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를 세상에 강하게 드러낸 소설 '몽고반점'을 나는 읽지 않았었다. 그 몽고반점이라는 제목이 묘한 거리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단편집 '내 여자의 열매'와 '검은 사슴'을 만나고 다시 그녀의 책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아직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신간의 소개에 한강의 새로운 소설 집을 냈다는 글을 만났을 때도 그저 기웃거리고 있었던 내 마음을 자극한 것은 단편 '그 여자의 열매'의 연상 선에 있다는 소개 글 때문이었다. 사실,한강의 글은 유쾌한 재미가 있거나 가슴 찡한 감동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러한 점이 내가 그녀의 글을 읽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이 소설을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구성하거나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여자의 열매를 만나고 더구나 몽고반점을 읽지 않는 내게 이 책은 그녀가 치밀하면서도 계획적인 구도로 차례로 글을 썼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 불꽃으로 이어지는 이 책은 크게는 인간이라는 테두리를 두고 볼 수 있으며 작게는 아니 근본적으로는 가족간의 욕망과 상처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 안에 속하지 않기에 더 강한 욕망을 불러오는 것들이 있다. 지극히 평범하기에 아내와의 결혼을 선택시 주저하지 않았다는 채식주의자의 화자인 나는 지극히 평범하여 결국은 나와 다른 아내(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하지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아내를 배제시킴으로써 나를 지키게 된다. 어느날 꿈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게 된 납득하기 어려운 아내의 변화는 가족간의 마찰로 이어지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의 신세를 지게 된다. 알 수 없지만 왠지 영혜는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아니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의 시작이었다. 영혜는 홀로 지내게 되고 그녀를 지켜내야만 한다고 믿는 언니의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몽고반점은 이 연작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절정부분이라 하겠다. 처제(영혜)에게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처제를 욕망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와 또 다른 모습을 가진 아내의 동생 처제. 그녀를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게 되고 결국은 욕망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된다. 남편과 동생의 괴이한 상황을 목격한 아내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시킨다. 그 욕망이라는 것은 남편을 그리고 동생을 죽이고 싶었을지 모를 분노 가득한 욕망이리라. 결국 동생(영혜)는 정신병원으로 다시 향하게 되고 그리고 남겨진 그녀의 이야기는 나무 불꽃에서 그녀만의 절망과 슬픔 그리고 남아있는 삶을 쓰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도 하지 않는다. 나무 불꽃의 화자인 그녀는 말한다. (시간은 흐른다.182쪽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190쪽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197쪽) 어떠한 경우에라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삶이라는 것은 지속되어지고 있으며 어린 시절 그녀도 영혜도 자신의 욕망대로 삶을 살아오지 못한 상처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자매는 그 상처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남편은 그녀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하고 정작 그녀들은 삶을 거부하는 모습으로,삶을 견뎌내는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한다. 204쪽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그래서 거꾸로 서 있고 싶어했던 영혜, 나무가 부르기에 나무가 있는 숲으로 걸어갔다는 영혜를 만나면서 동생이 그토록 나무가 되고 싶어했는지 이제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연한 초록빛의,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진화 전의 것,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101쪽  소설 속 영혜도 그리고 그녀를 지켜주고자 마음을 쓸어내리던 그녀가  바란 것은 아마도 태고적의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햇빛을 받고 물을 먹고 사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원했는지 모른다. 

엽기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또한 한강을 떠올리면 도저히 연상시키지 못할 글이라 고개를 젓는 이도 있으리라. 그녀는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고 했다. 그녀가 쓰고 싶어도 쓰지 못했던 날들의 이야기들은 또 언제 내 손에 올까. 그 전에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의 책들을 품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부제로 쓰인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말이 참으로 매혹적으로 들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속해있던 곳은 침대,바로 그곳이다. 책을 들고 있는 긴 손가락이 나를 부르는 듯 그랬기에 나는 주저없이 책을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저자가 읽은 많은 책의 내용으로 엮인 다소 진부한 책 일꺼라 예상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바람은 불어 오듯이 그 예상을 깨고 이 책은 이제 저자가 책 속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책들처럼 내게도 그런 존재로 남을 것이다.

