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
이 열여덟 편의 에세이는 4년에 걸쳐 쓴 것이다.

2. 23
우리 침대 옆에 있는 서가에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 "친구나 친척이 준 책". 먼저 그런 범주를 만들어 본 글쟁이 친구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한 군데 모아두니 따뜻한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3. 44
그 구절을 읽는 순간 공감으로 인한 저체온증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뜨거움이 결합되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4. 59
아버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일 주일 만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던 시력에서 시력검사표 맨 윗줄의 큰 글자도 읽지 못하는 시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플로리다 서해안에 살았는데,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마이애미의 배스콤 파머 안과 연구소로 갔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망막 괴사 진단을 받았다. 기가 막히게도 그 원인이 80년 이상 잠복해 있던 수두라고 했다. 시력을 회복할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였다.

5. 63,65,66

내가 열한 살, 오빠가 열세 살 때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유럽에 가셨다. 오빠 킴은 글을 읽게 된 후로 거의 매일 밤 그랬듯이, 코펜하겐의 앙글레테르 호텔에서도 침대맡 탁자에 책을 펼친 채 엎어 놓았다. 다음날 오후 방에 돌아와 보니 책이 닫혀 있고, 책갈피로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청소부가 서명한 메모가 표지 위에 놓여 있었다.
 손님, 책을 절대 그렇게 다루지 마세요.
오빠는 어리벙벙했다. 학교 기숙사에서도 나무 노에 맞을 각오를 하고 매일 밤 소등 뒤에 이불 속에 들어가 손전등 빛으로 책을 읽을 정도로 헌신적인 독자인 오빠가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오빠의 굴욕감을 이해했다. 나는 패디먼 가족보다 책을 더 숭배하는 가족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비행기에서 읽는 페이퍼백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 읽은 장들은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인데. 내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습기와 뜨거운 열기로 완전 분해된 책장들이 폭풍 속의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는 사우나에서 책을 읽는 사람인데.

바이런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책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밑줄도 긋고, 여백에 메모를 하기도 하고, 뜯어내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고, 갈가리 찢기도 하고, 또 공개적으로 말하기 뭣한 짓을 하기도 했지요.

코펜하겐에서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대맡에 펼친 책을 세 권쯤은 엎어 놓고 사는 킴도 책을 사랑한다. "그렇게 하면 언제든지 즉시 원하는 데부터 읽을 수가 있잖아. 전자 제품에 비유하자면,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는 것은 '멈춤' 단추를 누르는 것이고, 책을 펼친 채로 엎어 놓는 것은 '일시 중지'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

6. 75
나는 그 무렵 처음 어머니가 된 여자들이 수면 부족과 갑작스러운 정체성 재배치로 인해 빠져들게 되는, 환희와 공황이 뒤섞인 혼란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7. 93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남편의 책 속표지에 적힌 것.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8. 95
 매콜리 역시 아주 중요한 면에서 우리가 닮았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둘 다 내가 "현장 독서" - 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책을 읽는 것-라고 부르는 것의 열렬한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똑같은 취향을 지녔다는 사실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매콜리가 시대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독서가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 살 때 독서를 시작해서 쉰아홉에 앞에 책을 펼쳐 놓은 채 죽었다.

9. 122
교열자 기질은 몇 가지 상호관련된 증상들을 거느린 더 큰 증후군의 일부인데, 그 증상들 가운데 하나가 발견 편집증이다.

10. 157
나는 그런 번득이는 눈길을 잘 안다. 내가 독서에 대해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워터 피크 안내문이라도 읽을 것이다. 소도시의 모텔방에서 홀로 지낸 수많은 밤에는 전화번호부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당시 내 아파트에서 적어도 두 번 이상 읽지 않은 유일한 문서 자료를 찾아내어 숙독하는 것으로 절망적인 불면증과 맞선 적도 있다. 그 자료는 내 룸메이트의 1974년형 도요타 코롤라 안내서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중독, 금단 증상, 갈망, 공황), 수동 기어 조작 설명이 내게는 단테가 '천국편' 31곡에서 보여준 영원한 장미의 비전만큼 아름답게 느껴졌다.

11. 169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방법 가운데 책을 쌓고, 세우고, 다시 배열하는 등 책에 온통 지문을 묻히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생각할 수 없다. 유리문이 달린 부모의 책장에서 마크 트웨인이나 발자크를 꺼내려면 먼저 손부터 씻어야 했던 다이애너 트릴링이 커서 애서가가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12. 171
두 분의 책을 합치면 7천 권쯤 되었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목수가 와서 4백 미터 길이의 책꽂이를 짰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면 새 주인은 책꽂이를 뜯어 버렸다.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벽이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는 사진의 평평하고 하얀 배경이 될 만한 벽이 존재할 수 없었다. 벽 자체가 예술이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박혀 있는 모자이크의 갖가지 색 타일들은 모두 세로로 길쭉하고 바짝 여윈 직사각형들이었다. 이것은 손을 대도 기분이 좋았지만, 오래된 종이의 먼지 냄새를 좋아한다면 코를 킁킁거려 볼 만도 했다.

13. 184
물론 가장 사적인 낭독은 연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대학시절 남자 친구의 좁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어느 날 오후가 기억난다. 우리는 공부가 끝날 때까지 유혹을 미루기 위해 발은 상대의 머리쪽으로 가게 반대로 누운 채 '낭만주의 시인들'이라는 두꺼운 밤색 책을 주고받으며 번갈아 블레이크의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를 낭독했다.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다.

