된 독립은 이뤄질 수 없었다.

둘째는 유럽의 대중민족주의이다. 이 민족주의는 시기상 아메리카 식민지보다 뒤쳐진다는 점에서, 식민지의 민족주의에 다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요소는 출판산업이다. 출판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활자언어의 문제가 출판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대두되었고, 그것이 민족언어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에만 하더라도 각 지역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방언어들이 있었다. 출판산업 종사자들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 지방언어를 택해야 했지만, 여기에서 지방언어의 개수와 생산의 효율성을 저울질해야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여기에서 택한 방법이, 몇몇 활자를 표준어로 삼아 인쇄할 때 쓰고, 각 지방언어를 표준어에 맞게 통일하는 방식이다. 표준어는 그 지역의 민족어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마치 종교공동체에서 경전의 언어가 소통의 도구가 되었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 민족어가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또한 이 민족어를 쓰는 사람 모두가 한 민족으로 간주되었다.

셋째는 후발근대화국가들의 관주도 민족주의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와 달리, 관주도 민족주의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교육을 통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주입하는 민족국가 생성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전의 민족주의의 경우에는 기존에 마련된 문화적, 사회적 기반 위에 생성된 우연한 효과였을 뿐이다.

앤더슨은 관주도 민족주의를 공동체 내의 평등한 형제애라는 민족주의적 사고관에 대한 집권층의 반동이라고 규정한다. ,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 모두 다 같은 인격으로서 취급받아야 하는데, 이런 입장을 도입하면 왕정의 정치적인 정당성이나 존속에 매우 위태롭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각 왕정들은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정은 자신을 민족의 대표자로 상정하고, 그리고 대변해줄 수 있는 대상들로서 인민들을 포섭한 후 한 민족으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예로부터 고유하게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는 민족의 특성을, 지금까지 그 땅에 존재해왔고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여러 왕조들을 민족의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한다. 이는 물론 역사를 어느 정도 조작한 결과이다. 각 왕조 간의 단절성보다는 연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는 옛날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민족주의적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관주도 민족주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더욱 긴요하게 이용된다. 식민지 현지 엘리트들은, 지배국가 관료가 되는 과정에서 민족 개념을 확립하게 된 그들의 역사를 배운다. 바로 이것이 직접적인 침략의 체험과 함께 식민지에 민족주의를 유포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현지 엘리트들은 지배국가가 민족국가로 변화한 과정과 똑같이 조국을 독립국가로 만들려 노력한다. 그래서 식민지의 민족운동은 현지 엘리트인 소수 상류층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아래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개념으로 확립된 민족은 항상 과거에 의존하여 자신을 규정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민족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어떤 것으로서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족에 기대어 기존 정부를 전복하고 들어선 새로운 정부가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는, 근대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예전 정부에서 확보해놓았던 모든 물질적인 토대들을 흡수함으로써, 이전 체제와 다를 것이 없는 통치기구로 자리잡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 정치체제와는 다른 큰 차이가 있다. 민족국가는 단순히 물적인 토대를 흡수하여 그것을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것은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십분 활용한다. 그것은 곧 현재 들어선 정부의 정통성을 사람들에게 표명하는 것과 꼭 같은 작업이 된다. 민족이 있는 한, 이런 현상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앤더슨이 제기하는 민족에 대한 구성적 관점은, 구성적이라는 면에서 그 자체로 높은 설득력을 지닌다. 어떤 사회-정치-경제 이론도 민족에 대해서 확실한 규정을 내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 전통은 항상 민족문제를 안고 매달려야했다. 민족이 어떤 면에서든 본질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구성적이라고 규정하면, 많은 상황을 탄력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 같은 민족주의라도 전혀 양상이 다른 유럽의 민족주의와 식민지의 민족주의, 그리고 식민지 사이에서도 아메리카의 민족주의와 아시아의 민족주의를 모두 설득력있게 기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각종 민족주의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사회들 가운데서 민족이라는 개념, 민족주의라는 관념이 어떻게 자리잡았는가 차분히 보여주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다양한 민족주의의 사례를 보여주고 그것을 단일하지만은 않은 몇몇 유형으로 구체화시키는 것 자체가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이 과정에서 민족에 대한 고찰의 한계가 드러난다. 사실 민족은, 어떤 식으로 정의해도 자기 스스로 정의되지 않으며, 언제나 타자성을 담고 있다. , 타자가 없이는 자신도 정의될 수 없고,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아닌 남의 존재를 필요로이는 역설적으로 앤더슨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열거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식민지 독립을 위해 일했던 백인들은, 정책적으로 자신을 차별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신을 공동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유럽 본국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벌이는 열강 간의 세력다툼의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구체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발생기원을 명확하게 추적할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명확한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해보지만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우연한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뒤에 의도적으로 추진된 관주도 민족주의의 경우는 타자에 대한 우리의 성격이 더욱 명확하다. 저들도 하니 우리도 뒤질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설명은 힘든 도식인 셈이다.