침대의 프레임에 책을 가득 담아두었다는 저자의 침대가 너무 부럽다. 손을 뻗으면 책이 있고 그 책을 나만을 위해 읽어내려 간다는 저자의 말이 너무 황홀하다. 내 침대에도 책이 있다. 그러나 나의 책은 저자의 그것과 같지는 않다.  책에 대한 열정은 삶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내게는 기억된다.

들어보지도 못한 책과 작가의 이름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얼마나 많은 책들이 세상이 있을까?  지금 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책이라는 이름으로 글이라는 것을 쓰고 있을 작가들은 지금도 고뇌할 것이고 그들의 책을 접하고 읽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마음의 새겨둘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더불어 이 책을 통해서 만난 많은 책들의 제목을 검색하면서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읽기를 했나 싶어 조금 마음이 우울해지고 있기도 하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 슬프고 사람들과 작은 스침에  있어 그 어떤 떨림이너무 강해 멍한 시간속에 머물러 있고 새벽시간 홀로 세상에 깨어있는 듯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을 때 나는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이 책을 읽는 도중 어떤 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책에 빠져들어 그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침대와 책은 어떤 이에게는 정말 필요조건이 된다. 반대로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 내 경우는 전자의 경우에 속한다. 침대 속에서 나는 책을 읽는다. 침대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침대에 책을 쌓아두고 침대에 책을 정리하며 책을 읽는다. 책이라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저 이야기가 좋아서 책을 만났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야기가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책속에 빠져들고 싶어 책을 읽기도 한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숨쉬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에 대한 예의] 를 읽으면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품고 [어린 왕자]를 통해 소통과 관계를 되뇌이며 [사람풍경]을 읽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책 속의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있음을 꼭 기억하고 나도 저자처럼 나만의 책 사연을 먼 훗날 기록하고 싶어진다. 

나는 나이 들면 쉼보르스카 할머니처럼 되고 싶다는 웅대한 꿈을 품고 그녀의 책을 덮는다. 사랑이 끝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녀의 [끝과 시작]이란 시의 첫 문장에 나와 있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금은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다. 135쪽

'지금은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다.' 아,이렇게 멋진 말을 내 목소리를 빌어 누군가에게 전해줄 그 순간을 꿈꾸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내가 이 책은 읽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스 레싱이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수많은 그녀의 책들 중에 런던스케치와 다섯째 아이를 두고 런던스케치를 먼저 클릭했더라면 이 책을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빽빽하게 인쇄된 작은 책은 내게 또 다른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행복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 걸까? 보여지는 외면의 행복이 아닌 내면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보여지는 모습만이라도 행복의 범주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자 많은 사람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까?  서로가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림처럼 살고 싶은 욕망 속에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게 되고 사랑의 결실이라는 아이를 낳게 된다. 부모에게 있어 아이는 자신의 분신임과 동시에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결혼과 동시에 주어지는 새로운 책임과 의무는 때로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가져오게 되고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인생과 직면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임에 분명하지만 지금 그 공동체 속에는 공동의식이라는 것은 얼마나 강하게 서로를 연결하고 있을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한 곳을 바라보며 그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했으며 그들의 삶의 목적 역시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는 것이었다. 준비되어진 행복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닌 실체는 어떠했을까?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여겼지만 모두가 타인을 의식한 행복이라는 허울이었을까? 인간의 내면에는 어떤 욕망이 있는 걸까? 커다란 집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부를 누리고 싶은 솔직한 욕망이 아니었을까. 스스로가 가꾸어 나가는 가정이 아니기에 알게 모르게 그 커다란 집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균열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계기는 네 명의 아이들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다섯째 아이의 출생과 함께 온다.

