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4일 새벽 날씨 개인 것처럼 보임

"정말 내리고 싶지 않아." 예전에 전철 혹은 버스로 한참을 다녔어야 했을 때는 일을 하러 갈 때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나 나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릴 정류장이 다가오면 올수록 나는 정말 내리지 않을 사람처럼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그래, 오늘은 전철노선 끝까지 가야지, 버스종점까지 야지. 그리고 마치 몰랐다는듯, 낯선 표정을 해가지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려야지. 놀란 사람처럼 허둥거려야지. 그러다 이내 포기한 채로 낯선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야지.

하지만 시간에 늘 쫒기고 있었던 나는 한 번도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친 적이 없었다.

 

지금도 나는 어디론가 계속 가고 싶다. 계속 계속 가고 싶다. 그곳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살피고, 어디로 갈 것인지 끊임없이 정하고, 혼자서 쉬고, 혼자서 자고, 혼자서 먹으면서 그렇게 계속 가고 싶다.

넌 어디가 좋니? 뭐가 좋니? 이런 질문을 누군가 나에게 해오면,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아. 여기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좋아."

여기를 떠난면 저기가 곧 여기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항상 나는 여기만 아니면,을 달고 지내왔다. 지금도 그렇다. 딱히 큰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만 아니면...

 

며칠 전부터 밤마다 웹서핑을 하느라고 난리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그래 이년이면 약발이 다 될 때도 되었지. 예전에 비닐봉투에 주스를 담고 빨대를 꼽아 마시던 기억, 그리고 낯선 거리를 헤매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가 온 것이다. 사무실에서 어떤 일이 나의 발목을 잡아도,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어도 아랑곳하지 말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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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목요일 밤, 금요일 월차를 내고 오랜만에 정의 집에 들렀다. 정의 집 마당엔 온갖 채소와 꽃들이 가득했다. 밤안개 속에 잠깐 멈추어 그 마당의 냄새를 흠뻑 맡아 보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맥주도 반쯤 남긴 채 말이다.

다음날, 나의 생체시계는 그닥 빠릿하지 못하여 열시가 좀 못된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정은 아직 한참 자는 중이었고, 그래서 나는 정의 침대 머리맡에 꽂혀 있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꺼내어 들었다. 지난 번 왔을 때, 읽다가 채 못읽은 책이었다.

그리고 정이 일어날 때까지 뒹굴뒹굴하며 책을 다 읽었다. 정은 매미소리가 제법 시끄러울 때 일어났다. 정은 모처럼의 연휴를 이렇게 보내서 어떻게 하냐고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창밖의 매미소리, 흙냄새, 뒹굴거릴 수 있는 소파, 간소한 식사. 이런 것들로 이미 행복하다고 말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이런 모처럼의 휴일에 잘 맞는 책이었다. 물론, 사랑을 잃거나, 멀리 떠나왔거나, 어쨌거나 외로울 때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그날처럼 별로 외로웁지 않을 때 옛편지를 들추는 마음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었다.

 

담배세가 전쟁에 쓰인다는 소리를 듣고 단박에 담배를 끊어버린 골초 녹색당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 금연을 결심한다거나,

헤엄을 치지 못하면서 물 속에 사는 하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처지를 돌아보거나,

어릴 때 엄마의 치마폭을 잡고 시장에 갔던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처럼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았을 무렵의 냄새"를 떠올리거나,

벗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며 오랜만에 손글씨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거나, 

그때 왜 내가 그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를 생각해보는 것 .

 

이것들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의 아주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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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6일 새벽 1시 4분 화요일 날씨 아직 맑음.

 

아. 오늘은.

오전 내내 하릴없이 보내다가 오후에는 쌩뚱맞게 상을 받고, 저녁에는 누군가 제공한 오리탕을 먹고, 밤에는 코엑스 지하에서 생맥주를 원없이 마셨다.

그리고 지금. 집에 돌아와서 막 샤워를 마치고, 오늘 누군가 보냈다는 메일을 확인하겠다는 핑계차 이렇게 허접스러운 글을 남기고 있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독선적이라는 것을.

그런데, 웬만한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오늘 나의 파트너는 나에게 음. 직접적으로 내가 독선적이라고 말해 주었다.

