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재촉해서 떠난 길이었는데, 삼척에 도착하니 시간은 네시가 다 되었다. 환선굴의 매표마감은 4시. 관리소로 전화하여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숨이 넘어가게 뛰어 올라가서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일행의 맨 뒤에 있던 내 뒤에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동굴 관리인인 그는 내가 지나간 자리를 비추던 조명을 하나씩 끄면서 따라왔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따라온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음이 바빴지만, 한 시간이 넘는 관람시간 동안 나는 다소 느긋해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와 말을 섞으며 안내책자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폭 빠져 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동굴을 많이 가본 것은 아닌데, 동굴 깊은 곳, 곳곳에는 동굴 안의 조명을 관리하거나 간단한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들이 한여름에도 파카를 입고 앉아 있는 것을 매번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졸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때 그 동굴안에서 보았던 이런 저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해가 뜨면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책을 읽다가, 점심에는 아침에 싸온 보온 도시락을 까먹고, 오후에는 좀 졸다가 가끔 출입금지라고 되어 있는 비공개 동굴을 들락날락 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맨 마지막 손님을 위한 조명을,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정리를 하다가, 그날 동굴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영 형편이 없어서 휴지통으로 몰아넣고, 이 사진 하나를 남겼다(그렇다고 이 사진이 형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 어두워진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고개를 드니, 이렇게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었다.

[2004년 2월 5일. J의 사이버 샷으로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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