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도시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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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득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울적할 때, 소설은 힘이 된다. 하여 위로 받고 싶은 순간을 잊어버리려 소설을 찾기도 한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인물들을 만나면 가만, 안도의 쉼을 내쉬기도 한다. 조해진의 소설 <천사들의 도시>에 인물들이 그러했다. 철처하게 고립된 삶을 살거나, 보편적인 일상으로의 복귀가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진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최선의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고, 위태로웠다. 

 표제작인 <천사들의 도시>를 포함해 7개의 단편 모두 울적하고 지친 군상들의 이야기다. <천사들의 도시>는 32세 한국어 강사인 ‘나’와 5살때 미국으로 입양되 15년간 살다가 한국에 잠시 돌아온 19살 ‘너’의 이야기다. 사랑하기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랐다. 언어를 시작으로 생각과 감정의 표현도 다르다. 분명 서로에 대해 알고 싶으나 쉽지 않다.  결국 ‘너’가 천사들의 도시로 떠나고 난 뒤 ‘나’는 너를 여전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는 독일 출장시 단 한 번의 관계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여자의 이야기다. 극심한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아니, 그 순간 감정이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이즈 감염이라는 결과는 너무 혹독했다. 직장에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혼자만이 감당해야하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을 여자는 사무실로 카드 영업을 하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린다.  포기하고 싶은 삶, 희망이 없는 삶. 여자에게 삶은 이미 계획된 극본같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세상의 문을 걸어 닫은 후 오늘분의 무대를 정리하고 커튼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p 62> 내일의 무대가 기다리고 잇음을 암시하는 것을 통해 작가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억눌한 누명을 쓰고 2년 동안 감옥에 살다가 누명이 벗겨져 사회로 돌아온 남자와 연극배우로 단역만 전전하다가 주연을 땄지만 망막색소변성즈응로 인해 더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인 <기념사진>이 인상적이다. 분명 죄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직장도 구할 수 없고 가족과도 함께 살 수 없게 된 남자는 불륜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생계를 유지한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아파트 6층에 산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여자는 무례하고 도도하게 보인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여자는 <그리고, 일주일>속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우연하게 여자에 대해 알게 된 남자는 여자를 돌봐 준다. <남자가 아는 것은 지금은 여자에겐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3년 전, 살인 사건이 이러난 집 앞을 지나가가 우연히 CCTV 카메라에 찍혔던 그날처럼, 그때 남자에게 절실하게 누군가가 필요해던 것처럼 지금 여자에게도 자신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 남자는 그것만 알 뿐이다. p 170>

 단편 속 인물은 하나같이 그가 그녀같다. <인터뷰>의 주인공 우즈베키스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왔지만 남편에게 버려진 여자 나탈리아는 한 말은 이 소설집을 대변하는 듯 하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란 걸 나도 몰랐으니까요. 운이 좋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도 나는 애초부터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죠. p 86>

 무엇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그 무엇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을, 나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그것이 무엇이었다. 이처럼 조해진의 소설은 차분함을 너머 우울했지만 그래도 닫혀있지 않았다. 에이즈에 감염으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세상에 나를 버렸지만 나는 도움을 바라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특별한 상황에 처해했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예기치 않게 닥친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은 버려야 한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경계에 서 있지만 경계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결국 그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이런 소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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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ㅣ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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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네 일상과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류 작가를 특히 선호하는 것은 여자로써의 삶에 대해 좀 더 깊게 파고든 그들의 소설과 공감할 수 있어서다.  지극히 권태롭고 불순해 보이는 제목과 표지를 누구라도 이 소설을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작가의 등단작 <열 세살>과 <엄마들>을 읽었을 때 그 기대감을 기억하기에 주목받는 신예라는 문구가 내게는 당연한 것이다.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빠의 존재를 모르며 태어남과 동시에 나쁜 피라고 낙인찍힌 여자, 화숙이 있다. 두 모녀를 당연히돌바줘야 할 가족인 할머니와 외삼촌 조차 냉대와 폭력을 일삼았다. 그런 엄마에게 화숙도 연민보다는 증오와 분노가 있었다. 천변에서 고물상을 하던 외삼촌의 폭력에 쓰러진 엄마가 죽음에 이르렀지만 모른 척 외면했다.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로 화숙이 비툴어진 심성을 갖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든 화를 동갑내기 사촌 수연에게 뒤집어 씌워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거짓말로 수연을 난처하게 했고, 외숙모의 외도를 외삼촌에게 고했다. 

