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브라이언트 공원
스트랜드 북스토어(중고서점)
뉴욕공립도서관
센트럴파크
그랜드센트럴 역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
스푼빌&슈가타운(새책,중고책)
1. 29
내가 우디 앨런 영화의 상당히 충실한 팬이며, 또 그의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와하하 웃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너무나 미국적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누군가 나에게 "미국사람들은 어때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우디 앨런 영화를 보세요"라고 말할 거라는 뜻이다.
2. 37
음악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잡job이라 하지 않고 긱gig이라고 부른다. 어원이 알려지지 않은 이 단어는,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현악기를 조율할 때 나는 소리와 닮았다.
3. 38
박쥐...... 맞다. 예술가들이란 어쩌면 '배트맨' 같은 존재가 아닐까. 다른 슈퍼영웅 캐릭터처럼 배트맨도 보통 사람에서 초인으로 변신하는 존재다. 1939년 형사 만화 시리즈에 처음 등장한 배트맨 캐릭터의 창시자는 밥 케인으로, 그는 배트맨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했다. 다빈치는 15세기 말, 박쥐의 날개에서 그 구조를 따온 비행 장치인 글라이더를 고안했고, 밥 케인은 그 글라이더를 달고 날기를 시도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다빈치의 스케치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4. 39
예술가들은 인류를 대표해서 또 하나의 어두운 자아를 짊어지고 다닌다. 사실 이것은 예술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직업병의 결과다. 모든 예술가의 궁극적인 소재는 자기 자신이고, 화가든 시인이든, 그들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씨름이다. 매일을 자기 자신과 씨름하다 보면 자아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게 된다. 어디든 깊이 내려가면 외부의 빛은 차단되게 마련. 자아 깊숙이에는 어두움의 결정체와 같은 또 하나의 자아가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이 시커멓고 두려운 형체와 때로 싸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때로 같이 엎어져 울어야 할 때도 있다.
5. 46,53,57,61,67
⊙
옥타비오는 스스로를 '뉴스 정키(뉴스 중독자)'라고 표현한다.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뉴스란 뉴스는 다 찾아 읽으니 그만큼 시사에 밝다.
⊙
옥타비오가 묻는다.
"이런 말 들어봤어?"
"어떤 말?"
"여기 옛날엔 뭐가 있었는데, 하는 순간 뉴요커가 된다는 말."
"어, 그거 내가 해준 말 아니야? '거대한 뉴욕'에 나오는 말이잖아."
"아닌 거 같은데. 난 그 책은 못 읽었고, 어디선가 다른 글에서 인용된 것을 봤어."
"그런가? 뭔가 전에 있던 것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들어온 걸 알아차릴 때 뉴요커가 된다는 말 아냐."
"난 그 부분보다 '지금 있는 것보다 예전에 있던 것이 더 진짜처럼 느껴질 때 당신은 뉴요커다'란 말이 더 마음에 들어."
'거대한 뉴욕'은 콜슨 화이트헤드라는 젊은 작가가 뉴욕을 소재로 쓴 책이다. 얼마 전 읽은 이 책에서 그 문구를 발견하고 밑줄까지 그어놓았었다.
⊙
나는 옥타비오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뉴욕이 왜 그렇게 좋았느냐고.
"그런 거 있잖아. 사춘기적 보헤미안 세계에 대한 동경이랄까. 그런 게 항상 있었어. 뉴욕은 그런 환상에 딱 어울리는 도시였지. ... 게다가 그때 모마(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앤디 워홀 회고전을 하고 있었으니 상상해봐.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예술가들은 많아. 바스키아, 줄리앙 슈나벨, 데이비드 살리 등등등. 그렇지만 지금까지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작가는 앤디 워홀밖에 없어. ... 그 후로 죽 앤디 워홀을 공부했다면 한 편인데,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내가 못 본 작품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그는 죽었다고 할 수 없어. 아직까지 살아서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작가야. 그런 전시를 봤으니 내가 여기 오고 싶지 않았겠어? 그때 난 결심했었어. 다음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난 내 결심을 지킨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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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오는 여피족보다는 펑크족에 가깝다. 여피Yuppie란 도시에 사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 또는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Young Urban/Upwardly-moblie Prefessinal의 앞글자와 Hippie의 뒷글자를 딴 것이다)란 뜻이다. 요즘은 특히 부유하면서도 최신 유행하는 소비 취향을 열심히 쫓아가는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계속된 경기 상승에 힘입어 맨해튼은 전체적으로 여피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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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는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밝히는 소년처럼 또박또박 말한다.
6. 89
나는 뉴요커들이 비싼 렌트에 피 흘리며 뉴욕에 모여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가난한 자의 호사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뉴욕공립도서관이 그런 호사다. 시민들이 모여 책을 찾고 읽는 곳이건만 뉴욕 최고의 부호가 와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호화롭기 그지없다. 먼저 프랑스에서 실어왔다는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그리고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빛나는 복도를 지나 장미꽃으로 물든 구름이 떠다니는 천장화가 그려진, 웅장한 열람실에 들어서면 호령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된다. 책을 읽어야 하는 나의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귀족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센트럴 파크는 내가 이제껏 가본 그 어느 공원보다 화려하다. 짧게 다듬어진 잔디가 주는 폭신폭신함은 페르시아 카펫의 그것보다 고급이다. 게다가 나무가 그리는 성글고 넉넉한 실루엣과 빼곡이 들어찬 미드타운 빌딩숲의 드라마틱한 대조를 보고 있노라면 내 삶이 온통 화려해지는 것이다.
