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5개월에 걸친 작업을 마친 다음날 밤, 예정대로 떠났다, 그리고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겨울의 바닷가, 우리가 묵었던 통나무집, 우리가 부른 노래, 우리가 들은 노래, 우리가 춘 바보같은 춤들.

이렇게 지난 며칠은 벌써 '추억적'이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사가 풀린 듯,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공동작업을 한다는 건, 행복하면서도 분명 두려운 일이었다. 반드시 결과를 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시간 때문이거나, 의견 때문이거나 어쨌든 사사로운 다툼들이 관계를 균열낼까봐 가끔은 그렇게 두려웠던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어느 때 보다도 안정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라니... 이건 정말 내게 일어난 최고의 기적이다.

작업 겸 해서 떠난 몇 번의 여행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동고동락하던 가을의 작업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읊조리던 넬의 노래처럼 '너무 완벽해'라고 할 수밖에.

5개월간 마신 소주, 5개월간 나눈 이야기들, 5개월간 생긴 새로운 습관들.

한 동안은 지난 5개월을 떠올리며 마음 뜨끈하게 웃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흘러간 5개월이 또 얼마나 그리울까. 벌써부터 아련한 2007년 7월부터 11월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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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행복,이라고 타이핑을 하고는, 아, 참 낯설다,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내게 참으로 벅찬 단어라는 걸, 그래서 새삼 느끼고, 그래서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매 순간 과히 나쁘지 않다, 때로는 행복하다, 라고 생각해왔으면서도 저 '행복'이란 명사가 주는 무게는 참 무겁고도 두렵다.

조용하게, 고되지 않게, 행복의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

10월부터 주말 내내 작업을 핑계로 집에 사람들이 그득하다. 그득하다니 참으로 많은 것 같지만, 실은 서너명. 둘만 살던 집에 또 두엇이 늘었을 뿐인데, 집이 참 그득하다. 만날 썩어나가던 냉장고의 음식들이 이제는 채워넣기가 무섭게 없어지는 게 신기하고, 그렇게 쓱쓱 줄어가는 달걀개수만큼 재미도 늘어난다. 함께 먹는 아침과 저녁, 함께 보는 티비프로그램, 함께 듣는 음악들. 일상과 별 다른 일도 아닌데, 이것들이 한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게 참 다른 의미구나, 하는 걸 배운다.

이제 열흘이면 1차 작업은 종료될 것이고, 이런 주말도 곧 끝날 것이다. 물론, 과정 중에는 무척 고되고 힘들겠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면 씁쓸하기도 하겠지만, 사람들과 꼬박 두 달간의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아마 나는 결과보다는 탄탄한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배운 것 같다. 두려우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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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고단했던 10월이 종료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잘 되어있을 거라며 동료 문의 등을 두드리던, 나의 바램 또한 현실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다.

죽은 듯 11월의 첫날을 보내고, 11월 2일. 새벽같이 워크샵을 가야하는 나를, 정이 불쑥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어두운 새벽 6시. 우리는 양평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서서히 해가 뜨고, 이제 눈 비비고 일어난 주인장이 있는 해장국집에서 버섯해장국으로 아침 요기를 했다. 워크샵 가는 길에 주욱 늘어선 은행나무는 반짝이는 금빛이었다. 뒤늦게 남이 합류하여 우리는 양수리에서 오후를 보냈다. 긴 산책을 하고, 간이매대에서 오뎅도 하나씩 사먹고, 그렇게. 햇살은 딱 좋을만큼 따뜻하거나 찬란했다. 가을이었다.  

오늘은 일요일. 집청소를 마치고, 동네 마트에 가서 캔맥주 한 박스를 사다 두었다. 이래저래 먹을 것도 풍성해졌다. 이제 다시, 또 시작할 일만 남았다.

참으로 만족스러운 요 며칠. 앞으로 한 달이 지나면 또 돌아오리라, 이렇게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 

뜻대로 이루어지는 게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손에 닿을만한 거리에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 그건 실로 대단한 위로이다. 자, 월요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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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 없어질까 걱정했던 맥주 페트병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업무종료시간 이후, 역시 숨겨두었던 칼몬드를 꺼내어 저녁겸 해서 주워먹었다. 과히 맛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뭐 그리 나쁠 것도 없는 월요일 저녁식사 아닌가.

칼퇴근하라고 소리치던 후배도 나가고, 부업을 하러 간 선배도 나가고 이제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다. 나름 책파는 블로그에 서평 따위 안올린 지 오래되었다는 자책도 금새 지나가고, 또 별 이유도 별 알맹이도 없는 페이퍼나 쓰고 앉았다.

뜨거운, 그러나 비오는 여름을 보내고 갑자기 싸해진 아침공기가 낯설게 느껴질 무렵, 그러니까 바로 요즘. 길거리를 걸으면서 꺼이꺼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 콧물 흘리다가 알았다. 내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사실. 그러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하늘을 찔렀다. 민망하고 또 민망하였으나, 마지막 남은 자존감으로 울고 있는 나를 좀 내버려 두기로 했다. 토요일 워크샵에 다녀온 이후로는 잠만 진탕 자다가,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는 스도쿠퍼즐을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하다가 그렇게 보냈다.

할 일이 많다는 건 핑계고, 사람들이 밉다는 것도 핑계고, 오로지 지금, 그냥 이런 나를 위해서 애도했던 지난 목요일 저녁. 애도는 무언가를 보내고 치르는 예의이니, 어쩌면 지금 나는 예전과는 좀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몇 년에 한 차례씩 보내고 마는 초저녁의 뜬금없는 애도 행위. 지나고 보니, 그런 때를 기점으로 나는 조금 더 성장해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이십대, 지나간 설레임, 지나간 어떤 열정, 지나간 어떤 기회, 지나간 어떤 사람. 모든 지나간 것들. 모든 지나간 것들에 대해 나로서는 충분한 애도를 표했으니, 이제 다시 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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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십년 만에 본 사주에서는 삼재가 지났으니 이제 운수 트일 일만 남았다고 했는데, 사사분기가 시작되는 오늘, 장난삼아 응모해 본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나니, 점쟁이 말이 진짠가 싶어 괜히 웃음이 났다. 눈발이 날릴 즈음엔 웬 인연도 찾아든다는데, 쉬어갈 데가 있으면 좀 쉬어가라고 자리를 내 줄 마음도 생길만큼 나는 넉넉해졌다.

내일, 아니 조금 뒤면 지방을 가게 된다. 여행도 아니고 일도 아니고, 어중간한 목적으로. 그러나 이벤트에 당첨되고, 넉넉해지기도 한 나는, 기실 내일 떠나는 길처럼 어중간한 그 쯤에서 맴돌고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지낸 세월은 생각해보니 정말 지나가버렸고, 앞으로의 세월도 장담할 수는 없는 법.

타고난 팔자가 어딨나며 코웃음 치다가도, 팔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도 싶은, 참으로 어중간하고도 어리석은 생각만 드는 새벽 두 시의 밤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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