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검정가죽잠바 옆주머니, 안주머니, 네 바지 앞주머니, 뒷주머니, 네 모든 주머니에서 나오던 포도맛 젤리들.

네가 길에서 주워 온 유리 구슬 한 개.

가장 먼저 받았던 1997년의 크리스마스 카드.

플라스틱 분홍 꽃핀 한 쌍.

 

네가 나에게 준 것들은 이렇게 하나,

보잘 것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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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이올린 - 베트남, 아무도 묻지 않았던 그들의 속내 이야기
정나원 지음 / 새물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늦은 밤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호찌민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택시요금보다 더 비싸게 주고 시내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 간간이 불 켜진 술집 외에 시내는 조용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택시기사와 숙소 직원. 반갑다, 베트남. 다음날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잠을 깼다. 내겐 너무 이른 시간 7시. 창을 여니, 오토바이가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드디어, 낯선 공간에 흘러들어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시클로와 택시, 이빨이 빠진 노점 할머니와 고급 아오자이를 입은 종업원, 대나무 바구니의 상인과 다이아몬드플라자의 상인, 5,000동 짜리 국수와 50,000동 짜리 국수, 30도는 기울어진 수상가옥과 건설 중인 엘지자이아파트, 그리고 호의와 호객 사이.


의도하지 않게, 베트남은 끊임없이 나에게 포지션에 대해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너는 몇 살이냐, 너는 얼마를 버느냐, 너는 얼만큼 아느냐, 너는 누구냐. 순진함으로 가장한 나는 순진함이 진심인양 거리를 쏘다녔다. 지금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정리하는 중이다. 정리가 될까, 의심하면서.


여행의 중반쯤에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전쟁의 참혹함, 미국의 포악함을 조악하게 보여주는 전쟁박물관과 현재는 통일궁인 전남베트남대통령관저, 커다란 몸집의 백인들을 태우고 달리는 씨클로,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을 지난 후였다. 정말, 어찌되었건, 베트남과 한국은 닮은꼴이다. 사람들의 모양새도, 사람들의 성격도, 겪은 역사적 사실도, 모두 똑같진 않지만 닮았다. 그래서 베트남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했다. 나는 여름휴가지로서의 베트남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피곤했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 책을 읽었다. 밥을 시켜 놓고도 읽고, 차를 기다리면서도 읽었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누워, 한 명의 성우가 대사를 전달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틀어놓고도 읽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기도 너무 없기도 하다. 여행가기 전에 영풍문고에 가서 베트남 역사책을 찾다가 발견한 이 책을 괜히 갖고 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읽고 왔어야 했다, 혹은 돌아와서 읽었어야 했다. 베트남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2인칭과 3인칭 사이에서 헤매다가,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읽고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순진함으로 가장했던 진심도, 싼 것만 찾아 헤매던 가난한 백패커도 모두 사라졌다. 작가 정나원은 그래서, 이런 고민을 적나라하게 책에 썼어야 했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인터뷰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는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만났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두 다 썼어야 했다. 그게 이 구술사 비슷한 이 책을 더 낫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었어야 했다.


돌아온 지 삼일 째, 일요일에 본 밀크커피색의 메콩강과 높던 하늘과 물살을 가르며 노 젓는 소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하면 할수록, 여행은 어렵다.


** 간단 코멘트


* 챕터별로 미주를 달아놓았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미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 인물별 정보를 챕터별로 해주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읽혔을 것이다. 인물 정보가 뒤에 있다.

* 인터뷰 경위 등에 관한 정보가 없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 정식 베트남 근현대사를 읽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베트남 근현대사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몇 가지 좀 틀린 데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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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7일 아직 오전 11시 50분. 날씨 맑은 편.