14. 191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안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

15. 207
그러나 슬프게도 잔인한 현실 때문에 환상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은 1936년에 쓴 "서점 추억"이라는 에세이에서 헌책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근무 시간은 길고, 가게는 매우 추웠으며, 책꽂이에는 죽은 청파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손님 대부분은 미치광이였다. 그 가운데도 최악은 책에서 점차 매력을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책을 사랑하던 때가 있다. 책이 쉰 살을 넘기만 하면 그 모습과 냄새와 촉감이 무척 좋았다. 시골 경매장에서 1실링을 주고 책을 떨이로 사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책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책을 사지 않게 되었다. 책을 한 번에 5천 권이나 만 권씩 덩어리로 보게 되자, 책이 지겨워지고 심지어 약간 역겨워지기도 했다."

16. 208
우리는 그 책들을 가게로 가져가 주제에 따라 분류했어. 역사는 왼쪽 벽에, 문학은 오른쪽 벽에, 철학은 위쪽 골방에. 그랬는데 갑자기 그 책들이 이제는 존 클라이브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고. 장서를 흩어놓는 것이 꼭 시신을 화장해 바람에 뿌리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무척 서글펐지.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다른 책들과 공존할 때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 그 맥락을 잃어버리면 의미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17. 218
나의 남편 조지 하우 콜트와 나는 책으로 서로의 환심을 샀으며, 서로의 자아만이 아니라 서재와도 결혼을 했다. 내가 양쪽에서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조지는 편집자다운 꼼꼼하고 지혜로운 눈으로 이 책의 모든 말을 살펴보았으며, 여기 적힌 말의 많은 부분에 영감을 주었고, 그랜드캐니언에서건 책으로 가득찬 뉴욕시티의 우리집에서건 나와 함께 그 말을 겪어 왔다. 그가 나에게 보냈던 헌사를 점점 깊어지는 사랑으로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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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LAST RIDE
LAST JOB
LAST CALL
LAST HOME
LAST DRAW
LAST SHOOT
LAST BATTLE


한국어판 저자 서문

빛 속에 들어서면 반드시 밝은 부분과 그늘진 부분이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과 사회의 밝고 긍정적인 부분을 그리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현대 일본 사회의 그늘을 날카롭게 부각시키려 애썼다. 작가란 참으로 묘한 존재라서, 당신 작품 참 상쾌하다는 말을 들으며, 정반대의 작품을 쓰고 싶어진다.

'LAST' 연작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압력 속에서, 뻔히 눈앞에 보이는 절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밀려나가는 이야기다. 피할 수 없는 몰락 앞에 선 절망적인 시선. 타오르는 듯한 그 투명한 시선이 이 이야기들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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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삶이 힘들더라도 매일의 사소한 행복과 마음의 풍요로움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았어요. 그래서 시와 소설, 음악, 영화, 만화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 고대에서 현대, 유무명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삶을 비춰볼 수 있고, 희망과 용기를 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을 찾아보았답니다.
말과 글은 정신의 표현이며, 우리 영혼을 움직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생각할 때, 저와 함께하는 이 시간, 작지만 아주 귀한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
좋은 책을 보며 줄을 치거나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동안 잊거나 잃어버린 무언가가 돌아온다는 느낌에 한없이 즐거워했고, 기대감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인생은 더 깊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이었고, 강물에 쏟아지는 환한 햇살이었습니다. 참 많은 것이 그리웠고, 타오르는 열정과 아쉬움으로 애달팠습니다.

2. 14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고, 나를 이해시키고 싶고,
나를 알리고 싶고, 포옹받게 하고 싶고,
누군가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바란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에서 -

3. 18
그렇게 보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 내가 살아가는 것에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없어져버렸다.

 - 카타야마 쿄이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

4. 34
아내의 몸에 대한 신비가 사라지면서
그 몸의 내력이 오히려 애틋하다
그녀의 뒤척임과 치마 스적임과
그릇 부시는 소리가
먼 생을 스치는 것 같다

 - 장철문 시집, '산벚나무의 저녁'에서 -

5. 36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 온 우주가 그 사랑을 위해 공모하는 것 같다. 오늘 석양 무렵,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뭔가 하나만 잘못되어도 모든 것이 무너져 사라진다! 노을 속을 나는 왜가리,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달콤한 그의 입술, 그 모든 것. 몇 분 전만 해도 분명히 거기 있었던 아름다움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라질 수 있었을까?

 - 파울로 코엘료, '11분'에서 -

6. 48
사랑하라, 희망 없이. 마치 젊은 새잡이가 향토의 딸에게 그의 높은 모자를 휙 벗어 날려보내듯이. 그리하여 갇혀 있던 새들이 도망쳐 날게 하라. 말 타고 지나갈 때 그녀의 머리 주위에서 노래하도록.

 - 로버트 그레이브즈, '사랑하라, 희망 없이'에서 -

과연 희망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마음에 품은 연정의 새들이 도망쳐 날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끄는 사람의 주위에서 노래하게. 싫으면 할 수 없고, 좋으면 당겨보는 거지요. 단, 큰 기대는 금물. 만사 너무 집착하지 않을 것. 그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것.

