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런 밤이다. 어제 저녁부터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다. 중간중간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티비도 보았지만, 어쨌든 여전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심시티와 지뢰찾기와 카드놀이를 몇 시간쯤 했다. 오, 이런. 계속 게임만 해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걱정스런 밤이다. 내일 아침의 세 시간을 위해 서른 시간도 넘게 컴퓨터를 켜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대책없음이라니. 이러다간 밤을 새도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힘을 내고 집중해야 한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갑자기 인생이 걱정된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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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07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놀고 있는데요, 날새서 게임하는 거 매일 하면 것도 무지하게 우울해지더라구요 한 사흘 출근하고 사흘 놀면 좋을 것 같아요^^
 

6월 1일이 되었다. 올해의 반까지 1달 남았다. 기분상으로는 지난 5개월이 한 2년은 되는 것 같다. 모든 일은 잘 끝났고, 이제 새로운 일들을 처리하면 된다.

쓰레빠를 질질 끌고 나가서 투표를 하고 콩나물과 두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지글지글 점심을 오랜만에 해먹었다. 정과 그의 친구가 수박을 들고 와 몇 년만에 집에서 수박 화채를 해먹으며 동생과 잠깐 향수에 젖어보았다. 개표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다가 방송 시작 한 시간도 안되어 티비를 꺼버렸다. 동료에게 문자가 왔다. "혼자 동네 국밥집에서 콩나물국밥에 소주 마시고 있다, 세상이 딴나라가 되었구나...." 나도 해야 할 일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같이 소주를 벌컥이고 싶었다.  

신문을 보니, 다들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하나도 이해가 안된다. 기억은 잊혀지지 마련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도 있는 법이다. 집단적 기억 상실증이나 집단환각상태에 빠져있지 않은 이상, 나는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마군과 이야기 했던, '진정성'이 아니라 '정상성'으로 빛나던 후보 하나 사그러졌다고 이런 거 아니다. 내일 조간 볼 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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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월요일. D-10.

1.독후감이 많이 밀렸다. 바쁘다바쁘다 하다가 책도 한 줄 못읽을까봐 안달을 했더니, 오히려 한가할 때보다 많이 읽은 것 같다. 독후감도 잘 쓰는 성실한 어른이 되어야지.

2. 살랑살랑 봄바람이 어느덧 지나가고 벌써 햇살이 따갑고 공기가 덥다. 그래도 5월초 새벽 3시 혹은 4시의 광화문에서 맡았던 나무냄새는 잊지 알아야겠다.

3. 망중한. 갑자기 조금 쓸쓸하다. 게다리춤이나 춰야겠다.

4. 짜장면을 자꾸만 사달라고 해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었다. 짜장면 사달라고 조르는 나이 많은 선배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좋기만한 것도 아니다.

5. 초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역시 5월 한 달 내 육신에 보호막을 친 것이 효험이 있다. 얼마 안남았다. 더욱 분발하도록 하자.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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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자, 노래를 부르다 봄맞이 여행을 가기로 하고 메일을 몇 차례 뿌린 결과, 정과 신 그리고 내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3월 17일 아침부터 3월18일밤까지, 꼬박 1박 2일의 일정으로.

이른 아침에 모이자고 했던 나의 주장은 내가 늦잠을 잠으로 인해 보잘 것 없어졌고, 예상 시간 보다 한 시간이 훌쩍 넘은 9시 30분에서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고창 청보리밭과 선운사, 그리고 안면도 자연휴양림과 태안반도에 있는 신두리 사구 지역이었다. 1박 2일 일정에 고창까지 가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오기와 착각 때문인데, 선운사 동백꽃을 이번에는 꼭 보고야 말겠다는 나의 소박한 결심과 안면도에서 고창까지의 거리계산 착오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때문에 동행들에게는 다소 미안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쁘지는 않았다.

1. 출발

금요일 오전은 교외로 여행나가기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서울을 벗어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자 도로는 막힘없이 뚫려 있었고,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서해대교 밑에 있는 휴게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고창  청보리밭까지 가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잘 갈아놓은 들에는 조금씩 연두빛이 오르고 있었다.

2. 고창 청보리밭

옛 가수들의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단층짜리 건물이 조금씩 모여 있는 작은 읍내를 지나 고창 청보리밭에 도착하였다. 여기가 맞는지 아닌지, 우왕좌왕하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깜짝 놀랐다. 우리만 조용하면 세상이 조용했던 것이다. 청보리는 잔디처럼 아주 조금 자라 있었고 그나마 태반엔 아직 보리가 심어져 있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너른 들과 조용함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보리밭 가운데는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다가가니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였다. 작업실로 쓰이던 곳, 혹은 작업실로 쓰려던 곳 같은 그 집을 둘러보다가 우리는 깨진 창 하나를 발견했고, 여행 왔다는 흥분 때문인지 평소 소심했던 본성을 버리고 나는 비스듬히 세워진 외나무를 힘겹게 타고 그 집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연이어 신과 정이 들어왔다.