공식적으로 내일 모레인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휴가다. 여름 내내 볶아치느라 여름 휴가를 이제야 가게 된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할 때는 몰랐는데, 휴가를 가려니까 또 사무실 일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미친 거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며칠 전에야 호치민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겨우 구했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워낙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보니 처음으로 호텔 예약도 하루치 해두었다, 어제밤에. 하지만, 제대로 예약이 되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뒤늦게 주문한 베트남 관련 책들은 어제에서야 다 도착을 했고, 책을 보니, 내가 놀러 가겠다는 건지, 뭘 하겠다는 건지 헤깔린다.

사실, 오늘은 사무실에서 행사가 하나 있는 날이다. 이것 때문에 비행기표도 늦은 시간 것으로 끊었는데, 어제 두 시까지 야근하고, 준비물 좀 챙기다가 늦잠을 자버렸다. 동료에게 전화를 걸고, 한참을 마음 졸이다가 그냥 나는 참석을 안하는 것으로 했다. 나를 이해해주기는 했지만  이 찝찝한 마음은 어디 비할 데도 없다.  정신없는 이른 아침을 보내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짐을 챙겨 미용실로 가서 머리를 다듬고, 죽집에 가서 죽 한 사발을 사먹었다. 그리고 정말 평온한 양, 비상약도 사고 이것 저것 빼먹은 물건들도 더 챙겨 넣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사무실이다. 출발 시간이 될 때까지 일을 더 정리해 놀 생각이다.

아, 그래도 너무나 찝찝하고 기분이 안좋다. 항상 이런 식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어디 여행가는 것도 일이다. 여행가기 전날 새벽까지 야근하는 것은 이제 관습처럼 굳어져 있고, 허겁지겁 버스든 비행기든 타고 한참을 가서야, 드디어 떠났구나 하니까. 다시 한 번,  미친 거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괜찮은 여행이 될까, 어떨까, 지금 나는 괜찮나.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편입되는 순간, 아마 나는 괜찮아질 거다.

에라이, 가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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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다. 밤 12시 30분.

 가방을 벗다가 침대를 보니, 침대 발치에 너무나 곱게 접어 놓은 잠옷과 이불. 얼마나 잘 접어 놓았는지 각이 살아있다.

 나는 갑자기 참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잠깐 울컥, 하였다.

 

어제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네시 반.

 어제는 사무실 일 때문에 야근을 한다는 것이 새벽 4시가 넘어 버렸다. 그것도 택시를 탄 후, 할증요금이 붙지 않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어제 나와 함께 한 이는 이. 이는 사무실 후배,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 어떻게 역여서 같이 야근을 하게 된 것이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는 9시가 넘어서 탄력이 붙어 복사기가 가동하던 새벽 세시가 넘도록 계속 이어졌었다. 이는 문서가 완성되면 나에게 보여주고, 또 다른 문서를 만들고.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일하였다. 정작 프리젠테이션이있던 오늘, 이는 녹초가 되어 여력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오랜 노하우로, 아직도 체력이 남아 있던 나는 고된 하루가 끝나고 맥주 몇 잔을 걸친 후 지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리고 가방을 벗어 놓다가 그가 잘 개어 놓은 잠옷과 이불을 보았다.

 가만히 얹어 놓은 이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이야, 고맙다.

 이야, 앞으로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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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5일  34.2도의 하루를 보내고.

날씨가 더워서 그런건지 어째서 그런건지 종일 피곤하고 아무것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졸린 건 어제 4시도 넘어서 잤기 때문이고, 집중이 되지 않는 건 다른 걸 자꾸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할 때가 많다, 이렇게. 나는 나한테 거짓말 할 때도 많다. 이렇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죠. 난 아무렇지도 않아. 어머, 깜박 잊고 있었네. 괜찮아. 정말이야.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 거지. 아무거나 너 좋을 대로. 금방 갈게. 좀 못하면 어때. 잘 하셨어요. 하하하.

눈에 보이는 빤한 거짓말을 엄청 해댄 날, 이런 날.

이런 날엔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오늘 밤도 어제처럼 더우려나.

이것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바보같은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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