7. 54
슬플수록 슬퍼하지 말지니
없을수록 있는 사랑이니
있을수록 없는 사랑일지라도
우리 사랑 이렇게 서로를 베어먹으며
날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우리 서로 없어져도
날마다 변하는 변하지 않음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사랑이여

 - 차창룡 시집, '나무 물고기'에서 -

8. 76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두어야 한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자기 혼자만의 풍경 속으로 가라. 그 풍경 속에 설정되어 있는 그 사람의 그림자와 홀로 만나라.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은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 윤후명, '협궤열차'에서 -

워낙 인연만큼은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냥 바람결에 놔두는 게 최선이죠. 한 친구가 말하길,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선 이별과 그리움에 대해 내공을 쌓을 필요가 있다네요. 슬프고 그리운 감정에 한없이 휘둘리다 보면 시간은 그냥 버려지기 일쑤니까.

9. 91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 해결하고 견뎌야 할 일들이 늘어납니다. 사람들이 워낙 실수하는 존재이므로 섣불리 마음 터놓고 얘기했다가 상처로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기에 말을 아끼게 되는가 봅니다.

10. 103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한 말이 저를 위로해줍니다. 사람들을 눈여겨보면 조금씩 다 이상하다는 말. 달리 말해 누구나 특별하단 얘기래요. 실은 저도 어떨 땐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의심할때마다 주눅 들거든요.

11. 105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 박노해, '사랑에는 끝이 없다네'에서 -

12. 107
'슬픔은 저절로 달래진다. 하지만 온전한 기쁨을 찾기 위해선 그 슬픔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마크 트웨인의 얘기가 떠오릅니다.

13. 113
이 시인과 언제 밥벌이에서 좀 해방되어 여행하며 살까를 말했지요. 아마 그럴 날은 힘들 거라나요. 그래서 생일이나 온통 기념일 등등 그걸 핑계로 따뜻하게 보내자는군요.

14. 120
그런 날들이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지
항상 춤추고 노래하고, 하루 종일 그랬었지
우리가 선택한 삶을 살았더랬어...

바로 오늘 밤, 나 그 술집 앞에 서 있었어
모든 게 달라 보이더라
술잔엔 이상한 사람이 비쳐 보이고 있었어
저 나이 들어버린 여자가 정말 나란 말야?
문을 통해서 친숙한 웃음소리가 다가오는 걸 느꼈지
니 얼굴을 봤고, 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들었어
아, 친구야
우리는 나이 들긴 했지만, 현명해지진 않았나 봐
우리 맘속에 간직한 꿈들이 아직도 그래도잖니...

 - 메리 홉킨의 노래, 'Those Were The Days'에서 -

15. 127
'세상은 무섭고 잔인한 곳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풍요롭고 훌륭한 곳이 될 수도 있다. 이들 모두 진리이다.'
미국 심리학자 리 로스가 한 이 말이 무척 가슴에 와 닿습니다.

16. 140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청소년들이 지루함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겟는가? 저녁 프로그램만큼 단조로운 것도 없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이 단조로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지루함은 결코 수준이 낮다는 뜻이다. 위대한 모든 책들은 다 지루한 구절을 담고 있다고 러셀은 주장한다. 심지어 성경도 그렇다. 지루함은 존재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 이상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지루함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그러기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 우도 마르크바르트, '팝콘 먹는 소크라테스'에서 -

17. 160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

 - 부설거사, '팥죽시' -

18. 172
무엇이건 그것을 거칠게 즐기면, 그것은 쓰디쓴 것이 되고, 즐기는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사람처럼 매사를 즐긴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언제까지나 가치를 잃는 일이 없으며, 우리를 기품 있게 한다.

 - 프란츠 카프카의 산문, '늘 푸른 저쪽을 향하여'에서 -

19. 181
지식은 한없이 따뜻해서 책과 연애하며 지내려고요.

20. 186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논리적인 말을 몇 마디씩은 해야 한다."

 - 괴테 -

21. 187
영화 '왓 어 걸 원츠'에서 "삶은 때로 상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훨씬 좋아진다"는 대사는 가슴에 걸어두었습니다.

22. 188
자발적 빈곤

23. 190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산다는 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
희망을 갖는 건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시도를 하는 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으려는 것이니까.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 글렌 밴 에케렌, '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에서 -

24. 191
H.W.아놀드는 말합니다.
'가장 큰 파산은 열정을 잃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열정만은 잃지 말라. 그러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25. 195 To S
가까운 사람의 다정한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견딜 힘이 생깁니다. "내가 도울 게 없나?", "음, 너는 정말 멋져", "미안해" 등등 푸근한 말 한마디로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무겁던 가슴이 한지처럼 가벼워집니다. 그런 이쁜 말이 근사한 자신을 만들지요.
어제는 아는 사람이 참 부정적인 질문은 해와 마음이 불편했어요. 말에 참으로 기가 실려 있어서 부정적 단어들은 총과 칼을 대할 때처럼 마음을 무겁게 해서 피하고 싶어져요. 그 사람도 마주하기 싫어지죠. 제 나이쯤 되면 말을 잘 골라 쓸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성숙한 사람인 거겠죠.

26. 199
내일은 좋은 날이 될 거라 믿으며 삽니다. 이런 확신이 든 건 비관적으로 지내봤자 좋은 일이 하나도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죠. 간혹 마음이 편치 못한 건 할 일이 쌓였기 때문인데, 서둘러도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에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갑니다.