 수연은 언제나 화숙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연약했고, 여대생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심지어 사랑했던 옛 남자 재현과 다시 살림을 차린다. 화숙은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늙은 할머니를 부양했고, 삼촌에 대한 분노도 여전했다.  화숙에게 남은 것은 악의뿐이었다.

 못생기고 살집 많던 여고생은 뚱뚱하고 키 작은 노처녀가 되었다. 손톱은 언제나 뭉뚝했고, 찬 바람이 불면 손등이 트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면 붉게 변해 피가 났다. 발뒤굼치도 언제나 허옇게 들뜨고 굳은 살점이 갈라졌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 p 53

 어린 혜주를 살뜰하게 돌보는 옆집 여자 진순을 이해할 수 없다. 딸까지 버려가며 사랑을 선택했지만 수연의 마지막은 자살이었다. 재현을 찾으러 간 외삼촌은 실종되고 결국 시신으로 돌아왔다. 화숙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남은 이는 없다. 지겹도록 끔찍했던 외삼촌의 고물상이 새로운 일터가 되었고, 엄마도 외삼촌도 그 누구도 아닌 혜주와 진순만이 화숙을 기다렸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천변과 고물상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더럽고 피하고 싶은 곳이지만,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 버려진 것들로 이뤄진 고물상이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삶의 근원지가 된다. 그 안의 사람들, 화숙을 비롯해 모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우울증으로 아이마저 외면하고 도망쳐야 했던 진순, 장애인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을 할머니가 술꾼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이기, 벗어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반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니었다면 쉽게 천변을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혜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화숙의 진심은 아니었을까. 하여,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가족을 만들고 지키고 싶은 욕망이 살아났는지도 모른다.

 “다녀오셨어요.”
안채로 들어서자 혜주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색연필을 쥐고 있던 혜주가 다시 바닥에 엎드려 발을 까닥거리며 그림을 그렸다. 여자 셋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의 구석에는 세모 지붕의 집 한 채, 하늘에는 노란 해가 떠 있었다. p 178

 혜주가 그린 그림 속 여자들은 더이상 나쁜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새롭게 태어난 가족이다. 혜주가 화숙과 수연처럼 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화숙과 진순은 혜주에게 자신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표출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희생도 강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소설이나 외면할 수 없는 소설이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당신을 대신해 앓았으면 좋겠다, 라는 작가의 바람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그들이 몹시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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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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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ㅣ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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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문학의 점유률이 높아지고 있는 출판계에 대해 누군가는 한국문학이 위기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창비 시선 300번 기념시선’을 마주하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은 몇 몇 유명 시인의 시나 방송에 언급된 경우를 제외하곤 시를 읽는 이는 소설에 비해 많지 않다. 시에 대해 어렵다는 편견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가진 함축적 의미에 대해서만 학습한 결과이다. 학창시절 밑줄 그으며 교과서적 일관된 해설에 의해서가 아닌 읽는 이의 느낌대로 해석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알지 못했다. 물론 문학을 전공하는 자에게는 다른 일지지만, 일반적으로 시를 읽는 이들에게 시는 시일뿐, 그 이상의 뜻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시를 읽는 즐거움으로 시는 그 의미를 다하는 것 아닐까.

