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본 <카모메 식당>에는 얼굴만 보면 웃을 수밖에 없는 아주 사랑스런 여인, 미도리가 나온다. 짧은 기억력이 한탄스럽지만, 왜 핀란드에 왔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대강 이런 대답을 했다.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니 떠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도리의 말에 공감하며, 애써 떠나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놓은 나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떠나고 싶다, 떠나야 한다, 라고 생각하면 정말 그러지 않고는 못베겼으니까. 여행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기형도도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이라고 못박아 두지 않았는가.

어쨌든, 당분간은 꾹 눌러 놓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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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살인의 해석>을 읽었는데, 오늘 외근하고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몇 장 남지 않은 그 책 때문에 근무시간을 이탈하고 말았다. 절정에 다다른 순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그리하여 오후 세 시, 사무실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한 시간 동안 미친 듯 책을 읽었다. 그리고 시원한 냉수로 해갈한 사람마냥 청량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향했다. 이거 뭐, 이거 뭐, 이렇게 불성실할 수가.

그리고는 1시가 넘을 때까지 야근을 하고 돌아온 지금, 오늘 오후 한 시간의 일탈을 후회하느냐,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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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뭐 내가 그렇게까지 쓸쓸할 필요야 있겠냐마는... 필시 나이가 들어버린 게지, 그 아이의 이별에 쓸쓸함의 정서가 귀환하고 말았다는 건.

사무실 사람들은 파도타기식으로 감기에 들어버리고, 저 멀리 전화기를 타고서도 감기에 걸린 슬픈 음성이 전해오고, 누군가는 시험에 떨어지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추억을 묻고 이사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 전에 떠나버린 사람의 추억에 마음이 내려앉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이래 저래 사람들이 다 아픈 계절.

바야흐로 환절기.

나는 높이 날아 오른 파란 하늘에 취하고, 둥둥 떠다니는 구름에 마음을 맡기고, 회의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들이밀고 간지럼 장난을 치고, 이렇게 가을을 맞는다. 부지불식간에 떨어지는 말간 콧물쯤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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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가 미용실에 갔을 때, 미용사가 머리를 만지다가 "어머 손님, 원형탈모 있으시네요"라고 해서 나를 경악시킨 적이 있었다. 곧 능숙한 미용사가 와서, "머리카락이 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해줬으니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지금까지도 머리칼이 빠지나 안빠지나 고민하다가 머리카락이 전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

어제 오후 늦게 외부 사무실에서 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헤어지려는데 K는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냐면서 나를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K는 속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던가 보다. 사무실내 의사소통이  힘들다던가,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던가, 좀 외롭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텅빈 사무실에 앉아 안주없이 맥주를 홀짝이며 두어시간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예전과 다르게 맥주 몇 잔에 맥이 풀린 K의 정수리를 보며 마음이 짠했다. 적은 임금에,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신념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이 마흔의 K. 그리고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원형탈모를 가진 K의 정수리. 애꿎게 자기 관리 안한다고 싫은 소리를 좀 했지만, 오늘까지도 마음이 안됐다. 

....

오늘 사무실에서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을 좀 해결하고자, 당사자에게 속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그니는 자기 얘기만 줄창 해댄다. 마음 속에 오백원짜리만한 구멍이 뻥 뚤려 기운도, 열정도 줄줄 새나가는 기분이다. 어쩔 것인가. 나도 모르게 원형탈모가 생겼다가 또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자라난 머리카락처럼 이것도 언젠가 해결되겠지.

....

K에게 무엇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보는 2007년 8월 22일의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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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칼퇴근해서 달려간 극장에서 <황색눈물>을 보았다.

예전에 학교 앞에서 자취할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나 보다도 먼저 우리 집에 와 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어떨 땐, 나도 모르는 애들도 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용돈 받아 쓰는 처지에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아무렇게나 저녁을 지어 먹고 떠들면 하루가 그렇게도 잘 갔던 시절이었다. 수중에 돈이 100원밖에 없던 엽기적인 월말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며칠 지나면 100원이 1000원이나 2000원으로 늘어나 있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정말 철없다는 게 뭔지, 그렇게 돈이 하나도 없다가도 용돈이 올라오면 근처 제일 비싼 베이커이로 달려가 딸기 생크림이 잔뜩 얹어져 있는 빵을 하나씩 사먹기도 했던 그때. 때로는 현관문에 잔뜩 쌓여 있는 친구들 신발을 보고 질겁하여 괜히 운동장으로 달려가 혼자 몇 바퀴나 돌고 오기도 했지만, 시간이라는 게 뭔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웁게 떠올랐다. 지금은 다들 뭘 하며 사는지. 어찌되었건, 어떻게 규정하던, 그런 의미의 청춘은 흘려 보내고 제법 어른 흉내를 내며 살고 있겠지.

영화가 끝나고 일본식 술집에서 어쩌면 일본의 60년대라고 하는 것이 한국의 어떤 한 시절과 그렇게 비슷한지 같이 영화를 본 동료와 한참을 얘기하다가, 아직 남아있는 청춘의 힘으로 그니는 눈물을 찍 짜기도 했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자취방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시대를 논하고, 인생을 논하던 시절도 좋았지만, 더 이상 손님이 들지 않는 깨끗한 원룸에서 조용히 보내는 저녁나절이나 한밤중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처럼, 지나간 날들 부여잡고 오늘을 보내지 않을 거라면, 아, 너도 이제는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고 100원짜리 소주를 마셨던 2007년 6월 19일 저녁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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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고 과일가게에는 제철을 맞은 과일들이 각각 색과 향을 뽐내며 진열되어 있다. 큰 마트의 과일매대에서부터 동네 골방의 작은 과일가게까지. 얼마전 동네에 작은 과일가에게 진열되어 있는 참외를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난 참외 안먹을 거야, 했다. 길가에 쭉 내놓은 과일 뒤에 노란색 모노륨이 깔린 간이 마루가 보였다.

예전에 98년의 여름에 난 그런 과일가게에 갔었다. 스물네살 아니면 다섯살의 그 사람은 여름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도로변 간이 과일가게에서 일을 했었다. 98년 6월말, 아니면 7월  초쯤, 어느 지방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나는 롯데리아에 들러 셋트메뉴 몇 개를 사서는 그곳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간이가게 안에서 누추하게 빛나던 노란색 모노륨. 길가에 진열된 노란색 성주참외. 재밌는 아르바이트라며 나 또한 몇 개 팔기도 했을 것이다. 

까맣게 있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참외가게를 지나다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 그가 얼마나 어렸으며, 나 또한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었는지 떠올랐다. 10년 전 얘기지만, 그때 그 청춘이 가엽기도 하여 한참 속이 시끄러웠다. 지금은 그 사람도 참외장사의 기억따윈 잊고 살겠지만, 그렇지만. 앞으로 이런 식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불쑥 불쑥 떠오를 건지. 헤어진지 몇 년이 지나도록 잘 먹던 참외는 왜 또 안먹겠다고 추억보다 먼저 선언하게 되는지. 나는 가늠하지를 못하겠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스틸 라이프>를 보았다. 정지된 인생인지, 인생의 어느 순간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는 제목이지만, 스틸 사진처럼 딱딱 못박혀 있는 생의 어느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또 자연스런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영화는 추억을 미화하지 않아서 좋았고, 추억으로 미련떠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서 좋았고, 고공의 줄타기처럼 위태로울지라도 그냥 살라고 해서 좋았다. 사라지는 것은 사라질테고, 불쑥 떠오르는 것들도 현재의 생을 지배하진 못할테니까 그 또한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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