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컴퓨터를 켰다가 하릴없이 미니홈피를 돌아다녔다. 링크 투 링크. 수년간 연락하지도 않고 안부도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소식을 제한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면서 20분간의 회람 끝. 인정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확연히 또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슷한 배경음악, 비슷한 문화적 취향, 비슷한 삶의 고민들. 평균으로 산출되는 나의 정체성. 그래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다.

며칠 전에 연락않고 지내던 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뜬금없이 연락해서 부담스러웠냐고, 그것부터 물었다. 하긴, 내가 그의 전화를 받을 때 놀라기는 놀랐었지. 헤아려보니 10년의 시간을 알고 지낸 그에게서 내가 그동안 들은 얘기라고는 연애했다가 헤어진 얘기밖에 없으니. 하마터면 그에게, 나란 인간은 오지랖은 넓지만 인내에는 한계가 있어서 누구랑 헤어져서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 아팠다는 얘기를  6년이나 들어줄 재간은 없다고 말할 뻔했다. 어쨌든 그는 훨씬 좋아보였다. 며칠 전에는 대낮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문득 가슴을 치며, 아 내가 나를 참 많이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했으니. 근사한 발견이다.

그도 나와 또래이다. 노래방에 가면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안주로는 골뱅이나 한치구이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읽은 책도 비슷하고, 학교시절 경험도 비슷하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나 자신을 학대하는 지경은 아니지만 가끔 못미덥고 얄미울 때가 있으니, 언젠가 청명한 가을날에 가슴을 퍽퍽치며 느닷없이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게 될 지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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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엔가 대학 1학년짜리 동생과 통화를 했었다. 금요일 저녁이니 술 한 잔 하러 가니?, 그랬더니 도서관이란다. 공부하는 거야?, 그랬더니 날씨가 좋아서 그냥 도서관 앞에 앉아 있다고 그랬다. 높은 하늘과 석양과 적당한 바람이 내게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부러웠었다.

9월 4일 저녁의 캠퍼스. 캠퍼스는 실로 오래간만인지라 다소 설레기도 했다. 용기 내어 이번 학기 청강을 시작했다. 한 학기 동안 빼먹지 않고 과제도 잘 해오겠다며 허락받은 수업. 교수까지 합해서 일곱인 수업. 꿔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냥 저냥 앉아있다 보니,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노트에 필기하고, 선생님의 말에 귀기울이고,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엔 동료들과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제법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담배 한 까치를 태우는 것.

그만 게을러지고 싶어서 시작 한 일. 그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았으니 이것으로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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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고 노래방에 앉아 국적불문의 노래들을 망라하고, 지하철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다섯시까지 술을 퍼먹고, 갑자기 걱정되는 미래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계획을 세우고, 다시 이렇게 새벽까지 하릴없이 앉아 있는 것.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구태여 확인하며, 이렇게 오랫동안. 잊을만하면 한 번씩 끄집어 내어 한참을 들여다 보는 것. 이런 건 줄은 정말 몰랐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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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들의 병목현상. 

그렇게 말이 되지 못한 생각들은 결국에는 잊혀지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사라지지는 않아 때로 뻐근한 가슴으로 손발 저릿한 느낌으로  불쑥 나타나고 말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던 지난 일주일을 보내고 나서, 사건보다 생각이 많았던 일주일을 보내고 나서 이런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불길한 일이다.

 

네가 찾은 것이 그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여서 고맙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정도에 내 존재 의미를 두는 나 자신을 본다. 이런 식으로 지내다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출근하고, 밥 먹고, 술도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자고. 이런 평범하고 안일한 한 삶에 불현듯 걸려 오는 오랜만의 전화 한 통을 사실은 사양하고 싶기도 하다. 삼시 세 끼 찾아 먹고 사는 것이 뭐 그리 힘들다고 그런 전화 한 통 마저 사양하고 싶을 정도로 헉헉거리고 사는지.

