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목요일 밤, 금요일 월차를 내고 오랜만에 정의 집에 들렀다. 정의 집 마당엔 온갖 채소와 꽃들이 가득했다. 밤안개 속에 잠깐 멈추어 그 마당의 냄새를 흠뻑 맡아 보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맥주도 반쯤 남긴 채 말이다.

다음날, 나의 생체시계는 그닥 빠릿하지 못하여 열시가 좀 못된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정은 아직 한참 자는 중이었고, 그래서 나는 정의 침대 머리맡에 꽂혀 있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꺼내어 들었다. 지난 번 왔을 때, 읽다가 채 못읽은 책이었다.

그리고 정이 일어날 때까지 뒹굴뒹굴하며 책을 다 읽었다. 정은 매미소리가 제법 시끄러울 때 일어났다. 정은 모처럼의 연휴를 이렇게 보내서 어떻게 하냐고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창밖의 매미소리, 흙냄새, 뒹굴거릴 수 있는 소파, 간소한 식사. 이런 것들로 이미 행복하다고 말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이런 모처럼의 휴일에 잘 맞는 책이었다. 물론, 사랑을 잃거나, 멀리 떠나왔거나, 어쨌거나 외로울 때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그날처럼 별로 외로웁지 않을 때 옛편지를 들추는 마음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었다.

 

담배세가 전쟁에 쓰인다는 소리를 듣고 단박에 담배를 끊어버린 골초 녹색당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 금연을 결심한다거나,

헤엄을 치지 못하면서 물 속에 사는 하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처지를 돌아보거나,

어릴 때 엄마의 치마폭을 잡고 시장에 갔던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처럼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았을 무렵의 냄새"를 떠올리거나,

벗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며 오랜만에 손글씨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거나, 

그때 왜 내가 그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를 생각해보는 것 .

 

이것들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의 아주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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