독선적인 나는 심지어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까지도 한다.

 

나는 사실,

아무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아무 사람의 고통에고 귀기울이지 않고.

나는 사실.

내 원칙이랑은 아무 상관 없게도 그렇게.

 

독선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어떻게 가야 잘 가는 것인지 모르는

그런 바보같은 청춘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잘 모르고, 나는 아직도 잘 하고 싶고, 나는 아직도 남을 배려하고 싶고, 나는 아직도 내가 옳다고 믿고, 나는 아직도 그런 것 떄문에 슬프고, 나는 아직도 감정에 호소하고 싶지는 않고, 나는 아직도 괜찮아 보이고 싶고.

 

나의 바보같은 독선에 부디.

아름다운 그대들의 청춘이 상처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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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1일 새벽에 2005년 6월 2일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경과보고를 하기로 하다.

______________

2005년 6월 2일 목요일 새벽

 아직 날이 밝지는 않았지만, 이제 겨우 6월 2일을 시작하지만, 일기를 쓰기로 한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술을 마셨다. 그것도 적당히가 아니라 충분히.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노는 것은 즐겁지만, 계속 이런 상태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술을 자제하기로 한다.

 오는 6월 6일이면 담배를 핀 지 만으로 10년이 된다. 날짜를 기억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변태같다고 하지만, 어쩔 것이냐, 기억이 나는 것을. 하숙방에서 혼자 뒹굴거리다가 술자리 정리하다 우연히 내 가방에 들어 온 담배를 갖고 장난쳤던 날이 너무나 선명히 기억이 나는 것을. 그날 그 창밖에 개똥냄새가 나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 것을.

 어찌되었건 내 인생에 꼬박 10년이면 인연이 너무 길다 싶어 이제 그만 담배와 헤어지기로 하였다. 내 인생의 중요한 성장기에, 화가 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언제나 함께 했던 것이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그렇듯, 담배도 언제까지나 내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담배마저 나에게 집착이 된다면, 너무나 슬플 것이다.

 이번 주는 그런 의미에서 이별주간이다. 아마도 다음주까지도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플 것이다. 오랜 연인을 떠나보냈을 때보다, 솔직히, 마음이 더욱 아프다.

 말없이 나를 위로해 주던 그것. 그 부드러움. 그 따스함.

 하지만, 이제 안녕.

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날 이후, 6월 6일 자정을 기하여 나는 담배와 이별하였다. 사실 중간에 몇 대 피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좀 변명이라도 해보자면, 호기심에서였다. 이렇게 며칠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그 맛이 그 맛인가, 가 궁금했다면 말이 될라나.

어쨌거나 경과를 알기 위해 피웠던 담배들도 다섯까치는 되지 않으니 금연중이라고 말해도 별로 부끄러웁지는 않겠다. 게다가 근 한 달은 전혀 태우지 않았으니.

인생이 너무나 태평하여 스스로 극기훈련을 하기로 하고 금연을 하였으나, 예상외로 그렇게 괴롭지도 않다.

실은, 나는 왜 괴롭지 않은지 안다.

나의 금연은 담배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에 잠시 유난을 떨어주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걔랑 영영 이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스코어, 뜻대로 되는 것은 담배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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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박, 말고는 좋은 게 하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와 박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볼품 없었지만, 둘 다 서로에게만은 빛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는, 영악하게도 그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곧 끝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그 순간은 당연한 순서처럼. 끝났다.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흘려보낸 시간이 몇 년이었다. 그렇게 계속 예전을 떠올리면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그런 흉내라도 좀 내보려고 했었다. 우리는 예의 바른 편이었으니까.

빈 좌석이 더 많았던 극장에서 [언두]를 보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난다. 아무리 묶어 두려고 해도. 아무리 묶고 묶어도. 누가 누구를 묶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묶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그렇게 서로를 묶다가 퍼뜩 정신이 드는 것이다.

[언두]의 마지막 장면. 거미줄처럼 얽힌 끈 사이로 묶여 있던 모에미가 사라졌다가, 유키오가 묶여 있다가, 다시 모에미가 얽힌다.

옛날 얘기다.

* You Kiss - Remedios(UNDO OST/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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