27. 208
100퍼센트를 살기 위해선 오늘 미쳐야 한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몰두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미친다는 것은 열정이 넘친다는 것이고,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을 때 열의를 억제하지 ㅇ낳는 것이다.
미치면 무의미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세상에서 의미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미친다는 것은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친절을 베풂으로써 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느 ㄴ것이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 데릭 스위트, '100퍼센트를 살아라'에서 -

28. 210
자신을 꽃피우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데에 큰 걸림돌은 바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변화,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 심지어 행복에 대한 두려움까지. 두려움은 일상 속에서 뭔가 다른 것이 나타나면 생겨난다. 현재의 일상이 별로 좋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게 마련이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고, 답답한 일상이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현재의 삶에 집착하려는 습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자신의 존재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히려 생활 속의 문제나 질병 따위에 중독되기도 한다. 자기 암시를 통한 연민과 사랑의 힘으로 벽을 넘어야 한다.

 - 마르크 오렐 -

29. 215
황인숙의 시집 '자명한 산책'을 펼쳐 들고 매혹적인 시 한 수를 읊으면서.

이리 와, 이리 내게로 와, 행운의 나비야
우리는 행운의 나비를 만나고 싶어하죠

행운의 나비는 내려앉는 데서마다
듬뿍 행운의 가루를 묻혀 날아가죠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행운의 나비가 저기 가네요

30. 225
"열심히 살다가, 결국 발버둥치다가 가는 거지. 또 그게 아름다운 거야. 없는 것 가운데서도 ㅎ애복을 느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지나치게 채우려고만 하면 자신만 힘들어지구. 더럽게 일 안풀린다고 불평만 하면 더러운 인생이 되지."
아침에 아는 분한테 받은 전화 내용입니다.

31. 231
비관적이면 인생은 비극적으로 흘러가고, 희망을 바라보면 희망이 오더군요. 순정한 사랑을 꿈꾸는 분, 언젠가 그 사랑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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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바늘

월경
눈보라콘 - 부산, 부라보콘
⊙ 당신의 바다 - 곰장어, 남편
등뼈 - 디스크
행복고물상 - 아내의 구타
유령의 집 - 용두산
⊙ 포옹 - 곱사등이, 사랑


단편 '바늘'
1. 32
'바늘을 잘게 잘라...


단편 '당신의 바다'
2. 115
내가 그곳에 갔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까? 등을 돌리고 누운 당신의 뒷못브에서 죽은 곰장어의 모습이 보인다. 곰장어는 온도에 민감해서 말랜 채 굳은 근육은 꼭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부릅뜬 눈을 연상시킨다. 그 단단한 시위.

3. 121
더러운 행주를 쥐고 있는 내 손을 들여다본다. 손목 근처에 초승달 모양의 덴 자국과 고춧가루가 묻어 있다. 곰장어를 뒤집다가 뜨거운 판에 손목을 데곤 한다. 고춧가루가 묻어 있는 이 손에 붉은 펜자국이 지워지지 않던 날이 있었다. 내 손은 활자들 사이를 활보하면서 하루 열 시간씩 교정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야 내 눈에 생채기 같은 붉은 자국이 보이곤 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 책과 종이들이 가득한 사무실로 들어서면 언제나 가슴이 턱 막혔다. 코끝이 맵도록 많은 종이들. 창문이 없어 환기가 잘 안되는 사무실. 나는 책장으로 둘러싸인 구석자리에 앉아 하루 수백장의 교정지를 넘겼다. 신국판 싸이즈의 종잇장에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사각형의 책들과 사각형의 좁은 공간이 가로막고 있었다. 펜을 들고 교정지를 넘기다가 팔뚝에서부터 손목까지 길고 힘차게 선을 긋곤 했을 것이다. 붉은 펜이 책들 사이에 끼여 있다가 손바닥에 뭉뚝한 자국을 남기기도 했겠지.
내가 당신을 만난 곳도 바로 그곳이다. 당신은 대필원고나 교열지를 넘기기 위해 사무실에 오곤 했다.
...
그러나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집을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당신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는 문을 닫았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몇달치의 밀린 월급조차 받지 못했다. 당신과 나는 동시에 직장을 잃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집은 바위 틈새에 끼여 곧 부서질 것 같았다.

4. 132
"어머니는 어쨌든 집에 있는 아버지가 고마워서 갈치며 납새미를 끼니마다 올리곤 했지. 들고 나간 생선을 모두 팔 때까지 집으로 들어오지 않던 어머니가 말이야. 아버지가 집앞에서 죽기 전까지....."
"집앞에서?"
"그래. 길앞 길바닥에 납작하게 깔려서."
"사고였어?"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뛰어나갔는데 마침 화물차가 지나간 거야. 아버지가 워낙 급하게 뛰어들었대. 나중에 보니까 아버지 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더라.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이었어."


단편 '등뼈'
5. 153
하지만 누군가 먹고 난 뼈를 다시 주워들거나 애써 조개의 관자를 뜯어내는 여자의 모습은 궁핍하고 비천한 동물을 연상시켰다. 여자에게 왜 구질구질하게 그런 걸 먹느냐고 못마땅하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뼈에 가장 가깝잖아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뼛살을 먹는 데 열중했다. 뼈에 가장 가까운 살. 정말 여자가 그 살을 좋아했을까?