남의 빈집을 들여다 보는 것은 참, 은밀하다. 바닥에 뒹구는 버려진 부탄가스 통, 폐지들, 낙서들. 그것들을 살펴보며 이 집에 누가 살았을까, 어떻게 살았을까를 추리해본다. 창밖엔 보리밭과 침묵, 창안엔 긴장과 호기심 뿐이었다. 나선형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옥상에 나간 우리들은 그집 지붕에 앉아 보리밭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대나무숲 사이로 두런두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와 걱정되긴 했지만, 지붕에 앉아보게 되다니! 새삼 빨간머리 앤이라도 된 듯 설레였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아마,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그 집안을 소중한 추억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레 둘러 보았다. 주방겸용으로 쓰였을 조그만 바 아래에는 미처 밖으로 날아가지 못한 새 한 마리가 축 느러져 있었다. 미안하고 안스러웠다. 그리고 새 한 마리 묻어줄 손도 가지지 못한 나를 탓하였다.

들어올 때는 그래도 쉬웠던 창넘기가 나갈 때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 중 가장 날렵한 정이 먼저 창틀에 기어 올라가 다시 외나무 다리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와 신의 순서로 우리는 그 집을 빠져나왔다. 주인이 살던 살지 않던 무단가택침입을 한 우리 셋은 암묵적인 공범이 되어 마음을 졸였다가 집밖으로 나와서는 대단한 모험이라도한 양 의기양양하였다.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간, 출출했던 우리는 보리밭 길에 앉아 내가 아침에 가지고 간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3. 선운사

선운사에는 재작년 여름에 들렀었다. 선운사 동백꽃이 그리 이쁘다는데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이른 봄에는 그 꽃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굳이 들른 것이다. 물론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선운사 내는 공사중인 곳이 많았다. 불심이 세서인지,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기도, 저기도 공사중이었다. 그리고 동백꽃은 고작 한 두 송이가 피어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대웅전에 들어가 불상 뒤로 들어가 부처님 눈을 따라 걸으며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약수를 마시고는 그나마 튼튼해 보이는 돌무더기에 돌을 하나 얹으며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오래된 고목의 텅 빈 속에 입을 대고 기도를 하였다. 정에게는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신에게는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를, 말이다. 

절 내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손님이 뜸해서인지 우리를 붙잡고 뭐라도 사가라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기념품이라는 게 팔도를 가도 다 비슷하지만, 그 중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라고 씌어진 천연염색 손수건은 정말 사고 싶었다. 그러나 극성인 점원때문에 사기가 싫어 그냥 나왔다.

절입구에 늘어서 있던 노점들도 문을 닫을 여섯시가 넘은 시간. 아직 문을 닫지 않은 포장에 들어가 우리는 전 하나, 도토리묵 하나를 시켜놓고 동동주를 한 병 마셨다. 안주가 6천원씩, 동동주가 5천원. 젊고 예쁜 여자들이 하는 포장이었는데, 그 여자들은 아주 친절하고 능숙하게 장사를 해서 지켜보는 우리도 흐뭇하게 했다.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마다 모두 아는 사람들인지 다정하게 인사를 건내고, 우리보다 더 늦게 들어온 손님에게는 남자가 만원에 안주와 술을 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주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아마도 시내로 나갈 그 남자를 염려하여 그가 술 마시는 것을 걱정해 주었다. 별 차이는 아니지만, 나름 떨이 손님이었던 우리들은 그녀들이 왜 우리에겐 에누리를 해주지 않을까 내심 삐져있었는데(삐질 일도 아니지만),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계산을 하려는데 옆 테이블의 남자처럼 깍아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만 오천원만 내게 되었다. 우리는 때늦은 반성을 하며, 그녀들의 포장이 날로 번창할 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배도 어지간히 찬 우리들은 그리고 그날 밤 묵을 숙소인 안면도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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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1/4분기를 넘어서는 지금, 올 해 나의 계획들은 여지없이 하나 둘 무너지고 있다. 기록 소홀은 물론이고, 새벽 학원도 이번 달은 간 날을 세기 민망할 정도, 아침 지각은 더 이상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해지고 있다. 이것들을 다시 추스려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인가, 그냥 이대로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계속 갈 건가에 대해 타이핑을 하면서 삼초 동안의 고민을 한다.

며칠 전에는 왜 그랬는지 기분이 좋아서, 아니 좋은 척 한건가, 삼겹살 집에 들어가서는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게 남는거다라는 급조한 신조를 내세우며 미친듯이 마셨다. 사실, 그 날은 그렇게 먹고 마신지 연달아 열흘은 족히 넘는 날이었다.

그런 날들 가운데 영화제 상을 탔다는 브록백 마운틴도 보고 크래쉬도 보았고, 고창 선운사며 청보리밭이며 안면도 적송과 신두리 사구를 돌아다니기도 하였고, 남산이며 박물관이며 이슬람 사원이며 서울 나들이를 다니기도 하였고, 연인원으로 세면 한 오십명은 넘을 듯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다. 그 와중에 카드사에서는 "배우자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며 상품안내 메일을 보내와 지나간 박의 생일을 상기시켜주기도 하였다. 음력인 박의 생일을 기억못할까봐 부러 기념일 체크란에 박의 생일을 입력해 둔 것이 오늘날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사무실에 있는 시간에는 미친듯 전화받고 회의하고 문서를 작성하였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책은 한 줄도 안읽었다. 

아침이 되고 또 하루밤을 보내고 나면 4월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다. 자알 지내고 있다. 문제는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는 거다.

이른 봄을 맞으러 돌아다닌지 2주째다. 봄꽃 한 두 송이, 새 잎사귀 몇 잎을 본 게 전부다. 마음만 바빠 정신없이 지내는 내 모양의 압축판이다. 오늘이 지나면 한 며칠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 보면, 깜짝 놀랄만큼 빨리 봄은 왔다 가버릴 것이다. 예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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