어쩜 평범한 가족의 한 형태 일수 있다. 친정엄마의 도움과 부를 가진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멋진 피크닉을 즐기고 자신들의 거대한 집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안에서 웃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 다섯째 아이는 한 가정을 파괴하는 괴물이었을까? 다섯째 아이와 함께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여겼기에 하나 하나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며 그 커다란 집을 떠나고 다섯째 아이 또한 그 나름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커다란 집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사회로 불리는 가정이라는 집단 속에서 혈연이라는 특수적인 집단의 구성원인 아이들과 부부를 통해서 나는 커다란 사회를 떠올린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해관계로 맺어지지 않으면 방관하고 싶어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다섯째 아이를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특별한 아이를 만날꺼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어려운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와 더불어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적 사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모습 인지 모른다)그대로 드러내는 인물들을 보면서 엄마인 해리엇의 내면을 만나면서 무기력해지는 그녀를 느끼면서 남편 데이비드를 통해 보여주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지음 / 세계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저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작가,윤대녕. 최근작인 [제비를 기르다]에 호평을 들은지라 내심 그 책을 만나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나 언제나 그렇듯이 읽고 싶은 책은 계속 쏟아져 나오고 그 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우연히도 최근작이 아닌 그의 작품을 덜컥 사게 된 것은 8편의 소설 중에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이라는 단 하나의 단편 때문이었다. 목마름을 시험하려는 듯 목차도 맨 끝에 수록되어 있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그 사막까지 가는 도중 나는 또 다른 많은 사막들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윤대녕의 이 소설 집에는 끝없는 사막과 알 수 없는 공허감과 잡히지 않는 형체를 알 수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과 갈등하고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찾으려 헤메이는 길 잃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배암에 물린 자국 산책길에 아무런 준비없이 만난 뱀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뱀이 아님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뱀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다. 겨울 동면에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데 주인공은 아직도 그 뱀을 찾아다닌다. 이 소설 속에서 남겨진 것은 분명 자국일 것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 만든 자국임을 언젠가는 주인공도 알게 되리라. 어떤 것이든 지나가면 잊어버려야 함을 알지만 그 상흔 속에서 자꾸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기에 그런 것일까? 주인공이 찾는 단순한 뱀일까?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맥락의 소설은 표제작인 남쪽 계단을 보라 에서도 보여진다. 어느 순간 나의 시간이 나를 제외한 타인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느낌. 그들과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을 경험했다면 조금은 쉬운 소설이 되리라.  

무척 재미있게 만나지는 소설은 신라의 푸른 길과 자나가는 자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이  두 소설 속에도 발화하지 못하고 스스로 꺼져버리는 내면의 소리가 있다. 우연하게 경주를 향하는 버스에 동승한 남녀의 대화는 헌화가를 논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로가 헌화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더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속 욕망을 자제하는 글의 묘미가 탁월하다. 그에 반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나 가는 자의 초상 속의 인물들은 무척이다 답답하게만 보이지만 삶이란 아무리 낮게 엎드려 있어도 때로 조사관처럼 어떤 응답을 요구해 오게 마련인가 보다. 99쪽  이 문장 하나로 그 답이 될 듯하다. 