단편 '행복고물상'
6. 161
모든 것이 다 잘 풀리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희망에 가득 찬 순간 어두운 소식을 접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도 위안이 될 수 있다. 불행에 단련된 사람은 제 앞에 닥친 희망을 낮설어하게 된다.


7. 해설 - 이광호

그녀의 소설에는 예쁜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그녀들은 늙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못생기고 늙었거나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그녀들은 숙명적인 일탈성의 자질을 함유한다. 그 불구성은 그녀들이 처한 삶의 지독한 소외를 말해준다. 90년대 소설에서 발견되던 도시적 매력을 가진 전문직 여성은 이 소설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육식에 대한 집착은 그녀들의 본능적인 동물적 욕구를 반영하며, 외부세계에 대한 공격성과 적의를 암시한다.

폭력과 식욕, 그리고 성적 욕구는 천운영의 소설에서 행위의 기본적인 동기들로 서로 매개되어 있다. 그 비이성적이고 난폭한 행위들은 어떤 내적 억압의 분출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서 그녀들이 부여받은 야수성의 이미지는 제도적 현실에서 억눌린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욕구를 표현한다.

천운영 소설에서 그녀들이 견뎌내야 할 불우는 가족 단위의 어두운 운명론에 기대고 있다. 이 젊은 작가는 그 오래된 운명론에 독특한 미학적 자질들을 새겨넣는다. 그 미학적 자질들의 선명함과 강렬함 때문에 우리는 그 운명론의 퇴행적인 성격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녀가 부여하는 동물적 관능의 미학은 매우 극단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한국소설에서 경험하지 못한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수준을 경험할 수 있다.

'나'의 행복은 '부라보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보라콘' 속에 있다. 닿을 수 없는 부재로서의 진짜에 대한 욕망이 인간을 살게 하고, 인간을 성장시키고, 가짜의 문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천운영을 통해 한국의 여성소설은 독특한 야생의 미학을 자기 목록에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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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어놓은 밑줄이 거대하여 일부만..


<강석경 -  나의 한가운데로 가는 여정>

♣ 아버지의 파산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금 때문에 소설이라는 것을 처음 써 본 것.

♣ 세 차례 직장생활도 했으나 내 존재는 늘 물위의 기름 같았다. 가슴이 공허했고 영혼은 갈망에 흔들렸다. 언어는 늘 머릿속에 있었기에 원고지 위에서 그것을 모색해야 했다. 영혼의 눈은 어느덧 조각에서 문학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문학은 필연으로 다가온 자아찾기의 방편이었다. 전업작가 생활로 들어서면서 문학에만 매달리자 글쓰기가 높은 산을 넘는 것처럼 힘겨웠다.

♣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상처를 문학의 화두로 삼고 있다. 그 상처를 푸는 방법으로 문학을 택한 것 같다. 분단 현실로 가족이 상처받은 작가는 끊임없이 분단소설을 쓰고 아버지의 부재도 번번이 작품에 등장한다. 사랑에 상처받은 자의 시엔 사랑과의 투쟁이 되풀이 그려진다. 그래서 문학을 패자의 기록이라 말하는지 모르지만, 작가의 상처 혹은 작중 인물의 상처는 곧 그 사회의 단면이므로, 작가들은 상처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속한 사회의 왜곡된 면이나 인생의 환부를 열어젖힌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이렇게 기도했다. "신이여, 지켜 보기에는 너무나 역겨운 상처의 밑바닥까지 응시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 인도여행 후 '모든 집착은 미개한 것이다' 깨닫고 내 존재의 기반인 문학까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언어로 돌아오고 만 것은 그것이 본질인 영혼을 탐색하는 최적의 보루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고은 - 나의 문학은 폐허로부터 시작했다>

♣ 비 온 뒤의 앞산처럼 확실한 이런 질문으로 나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 그저 시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밀물이었다. 그저 시인이 되었을 뿐이다. 썰물이었다.

♣  학교에서는 장래의 화가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내일의 시인이었다. 시인이기를 얼마나 열망했던가. 그런데 바로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화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외삼촌의 서가에서 반 고흐 전기를 꺼내 보았을 때 나는 "오직 고흐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이리라"라고 책상머리에ㅣ써 붙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다음에 시인에의 열망이 다른 것이 되고 싶은 나머지 한때의 열병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가정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 시 혹은 문학은 반드시 그 시대의 어떤 상흔에서 그 의미를 이끌어낸다. 시인은 그러므로 상처받은 혼신이다. 나에게 시는 전쟁 이전의 꿈과 전쟁 이후의 절실성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 내 문학은 그런 폐허를 떠도는 자의 비가이기를 자처했다. 그래서 시의 본적지는 폐허이고 시의 현주소는 폐허의 기억을 가진 미완의 역사현장인 것이다.


<고형렬 - 세상에 시 한 송이 바친다>


<공지영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나뿐이므로>

♣ 칠 년쯤 전 겨울날 나는 마포에 있는 한 출판사를 향해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일찍이 문자를 알아 조숙하기만 했던 아이는 소설가가 돼 있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은 그래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세 살 때 혼자서 오빠의 책을 베껴 쓴 이래 아마 거의 사십 년 만에 글씨 한 줄 없이 석 달을 산 것이다. 글 없어도 나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잘! 소설가가 된 지 십오 년쯤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이런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하곤 했다. "왜 글을 쓰냐구요? 왜냐하면요, 그건 오직 그때만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글을 쓰는 순간만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때는 없거든요."

