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고 과일가게에는 제철을 맞은 과일들이 각각 색과 향을 뽐내며 진열되어 있다. 큰 마트의 과일매대에서부터 동네 골방의 작은 과일가게까지. 얼마전 동네에 작은 과일가에게 진열되어 있는 참외를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난 참외 안먹을 거야, 했다. 길가에 쭉 내놓은 과일 뒤에 노란색 모노륨이 깔린 간이 마루가 보였다.

예전에 98년의 여름에 난 그런 과일가게에 갔었다. 스물네살 아니면 다섯살의 그 사람은 여름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도로변 간이 과일가게에서 일을 했었다. 98년 6월말, 아니면 7월  초쯤, 어느 지방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나는 롯데리아에 들러 셋트메뉴 몇 개를 사서는 그곳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간이가게 안에서 누추하게 빛나던 노란색 모노륨. 길가에 진열된 노란색 성주참외. 재밌는 아르바이트라며 나 또한 몇 개 팔기도 했을 것이다. 

까맣게 있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참외가게를 지나다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 그가 얼마나 어렸으며, 나 또한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었는지 떠올랐다. 10년 전 얘기지만, 그때 그 청춘이 가엽기도 하여 한참 속이 시끄러웠다. 지금은 그 사람도 참외장사의 기억따윈 잊고 살겠지만, 그렇지만. 앞으로 이런 식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불쑥 불쑥 떠오를 건지. 헤어진지 몇 년이 지나도록 잘 먹던 참외는 왜 또 안먹겠다고 추억보다 먼저 선언하게 되는지. 나는 가늠하지를 못하겠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스틸 라이프>를 보았다. 정지된 인생인지, 인생의 어느 순간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는 제목이지만, 스틸 사진처럼 딱딱 못박혀 있는 생의 어느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또 자연스런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영화는 추억을 미화하지 않아서 좋았고, 추억으로 미련떠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서 좋았고, 고공의 줄타기처럼 위태로울지라도 그냥 살라고 해서 좋았다. 사라지는 것은 사라질테고, 불쑥 떠오르는 것들도 현재의 생을 지배하진 못할테니까 그 또한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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