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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도시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울적할 때, 소설은 힘이 된다. 하여 위로 받고 싶은 순간을 잊어버리려 소설을 찾기도 한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인물들을 만나면 가만, 안도의 쉼을 내쉬기도 한다. 조해진의 소설 <천사들의 도시>에 인물들이 그러했다. 철처하게 고립된 삶을 살거나, 보편적인 일상으로의 복귀가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진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최선의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고, 위태로웠다.
표제작인 <천사들의 도시>를 포함해 7개의 단편 모두 울적하고 지친 군상들의 이야기다. <천사들의 도시>는 32세 한국어 강사인 ‘나’와 5살때 미국으로 입양되 15년간 살다가 한국에 잠시 돌아온 19살 ‘너’의 이야기다. 사랑하기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랐다. 언어를 시작으로 생각과 감정의 표현도 다르다. 분명 서로에 대해 알고 싶으나 쉽지 않다. 결국 ‘너’가 천사들의 도시로 떠나고 난 뒤 ‘나’는 너를 여전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는 독일 출장시 단 한 번의 관계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여자의 이야기다. 극심한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아니, 그 순간 감정이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이즈 감염이라는 결과는 너무 혹독했다. 직장에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혼자만이 감당해야하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을 여자는 사무실로 카드 영업을 하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린다. 포기하고 싶은 삶, 희망이 없는 삶. 여자에게 삶은 이미 계획된 극본같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세상의 문을 걸어 닫은 후 오늘분의 무대를 정리하고 커튼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p 62> 내일의 무대가 기다리고 잇음을 암시하는 것을 통해 작가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억눌한 누명을 쓰고 2년 동안 감옥에 살다가 누명이 벗겨져 사회로 돌아온 남자와 연극배우로 단역만 전전하다가 주연을 땄지만 망막색소변성즈응로 인해 더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인 <기념사진>이 인상적이다. 분명 죄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직장도 구할 수 없고 가족과도 함께 살 수 없게 된 남자는 불륜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생계를 유지한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아파트 6층에 산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여자는 무례하고 도도하게 보인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여자는 <그리고, 일주일>속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우연하게 여자에 대해 알게 된 남자는 여자를 돌봐 준다. <남자가 아는 것은 지금은 여자에겐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3년 전, 살인 사건이 이러난 집 앞을 지나가가 우연히 CCTV 카메라에 찍혔던 그날처럼, 그때 남자에게 절실하게 누군가가 필요해던 것처럼 지금 여자에게도 자신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 남자는 그것만 알 뿐이다. p 170>
단편 속 인물은 하나같이 그가 그녀같다. <인터뷰>의 주인공 우즈베키스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왔지만 남편에게 버려진 여자 나탈리아는 한 말은 이 소설집을 대변하는 듯 하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란 걸 나도 몰랐으니까요. 운이 좋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도 나는 애초부터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죠. p 86>
무엇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그 무엇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을, 나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그것이 무엇이었다. 이처럼 조해진의 소설은 차분함을 너머 우울했지만 그래도 닫혀있지 않았다. 에이즈에 감염으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세상에 나를 버렸지만 나는 도움을 바라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특별한 상황에 처해했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예기치 않게 닥친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은 버려야 한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경계에 서 있지만 경계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결국 그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이런 소설이 좋다.