♣ 나는 아직도 내가 평생 글을 쓰며 살지 자신하지 못한다. 가끔 친구들에게 "나 글 쓰는 거 때려치우고 국수집 할까 봐, 나 김치국수 맛있게 비비잖아" 하면 친구들은 이제는 아예 대꾸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 따르면 글 쓰는 것은 나의 운명이라는 거다. 운명... 운명 말이다. '그럴까' 하고 나는 우물거린다.

♣ 그도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할 수 없는 치매증세 때문에 다른 직업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어서? 의례적 인터뷰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집에 와서 기절한 듯 서너 시간은 자다가 깨어나고 낯선 이들과 점심을 먹으면 어김없이 체해 며칠을 고생하는 특이체질이기 때문에?

♣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처음으로, 일기장에 그렇게 썼다. "나는 작가 공지영이다. 그래서 고맙다, 지영아"라고.


<구효서>

♣ 내게도 문학은 꿈이었다. 내 사진의 배경은 언제나 책장이었으면 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학자풍의 내 모습을 어려서부터 떠올려 보곤 했다. 책이라곤 '토정비결' 한 권밖에 없던 집안에서  자란 탓이리라. 도서관도 책방도 없던 마을에서 자란 탓이리라. 내 꿈은 실현 가능한 그 무엇이었다기보다 책도 없고 안경 쓴 형제 하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지독한 실의와 부정이었을 뿐이었다.

♣ 내 꿈이란 고작 그 끔찍한 미래를 향한 막연하고도 불안한 거절의 몸짓일뿐이어서, 정작 그 꿈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당초 이루어질 수조차 없는 거라고 여겼으므로 내 꿈은 몰약에 의존한, 나른한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던 거였다.

♣ 기대라는 것 중에는 그 기대로부터 배반당해야만 얻을 수 있는게 있다는 사실을 그 즈음 깨닫지 않았을까. 내가 기대했던 문학은 내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함으로써 스스로의 몸을 드러냈다고 할까.

♣ 이렇듯, 내게 있어 문학이란 예나 지금이나 기묘한 질문만을 던져 놓은 채 짓궂게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이며 무지개일 뿐이다. 내가 잡았다고 잡은 것은 언제나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듯 알지 못할 것이 문학이지만, 그 문학이 나를 이끌도록, 나는 매번 기꺼이 문학을 앞세우고 따라간다. 질문의 늪이 신비해서 심심할 새가 없다. 그것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라면 이유다.


<김광규 - 중얼거리기 위하여>

♣ 문자를 도구로 삼아 생게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소설을 써서 전업작가로 입신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시를 써서 전업시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백이나 두보 같은 고전 시성으로부터 서양의 현대시인 T. S. 엘리엇이나 파블로 네루다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시인들이 대개 시업 이외의 생업에 종사했다.

♣ 1975년 여름, 계간지 '문학과 지성'에 네 편의 시를 발표한 것이 나에게는 창작의 공식적 출발점이었다.

♣ 아직도 수많은 시집이 출판되고 시 전문지도 심심찮게 창간되지만, 시의 독자는 날로 줄어들고, 일부 문인들만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은밀한 속삭임도 못 되고, 일방적인 중얼거림으로 바뀌었다. 시인은 이제혼자서 중얼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중얼거리다'는 상대방을 전제로 하지 않고, 메시지의 전달을 원하지도 않는, 글자 그대로 절대적 고백에 접근하는 언술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종언을 개의치 않는 중얼거림이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김기택 - 나를 견디는 일>

♣ 삼십대 초반이던 어느 날 회사에서 외출했다가 들어오니 책상에 신문사 문화부에서 전화 왔었다는 메모가 놓여 있었다. 메모를 보는 순간, 신춘문예에 응모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 전에 한 번도 문예지나 신춘문예 본선에서 거론조차 된 적이 없었고, 신춘문예 사고를 보고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투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터라, 뜻밖이었다. 어쨌든 별 희망 없이 지루하게 살고 있었던 나에게는 큰 용기가 되었고, 한때의 취미로 머물다가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았던 나의 시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등단작을 다시 보며 습작기를 돌이켜 보면, 내 시는 나 자신에 대한 증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습작기의 나는 육체적으로 매우 열등하고, 환경적으로도 보잘것없을 뿐만 아니라 앞날은 캄캄했고,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기댈 곳이 없었고, 그것을 헤쳐 가기에 내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였고,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이었으며, 나의 몇몇 사소한 약점이나 버릇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치욕감을 주기도 하였다.

♣ 쥐는 스스로 제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밝은 곳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자꾸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 한다. 나도 지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으려고 한다. 평균적인 삶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가정 속으로, 너무나 흔한 외모여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직장인의 모습 속으로 숨는다.
가능하면 남들에게 노출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야만 하는 삶의 압력에 눌려 나는 쥐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몽둥이가 있는 대낮의 한가운데를 어쩔 수 없이 통과하고 있다. 나는 자꾸 쪼그라들고 작아진다. 내가 쓴 '쥐' 안으로 점점 갇히고 있다.

♣ 등단 십오 년째에 접어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한 회사의 건물 속에, 한 가정의 가장 속에, 수많은 평범한 사십대의 남자들 속에 숨어 있다. 숨어서 안 쓰는척하며 최소한의 작품만 쓰고 있다. 일정 기간에 쓴 작품들이 모이면 시집을 낸다. 처음엔 좋아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이런 행위는 무엇인가? 이런 시쓰기를 계속 해야 하는가? 혹시 시인이라는 외부적인 프리미엄을 누리기 위한 습관적인 행위는 아닐까?


