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에는 티비도 불도 끄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다. 새벽 네 시, 잠깐 잠에서 깨어 티비를 껐다. 다섯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하며.

결국 다섯시 반은 커녕 지각을 겨우 면할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났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유가 뭘까, 물 한 잔을 마시던 중 조금 전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박이 내 꿈에 나온 건 몇 년만에 처음이다. 박은 내게 뜬금없이 그동안 써놓은 글이 있으면 좀 보내달라고 했고, 난 없다고 했다. 그러자 박이 화를 냈고, 나는 왜 난데없이 연락해서 글을 내놓으라고 하냐고, 그리고 부탁하는 네가 왜 먼저 화를 내냐고, 했다. 그리고 끝.

예전에 만났던 방식 그대로, 꿈 속에서조차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대로인 나와 그의 관계, 내 안의 관계는 그저 그렇다.

이게 다 엊그제부터 입안을 맴돌던 싯구때문이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아침이다. 하지만, 오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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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은행에 갔다가, 새로 통장을 하나 만들면서 인터넷 뱅킹에 가입했다. 가입신청을 하고 24시간인가 이내에 인터넷에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하길래,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등록을 하였다.

등록을 하고 보니, 계좌가 3개가 떴다. 자유입출금 통장 하나, 청약통장 하나, 그리고 대학 때 쓰던 통장 하나!

대학 때 쓰던 통장.

하숙비며, 월세며, 책값이며, 용돈이 들락날락 하던 가벼운 통장. 대학 입학 할 때 좋아하던 연예인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만들어 썼던, 중고등학교 때 강제로 들었던 적금통장 외에 가장 처음으로 만들었던 통장.

몇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낸 그 통장에 몇 십만 원의 돈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모니터를 보던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쾌재를 불렀고,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마법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니까, 사람들은 몇 백만 원도 아닌 것을 뭐 그리 좋아하냐고 하였지만, 모두들 한 턱 쏘라는 등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몇 천 원 빠진 오십만 원이 들어있는 그 계좌를 몇 번이나 살펴보다가 이것으로 뭘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엠피쓰리도 새로 하나 사고 싶고, 일본에 있는 동생을 만나러 갈 때 비행기값으로 써도 좋을 것 같고, 몇 년 동안 별러왔던 책상을 하나 사도 좋을 것 같았다.

며칠 째 그 고민을 하다가, 다른 휴면계좌 찾기에 돌입. 들뜬 마음으로 조흥은행을 방문했으나 거기엔 단돈 6000원만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한 일주일은 족히 지난 지금까지. 휴면계좌는 그대로 우리은행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돈은 아무데에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몇 년만에 찾아 온 금전적 행운. 그걸 잊고 지냈던 것처럼 선배들 말처럼 제2금융권에 넣어두고, 정말 나중에 필요할 때, 그때 찾아 써야지! 한다.

근데, 어떻게 나는 그 통장에 있는 돈을 모르고 살았을까? 언젠가 누가 슬쩍 입금해준 걸까? 그 돈의 출처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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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절은 어떤 순간에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곰곰히 떠올려보면 그런 순간이 한 두 번은 아니겠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는 "어떤 친절"의 순간은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어제 우리은행에서였고, 한 번은 종로경찰서에서였다.

어제 엄청난 통장을 들고 은행문턱에 들어섰다. 공과금수납하기와 계좌이체하기 같은 간단한 업무가 사실은 나에게 좀 어렵다. 이런 지경에 통장 10개를 간수하기란.

한참을 기다려 창구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앞섰던 할머니는 업무가 끝나고 나서도 자리를 비켜줄 생각은 않고 창구직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요지는 창구직원이 친절하다는 것. 은행에서 고객서비스를 강화하려고 별별 이벤트를 다 하는 와중에 뭐 저 정도의 친절을 가지고 칭찬을 하시나, 하는 까탈스런 고객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는 직원을 만났다. '이렇게, 저렇게 이 일이 참 복잡하거든요?'라고 나는 말을 건냈고, 그녀는 미소로서 화답했다.

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족히 30분은 걸렸다.

그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고, 깍듯하게 나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망측스럽게도 나는 그 와중에 눈물이 살짝 고이고 말았다. 그냥 그녀가 웃으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도 마치 나의 큰 짐을 덜어주는 것만 같아 고마웠다.

몇 년 전 종로경찰서에 갔을 때는 더 망측스러웠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업무 때문에 경찰서를 찾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안된다는 경찰관을 붙들고 이야기하기를 한 시간. 자기 권한이 아니라며 송구스러워하던 경찰관이 너무나 안타까워하면서 "다 잘 될 거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졌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경찰서를 나와 인사동 거리를 헤메고 다니면서도 멈추질 않았다.

어제 은행문을 나서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와 타인이 만나는 어떤 순간. 의도하지 않아도, 그것이 일방적이라고 할 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소통의 순간. 낯선 타인이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들.