특별히 창비 시선 300번 기념시선은 201번부터 299번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집에서 사람이라는 주제로 하나의 시를 선택하여 엮었다. 시인이 고른 시, 시인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시가 아닐까 싶다. 몇 몇 시가 나를 사로 잡는다.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 왔어./문을 열고 들어서면/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이봐. 어서 나와./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조등(弔燈)하나/꽃이 질 듯 꽃이 질 듯/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전문

나희덕의 시는 우리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들인지 생각하게 한다. ‘전화할께, 언제 한 번 보자, 밥 먹자’ 라는 빈말로 우리는 무심함을 대신하며 살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의 부재로 인한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시가 슬프다.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밤비뿐이랴/젊음도 사랑도 기회도/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유안진- 비 가는 소리> 전문

유안진의 시는 비가 오는 밤 소리내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한 구절(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 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을 중얼거린다. 친구가 그리워지는 밤, 때마침 비라도 내린다면 학창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게 분명하다. 소원해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천양희- <물에게 길을 묻다 3>의 일부

바쁘다는 핑계로 밥먹고 살기 버거워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삶, 하여 사람같이 살고 싶다고 시는 아우성친다. 예술을 위한 시가 아닌 사람들을 노래하는 시라면 시는 어렵지 않은, 우리네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존재할 것이다.  문득 좋아하는 정현종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도 꺼내본다.

사람이/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앉아있거나/차를 마시거나/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내가 그리는 풍경인지/그건 잘 모르겠지만//사람이 풍경일 때처럼/행복한 때는 없다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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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권우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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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매주 1번, 많게는 4번 정도 출판사나 서점 통해 신간 소식을 접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나, 미디어에서 집중을 받는 책은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지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는 관심이 많지 않다. 해서, 저자가 만난 책을 엮은 독서기는 수박 겉핥기 식이라도 다양한 책의 세계를 접할 수 있기에 반갑다. 저자 이권우는 이미 책읽기에 대해 세 권 출판한,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여타의 독서기를 만난 독자도 마찬가지다. 

 감성적인 독서기로 정혜윤의 <침대와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되었다> , 작가가 선별하고 서평한 책 김탁환의 <뒤적뒤저 끼적끼적>은 무척 매력적이라면 이권우의 책은 주관적이지만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 보이는 책이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느냐는 지극히 주관적이기이다. 하여, 세상에는 무조건 좋은 책도 무조건 나쁜 책도 없다. 단지 내게는 좀 더 끌리는 책이 있을 뿐이다.

 ‘죽도록 책만 읽는’ 뒤에 바보를 생각하고 지었다는  제목의 이 책은  문학, 인물, 고전, 인문, 역사, 예술, 과학, 사회 등 분야별로 다양한 11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과연, 이 책엔 내가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아마도 이 책을 읽으려는 이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목차를 살펴보니 낯익은 제목은 불과 몇 편에 불과했다. 예전같았으면 주눅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제법 뻔뻔해져서 이렇게 다양한 책, 앞으로도 읽어야 할 책이 많구나 하며 나름 위안을 삼는다.

 사랑하는 한국문학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읽었던 책은 그 느낌이 전해져 더 좋고, 만나지 못한 책은 읽고 싶은 욕심에 흥이 난다. ‘젊은 날의 초상’로 소개 된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와 ‘꿈꿀 권리를 옹호하다’의 정한아의 <달의 바다>가 바로 그러하다. 책과 문학, 출판가 고서점 이야기로 환상적인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서평은  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써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를 힘겹게 읽었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과학자의 자서전조차 어렵다 생각하는 내게 저자가  ‘너무나 솔직한 자화상’으로 소개하는  찰스 다윈의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는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으로 남는다.  잠깐 소개하면, 성공한 내과의사인 다윈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치욕스럽게도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신경 쓴다는 일이 사냥하고 강아지 돌보고 쥐 잡는 것밖에 없구나. 그래 가지고는 자신에게나 집안에게나 망신거리밖에 되지 않겠다.’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사람이며 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한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화가 나서 조금 부당하게 표현한 것이라 여긴다. ”p 146  

 독서기에 보면 의례 빠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에서도 우리 고전 읽기를 주목한다. ‘시대와 사회환경이 다른 시절에 씌어진 책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고전번역은 이 일을 등한히 해온 면이 있습니다. 각주나 해설 따위가 아예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형식적이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읽다가 모르는 대목이 나올라치면 고전 읽기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p 222 고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읽기를 주저하고 힘들어 하는 누구라도 공감할 부분이다.