<김성동 - 홀로 피어나는 '그늘의 꽃'>

♣ 문학잡지사에서 현상모집하는 신인문학상에 응모를 하기는 하였으나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중생이 이를 옥물고 써 본 그것이 이른바 '소설'이라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당최 자신이 없는 것이었다.

♣ 그래서 무엇인가를 써 보았던 것이었다. 무언가를 써서 응모해 보았던 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데 무엇일까? 무언가 세상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이야기이겠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은 맺혀 있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이겠다. 맺혀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세상 또는 세상 사람들한테서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이겠다. 그것도 회복 불능의 깊은 상처를. 그리하여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잘못되었으므로 뜯어고쳐야 된다는. 뜯어고쳐서 아름답고 훌륭한 새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응모를 했다고는 하나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 작품이 '쯩'이 있는 숱한 응모작들과 겨루어 당선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선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백만 원이라는 상금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은 어디에도 그 터무니가 없었다. 상금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의 터무니가 없었으므로 생계의 대책이 없었다. 소설을 쓰는 석달 동안을 국수와 라면 쪼가리로 연명하였으므로 당장 끼니가 골칫거리였다. 1978년 여름이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깊어 있었다.


<김연수 - Ten days of happiness>

♣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 작품이 영원히 남아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 그런데 이건 근본적으로 내 폐쇄적인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 나는 글을 긁적이기 시작했다. 글 쓰는 일이 영화감독처럼 다른 스태프와 함께 일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면 나는 퍼즐 왕이나 등대지기가 됐을 것이다.

♣ 1999년쯤이었다. 그 즈음, 나는 내게 돈도 명예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회나 문학을 쇄신하는 사상이 담기지도 않을 게 분명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퇴근한 뒤, 열한시부터 새벽두시까지 매일 써 내려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파스칼의 회심과 같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라는 문장에 해당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단숨에 깨달으면서 파스칼의 지복과 비슷한 감정을 잠시 느꼈단 말이다.

♣ 모세를 닮은 재벌 삼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 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 청나라 사람 장호는 이런 글을 남겼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 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은 벽(癖)이 없어서는 안된다."
벽이란 병이 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빠져 사는 것. 그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 산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 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김영현>

♣ 나는 대학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대학문학상을 타서 일약 대학문단의 혜성 같은 존재가 되었다.

♣ 소설을 쓰고 싶었다. 아니, 소설이 아닌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끄적거려 보고 싶었다. 나는 정신적으로 어딘가가 망가져 있었고,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도록 치명적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열과 발작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자신을 추스리며 서 있었다. 나는 글쓰기에서 어떤 희망을 찾았다.

♣ 나는 사람들이 다 퇴근하고 난 출판사의 책상에 앉아 하루에 한 편의 단편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 첫번째 소설이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였다. 창작과비평사에 갖다 주었더니 당시 계간지는 폐간되고 없었던 터라 신작소설집에 넣어 주었다. 실로 십여 년 만에 다시 '소설가'로 등단한 셈이었다.

♣ 지난 겨울 내내 나는 장편을 쓰기 위해 조립식으로 지은 서울 근교의 허름한 화실에서 보냈다.  혹설로 길이 끊어지고 보일러가 얼어터져 불씨 하나 없는 방에서 한밤중 나는 혼자 한 마리 거대한 벌레처럼 변해 꿈틀거리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징그럽고도 괴기한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문득 이것이 이 생에 지워진 나의 숙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나는 작가라는 것이다. 작가란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설사 그 누가 읽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무언가를 쓰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목마른 열정으로 차 있던 나의 청년기가 나로 하여금 이 문학의 숲 입구에 서 있게 하였다면, 작가라는 선택된,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지금 이 숲을 지나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그렇다. 지극히 행복하다. 나는 이제 내 인생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시간의 강 위에 흘려 보내야 하는 것과 남겨 두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헛된 명성에 눈멀지도 않고 내 능력 밖의 일 때문에 부대끼지도 않는다.


<김용택 - 문득 시가 내게로 왔다>

♣ 그렇게 몇 개월을 심심하게 보내고 있는데, 그 먼 산골까지 책을 월부로 파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산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낮에는 동무들과 산에 나무 가고, 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매달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다. 그 해는 눈도 많이 왔다.

♣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박목월 전집' '이어령 전집' '니체 전집' 그리고 한국문학 쉰 권짜리 전집도 그때 읽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전혀 낯선, 그러나 그 어디에선가 보았던 것 같은 그 샛길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났다. 나는 날마다 나를 응시하고, 나를 신기해했다. 늘 버리고, 무엇인가 설레는 그 무엇을 새로 얻었다.

♣ 어느 날 나는 방에 누워 멀거니 여기저기 쌓인 책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그렇구나. 저 책을 사람들이 쓴 것이로구나. 그래, 맞아. 나도 글을 써 보아야기. 그리고 나는 글을 써 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나는 외로웠다. 내겐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스승도 문학을 이야기할 그 누구도 내겐 없었다. 오직 나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면서 나를 키워 갔다. 그렇게 십삼 년이 흘러갔다.

