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12-16]
이박삼일동안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중이다. 올해는 하는 일마다 무슨 연유인지, 엄청 더디다. 사무실 일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온통 더디고, 온통 견뎌야하는 것들 투성이다. 무언가가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걸 간절히 믿으면서 말이다.
올해 식목일에 나팔꽃 씨앗을 심고, 이제나 저제나 조바심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인내심의 끝에 닿을 때쯤 씨앗은 싹을 틔웠고, 그리고는 무서운 기세로 쭉쭉 뻗어올라갔다. 고작 열 개 남짓한 씨앗에서 자란 나팔꽃 잎사귀들은 여름 내내 작은 베란다를 풍성한 초록으로 만들어 보고 있기만 해도 참 흐뭇했고, 물이라도 줄 때는 참 낭만적이었다.
문제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잎사귀만 무성할 뿐,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나팔꽃이 풍매화인지 충매화인지 관심이 갔고, 영양분이 모자란지 넘치는지 관심이 갔다. 그러나 여름날 이른 아침 천천히 봉오리가 터지는 나팔꽃을 보리라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8월이 지나고, 9월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나팔꽃은 그리는 안되는 것인가보다하고 체념하고 있던 가을날, 나는 작은 보랏빛 나팔꽃을 발견하였다. 자세히 보니 여기 한 개, 저기 한 개.. 세어보니 꽤 되었다.
그리고는 '너는 그리는 안되는 것이구나'하고 체념하던 날들, 꽃을 보기 위해 조바심냈던 날들을 나무라듯, 나의 나팔꽃은 10월에 활짝 피어났으며, 드디어 11월 말에는 씨앗도 거두게 되었다. 잘 마른 씨방은 조금만 건드려도 톡 하고 씨앗을 뱉어내었다.
사진은 11월 28일에 처음 씨앗을 거둘 때 찍은 것이다. 저것 말고도 몇 개를 더 거두어 작은 녹차티백 포장에 넣어 선반에 얹어 두었다. 올 여름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던 기다림의 정의. 그것은 그렇게 가만히 선반위에 얹혀졌다. 이번주가 지나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여러모로.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모든, 도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