 그외에도 엄마라서 그런지 흥미로운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칭찬은 아빠도 춤추게 한다.’로 소개한 김상복의<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은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점점 각자의 공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가족들을 한 자리로 모여들게 할 것 같은 책이다. 당장이라도 구매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나 뿐만 아니리라.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 하는 저 같은 사람도 글쓰기란 거의 공포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자신의 몰골이 드러나게 되어 있고, 잘 쓴 사람의 것과 비교하면 부끄럽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는 우를 범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좋은 글을 쓰려고 애를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p 354~355

 몇 권의 책을 메모하고, 몇 권의 책을 다시 생각하고, 내가 쓴  서평중 몇 편을 읽어보게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저자가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 마무리하면서 경험을 통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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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원재훈 시인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원재훈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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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으로도 한국 문학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 그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설렘을 준다. 박범신이 만난 젊은 작가들에 비해 원재훈이 만난 작가들은 가장 적은 나이가 마흔인 중년을 훨씬 넘어선 작가들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는 작가들이라고 하면 맞을까 싶다. 21명의 작가중 정현종 시인을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다소 흥분된 책읽기를 시작하였고 끝까지 그 기분은 계속되었다. 책은 1~2년 전 원재훈이 직접 작가들 을 인터뷰한 글들을 엮어 놓았다. 인터뷰한 장소는 주로 서울이나 일산이 많았고 도종환과 김용택은 작가의 집으로 저자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한 잔의 차나 술 잔을 마주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면서 문학과 사랑, 삶,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명인이나 다름없기에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실도 많았지만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이 고교 동창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언제나 책을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나와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때문인지 은희경이 쉰을 넘겼고 정호승 시인이 예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언제가 책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법.  많은 책들 이 언급되었고, 정현종이 언급한 ‘카프카와의 대화’를 꼭 만나봐야 겠다 생각했고, 정호승의 만나지 못한 책을 주문 하기도 했다. 

 세련된 외모의 은희경이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안 좋아서 야반도주의 경험을  ‘비밀과 거짓말’로 썼다니 그 소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전 소설가로 사는게 좋아요. 이것만 잘하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산문을 쓰기로 했어요. 이제 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법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전 이제 문학소녀가 아니라, 일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 장르의 글을 소화해내는 것도 능력이죠. ” p 86  이제 그녀의 산문을 읽을 준비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윤대녕의 말을 썼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조부를 문학의 아버지라 할 정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렇게 말했다.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어요. ”그는 자신의 소설을 오늘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삶을 이야기하지요. 그것이 바로 오늘 입니다. 나는 이 오늘을 씁니다. ” p 113 그가 쓰는 오늘은 작가이며 독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 윤대녕의 단편‘못구멍’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딸과 함께 다녀온 인도 여행을 풀어 놓는 전경린의 글 속에서는 왠지 평온함이 느껴진다. ‘엄마의 집’ 이후로 그녀의 글에서는 불안보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나타나지 않을까. “글쓰기의 한가운데에서 글쓰기의 행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반문을 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쓰고 또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p 426  혼자서 써야 하는 외로움과 고단함의 시간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한 시간은 또 얼마나 될까. 

 아직 소설이나 시로 만나지 못한 작가도 있다. 윤후명의 작품은 몇 번 만났지만 읽다가 손을 놓았던 기억이 있고, 김선우의 산문집도 그러하다. 김선우가 쓰는 동안 쓰고 싶은 소설이 세 권이나 몸으로 들어왔다는 ‘나는 춤이다’가 궁금해진다.  읽는 동안 행복했던 이유는 원재훈의 글에도 있다 . 시인이라 그런지 무척 감각적이고 섬세했으며 같은 공간을 묘사한 부분도 작가마다 그 느낌에 따라 달랐고 독자가 작가들 더 사랑하도록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인터뷰 하는 내내 작가들도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친구이자 선후배를 만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열심히 자신이 쓴 작품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소중하므로. 내게도 자주 자주 열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소중한 책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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