결국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화는 맥락에 따라 문화적으로 유형화시키는 앤더슨 식의 성과 또는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형화 이상의 명확한 규정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것 자체가 개념화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다.

더군다나 식민지 관료들이 아니라 현지 엘리트들이 민족주의의 주체로 등장한 아시아의 민족주의 같은 경우에는, 타자를 반드시 거쳐야만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그렇다. 일본을 비롯한 유럽-미국의 열강이 침입하기 전까지, 근대적인 민족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 또 당대 지식인들은 자신을 상대화할 다른 대등한 공동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민족주의적인 의식이 싹트는 것은 열강을 눈으로 본 사람들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자 그들이 아닌 우리로서 정립되었다.

또한 뒤늦게 열강의 대열에 끼어든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아시아적인 상황은 앤더슨의 틀에서도 약간 벗어나는 유형이기도 하다. 이것은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아시아 민족국가라는 일본의 특이한 위치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전에 같은 종교공동체였던 상태에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지배를 당했다는 급속한 당시의 국제정세와 한국의 상황이 더 큰 원인이다.

아주 결정적인 차이는, 현지 엘리트들의 지배국가에 대한 태도이다. 일본은 마치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 펴는 정책처럼, 조선에도 식민통치 기구를 두었으며 현지 엘리트들을 관료로 양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폈다. 하지만 조선과 일본 사이는, 유럽 열강과 아프리카 식민지 만큼의 인종적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반감이 적다. 조선의 현지 엘리트들은 민족적 계몽을 꿈꾸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서 제국주의 일본과의 완전한 일체를 꿈꾸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이 같은 사고관에서 연역된 결론이라는 점이다. , 완벽한 타자화에 실패하고 이에 동화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민족주의의 확산 못지 않게 근대화라는 과제가 더 중요하게 걸려있었다. 어느 것을 우선으로 삼을것이냐 논쟁하는 과정에서 결국 매듭을 짓지 못하고, 민족주의의 대표로 자리매김한 대다수 지식인들은 일본의 근대화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내선일체라는 거대한 근대화 목표에도 동참하였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이것은 앤더슨의 어떤 유형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이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해방 이후에 전개되는 민족주의의 확산은, 앤더슨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전형적인 관주도 민족주의의 형태를 띈다. 보통교육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민족이라는 의식을 확고하게 자리잡게끔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족주의적 변신은 경제개발이라는 목표에 성취하기 좋은 그만큼까지만 고양되었다. 박정희는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고 민족구성원들을 집결시킨 민족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한 근대화지상주의자였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화두이다. 민족을 건드리는 자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상상의 공동체에는 2002년 한일 양국 월드컵 당시의 응원단 사진이 붙어있다. 이것은 민족을 건드려서 웃은 사례이다. 하지만 한일전에 광분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응원을 광기라고 몰아붙인 사람들은 민족을 건드렸다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만큼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민족과 항상 얽혀서 살아간다.

그래서 민족에 대한 고찰은 언제나 필요하다. 민족에 대한 분석의 틀 가운데 앤더슨이 제시하는 방법은 구성주의적이라는 면에서 설득력이 있다. 민족은 여러 가지 현상이 우연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 작용을 통해 사람들을 규정하고, 정의해주었으며, 기존에 있던 공동체의식을 대체하는데도 성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을 얼마간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민족을 스스로 정의하는 일는, 그 개념이 타자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결정적인 한계에 직면한다. 비유하자면, 민족은 내면으로부터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치는 자기자신을 정의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앤더슨은 유럽-미국 열강과 직접 대면한 국가만을 분석한 유형화는 성공했지만, 일본이라는 독특한 경우가 포착되지 않았다. 물론 일본 스스로는 미국과 대면했기에 일본의 관주도 민족주의를 분석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일본이 지배한 국가들에서 어떻게 민족주의가 생겨났는지를 살펴보는데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분석의 힘은 유효하며, 현재 확산되어있는 민족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앤더슨을 뛰어넘어, 민족에 대해 더욱 뜨겁게 생각해보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