♣ 그렇게 내가 산과 강과 내 몸을 모두 기대고 살기를 십삼 년,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어두운 산에서였는지 아니면 흐르는 강물 그 어느굽이에서였는지, 내게로 시가 왔던 것이다. 내 몸이 환해지는 시, 암울한 내 청춘의 어둠 속을 뚫고 달려왔던 한 줄기 불빛 같은 시, 세상을 알아낸 것 같은 시, 시가 내게로 왔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 세상에 태어나 사람이 바람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는 바람결에 스치는 풀잎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인생, 그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가. 도대체 우리들 삶이 그 무엇을 이룬단 말인가.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지금 행복한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 나는 지금도 내 의지와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로댕의 말이다. 문학을 왜 하는가? 살아야지. 죽어도 괜찮다는 하루를 나는 그냥 살 뿐이다. 문학은 최고의 삶을 사는 일이다.


<김원우>

♣ 모든 상품의 다른 이름이 쓰레기이듯이 소설처럼 그것이 없이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는 생산품일수록 그것의 개인별 효용도를 따지기도 무색해지기 때문에 그렇다. 당연하게도 이 대목에서 저속한 수단과 고상한 목적이 제멋대로 혼선을 빚고, 대중매체들이 그 수상한 도착증세를 부추기는 현장을 논란거리로 삼을 수 있을 텐데, 그 밑바닥에는 작가 일반의 윤리의식이 내면화되어 있지 않다는 생생한 결함을 수월하게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김원일 - 고단한 기억을 치유하기 위하며>

♣ 이십오 세로 소설을 써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학에 뜻을 둔 십대 후반부터 햇수로 따지자면 사십 년 넘게 열심히 한 우물을 판 셈이다. 그 동안 쓴 소설이 권수로 따져 서른 권이 넘으니 적은 분량은 아니다.

♣ 문학가가 되는 길은 재력, 인맥,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로부터의 배움이 필요 없는 분야이다. 대본집에서 빌려 볼 망정 책이 길잡이요 공책과 필기구만 있으면 자신이 살아온 삶의 한 자락에 문학적 장치를 섞어 억하심정을 풀어낼수 있기 때문이다.

♣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폐에 가까운 울증, 홀연히 딴 생각에 사로잡히는 잡념 많은 사춘기에 나는 쉽게 문학의 길로 아련하게 빠져들었다. 그 동기는 토마스 만의 짧은 단편 '환멸'을 읽은 어느 날 충격으로 닿아 왔다고 다른 글에서 고백한 바 있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그 어떤 직업에도 적응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여겨질 때 여린 바이올린 선율처럼 예술적인 어떤 기미에 현혹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런 삶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심약한 사람도 이 세상에서는 소수나마 존재한다는 예시였다. 그러므로 나는 시작부터가 생산적이고 힘찬, 현실성 강한 건강한 작품을 쓸 능력이 달린다는 데서 내 문학을 출발시켰다.

♣ 1986년에 십팔 년 동안 봉직한 출판사 직장을 놓자 전업작가로서 글쓰기에 매달려, 내 소년기의 고단한 편린이 깔린 '마당 깊은 집'을 썼다.


<김주영 - 자유는 나의 숙명, 고통은 나의 벗>

♣ 소설쓰기를 치열하고 끈질기게 계속한다면, 세속적으로 근근히 살아 남을 수는 있겠지만, 이빨을 앙 물어도 돈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확실해졌다. 혹은 가문의 법통이나 줏대를 세워 나가는 데 명분을 보태주거나, 사회적으로 또는 가족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란 것도 확실해졌다. 명성을 얻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 역시 한순간 화려했다가 소멸하는 불꽃놀이와 같다.

♣ 뒤에서 밀어붙이는 도도한 물결에 곧잘 딴죽 걸리거나 빈축 사고, 앞 물결에 따귀 맞기 일쑤여서 작업에 대한 성취감도 잠시 잠깐이다. 고고하게 살기는 너무나 어렵고, 세속적인 성취감을 획득하기에도 더욱 어렵다. 그래서 생각은 언제나 구름 위에 있어도 몸뚱이는 개천 바닥에 떨어져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처럼 이상과 현실이 빚는 갈등의 수렁에 양다리가 빠져 있어 몸둘 바를 모른다.

♣ 문학을 하기 위해 겪게 되는 광범위한 고통의 최면도 익숙해지면 피둥피둥하고 온전한 살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한한 자유가 존재하는 곳에 고통이 없으면 그 자유가 빛나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 내 소설이 세상 속으로 나가서 소금이나 향유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바람이다. 그러나 어쩌면, 탄탄한 문장과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미끄러지듯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고, 어린 시절 마을에서 살았던 곰배팔이나 절뚝발이가 그랬던 것처럼 평소에는 반편의 취급을 당하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궂은 일을 군소리 한마디 없이 치러 나가려는 의지를 가진 소설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런 일인가.


<김지하>

♣ 등단 전에 내 주변엔 '폰트라(pontra,poem on trash, 쓰레기 위에 시를!)'라는 사귐이 있었다. 여기서 어느 날 한 여자 선배 왈, '네가 결혼하거나 연애를 하려면 반드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하니 시인으로 문단에 등록해라'라고 자꾸만 권유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등단했다. 그런데 그 뒤의 나의 시가 과연 '폰트라'의 길을 갔던가?

♣ 되풀이하지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 '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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