 

한참 지났지만,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보았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햄버거 껍질을 보고 미술작품이라고 추켜세웠다가 망신을 당하는 갤러리 직원 낸시. 쓰레기와 작품 사이의 모호한(모호해져버린)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듯,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불안정한 낸시. 그 여자는 밤에 음란한 채팅을 하면서 성적인 욕구든, 관계의 욕구든 채워나간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채팅의 상대를 만나러 간 낸시는 채팅 상대가 꼬마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낸시는 어이가 없었을까? 슬펐을까?

그때 꼬마 로비는 낸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넘겨준다. 낸시는 로비에게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진다.

하지만, 그 후로 낸시는 로비에게서 영감을 받은 전시회를 열게 되고, 그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 그런 거다. 어떤 친절은 어떤 순간에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눈물을 쏟게 만들기도 하도, 웃게 만들기도 하고. 어쨌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게 되는 신체의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의식적 변화에 의해 사는 게 잠시나마 한결 나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어떤 순간에 친절한 타인으로부터 내 감정의 영역을 침범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때에는 은행에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라는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지 않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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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3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활인 2006-03-0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요. 한 번 봐야겠습니다.
댓글 하나도 없는 서재에 댓글 쓰시려니 무척 어색하셨겠어요. 고맙습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을 보고 안토니아식 유토피아를 꿈꿔 본 사람이라면 <메종 드 히미코>를 보며 그 유토피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혹은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안토니아가 자신을 포함해 세상 외롭고 험한 것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세계를 만든 것처럼, 그리고 그 세계와 다른 세계를 아우렀던 것처럼 <메종 드 히미코>의 히미코(실제 이름은 이와 다르지만 기억나지 않음)는 이래 저래 사연 많은 게이들을 품고, 고고하게 세상과 소통한다.

나의 세계를 부수지 않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이 가상의 세계일지라도 그것을 꿈꾸는 순간의 달콤함은 부인할 수 없다.

영화는 단적으로 말하면, 히미코의 세계와 일반(!)의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로 죽어가는 히미코와 애증관계인 딸 사오리를 배치하고 그녀가 히미코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았다. 당연히 그녀가 이해하게 된 건 히미코 뿐은 아니었다. 

발랄하게 현실을 뛰어 넘은 영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유토피아를 다시 꿈꾸게 한 영화, 그리고 서로 다른 것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보게 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였다.  

____________________

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하나를 기록한다. 

<메종 드 히미코>에 사는 은행원출신 게이는 드레스를 입고 싶지만 현실에서 입을 수가 없다. 손수 하얀 드레스를 만들어 놓고, 사오리에게 "관 속에 들어갈 때 꼭 입을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사오리는 그때까지 기다릴 게 뭐 있냐며 지금 차려 입고 춤추러 가자고 한다. 그 은행원출신 게이는 곱게 단장을 하고 클럽에 갔다가 사오리에게 속삭인다. "저 화장실 좀 같이 가주겠어? 여자화장실은 처음이라서."   

화장실에 간 그는 이제 거울을 보고 있는 참이다. 그가 사오리에게 말한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뭔 줄 알아?....... 화장실에서 화장 고치는 거야." 관객들은 사오리와 함께 실소를 터뜨렸지만, 그는 진지하게 입술화장을 고치고, 사오리는 이해한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 

 


*사오리의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첫 저녁식사*

* 1월 24일 저녁 8시 10분. M과 시네코아에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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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까지만해도 나는 아침 9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9시 30분까지 출근인데 기적과도 같이 사무실이 집근처라 빨리 걸어가면 15분, 좀 천천히 가면 20분 걸린다. 9시에 일어나서 대강 씻고 옷입고 나가면 그냥 저냥 갈만했다. 나도 안다. 게으른 거. 근데 조금 변명을 하자면, 원래 학교 가까운 데 사는 애들이 지각 많이 한다는 경험적 결과들이 존재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돈으로 음력 새해 결심을 산 후, 나는 어제 오늘 이틀째 새벽에 일어나고 있다. 커튼을 다 열어도 여섯시는 깜깜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괜히 몸보신 해야 할 것 같아서 술집에서 먹다가 싸온 과일 안주를 믹서에 갈아 마셨다.

6시 20분 경의 3호선은 한산하고 그렇게 붐벼대던 을지로 3가며 종로 2가의 거리도 한산하다. 불꺼진 상가들 사이로 청계천 조명이 황망하다. 그리고 학원가의 몫 좋은 카페들은 그 새벽에 개점준비를 하고 있다.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겨우 앉아나 있는 내가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네들 틈에 앉아 있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다.  어쨌거나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은 오늘까지 지켜지고 있고,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결심이 지켜지는 것 때문에 기쁘다. 주 3일, 73,500원의 힘이다. 

오늘 아침엔 집안 공기마저 매우 쌀쌀할 정도로 날이 추웠다. 샤워를 하고 가장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종로 횡단보도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6시 40분. 6차선 길 위로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가 다가온다. 얇은 작업용 잠바 한 장을 걸치고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휘청휘청 리어카는 사거리를 지나 낙원상가쪽으로 향한다. 폐지는 다 팔면 얼마나 받을까 계산해 보다가 그만둔다. 어떤 사람은 73,500원으로 결심을 사고는 뿌듯해 하며 새벽을 맞고, 다른 사람은 또 그렇게 새벽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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