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ㅣ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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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문학의 점유률이 높아지고 있는 출판계에 대해 누군가는 한국문학이 위기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창비 시선 300번 기념시선’을 마주하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은 몇 몇 유명 시인의 시나 방송에 언급된 경우를 제외하곤 시를 읽는 이는 소설에 비해 많지 않다. 시에 대해 어렵다는 편견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가진 함축적 의미에 대해서만 학습한 결과이다. 학창시절 밑줄 그으며 교과서적 일관된 해설에 의해서가 아닌 읽는 이의 느낌대로 해석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알지 못했다. 물론 문학을 전공하는 자에게는 다른 일지지만, 일반적으로 시를 읽는 이들에게 시는 시일뿐, 그 이상의 뜻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시를 읽는 즐거움으로 시는 그 의미를 다하는 것 아닐까.

특별히 창비 시선 300번 기념시선은 201번부터 299번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집에서 사람이라는 주제로 하나의 시를 선택하여 엮었다. 시인이 고른 시, 시인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시가 아닐까 싶다. 몇 몇 시가 나를 사로 잡는다.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 왔어./문을 열고 들어서면/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이봐. 어서 나와./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조등(弔燈)하나/꽃이 질 듯 꽃이 질 듯/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전문

나희덕의 시는 우리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들인지 생각하게 한다. ‘전화할께, 언제 한 번 보자, 밥 먹자’ 라는 빈말로 우리는 무심함을 대신하며 살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의 부재로 인한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시가 슬프다.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밤비뿐이랴/젊음도 사랑도 기회도/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유안진- 비 가는 소리> 전문

유안진의 시는 비가 오는 밤 소리내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한 구절(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 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을 중얼거린다. 친구가 그리워지는 밤, 때마침 비라도 내린다면 학창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게 분명하다. 소원해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천양희- <물에게 길을 묻다 3>의 일부

바쁘다는 핑계로 밥먹고 살기 버거워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삶, 하여 사람같이 살고 싶다고 시는 아우성친다. 예술을 위한 시가 아닌 사람들을 노래하는 시라면 시는 어렵지 않은, 우리네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존재할 것이다.  문득 좋아하는 정현종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도 꺼내본다.

사람이/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앉아있거나/차를 마시거나/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내가 그리는 풍경인지/그건 잘 모르겠지만//사람이 풍경일 때처럼/행복한 때는 없다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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