모순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전화 한 통에 시간과 마음을 주고 나서는 주는 마음만큼 받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하기까지 한다.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거 잘 알면서도 이 모양이다. 뭘 어떻게 확인할 거냔 말이다. 결국은 욕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집에 다녀온 동생이 엄마가 재워주신 닭갈비를 가지고 왔다. 후라이팬이 지글지글, 혼자 먹기 아깝고, 술없이 먹기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서 쌈까지 싸서 맛나게 먹었다. 후식으로 복숭아까지 우물거리며 먹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엄마는 이번 학기엔 교육심리를  듣게 됐다며 공부가 얼마나 된지 한참 이야기 하신다. 자식 이렇게 다 키워놓고 무슨 교육심리냐고 면박을 주는데 엄마가 그러더라. 어제 어린 동생들하고 체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애들이 내가 어렸을 때 엄마한테 꽤 맞아서 엄마가 무서웠다고 했다고, 당신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하다고, 다 당신 열등감이고, 다 당신 욕심이었다고.

여전히 우물거리는 입으로 별 걸 다 얘기한다고, 남들이 들으면 학대당한 줄 알겠네, 으흐흐, 가볍게 전화를 끊었다. 엄마도 웃으면서 전화했지만, 나는 엄마가 진짜 미안해 한다는 걸 느꼈다. 

 

나는 지금 내가 욕심부리고 있는 중인 거 안다. 내 욕심으로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욕심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연애가 끝나고 후련했던 이유는 나에게나 그에게나 더 이상 욕심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욕심을 거두면 편안하다는 거 알면서도 또 이 모양이다. 모양새가 참 보기 좋지 않지만, 이게 그냥 지금의 나려니 생각하련다. 선택은 하나다. 마음 하나 제대로 안된다고 타박하며 살 것이냐, 이도 저도 잘 안되는데 마음까지 가고 싶은대로 두지 않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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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피와 담배

어제 마군과 시네코아에서 <커피와 담배>를 보았다. 영화 보기 전에 커피 한 잔 들이키고 담배 한 까치 태우고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그것이 없었더라면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커피와 담배는 내 생각엔 소울 메이트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 담배가 피고 싶고, 담배를 피우다 보면 커피가 마시고 싶다. 두 개 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아 이런. 영화를 보고 정성으로 커피를 다리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짐 자무시의 영화처럼 우리도 그냥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몰라도 요즘 나는 거의 바보 상태. 희망찬 과거와 절망에 찬 미래를 위해 건배.

2. 엇갈림

얼마전 상경한 동생에게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동대문에 기가 막히게 맛나다는 닭한마리집에 데려가기로 하였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였는데, 문제는 이 아이와 미친듯이 길이 엇갈렸다는 것이다. "평화시장 앞이야. 거기서 만나", "여기 평화시장 앞인데? 거기 다리 있어?", "응, 다리 있어. 이상하네". 뭐 이런 식으로다가. 이건 첫단추를 잘못 끼운 셔츠와 같아서,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엇갈림이었기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삼십 분 헤맨 끝에 동생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더운데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짜증났지?"라고 물으니 그 녀석 대답 "그냥 우린 소울 메이트가 아닌가 보다 했어." 이제 스무살인 그 아이가 짜증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니,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3. 텔레파시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목소리로 감지되는 이상한 기운. 바야흐로 이별의 계절.  정의 이별 소식은 난데 없긴 했지만, 희한하게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 음... 이것은 소울 메이트? 근데 왜 내가 담담? 각설하고, 왜 사랑하다 헤어지면 친구처럼 지내면 안되는 걸까, 라는 사춘기적 고민에 돌입. 사랑과 우정은 암 차이도 없다고 철썩같이 믿고 싶은 내 사정은 전혀 봐주지 않는 한 가지 예외조항.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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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07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가 커피처럼 건강에 별 해가 없는 기호식품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그것을 아쉬워 하는 소심한 이의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