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타령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야채도 많이 먹어야겠고 하여 지난 주말에 장을 봐서 샐러드를 해먹을 만한 야채를 몇 개 샀다. 그 중에 무순도 있었다. 작고 귀엽고 먹으면 무맛이 벌써 나는 그 풀 말이다.

그리하여 요즘 인기있는 먹거리인 새싹 비빔밥에 대해 무순을 씹어 먹으며 생각한다. 새싹만 골라 비벼먹는 밥. 먹으면 참 맛나기도 할 거다. 봄 냄새며 풀냄새며 입안 가득 환하게 퍼질 것 아닌가. 이리 저리 입안에 돌려가며 씹는 연한 풀잎의 질감은 또 어떠할 것인가.  

그리하여 다시, 무순을 씹어 먹으며 생각한다. 지난 봄 나팔꽃이 흙과 씨앗껍질을 머리에 이고 처음 싹을 틔웠을 때, 이 작은 것도 생명이어라, 새삼 감탄하고 새삼 감동하여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던가.

어느 것은 생명이고 어느 것은 생명이 아니겠느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니 먹고 살 수도 없는 것이니, 다만 너무나 당연하게만 쑤셔 넣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그 새싹을 씹어 먹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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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사람들은 좋겠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는 게 슬프다.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슬프고, 그런 말을 내 앞에서 하는 것도 슬프다. 나는 괜찮다고 계속 생각하고 싶은데, 자꾸만 슬프다. 허름한 학생회실에 둘러앉아 이렇게 저렇게 나누었던 말들은 다 사라졌나. 오랜만에 둘러 앉아 나누는 얘기는 허공에 뜨기만 했다. 결혼 이야기, 아이 이야기, 새로 생긴 애인 이야기, 연봉 이야기, 얼마 전에 구입한 차 이야기. 다 내 것이 아닌 이야기 속에 앉아 있는 내가 슬프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바보처럼 아직도 그때 그 이야기를 살고 있는 내가 슬프다. 바보가 아니라고 자꾸만 우기는 내가 슬프다. 아직도 내가 괜찮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는 내가 슬프다. 바싹 마른 바닥에 먼지 일듯, 그렇게 건조하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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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재촉해서 떠난 길이었는데, 삼척에 도착하니 시간은 네시가 다 되었다. 환선굴의 매표마감은 4시. 관리소로 전화하여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숨이 넘어가게 뛰어 올라가서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일행의 맨 뒤에 있던 내 뒤에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동굴 관리인인 그는 내가 지나간 자리를 비추던 조명을 하나씩 끄면서 따라왔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따라온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음이 바빴지만, 한 시간이 넘는 관람시간 동안 나는 다소 느긋해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와 말을 섞으며 안내책자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폭 빠져 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동굴을 많이 가본 것은 아닌데, 동굴 깊은 곳, 곳곳에는 동굴 안의 조명을 관리하거나 간단한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들이 한여름에도 파카를 입고 앉아 있는 것을 매번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졸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때 그 동굴안에서 보았던 이런 저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해가 뜨면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책을 읽다가, 점심에는 아침에 싸온 보온 도시락을 까먹고, 오후에는 좀 졸다가 가끔 출입금지라고 되어 있는 비공개 동굴을 들락날락 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맨 마지막 손님을 위한 조명을,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정리를 하다가, 그날 동굴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영 형편이 없어서 휴지통으로 몰아넣고, 이 사진 하나를 남겼다(그렇다고 이 사진이 형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 어두워진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고개를 드니, 이렇게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었다.

[2004년 2월 5일. J의 사이버 샷으로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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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6]

이박삼일동안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중이다. 올해는 하는 일마다 무슨 연유인지, 엄청 더디다. 사무실 일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온통 더디고, 온통 견뎌야하는 것들 투성이다. 무언가가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걸 간절히 믿으면서 말이다.

올해 식목일에 나팔꽃 씨앗을 심고, 이제나 저제나 조바심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인내심의 끝에 닿을 때쯤 씨앗은 싹을 틔웠고, 그리고는 무서운 기세로 쭉쭉 뻗어올라갔다. 고작 열 개 남짓한 씨앗에서 자란 나팔꽃 잎사귀들은 여름 내내 작은 베란다를 풍성한 초록으로 만들어 보고 있기만 해도 참 흐뭇했고, 물이라도 줄 때는 참 낭만적이었다.

문제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잎사귀만 무성할 뿐,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나팔꽃이 풍매화인지 충매화인지 관심이 갔고, 영양분이 모자란지 넘치는지 관심이 갔다. 그러나 여름날 이른 아침 천천히 봉오리가 터지는 나팔꽃을 보리라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8월이 지나고, 9월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나팔꽃은 그리는 안되는 것인가보다하고 체념하고 있던 가을날, 나는 작은 보랏빛 나팔꽃을 발견하였다. 자세히 보니 여기 한 개, 저기 한 개.. 세어보니 꽤 되었다.

그리고는 '너는 그리는 안되는 것이구나'하고 체념하던 날들, 꽃을 보기 위해 조바심냈던 날들을 나무라듯, 나의 나팔꽃은 10월에 활짝 피어났으며, 드디어 11월 말에는 씨앗도 거두게 되었다. 잘 마른 씨방은 조금만 건드려도 톡 하고 씨앗을 뱉어내었다.

사진은 11월 28일에 처음 씨앗을 거둘 때 찍은 것이다. 저것 말고도 몇 개를 더 거두어 작은 녹차티백 포장에 넣어 선반에 얹어 두었다. 올 여름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던 기다림의 정의. 그것은 그렇게 가만히 선반위에 얹혀졌다. 이번주가 지나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여러모로.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모든, 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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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8일 오후 3시 9분.

사무실 전화 수리가 한창이다. 새로운 번호 몇 개를 기존의 번호와 연결하는 작업인데, 도대체 무슨 작업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수리가 끝나고 확인을 해본다고 모두들 한창 전화를 걸고, 받고 난리다. 아효 시끄러워.

어제밤엔 한남대교를 걸어서 건너갔다가 돌아왔다. 아무리 서울이라도 강가는 강가이며, 밤하늘은 밤하늘이며, 강바람은 강바람이다. 오늘도 조용히 어딘가를 걸어다녀야겠다.

전화소리, 너무 시끄럽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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