가족사진첩과 새무덤 또한 부재자의 강한 존재를 느낄 수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는 아들과 어머니,이제 그 자리에 아내가 함께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것도 두 소설에서는 아버지의 부재와 존재에 상관없이 그들과 화해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랑도 삶처럼 하나의 신성한 노동이란 걸 알게 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자신들과 화해하게 되겠지.109쪽 기억 속에 있는 기존의 아버지가 아닌 새로이 맞이하는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원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그 길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다다랐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라는 소설엔 메마른 도시가 있다. 그 안에 사막도 있다. 매일 매일 만나는 이 곳이 사막의 거리가 된다는 느낌이다. 미로같은 골목길을 지나 만나는 세상,그것이 사막일 것이다.그러나 그 안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은 사막을 만나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리라. 안개속을 걸어가는 듯한 모호함으로 그 길을 헤치니 이제 그 끝에 도착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만난 것이다. 사막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것인가? 자문하지만 그건 아니다. 사막의 선인장이 아닌 백합을 결합시킨 것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 황량한 사막에 피아노를 접목시킨 것이 나의 목마름의 가장 큰 원인이리라. 사막을 향해 가는 주인공은 어릴 적 사막을 꿈꾸던 친구를 기억한다. 시인이 되어 죽음을 앞 둔 그와 함께 사막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끝에서 그가 치던 피아노 연주를 울리게 하고 싶었던 걸까? 잃어버린 그 시절을 돌아보고 싶었던 건가?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옷을 한 겹 한 겹 조심스레 벗겨내는 숨막히는  작가의 시선이 있다. 그의 글속에 서성임이 느껴진다. 그 서성임을 과연 무엇일까? 너에게 가고 싶은 서성임이었을까? 사막으로 가로막힌 너에게로 향하고 싶은 소망이었을까?
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행하게 지속되어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수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로 서로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256쪽 
작가가 발생이라고 표현한 사막,나와의 많은 관계 속에서 어쩜 지금 어느 누군가와 사이에는 사막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러나 사막을 건너온 백합이 깊게 뿌리를 내려 새로이 꽃을 피울꺼 라는 소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무척이라 길게 그리고 어렵게 다다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만나고 나니 사막의 모래바람을 지나 오아시스처럼 자리잡은 나만의 백합을 만나고 싶은 바람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라는 소설로 이름만 들어본 천명관의 소설집이다. 전작을 읽지 못했기에 그의 글에 대한 극찬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거들지 못한 채 이 책을 일게 되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의 책 표지가 이 책의 내용과 딱 맞춤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 11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게는 유쾌한 하녀 마리사,세일링,자동자 없는 인생,비행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 마리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작가를 남편으로 둔 아내가 자신의 동생과 불륜을 일으킨 남편에서 보내는 편지로 쓰여진 단편이다. 편지에는 자신이 독을 든 와인을 마시고 자살을 할 꺼라고 쓰여있지만 정작 독이 든 와인을 마신 사람은 남편이다. 은근하게 통쾌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뒷 처리는 언제나 유쾌한 하녀 마리사 몫이다. 읽는 내내 그 뒷 내용이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세일링 : 단란해보이는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성묘 길은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다. 남편의 운전을 질타하는 아내의 평범해 보이는 한 마디가 공동묘지에서 시아버지 묘소에 놓은 꽃을  아무것이나 사라는 말로 이어진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자신에게 등을 돌린 남동생과 화해하고 싶은 나는 [행복해지길 원하기보다는 단지 불행해지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74쪽] 이제는 그 적절한 때를 찾을 수 없다. 아내와의 관계도 그러하고 세상으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러하다.  나는 어떤 나이에 속하는 것일까?
우리는 점점 불행해지는 게 두려운 나이를 경험하게 되는게 아닐까?

자동차 없는 인생 : 무언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물론 예정되어 있던 과정이었다 해도 그 허무함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남들처럼 결혼하고 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니 자신의 차도 자신의 저금통속 동전도 점점 사라진다. 잡힐 듯 하면서도 멀어지는 것들을 살다보면 많이 경험한다.

비행기 : 무척 재미있게 술술 읽혀졌다. 주인공인 드라마 작가와 그의 주변인물들에 관한 그저 평범한 일상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안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증오하고 소유 하려하고 배려하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사랑하지만 서로 이혼을 하게 되는 남과 여, 삶과 드라마 속에서 착각하기도 하는 사람. 가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처럼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생각에 즐거운 소설이었다.

[프랭크와 나,프랑스 혁멍사 - 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 더 멋진 인생을 위해 - 마티에게 ]라는 네 편의 소설에는 배경을 외국에 두고 있기도 해서 마치 한국작가가 아닌 외국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번뜩이는 재치와 기막힌 웃음이 있어 즐거운 소설들이었다.

[농장의 일요일, 13홀,숟가락아,구부러져라,二十歲]에는 모호함과 주가 되는 느낌이 있었다. 이거다 하고 고집에 줄 수 없는 느낌이 가득했다. 상대와의 소통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없는 혼잣말같은 소설이라고 할까?

사실,나는 이 책에 대해 기대를 무척 많이 했다. 그래서 일까? 실망도 많이 안겨다 준 책이었다. 작가는 무척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글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소설 속 소재에 등장하는 외국이름과 지명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그렇지만 아직 소설을 통해서 완전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려면 조금은 더 작가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작가가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많은 신인.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