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화혁명 - 유럽의 패권을 가져온 세계관의 탄생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 김병화 옮김 / 심산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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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서양문화사 숙제>

 

 

세계관의 중요함

 

철학을 비롯해, 각 학문 분과에서 근대는 언제나 중요한 주제이다. 근대는 단순히 서기 1500년 이후의 시간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때로는 발전을 상징하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정치체제를 의미하기도 하며, 법칙과 논리적 설명으로 파악하는 역사연구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눈부신 과학적 발전의 성과가 압축되어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반면에 세계 전체에 가해진 폭력, 끝없는 자기부정과 동일화과정, 식민지화와 세계대전을 함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과정이 동시에 일어났고, 그것이 어떤 특정한 하나의 세계관을 연역했을 때 나오는 두 결론이라는 점이다.

앨프리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는 바로 이 근대에 대한 역사적 연구로 잘 알려져있는 학자이다. 근대라는 독특한 세계 그리고 세계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여 이와 관련된 많은 저서들을 펴냈다. 특히 생태제국주의같은 책은 1500년대 이후 유럽이 어떻게 전세계를 유럽화하였는지 면밀히 분석한 책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바 있다.

그가 쓴 수량화혁명역시 근대에 대해 다룬 책이다. 더 정확하게는, 근대라는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수량화와 시각화라는 작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원래 영어제목은 The Measure of Reality : Quantification and Western Society, 1250-1600 인데, 오히려 이 제목이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더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실재Reality를 측정measure한다는 것이야말로, 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근대라는 세계관이 보여주는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특징적인 면모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재어, 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이런 독특한 세계관이 우연한 사건들의 결합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지금과 같이 역사가 발전한 과정에 필연성이나 법칙같은 것을 부여하는 작업은, 아주 쉽게 인종주의적 편견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근대가 진행되는 과정 자체는 그런 폭력에 너무도 쉽게 노출이 되어 있었다. 이 과정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입장에 서있는 저자로서는, 그런 종류의 분석은 마땅히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여러 파편화된 사건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 사건들은 우연히 결합했지만, 그 결합의 효과로서 나타난 여러 사태들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독특한 사고관의 출현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철학 분야에서 이런 사고관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논의해야만 한다. 사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한 실재Reality라는 말은, 그것이 실제 세계를 지칭하기 이전에 철학적으로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실제는 가상fiction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논의는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논의하던 바이다. 저자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데, 따라서 그가 수량화를 다루면서 가장 앞에 배치한 것은 바로 실재에 대한 고대의 사고관,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이다.

사실 근대의 핵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학문적 도구들은, 그 이전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해있었다. 특히 수량화에 가장 중요한 학문인 수학의 경우에는, 기하학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이미 융성하였다. 르네상스 시기를 괜히 르네상스, 즉 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로마 전통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다. 학문 역시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고대적인 전통이 부활하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세계를 수량화시키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중세 전통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재를 가상과 구별하는 전통이다. 이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중세의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 모두가 공통되게 가지고 있는 특성이었다. 수학과 기하학은 서양의 역사 전체를 걸쳐서 학문의 전범으로서 추앙받았지만, 그것은 사고과정을 기술하는 체계였을 뿐이다. 사고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를 구분하는 세계관에서 수학은 사고의 세계를 설명해주는 체계였을 뿐, 그것으로 감각의 세계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감각의 세계를 설명해주는 체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와 중세는 수학과 물리학은 있었지만 수리물리학은 없었던 시대였다.

이런 사고관에서 출발해 세계를 질quality로서 이해하고 설명하던 시대의 세계관을 저자는 유서 깊은 모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 유서 깊은 모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계산하기 불편한 로마 숫자 표기법, 예언이 성취되는 메시아적 시간, 해마다 일치하지 않는 부활절 주간, 성경에 기초한 시대구분, 원운동을 완벽한 운동으로 간주하는 물리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여기에는 이 세계의 구성을 형상form과 질료matter의 결합으로 설명하며, 물체를 규정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이라고 이해하는 스콜라 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설명법도 한몫 하고 있다.