뉴욕 시의 기차역인 그랜드센트럴 역은 또 어떤가. 삶이 정체되고 누추하다고 느껴진다면, 마땅히 떠날 곳이 없다고 해도 그랜드센트럴 역으로 가면 된다. 이곳은 축 처졌던 폐를 터질 듯이 채우는 여행의 예감만큼이나 화려한 공간이다. 모든 뉴요커들의 여행에의 열망을 한꺼번에 품어낼 수 있는 거대한 공간. 하늘처럼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천장에는 고층 빌딩으로 조각난 뉴욕 하늘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별자리들이, 그것도 금박으로 수놓아져 있다. 아무리 행색이 초라한 여행자라도 호화롭게 여행을 시작하거나 끝낼 수 있는 곳.
7. 94
내가 재밌다는 것은 이 재단이 선정한 올해 거주 예술가 중 한 명인 알렉산드라 에스포지토가 뉴욕의 예술가들에 대해 표현한 부분이다. "뉴욕의 예술가들은 무슨 미생물 같아요. 가장 더럽고 후진 지녁에 들어가서 더러운 거 다 먹어치우고 깨끗하게 해놓으면 땅값은 올라버리고, 그리고나면 또 다른 더러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하죠." 이 방송을 듣던 뉴욕의 모든 예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맞소!"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미대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뉴욕으로 오는 것이 꿈이다. 에스포지토의 경우는 그녀의 모든 동기생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뉴욕으로 왔다고 한다. 그만큼 뉴욕은 예술가들의 집결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어디서 사는가. 뉴욕이라는 결전의 장으로 이사오는 것도 떨리는 판에 구한 집은 후지고 위험한 지역에 있다.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겨우겨우 작업하며 살다보면 후졌던 지역의 월세가 오르고 물가도 오른다.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 최근의 예가 윌리엄즈버그다.
8. 99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풀타임(주당 40시간) 직업을 갖고 있다. 이들의 풀타임 직업은 교수직이 아니라면 예술과 관계없는 일인 경우도 많다. 여기서 받는 보수로 생활은 가능하지만, 이런 식으로 주 5일을 일하고 나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밤이나 주말뿐이다. 취미로 주말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선데이 아티스트'라 부른다. 예술가들이 취미처럼 작업을 해서야 작품이 발전할 리는 만무하다.
9. 119
메트(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줄여서 보통 메트The Met라고 부른다.)
10. 161
젊은 영국 예술가 중 한 명인 덱스터 달우드 Dexter Dalwood
달우드는 그가 가보지 못한 곳, 즉 명사들의 거처나 유명한 장소를 그리는 작가다.
<여왕의 침실>
11. 169,179,183
<뉴욕영화관>
⊙에드워드 호퍼는 나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새로이 사랑하게 된 작가들이 여럿 있지만, 내게 호퍼는 여전히 가장 특별한 존재다.
⊙호퍼는 인상주의에서 큐비즘, 추상표현주의까지 다양한 미술사의 조류를 목격하지만, 철저하리만치 그의 세계 안에 남아 있는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독창성이란 창의력에 관한 것도, 새로운 기법에 관한 것도 아니다. 특히 유행하는 기법에 관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심오한 것으로, 그것은 한 사람의 존재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다." 예술가 특유의 자유분방함에도, 유명세나 돈에도, 한 시대를 쓸고 지나가는 시류에도 그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유머러스했지만 무척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그는 상당한 독서가였는데, 보들레르나 발레리, 랭보 등을 열심히 읽었는가 하면,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미국 초절주의 작가들, 에머슨과 소로우의 영향도 깊게 받았다.
...
토박이 뉴요커였던 호퍼는 1882년 뉴욕 시의 북쪽에 있는 나이액에서, 그 지방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퍼와 함께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화가 중에 한 명인, 이탈리아의 화가 지오르지오 디 키리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태양 아래 걷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떠한 종교보다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더 많이 담겨있다'고.
12. 187
크리스토와 장-끌로드
13. 193
나에게도 자유가 중요했다. (왜 이리 사소하게 들리는 것일까.) 비웃음을 살 정도로 뉴욕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뉴욕에서 경험한 자유의 예감 때문이었다. 그 대신 뉴욕이 나에게서 뺏어간 것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그동안 고국 땅에서 포근히 지켜오던 자존심 같은 것. 아마도 자유란 뭔가 무너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사랑처럼 정의가 힘든 개념이다.
14. 196
하루는 교수가 한 학생에게 물었다.
"너 자전거 매일 타니?"
"예, 매일 타요."
"그렇게 자전거 타는 데 에너지를 다 쏟으면 그림은 뭘로 그리니?"
"자전거를 타야 기운이 나는데요."
"글쎄. 사람이 어딘가 쏟을 수 있는 열정이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거든. 한 곳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버리면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고 생각해봐. 화가는 그림에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아야 해."
15. 199
질문자: 자서전에서 예술적인 감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피터 브룩: 마약과 아주 간단하게 비교될 수 있지요. 마약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 그 효과로 인해, 아주 황홀한 경험들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로 인하여 일상 속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 필요한 무엇인가를 빼앗기게 되지요. 같은 맥락에서,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맛보게 되는 순간적인 만족감 때문에, 그들 영혼의 깊숙한 내면적인 발전에 있어서의 무엇인가를 항상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유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연극에서 배우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상생활과 무대를 좀더 밀접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16. 203
다른 결정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것, 그것도 예술가의 삶의 한 부분이다. 브루스는 내가 갤러리에서 일을 할 때, 그런 일 하지 말고 좀더 지적인 일을 하라고 충고했었다. 그런데 요즘 내가 번역을 한다고 하니, 차라리 갤러리 일이 나을 뻔했다고 자신의 충고를 후회한다. 두 가지 일을 해내는 데 다른 방도는 없을 것 같다. 절망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 낭비되는 에너지를 더욱 줄여나갈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