유서 깊은 모델이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이런 탄탄한 철학적인 토대와는 너무도 다른 현실적 세계가 출현하면서부터이다. 이 모델을 무너뜨린 것은 이런 사고관에 대해 매일 연구하고 깊이 고뇌하는 철학자들이 아니라, 금융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부자들, 즉 우리가 후일 부르주아라고 부르게되는 신흥 상공업 부호들이다. 이들은 효율적인 작업과 극대화된 이익을 성취하기 위해 전혀 다른 세계관을 상정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근대적인 세계관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 수량화의 과정이 가장 급진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이행되면서 사람들의 사고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부분을 시간공간에 대한 이해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상공업 부르주아들은 효율적인 노동을 위해 시간을 지속적으로 분절하기 시작했고, 이것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기계는 다름아닌 시계였다. 이것을 통해,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사람들은 시간을 메시아적 시간에서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변화가 농업 중심의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나타나기보다는, 상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짜여있었던 이탈리아 항구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로, ‘좌표화를 통해서 지도를 제작함에 따라 공간관이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하지만 단순히 세계를 양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양으로 이해한 세계는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고 따라해야 했다. 특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작업방법과 거래방법의 공유를 위해 노력했던 상공업 부르주아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전달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모든 것들을 보여줄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수량화가 시각화로 이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저자는 학문적이고 순수한 연구보다 오히려 복식부기가 진정한 세계관의 변화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악보를 적는 음악의 시각화나, 보이는대로 그림을 그리려는 원근법 도입보다도 훨씬 큰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런 입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사실 당대의 학문적 논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비판이나 지지의 견해를 덧붙일 수 있을만큼 추상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복식부기는 그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다시 말해 돈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복식부기에서 모든 것을 이익과 손해로 계산하는 방법은, 실제로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을 인간(자신)에게 돌아올 이익과 손해로 환원하는 사고관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 때,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이런 저자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연구하고 서술하려는 주제에 맞게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배치하고 서술한다는 데 있다. 특히 지금 우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 어떤 상관도 없어보이는 회계법과 회화의 원근법을 시각화라는 한 주제 아래 놓아둔 것은 당시에 이루어진 정신적 움직임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근대의 탄생이라는 아주 큰 주제로서 다분히 어려워질 수 있는 저술을 아주 평이하고 읽기 쉽게 써놓았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료분석을 강조하고 우연적인 결합으로서의 근대의 탄생에 대해 역설하다보니, 이 과정에서 어떤 사고관이 등장하고 변화하였는지 좀 더 세밀한 서술이 없는 것은 이 책이 보여주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학은 어떤 시대에서든지 보편학문의 전범으로서 추앙받았고, 고대나 중세에도 여전히 그것은 실재Reality에 대한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 실재가 진짜 실제the real(?), 우리가 보는 현상적인 사물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분명하지도 않으며, 게다가 논쟁적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그저 비수학秘數學 추종자들의 산물이나 수학에 대해 호기심을 품었던 화가들의 산물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설득력은 높지만 그것에 비해 깊이는 조금 못미치는 내용이 아닐까.

오히려 유용한 세계관이 서서히 등장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철학적인 정당화도 필요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길고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논쟁들로 채워져있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중세적인 세계관을 고수하려는 사람에서부터, 각 학문과 예술의 최전선에서 이런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발하려했던 사람들까지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하다. 이것이 아무리 유용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확고한 이론체계가 등장하지 않는 한 결국 이전과 마찬가지로 가상fiction을 다루기에 편한 쓸모있는 도구 정도로 전락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문화와의 비교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이것은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가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수량화와 시각화의 핵심은, 누가 무엇이라 하더라도 실재를 다루는 학문인 수학을 가상의 세계, 즉 감각의 세계로 끌어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사고-감각의 이원론에서 사고+감각의 일원론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관은 다른 문화권에도 존재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주자학의 경우 리라는 개념에 감각과 실재, 도덕과 자연의 세계를 통합시킴으로써 일원론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주자학자들에게 자연을 탐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학문적 주제였다. 실제로 주자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송--명을 거친 시기의 중국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음을 동아시아의 과학의 역사가 입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전이 중도에 그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의 논의를 그대로 따라가보면 자연스레 이런 의문에 다다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저자는 단지 유럽에서 수량화와 시각화가 등장한 과정만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계관이 드러난 과정을 각 항목에서 분석해 내보여주는 것에는 아주 충실하지만, 왜 그런 세계관이 정당화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서술은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않다. 저자도 강조하듯이 수량화하고 시각화하는 세계관은 이 당시에도, 심지어 19세기가 밝아오는 당시에도 그 체계가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었고, 지속적인 혼란의 시기였다. 하지만 그 혼란이란, 사람들이 부대끼는 세속의 삶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집약된 철학적 논의에서 오는 혼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의 과정을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근대의 탄생

 

하지만 어쩌면, 이런 논의에 대해 기술하는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조금 뒤로 물러난 연구주제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철학적 논의들은 이미 세계가 바뀌고 난 뒤에 따라오는 정당화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적 세계관에 대한 논의는 이런 면모가 더욱 강하다. 따라서 이론적 논의 없이도, 구체적인 자료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근대의 탄생을 목격하고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특정한 사고관과 맞닿아있는 무엇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우연이건 필연이건 결국 근대는 그렇게 유럽에서 탄생했다. 그것은 고대적 사고관의 존속이었고 동시에 재해석이었으며, 중세적인 사고관에 대한 재해석이며 동시에 반대였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정립되어갈 무렵, 유럽은 그것을 바탕으로 전세계를 향해 자기들의 손을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현재까지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질적 성과물이 월등하거나 혹은 차별될 뿐만 아니라, 그런 물질적 세계를 창출해내는 세계관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감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탄생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유럽)에 대한 연구일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좋은 연구가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근대적 사고관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작지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철학적 논의가 없는 다소간의 단점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마치 (이 책에서 설명하듯이) 메르카토르 작도법이 평면에 육지를 그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과 비슷한 형태의, 현실과는 멀어지더라도 매우 쓸모있는 종류의 단순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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